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친절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친절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내가 떠난 당신의 자리 / The Only One - Lionel Richie

 


목회로 교회를 섬긴 지 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카톡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거의 10년 만에, 더 이상 쓰지 않는 카톡방들을 정리했습니다. 

현재에 집중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과거를 종종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만났던 모든 분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나마 좋았던 인연들과 추억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수많은 카톡방을 정리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저 몇 글자에 불과한 카톡의 메시지들이지만, 단지 그 메시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분들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목회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 것이고, 또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분도 계시고, 차가운 분도 계시고, 목회자의 연락 자체를 거북하게 여기는 분도 계셨습니다. 친절한 언어로 대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냉랭한 언어로 대하는 분도 계셨고, 갑자기 연락을 끊어 진 분도 계셨습니다. 참 많은 분들을 만나고 섬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의 중요한 훈련 중에 하나는, 감정을 지나치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보다 앞서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한켠에 아쉬운 마음은 종종 있습니다. 당연히 본인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때로는 쓸쓸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더 소중합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났지만, 따뜻하게 대해 준 분들의 글을 읽으니 제 마음도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저에게 보여주셨던 배려가 참 좋았습니다. 그때에도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를 떠난 많은 분들의 남겨진 자리를 지켜보면서, 제가 떠난 그 자리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제가 세상의 모든 친절을 다 가지지는 못했지만, 저를 대하는 분들의 마음에 아주 작은 배려라도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고되고 힘든 인생의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도, 저의 따뜻한 한마디가 그분의 마음에 남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참된 목회일 것입니다.

2025년 11월 3일 월요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28) - 새가족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가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있을 정도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역 교회에 등록을 하고 신앙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 역시 한 교회의 새신자가 되어 본적이 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바라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따뜻한 교회'입니다. 설교도 중요하고 양육도 중요하고 환경도 중요하지만, 지역 교회에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함 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교회에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셨고, 그 중에서 저희 교회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기로 결심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에 새가족 환영회를 하면서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온 교회 성도님들이 함께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볼티모어 교회에서 어떤 점이 좋은지를 한분 한분 돌아가면서 말씀하시는데, 이구동성으로 성도님들의 따뜻함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또 교회가 분위기가 밝고 친절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담임 목사로서 너무 마음이 기뻤고,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의 가족도 이제 겨우 1년이 된 새신자이기 때문에, 함께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교회로 보내주시고, 또 귀한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 생활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찼습니다. 새가족 분들을 위한 케익을 자르는데, 제 소원을 물어보셨습니다. '제 소원은, 주일마다 성도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시는 것이고, 또 모든 성도님들이 행복한 신앙 생활 하시는 것입니다.' 즉석에서 나눈 마음이지만, 저의 진심이었습니다. 

볼티모어 교회가 앞으로도 따뜻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새롭게 주님을 믿는 분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고, 또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분들이 진정한 영적 가족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비록 외롭고 힘들다 할지라도, 함께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뤄가며, 그 안에서 넘치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Which church a person attends can deeply shape their life. Yet, even for someone who already believes in Christ, joining a local church and beginning a life of faith is not easy. I have also been a newcomer before, so I know how difficult it can be to worship and build relationships in an unfamiliar place. That’s why my vision for an ideal church is a “warm church.” Preaching, education, and environment are important, but warmth is the most essential. 

Over the past year, many people visited our church, and some decided to join us in faith. During our newcomer’s welcome event, we expressed our gratitude and celebrated together. When asked what they liked most about Baltimore Church, everyone mentioned the warmth of the members, and many said the church atmosphere is bright and friendly. As the senior pastor, I was deeply joyful and convinced that God is leading our church well. 

My family, being newcomers ourselves for just a year, also joined the event. I felt overwhelmed with gratitude that God brought us to this precious church and allowed us to serve together. When asked about my wish, I said, “My wish is that every Sunday our members receive much grace and live a joyful life of faith.” It was spontaneous, but heartfelt. 

I truly hope Baltimore Church will continue to be a warm church — a place where new believers find faith and those who have wandered find a spiritual family. Even though life can be hard and lonely, may we build together a beautiful community of God’s kingdom and experience overflowing joy within it.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박사에게 반하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많은 부분이 어그러졌습니다. 굳이 그것 때문에 제 마음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여러가지로 여의치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막내가 이빨이 많이 안 좋아서 어린이 치과에 갔습니다. 선생님이 소아 치과 전공이고 치의학 박사입니다. 무려 네번에 걸쳐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팔을 붙들고 있는 저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정말 잘하십니다. 아이를 진정시키면서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번개와 같은 손놀림으로 빠르게 치료합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눈 앞에서 직접 모든 것을 보면서 탄복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의원이라는 곳을 가봤습니다. 선생님이 한의학 박사입니다. 사실 아내와 아이들 가는 김에 옆에서 그저 따라갔습니다. 아내가 굳이 등을 떠밉니다 '상담이라도 받아봐' 별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아니, 아프지도 않은 사람한테 왜 굳이 상담을 받으래?'

막상 선생님 앞에 앉으니 아픈 곳이 술술 나옵니다. '등이 너무 아파서 몇년 동안 고생입니다' 잘 들어주시고 설명을 해주십니다. 회복 없이 지나치게 과로를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부항과 침도 처음 받아 봤습니다. 몸을 짚어주는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닙니다. 워낙 친절하셔 단 한번에 몸도 마음도 회복된 것 같습니다. 

박사라는 학위는 왠지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 마음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큰 유익을 준 두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분야에서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목회학 박사를 받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에, 실력있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그런 사람일까?'

저의 전문 영역에서는 거침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탁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삶이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함께 읽는 기쁨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늘 수록, 저의 학위가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빛날 것을 기대해 봅니다. 

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40장 / 하나님의 자녀의 역설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두 명의 죄수가 새로 들어오게 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아마도 이 두 사람이 파라오에 대하여 암살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성경은 요셉이 그들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성실을 다합니다. 감옥에 들어왔다고 인생을 자포자기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가장 작은 일 조차도 큰 일로 여기고 감당합니다. 

이번에 묵상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요셉은 참 친절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두 사람의 낯을 살폈다라고 말한비다. 요셉은 자신의 처지에만 몰두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형편을 살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태도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가게 됩니다. 

요셉은 두 사람의 꿈을 듣고서는,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요셉은 비록 고난의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습니다.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역설을 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믿고, 하나님이 꿈을 해석하신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꿈을 확신을 가지고 해석해 줍니다. 그의 독보적인 꿈에 대한 해석은, 구약 성경에서 이 동사가 오직 요셉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통해서 더 강조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꿈은 해석하지 못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훈수를 두지만,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요셉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합니다. 그는 꿈을 성실하게 해석해 줍니다. 그리고 술 맡은 자에게 자신의 사정을 바로에게 꼭 아뢰어 달라고 말합니다. 

해석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자리를 회복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 요셉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요?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요셉은 그 고난 안에서도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재능을 받은 사람입니다. 꿈을 해석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한계를 그으십니다. 아직 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In this chapter, I saw the paradox of Christians. Joseph is kept in the prison. He has faith and talents. However, he shows sincerity and kindness to other people. He can interpret dreams and his ability was exceptional. But he can't his own dream. Joseph could do his best in the prison but God made the limitation on his situation. Maybe, Joseph could have the hope through the chief cupbearer but, Joseph should wait to God's time.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24장 / 리브가를 찾아서 데려오다

 

결혼이 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만 할까요?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이야기가,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내건 조건은 사실 너무 까다롭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거의 불가능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가나안 땅 여인은 안됩니다. 자신의 동족이어야 하는데, 동시에 가나안 땅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두가지 조건이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배우고 경험한 아브라함의 자연스러운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가문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바로 가나안 땅임을 믿은 아브라함은 이 두가지 조건을 가지고 자신의 종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의 여정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저 수동적인 입장에서 가만히 않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사용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종에게 신신 당부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엄청나게 자세하게 그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단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셔야 가능한 것임을 종은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24장 전체가 종의 기도와 그 기도가 이루어진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아브라함의 조건에 더하여서 낙타까지 먹일 수 있는 아가씨를 찾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리브가를 처음 만난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단순히 종에게 물을 먹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낙타까지 먹이겠다고 말합니다. 낙타는 물을 정말 많이 먹는 짐승입니다. 오랜 여행끝에 지친 낙타를 먹이겠다는 것은, 보통의 친절로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리브가는 체구가 굉장히 크고 튼튼한 아가씨가 아니었을까요? 여하튼 리브가는 외모도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더 아름다웠습니다. 

구조적으로 볼 때에 "리브가의 친절"은 두가지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 앞장에서 과장된 친절을 가장하여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장지를 팔아넘겼던 가나안 사람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들은 큰 슬픔을 당한 사람조차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삼는 악인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24장에서, 선물로 받은 손목고리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한 라반과도 대조가 됩니다.

기적처럼, 리브가가 가나안 땅까지 오게 됩니다. 성경은 이삭이 들에서 묵상하다가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삭은 사라의 장막으로 리브가를 들어오게 하고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큰 슬픔에서 회복되며 위로를 얻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아브라함과, 그 아브라함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종,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친절과 사랑을 지닌 여인,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놀라운 뜻을 이루십니다.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18장 /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런면에서 이 방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천사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 사람이 나타나서 이삭의 탄생을 분명하게 예고했기 때문에, 스터디 바이블은 이 내용을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누가복음에서 천사들의 찬양과 연결합니다.

이제 노인이 된 아브라함이, 뛰어다니면서 정성을 다해서 손님을 대접합니다. 귀한 고기와 풍성한 밀가루를 동원해서 친절을 배풉니다. 저는 풍성한 친절이야 말로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필립 얀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바베트의 만찬" 이야기를 통해 풍성함을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점점 구체화되어서 시기까지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사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자신의 현실을 끝까지 쳐다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과 상황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계속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는 어려운 일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라에게 화 내지 않으시는 것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마치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의 상황과 나의 모습만을 쳐다볼 때에, 우리는 여호와의 일하심에 대한 감각을 상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시지 않고 우리를 설득하시며 여호와 자신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저는 늘 창세기 18장의 맥락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이 문맥적으로 매끄럽지 않다고 느낍니다. 특히, 여전히 말씀에 대해서 확고하지 못한 사라의 웃음 뒤에 연결되는,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과 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대조가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동참시키십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브라함이 그 심판의 과정 속에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심판의 이야기를 듣고, 아브라함이 얼마나 빠르게 계산하는지 놀랍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든 소돔과 고모라를 보전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 역시 어떻게든 소돔과 고모라를 보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의인이 열명만 있어도 남겨 두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편견이 언제나 아쉽습니다.

큰 도시에 단 열명의 의인이라는 비율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집니다. 상상해 보았습니다. 설령 의인 열명이 남아 있더라도 핍박받고 비웃음 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마지 못해서 거기서 견디고 있을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당장 그 도시의 사람들은, 그 열명에 대해서 전혀 눈여겨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의인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터디 바이블은 18장의 이해를 마무리하면서, 로마서 5장에 등장하는, 한 의인으로 인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연결합니다. 

행위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단 하나의 흠도 없이 완벽한 온전한 의인은, 역사 가운데 단 한명만 존재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의 희생과 성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온 세상이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인은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덧 입게 됩니다.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자비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습니다.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