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한복음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4:10 하나님의 선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영적인 복을 베푸시는 분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할 때만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이 넘치는 삶을 상징하기 위해 신선하고 흐르는 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4:14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육체적인 욕망은 반복적인 충족을 필요로 하며 우리를 결코 온전히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내면의 활력의 근원이 되시며, 영원토록 완전한 행복으로 인도하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죄로 인한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친히 찾아가시고 친절하게 대화하시며 그녀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결국 심어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분이심을 선포하신다. 인간은 육체적인 욕망 속에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영혼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실망하고 여전히 목마르다고 느낄 때에,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인도자이시며 또한 위로자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안에서만 가장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있음을 믿고 주님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흔들릴 수 없는 희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통해서 가장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분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나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 내 몸을 쳐 순종함으로 거룩하고 받으실만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상하고 통회하는
나의 마음 가난한 맘으로 나아가 회개하며 그에 합당한
참된 열매 맺는 삶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거듭난 생명으로
주님과 사귀는 삶 주님을 더 알아가고
내 모든 것을 다 아뢰며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걷는 것
2. 곡 소개
이 곡은,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4에 수록된 곡이다.이 곡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깊이 이해하면서 성도의 몸과 마음, 삶의 열매, 그리고 주님과의 동행으로 예배 드리기를 갈망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의 가능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우리의
헌신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동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치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완전히 인식한 상태에서 드리는 지적인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는 성령님께서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실 때에 일어납니다. 옛 언약의 성전으로 크게 특징지어지는 외적인 예배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단순함과 특권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삶 속에서
반영하는 것을 의미하며, 바른 교리와 도덕적 순결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의 깊은
교제와 모든 죄로부터 점진적인 정결함을 가져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3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참된 예배가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묘사한 곡이다. 예배는 단순히 외적으로 교회 안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자체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생각할 때에, 마땅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인데, 깊은 회개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야 하며,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실제로 성전이 존재했고 그것을 통해 예배 드렸지만, 이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단순히 정해진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빛 되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죄에서 점점 멀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로 예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가? 아니면 나의 기쁨을 위해서 잠깐
교회에서 드리는 종교적인 의식인가? 이 찬양을 통해서, 성경적인
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 드리고, 합당한 삶의 열매를 오직 그분께 드리고, 또 주님과 진실하게 동행함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예배로 올려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내 갈급함 어느
것으로 채울 수 없네 내 갈급함 주의
음성 들리네 내 갈급함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내 갈급함 주의
음성 들리네 내게로 나오라 영원히
영원히 목마름 전혀 없으리 내게로 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2. 곡 소개
이 곡의
원곡은, 예수 전도단 화요모임 3집에 수록된 곡으로, 화요모임 집회를 인도하던 윤주형 목사님의 곡이다. 이 곡은, 성도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적인 갈급함을 보여주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원히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이사야 41: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41:17 "The
poor and needy search for water, but there is none; their tongues are parched
with thirst. But I the LORD will answer them; I, the God of Israel, will not
forsake them.
41:17 the poor and
needy. The people of God refuse the false salvations of idolatry.
They look to God alone in faith. They are sustained as they make their way to
Zion after release from exile. and there
is none. With every human resource exhausted, only God remains. 가련하고가난한자: 하나님의백성은우상숭배의거짓구원을거절합니다. 그들은믿음으로오직하나님만을바라봅니다. 그들은포로에서풀려난이후에시온으로돌아가는그들의길에서하나님의돌보심을받습니다. 모든인간의자원들이바닥났을때에, 여전히하나님께서계십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959.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2:13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sins: They have forsaken me, the spring of living water, and have
dug their own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not hold water.
2:13 forsaken me, the … living water … dug their own
cisterns. In abandoning the
Lord, Israel abandoned the source of “living” (i.e., running) water in favor of
stagnant “cisterns” that could not even hold the water that was put in them. In
other words, they exchanged the source of true life and peace for empty and
deceptive promises, which is all that idols can give (see Isa 44:9–20). 여호와를 버리면서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그 안에 부어진 물 조차 담고 있을 수 없는 웅덩이를
선택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참된 생명과 평화의
근원을, 우상이 주는 전부인 공허하고
기만적인 약속과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요한복음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4:10 Jesus
answered her, "If you knew the gift of God and who it is that asks you for
a drink, you would have asked him and he would have given you living
water."
4:10gift of God. Jesus identified Himself as
the One who gives God’s spiritual blessing. living
water. Jesus used “fresh, running water” to symbolize the overflowing life
of joy found only by union with God through Christ in the Holy Spirit (7:37–39;
Ps. 42:1–2; Jer. 2:13; Zech. 14:8; Rev. 21:6; 22:17; cf. Ezek. 47:1–12).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
밝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써만 발견되는 넘치는 기쁨의 생명을 상징하시기
위해 “생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
요한복음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7 On the last and greatest day of the Feast, Jesus stood and
said in a loud voice, "If anyone is thirsty,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7:38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stream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him."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7:39 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Up to that time
the Spirit had not been given,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7:37–39 On
each day of the feast, the people came with palm branches and marched around
the great altar. A priest took a golden pitcher filled with water from the Pool
of Siloam, carried it to the temple, and poured it on the altar as an offering
to God. This dramatic ceremony was a memorial of the water that flowed from the
rock when the Israelites traveled through the wilderness. On the last day of
the feast, the people marched seven times around the altar in memory of the
seven circuits around the walls of Jericho. Perhaps at the very moment that the
priest was pouring water on the altar, Jesus’ voice rang out: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초막절 절기 동안, 매일마다 사람들이 종려 나무 가지를 들고 와서 거대한 제단 주위를 행진했습니다. 제사장은 실로암 못에서 물을 채운 금 항아리를 가지고 성전으로 가서 제단 위에 부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극적인 의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에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명절의 마지막 날에 백성은, 여리고 성벽을 일곱 번 돌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제단 주위를 일곱 번 돌았습니다. 아마도 제사장이 제단에 물을 붓던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의 음성이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곡은, 인간의 본질적인 목마름과
갈망을 보여주는 곡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만족함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의 죄성은 끊임없이 여호와를 멀리하며, 오히려
세상의 헛된 약속들과 순간적인 즐거움을 쫓아가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참된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찾고 그들이 주는 쾌락을 쫓아가다가,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나라가 망하며 포로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야 말로
생수의 근원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과 연합한 삶에서, 그리고 그분을 가까이 모시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속에서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생수의 강이 넘친다는
것” 은 우리의 영혼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감격과 감동과 사랑과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갈급함을 채우는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육적인 눈으로는 이러한 생수 되신 주님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나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주님과의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힘을 쓰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까이 하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시간과 힘을 들여서 주님을 가까이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드릴 때에, 주님께서 더욱 깊고 풍성한 영적인 풍성함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이다.
한 사람의 삶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성경은 특정한 사건들에 아주 집중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아주 흥미롭고 또 그 이야기 가운데 큰 의미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드라마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넌 나에게 실망감을 줬어" 이번 장에서는 실망감을 경험합니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입니다. 기적의 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과 아들의 자발적인 순종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놀라운 약속의 아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에서와 야곱이 탄생한 이후에 다시 큰 흉년이 찾아옵니다. 이삭은 흉년을 피해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그랄로 피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려가지 말 것을 명령하시고 이삭은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는데, 이삭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아내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양심을 속이며 거짓말을 감추고 살았습니다.
오히려 우연히 아비멜렉이 이삭이 리브가를 안은 것을 보고 이삭을 불러서 호통을 칩니다. 이방 왕인 아비멜렉이 도덕적으로 더 예민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마터면 자신의 백성이 이삭 때문에 큰 죄를 지을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리고 이삭을 보호해줍니다.
우리는 이삭에게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약속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해도 쉽지 않을 백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사는 곳에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여서 아브라함이 생전에 파 놓았던 우물을 다 메워버립니다. 그리고 이삭을 그 땅에서 쫓아 냅니다.
이삭은 이곳 저곳을 옮기면서 메꾸어진 우물을 다시 팝니다. 그런데 파는 곳마다 우물이 다시솟아나옵니다. 강수량이 너무나 부족한 가나안 땅에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마치 이삭의 손길을 기다렸던 것 처럼 우물들이 넘치게 솟아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너를 반드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삭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서 머무릅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온 이야기가, 브엘세바에 제단을 쌓기 전에 이야기임을 알려줍니다. 성경의 스토리의 구성은 매우 역동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이삭을 쫓아내었던 아비멜렉이 오히려 그에게 언약을 요청하고 화친을 맺습니다. 그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면서, 에서가 등장합니다. 이삭의 결혼 이야기가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과 대조되면서, 에서는 가나안 사람인 헷 족속의 여인들을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부모의 근심이 됩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에서는 이방 여인을 맞아들이는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부유함 그 자체에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부 그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부를 사랑하는 것, 돈을 사랑하는 것이 죄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복을 물질적인 부유함으로 종종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를 소유하고 있는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나의 재산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장은 너무 흥미롭습니다. 이삭이 속이는 장면이, 그리고 그가 축복 받는 장면이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복을 받는 장면 속에서 우물이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구약 전체에서 우물이라는 단어는 서른 세번이 등장합니다. 그중에 여덟번이 오늘 말씀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아들에게 우물이 언제나 기적처럼 넉넉하게 터졌던 것 처럼,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샘물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영원히 목마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언제든지 풍성한 은혜로 준비되어 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얼마전에 작은 미술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저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묵으로 그린 동양화였습니다. 다른 모든 작품들이 다양한 색으로 면을 꽉 채운 것과 비교할 떄에, 동양화의 가치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공간이 비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 여백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여백 속에 그려진 선들이 여백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성경을 묵상하다가 문득 성경은 동양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토리 안에 여백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여백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놔둡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도록 우리를 부르는 듯 합니다.
드디어 사라가 이삭을 낳습니다. 성경은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녀를 돌보시고 행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고 계속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긴 기다림을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했습니다. 기다림, 혹은 인내라는 말로는 더 이상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 상황을 다 지나간 이후에, 드디어 약속의 아들이 태어납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인생의 어떤 장면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드러냅니다. 아마도 이삭이 태어난지 삼 년 정도 지났을 때에,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립니다. 이때 이스마엘은 거의 십 칠세라고 스터디 바이블은 지적합니다. 제 생각입니다. 십 칠세의 나이라면 어린 아기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 나이가 아닐까요?
이 장면은 누가 과연 진짜 아브라함의 상속자인가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구조적으로 볼 때에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가는 장면이 무려 13절에 걸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삭이 태어난 그 감격적인 장면보다 더욱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과연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손인가의 문제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후에, 갈라디아서에서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게 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자녀만이 진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시 확인하십니다. 단순히 집안에서 여인들의 권력 다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중요한 맥락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한순간에 집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그 긍휼이, 창세기 곳곳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했던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도 여기게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기전에 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이 사건을 통해서, 모든 생수를 민족들에게 흐르게 하실 하나님을 봅니다. 약간은 과장된 해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햇빛이 타오르는 광야 지역에서 우물을 자신의 것으로 확실하게 소유한 아브라함의 마음은 한 없이 풍성해졌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소유하게 된 그 우물의 자리에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영원하신 여호와라는 표현이 바로 여기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다섯번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마음으로 여호와를 이렇게 불렀을까요? 혹시, 자신의 약속의 자녀를 향한 기다림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영원처럼 길었던 기다림을 넘어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 때문에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을까요?
이곡은, 한국 CCM계에큰영향력을끼친박종호씨의첫앨범에수록된곡이며, 최덕신씨가작사작곡한곡이다. 이곡은, 한없이거룩하신여호와하나님께, 우리의영으로찬양하고기도하고예배할수있음을고백하고있다. 그리고영이신하나님께서, 영으로드리는우리의예배를기뻐받으심을확신하며노래하는너무나아름다운찬양이다.
3. 말씀으로바라보기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참되게예배하는자들은영과진리로예배할때가오나니곧이때라아버지께서는자기에게이렇게예배하는자들을찾으시느니라4:23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4:24 하나님은영이시니예배하는자가영과진리로예배할지니라 (개역개정) 4:24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NIV)
Stephen
J. Wellum, “Incarnation and Christology,”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673. 하나님은영이시니 : ‘영’이라는것은육신, 장소, 그리고물질세계가인간과그들의세계를특징짓는것과같은방식으로하나님이어떤분이신가를특징짓습니다.
하나님은한공간에국한되지않으시므로, 사람들이어디에서나성령님과진리안에서그분을예배할수있습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900.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참 되게예배하는자들은영과진리로예배할때가오나니곧이때라아버지께서는자기에게이렇게예배하는자들을찾으시느니라4:23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4:24 하나님은영이시니예배하는자가영과진리로예배할지니라 (개역개정)4:24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NIV)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