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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0일 금요일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하여


설교는, 목회자의 최고의 영광이면서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사실 고통이라고 적고 싶지만 어려움이라고 적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준비의 고통을 다 덮을 만큼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설교학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님들은, 주일에 설교 한번 들으러 그 간절한 마음으로 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회중으로 앉아 있을 때에 늘 누군가가 설교를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설교자의 서게 될 때에는, 그런 저의 바램이 저를 통해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설교를 돌아보면 굴곡이 많았습니다. 설교에 대한 이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저의 블로그에 적혀 있는 이 모든 내용들은, 사실 설교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입니다. 한번의 설교에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누적이 되고,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 저의 인생입니다.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일까요? 원리적으로는 말씀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적용점이 분명한 설교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특히 저의 마음에 드는 생각은, '나 자신에게 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이렇게 들려드리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이런 내용이 참 좋고, 이런 주해가 적용이 참 좋으니, 성도님들이 들으시면 은혜 받겠다 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통찰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들으면서 지루한 설교는 제 개인적으로도 참 싫어합니다. 어떻게든 번뜩이는 통찰을 만들어내야 흡입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훌륭한 설교는,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설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하는 설교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서 하는 설교인가? 내가 납득하지 못하고 내가 감동 받지 못하고 내 마음에서 나 자신을 향해서도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며 자기 착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요즘에 저의 깊은 마음에는, '쉽게 설교하자, 그리고 나를 향해서 진실한 그 내용으로 설교하자' 입니다. 좋은 주해도, 탁월한 전달력도, 그리고 명쾌한 적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제 자신을 향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 말씀에 저 스스로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너무나 부족하고도 또 허망하게 사라지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설교는 어렵습니다. 주일 설교를 위해서 한주 내내 기도하면서 머리를 싸맵니다. 늦은 토요일 밤 원고가 다 완성되면 마음이 순간 밝아집니다. 깊은 안도감에 빛이 저를 관통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오늘도 완성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목회자로서 제 인생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저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은, 앞으로도 저의 설교가 진실하고, 그 누구를 향한 설교가 아니라 제 자신을 향한 설교,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존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7)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1. 가사 살펴보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나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
내 몸을 쳐 순종함으로
거룩하고 받으실만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상하고 통회하는 나의 마음
가난한 맘으로 나아가
회개하며 그에 합당한 참된 열매 맺는 삶​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거듭난 생명으로 주님과 사귀는 삶
주님을 더 알아가고 내 모든 것을 다 아뢰며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걷는 것

 

2. 곡 소개

곡은,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4에 수록된 곡이다.이 곡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깊이 이해하면서 성도의 몸과 마음, 삶의 열매, 그리고 주님과의 동행으로 예배 드리기를 갈망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의 가능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우리의 헌신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동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치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완전히 인식한 상태에서 드리는 지적인 예배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Ro 12:1.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한 사람은 깊은 회개의 심령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혼을 합당한 제물로 받아 주십니다. 악인은 마음이 상한 자를 미워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치유하십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Ps 34:18.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는 성령님께서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실 때에 일어납니다. 옛 언약의 성전으로 크게 특징지어지는 외적인 예배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단순함과 특권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삶 속에서 반영하는 것을 의미하며, 바른 교리와 도덕적 순결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의 깊은 교제와 모든 죄로부터 점진적인 정결함을 가져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3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참된 예배가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묘사한 곡이다. 예배는 단순히 외적으로 교회 안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자체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생각할 때에, 마땅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인데, 깊은 회개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야 하며,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실제로 성전이 존재했고 그것을 통해 예배 드렸지만, 이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단순히 정해진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빛 되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죄에서 점점 멀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로 예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가? 아니면 나의 기쁨을 위해서 잠깐 교회에서 드리는 종교적인 의식인가? 이 찬양을 통해서, 성경적인 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 드리고, 합당한 삶의 열매를 오직 그분께 드리고, 또 주님과 진실하게 동행함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예배로 올려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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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4) - 내 맘을 엽니다

 

1. 가사 살펴보기

사랑의 예수님 나를 찾아오셔서
십자가로 대속 하사 내 마음 두드리네 

오 사랑의 예수님 지금 내 맘을 엽니다
내 안에 거하셔서 나의 생명 되소서

 

2. 곡 소개

곡은, 팀룩워십의 Invitatino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찾아오시며, 그분에게 마음을 여는 자에게 생명이 되신다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으로 억지로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회중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라도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 문을 연다면,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들어가 함께 먹을 것입니다. , 그분의 초대에 응답하는 신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실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514.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을 그의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시겠다는 약속을 포함합니다. 이는 돌판에 기록된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옛 언약과 대조됩니다. 새 언약은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신명기 30장은 이미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옛 언약이 결국 저주와 포로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 후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실 것(신명기 30:6)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옛 언약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을 알게 되며, 그리스도께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우리의 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349.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영접송이라는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는 간절한 고백을 담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밖에서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누구든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그분의 은혜를 입고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하신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시고, 그들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법을 따르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단은, 지금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언제나 활짝 여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심을 언제나 의식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도의 인생이란,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죄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더라도, 그분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에 풍성하게 드러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기뻐하면서 더욱 그분과의 친밀함을 깊이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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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0) -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1. 가사 살펴보기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2. 곡 소개

곡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찬양이다. 그분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들과 그들이 거하는 어두운 땅에 있음을 보여주면서, 이 곡을 부르는 나 역시 그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담아낸 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68:5 A father to the fatherless, a defender of widows, is God in his holy dwelling.

고아의 아버지라는 것은, 가장 취약한 자를 보호하는 분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종종 억압 받거나 학대 받는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조항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그분의 자비와 정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Ps 68:5.

에스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개역개정) 36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NIV)

목자 없는 양 같이 라는 말씀은 에스겔 34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영적 지도자들의 실패를 반영한다고 암시합니다. 학대 받고 소외된 자들을 측은히 여기심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의 목자이시며 다윗의 주이시며 종임을 밝히셨습니다.

Holman Bible Staff, KJV Study Bible (WORDsearch, 2012), Mt 9:36.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나의 관심을 위해서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붙들고 그것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인데, 하나님의 마음과는 너무나 멀어져 있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특별히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자들 가장 연약한 자들을 마음에 품고 계시며 그들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시며 도우신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은, 악인들을 마음에 품고 계신다. 그분은 죄인들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 찬양의 고백처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죄인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가야 하며, 또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너무나 연약하여서 스스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그들을 찾아가 섬기며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2025년도 한해가 바로 그러한 한해가 되기를 원한다. 온통 자신의 욕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풍조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뜻을 생각하며, 바로 그 부르심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섬김의 삶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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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8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89) - 에벤에셀 하나님

 


1. 가사 살펴보기

감사하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셨네 감사하신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셨네 살아계신 하나님
장래에도 인도하시리 감사하신 하나님
장래에도 인도하시리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하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2. 곡 소개

곡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으로부터 지키시고 돌보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는 곡이다. 또한 그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도 반드시 인도하실 것을 믿고 확신하는 담대한 믿음의 선포가 담긴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사무엘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7:3 And Samuel said to the whole house of Israel, "If you are returning to the LORD with all your hearts, then rid yourselves of the foreign gods and the Ashtoreths and commit yourselves to the LORD and serve him only, and he will deliver you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7: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7:10 While Samuel was sacrificing the burnt offering, the Philistines drew near to engage Israel in battle. But that day the LORD thundered with loud thunder against the Philistines and threw them into such a panic that they were routed before the Israelites. 7: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7:11 The men of Israel rushed out of Mizpah and pursued the Philistines, slaughtering them along the way to a point below Beth Car.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개역개정) 7:12 Then Samuel took a stone and set it up between Mizpah and Shen. He named it Ebenezer, saying, "Thus far has the LORD helped us." (NIV)

사사 시대는 영적 타락과 우상 숭배로 특징 지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하나님 앞에 회개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사무엘은 가나안의 다산의 여신인 아스다롯을 제거하라고 요구합니다.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과 함께 아스다롯을 마치 아내나 배우자처럼 그녀를 숭배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 관습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를 발한 것은 사무엘상 2장에 나왔던 한나의 노래를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이 그분이 날씨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벤에셀이라는 것은 전사의 돌혹은 돕는 자의 돌을 의미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1 Sa 7:3–12.

시편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73:23 Yet I am always with you; you hold me by my right hand.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73:24 You guide me with your counsel, and afterward you will take me into glory.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73:25 Whom have I in heaven but you? And earth has nothing I desire besides you.

어떤 맥락에서 누군가의 오른손을 잡는 것은 존경을 나타냅니다. 여기에서는 보호를 의미합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영광으로 영접하신다라는 것은 존경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후 세계를 나타낸다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철저하고 일관된 개념을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사후 세계는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에게도 믿음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81.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낸 탁월한 찬양이다. 이 찬양의 배경이 되는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사무엘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고자 한다면, 이방신을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도전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과 전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도우신다. 그리고 적군을 추격한 사무엘과 백성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말하며 그곳을 에벤에셀이라고 부른 것이다.

에벤에셀은 돕는 자의 돌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기꺼이 도우셨다. 그분은 살아계시며 능력이시며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자신만을 온전히 섬기기를 원하신다. 에벤에셀의 기적이 일어나기 이전에 백성의 영적인 각성이 있었음을 또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장래에도 인도하실 여호와 하나님 이심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주님의 나라까지 우리의 손을 잡고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주님을 향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또한 기꺼이 우리를 도우시는 그분을 향한 믿음이 새로워지기를 원한다. 이 찬양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미래를 오직 주님께 맡겨드리면서, 하늘의 평안 가운데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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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4일 일요일

내 영혼에, 상쾌한 빛이 들어오다 - 순전한 기독교의 짧은 부분들에 대한 작은 생각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물론 훌륭한 사람을 보면서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훌륭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저도 꼭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철이 들면서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훌륭함은 모방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즉, 탁월함을 모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는 것이, 훌륭함에 대한 첩경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팀캘러 목사님도 좋아합니다. 팀캘러 목사님은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 불리웠습니다. 루이스를 읽고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깜짝 놀란 것은, 그분의 설교 곳곳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루이스의 논리와 그의 생각과 글들이 묻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팀캘러 목사님의 훌륭함은, 루이스로 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루이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단 두문장만 읽어도 저의 영혼에 상쾌한 빛이 비추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책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중에 대부분은 지루했습니다. 무엇인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마치 미로를 헤매이는 것처럼 저를 제대로 인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루이스는, 아주 짧은 몇 구절만 읽어도 저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심지어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루이스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글과 그의 신앙은 마치 저에게 상쾌한 가을 바람과 같아서, 저의 영혼을 전혀 다른 그 어떤 곳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와 함께 거닐다 보니, 하나님의 아름다우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섬겼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5세 때에 무신론자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 서적과 친구의 영향으로 다시 서서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31세가 되어,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고 진정으로 회심하게 됩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평신도와 무신론자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가 발표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루이스 평신도로서 교파를 초월해서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다루고, 그러한 믿음의 내용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에 순전한 기독교를 처음 읽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참 좋았지만 역시나 루이스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루이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내면 안에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안식년 동안 잠시 주일 강단을 섬기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절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앞으로 저의 삶을 다져나갈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루이스를 아주 천천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시대는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다시 새롭게, 기독교 신앙의 탁월한 내용을 저의 영혼 안에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이라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전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렇게 발견한 절대 선 앞에서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게 될 때에야 결국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의 개념을 바탕으로 참된 성도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새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저의 짧은 글 쓰기로는 이 책의 깊이와 감동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야 말로 신앙 생활의 원동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수도 없이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복음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아는 것과, 이것의 깊이와 충격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 삶에 근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면에서, 루이스 그리고 순전한 기독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며 동시에 너무나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에 그가 탁월한 신앙인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연법에 대한 것은, 기독교를 이해하고 변증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절대적인 진리 혹은 법칙을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본능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증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확하게 그것을 어기고 있임을 지적하며 인류 전체를 몰아갑니다. 

물론 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평범하게는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도로 논리를 풀어가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인간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기반하여 우주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합리성을 존중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들에 대해서 설득적으로 논증하고 있고, 바로 이런 부분이 루이스의 탁월함입니다.

최근에 순전한 기독교 천천히 읽기를 반년 만에 끝냈습니다. 다시 책을 열어보니, 책의 거의 대부분이 줄과 메모들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제가 설교에 인용했던 몇가지 구절 정도, 그리고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몇 부분들을 인용하고 저의 짧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용서를 약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회개할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잘 짚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한 우리는, 나의 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의 척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와 소중함은, 그저 내가 처음에 기독교의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의 깊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첫 순간에 회개를 하고, 그리고 평생 회개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록 용서를 받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와 기독교를 완전히 결합하여 성경적으로 드러내는 루이스가 참 좋았습니다. 

또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 옛 조상들의 머리속에 불어넣어 준 생각은 그들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기라도 한 양 자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 부분입니다. 죄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어떤 도덕적인 잘못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혹은 내가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나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적, 방향, 내용 등을 철저하게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로 또 목회자로서, 이렇게 무섭고 또 무거운 죄에 대한 개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이러한 루이스의 죄에 대한 설명 혹은 논리는 우리의 성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단순히 예배를 열심히 드리거나, 혹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맥락에서의 나는 없고 오직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전 존재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시며 왕이신 그 지위를 온전히 회복하시고, 나는 호흡 한번 조차 오직 그분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의 구원에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자들로 그리고 오직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적들의 점령 지역,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합법적인 왕이 이를테면 변장을 한 채 어떻게 이 지역에 상륙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로서, 우리 또한 이 거대한 파괴 작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에 가면 동지들의 비밀 무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들이 우리를 교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적은 이 일을 위해 우리의 자만과 게으름과 지적 허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치 교회가 사교 모임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종종 계셨습니다. 현대화 되어 버린 교회에 출석하다 보면, 교회의 정체성이 매우 희미해 지는 듯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매일 교회에 나오는 목회자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글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상상력이 가득한 그리고 가슴 벅찬 묘사를 만납니다. 우리는 일종의 비밀 결사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변장한 왕을 모시고 있고 그분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밀 무전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우리의 미래를 가늠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교회에 대한 평범한 설명을 싫어합니다. 그저 무감각하게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설명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교회 생활 이라는 것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신앙의 동료이며 저의 친구입니다. 그를 통해 교회에 대한 참된 영적인 감각과 기쁨이 제 안에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대상-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또한 그가 기도하도록 밀어주고 있는 주체-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평범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평범한 작은 침실 안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적인 생명 전체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좀더 높은 종류의 생명-제 표현대로라면 조에, 또는 영적인 생명-속으로 들어 올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안에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루이스의 이 설명을 읽을 때 마다, 마음에 전율합니다. 물론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라는 아주 단순한 표현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다릅니다. 저는 다른 그 어떤 기도에 대한 설명보다 루이스의 설명을 제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기도의 목표, 기도의 원동력, 그리고 기도의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보다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연약한 우리들이, 우리의 거칠고 아픈 손을 모아 주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충격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얼마나 아름답게 영원에 맞닿아 있는 것인지를 그는 보여줍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늘을 활짝 열어 젖히고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루이스를 읽을 때 마다 이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를 좋아합니다.

루이스는 그의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새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루이스는 불신자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신앙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신앙의 논리나 멋들어진 말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지금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실재적인 운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의 책을 그저 논리로 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저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의 모든 것이 되는 그 궁극적인 상태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저를 결단하게 만들고 바로 잡아 주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를 참 좋아합니다.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지금 저의 기분은, 마치 보석이 가득 담긴 보물 상자를 품에 안고서는, 작은 손에 그 보물 중에 몇개를 잡고서 꺼내 자랑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너무 반짝이고 행복한데, 이 보물을 다 설명할 재주가 저에게 없어서 한 없이 아쉬울 뿐입니다. 

루이스를 읽은 저의 벅찬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짧은 글을 통해서 루이스를 잠시 접하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 글을 읽으신 누군가와, 선선하고 아름다운 날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루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저의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2024년 2월 25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71) - 검으나 아름답다

 


1. 가사 살펴보기

너의 모습 그대로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의 마음 그대로 너의 마음 그대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답단다
너는 멀리 왔다 하지만 널 따라 나도 왔단다
너는 나의 전부란다 널 위해 날 주었단다
그런 너는 나의 눈에 검으나 아름답다

 

2. 곡 소개

곡은, 김도현의 4검으나 아름답다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솔로몬의 사랑을 받았던 술람미 여인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녀는 비록 외모적으로는 부족하였지만, 왕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자로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솔로몬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그려낸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아가서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1:5 Dark am I, yet lovely, O daughters of Jerusalem, dark like the tents of Kedar, like the tent curtains of Solomon.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1:6 Do not stare at me because I am dark, because I am darkened by the sun. My mother's sons were angry with me and made me take care of the vineyards; my own vineyard I have neglected.

검으나 아름답다 :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밝은 피부가 아름다움의 지표였습니다. 노동 계급의 가정 속한 여성들은 밖에서 밭에서 일한 이후에 햇빛 때문에 피부가 검어 졌습니다. 어두운 피부는 종종 낮은 사회 계층을 나타냈기 때문에 밝은 피부가 더 바람직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John D. Barry, Douglas Mangum,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So 1:5.

술람이 여인은 비천한 출생입니다. 피부 때문에 아마도 무시 당했을 것이지만, 남편인 왕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 역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녀의 죄는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하게 보였겠지만, 그녀의 남편이자 왕이신 그분은 그녀를 그분의 은혜의 영광 가운데 거룩하고 용서 받았으며 아름답고 빛난다고 부르십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068.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1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하나님의 종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베푸심은 값을 매길 수 없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264.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5:9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how much more shall we be saved from God's wrath through him!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그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높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반역하고 비열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과 화평을 누리고 그분 약속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데려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Bruce Barton, Philip Comfort, et al.,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Wheaton, IL: Tyndale, 2001), 597.

요한1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개역개정) 1:9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 (NIV)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용서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용서하실 때에, 그는 그의 약속에 신실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기 때문에, 그분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도 그분은 의로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용서하실 때에, 그분은 더 이상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불리하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5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의 제목인 검으나 아름답다가 이 찬양의 핵심을 드러낸다. 술람미 여인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어디든지 그녀와 함께 함으로 솔로몬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랑 안에서 여인은 깊은 행복을 맛 보았다.

마치 동화와 같은 이 사랑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가진 조건에 따라서 우리를 대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내가 가진 그 어떤 조건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로 인하여 사랑하신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역사 가운데 흔들림 없이 가장 확고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완전히 의롭게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심을 기억하시고, 항상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다시 돌이키며 그분과 동행하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7) - 볼찌어다

 


1. 가사 살펴보기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살리 

볼찌어다 그의 음성을 듣고 맘 문 열라
주의 크신 사랑을 믿고 문을 열면
나의 하나님 생명의 반석 되시니

나와 항상 함께 하시리

 

2. 곡 소개

곡은, 한국 교회 가운데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 곡은, 예수님을 잃어버린 교회를 향하여 은혜로 찾아오시는,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기꺼이 죄인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함과 그분의 사랑을 아름답게 찬양한 곡이다. 특별히 가사에 말씀을 직접 인용하였기 때문에 더 마음에 깊이 와 닿고 은혜가 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20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3:20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Describes a request for a renewal of fellowship (e.g., Song 5:2). In their self-sufficiency, the church in Laodicea had locked Christ out. He wants them to repent and, ultimately, take part in the coming messianic banquet (Rev 19:9). 이것은 교제의 회복을 위한 예수님의 요청에 대한 묘사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급자족에 빠져서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내보내고  차단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궁극적으로 다가오는 메시아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e 3:20.

come in and eat. In the ancient world, a meal invitation to an estranged person opened the way for reconciliation. Jesus offers to accept and renew intimate fellowship with those who repent, anticipating the final Messianic banquet (19:9). 고대 세계에서는 관계가 소원한 사람에게 식사 초대를 하면서 화해의 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메시아의 잔치를 기대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을 받아주시고 친밀한 관계로 새롭게 하겠다고 제안하시고 계십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87.

이사야 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26:4 Trust in the LORD forever, for the LORD, the LORD, is the Rock eternal.

26:4 Trust. Place confidence in for security; one of the principal words for faith in the Old Testament. the Lord JEHOVAH. everlasting strength. Literally, “the rock of ages or eternity,” picturing God as a huge, immovable boulder that never changes (17:10). 신뢰하라 :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인데, 구약 성경에서 믿음에 대한 주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이것은 문자적으로 오랜 세월 혹은 영원한 반석인데하나님을 결코 변하지 않는 거대하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로 묘사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85.

고린도전서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3:11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3:11 foundation. The gospel of Jesus, the crucified Messiah and Savior. No other foundation can support the “building” of the church as God’s “temple” (v. 16). A different gospel is no gospel at all (Gal 1:6–7). 이 터는 :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아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다른 어떤 기초도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57.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개역개정) 10:4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NIV)

10:3–4 spiritual food … drink. Paul refers to God providing Israel with bread from heaven (“manna,” Exodus 16) and water from a rock. This rock appears at the beginning of their desert wanderings (Ex. 17:1–7) and near the end (Num. 20:2–13). “Rock” is a common OT name for God (e.g., Deut. 32:4), perhaps leading Paul to identify the rock with Christ.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에서 떡을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주신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반석은 광야 방랑의 시작과 끝에 등장합니다. 반석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이름이었기에, 아마도 바울은 반석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했을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61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첫번째 대상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마음이 교만하여진 사람들이다. 자신이 너무나 풍요롭고 넉넉하여서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친히 찾아오시며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예수님은 너무나 인자하신 분이시기에, 그들이 다시 예수님과의 깊은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것이야 말로 영적으로 병든 교회를 향하여 베푸시는 참된 은혜이다.

또한 이 찬양의 두번째 대상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교회의 유일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모든 고난 가운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사랑이시며 기쁨이시며 힘이 되심을 믿고, 그분과의 친밀한 영적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원한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도움이 되심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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