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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9일 월요일

“목사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 일상의 대화를 잃어버린 정목사

 

오랜 만에 반가운 분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2초 정도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마음에 많은 생각이 있지만 풀어서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는 의례적인 하지만 최선의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목회자를 한마디로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저에게 물어본다면 저는 “안부를 묻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도사로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부터 그랬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시는 분이든 그렇지 못하던 분이든, 만나면 그리고 전화를 하면 안부를 묻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대화를 풀어갑니다. 

가장 어려운 경우는, “단답형”으로 끝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제가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도, 그냥 "별일 없다" 라고 말하는 분에게 더 가가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사실 속은 상합니다. 짝사랑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냥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돌이키는 마음은 무겁습니다. 많이 노력하지만 단답형의 대답을 다섯번 정도 이상을 들으면 현실적으로 포기하게 됩니다. 다른 곳을 향해야 할 때입니다. 여전히 저에게는 보살펴야할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수월한 혹은 행복한 경우는, 본인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시는 경우입니다.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현재의 상황을 말씀해주시는 경우입니다. 목회자는 “안부를 물을 뿐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입니다. 주의 깊게 듣고, 최선을 다해서 성의 있게 저 역시 반응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저 역시, 조금은 당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신 이후에 이어서 “목사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성도님께서 묻는 경우입니다. 평균적인 횟수로 보면 성도님에게 스무번 안부를 물을 때에 한번 정도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약간 붉어집니다. 사실 마음으로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현실적으로 접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목회자도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잊고 살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안부를 물어보실 때에,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사함을 느낍니다.

왜 제가 당황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해서 답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마음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경험이 혹은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저의 삶의 이야기의 일부분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 저의 이야기를 말하는 법을 거의 잊고 살아온 듯합니다. 저의 삶의 전체 맥락이, 주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사람이지 안부를 묻는 대상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라 퇴화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종종 듭니다. 

최근에 제가 한가지 깨달은 것은, 저에게 있어서 “일상의 대화”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혹은 최근에 와서 그런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상당히 과묵한 사람이 되었고, 저의 말을 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 사람이 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뭐 말을 좀 줄여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냐"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핵심적인 목회의 일이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저의 목회와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면서, 요 며칠은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 자신이 저를 현상적으로 관찰 해 볼 때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저는 "대화를 꽤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내와 대화할 때에 최소 한두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최근에 심방한 분들도 두시간 이상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들은 매우 의미가 있었고 또 저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어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인지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제가 어려운 것은, “일상의 대화” 입니다. 일상이란 무엇일까요? 언뜻 떠오르는 것은, 가족, 차, 날씨, 집, 재산, 스트레스, 옷, 가구, 인테리어, 컨디션 정도 인 듯 합니다. 그런데 막상 글로 적어 놓고 보니, 저는 무엇이 일상인지조차 감을 잡지 못하겠군요. 어쩌면 일상이라는 것은, 누구와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주제 혹은 영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게 깊이 들어가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스몰톡입니다. 

그런데 제 머리 속에는, 일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영역들로 꽉 차 있습니다. 때론 심장이 너무 고동을쳐서 버겁다고 느낍니다. 비전, 삶의 변화, 성도의 성숙, 성경 교육, 북클럽, 독서 성경 묵상, 자기 계발, 생과 사, 십자가, 진실한 인간 관계 이런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저로 부터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라, 저의 존재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보편적으로는 일상이라고 누군가에게 선뜻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에도, 저는 너무 진지합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진지함이 사람들을 지나치게 불편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제가 타이밍에 못 맞추고 쓸데 없이 진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지 결과는 "어색함"입니다. 

일상의 대화는 쉽지 않은데,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렇게 저렇게 자꾸 질문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는 질문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 그것도 돌아 보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북클럽의 셋팅이 몸에 배여있습니다. 북클럽은 참여하는 분의 자기 표현속에서 자아의 성찰과 적용이 중요하게 일어납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있어도, 상대방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지금까지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냉정하게 돌이켜보니, 어쩌면 상대방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것을 배려라고 생각하며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북클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10년에 가까운 저의 학문적인 고민과 실천은 저를 이런 사람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소신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을 한번 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혹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될만한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항상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몇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의 스스로의 확신 때문에 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더 조심하고 절제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방적인 명령의 맥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제 스스로에게 더 중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답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일상의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날씨 정도의 대화만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여전히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오랜 대화 끝에 아내의 조언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정도로만, 상대방이 사용하는 주제 정도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주제넘는 혹은 쓸데 없이 질문하느니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분위기를 적당히 맞추되 일상의 대화 딱 거기까지라면, 그것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대화가 좀 더 진지하게 풀릴 수도 있겠지만, 무리하여서 거기로 끌고 가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훨씬 소극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좀 더 보편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자신을 보면, 여전히 많이 편향되고 또 그릇이 작습니다. 언제쯤 좋은 목회자로, 일상의 대화조차 자유로운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40대를 지나면 그정도의 연륜과 깊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아픈 고민이 미래를 향한 작은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저의 대화를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엄마, 너무 잘했어요 / 선인장 - 에피톤 프로젝트


미국에 온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어는 힘들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중 언어 속에서 자라나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또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한글을 더 익혀야 할거 같아서
한글을 쓰도록 배려하다가도,
또 영어에 처지면 어떻게 하나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아들이
다니는 한글 학교에서
상을 받아 왔습니다.
무려
단어 경시대회 은상,

받아온 상장을
슬쩍 곁눈짓으로 보고서는,
저보다 더 한글을 잘 하는게 아닌가
혼자서 울컥하고 감동을 받고
또 어깨가 으쓱해 집니다.

자랑스럽게
상장을 받아 온 아들을 보면서,
사실 제 마음에는
늘 아들을 교육하는
아내가 생각 났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멀리 던져 두는 아들에게,
가방 열어보라고 말하는 것도
엄마입니다.

주어진 숙제를 꺼내어서
하나하나 시키는 것도,
부족한 부분을 살피는 것도,
엄마입니다.

시험이 있다고 하면
더 바짝 긴장해서,
하나라도 더  외우도록
훈련시키는 것도,
엄마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당당하게 상장을 받아온 것이
너무 대견하고 기쁩니다.
그래서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는 사실,
아들이 그렇게
위대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도 보지 않는 뒷 자리에서,
아들을 묵묵히 돕고
가르치고 인도한 제 아내가,
정말 대단하고
위대해 보였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신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인생,
그런데 요즘,
그저 하나님께서
더 위대해 보입니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저의 열심 뒤에는
오직 하나님의 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르치시고,
저렇게 지도하시고,
이렇게 인도하시고,
저렇게 이끄시고,
이렇게 막으시고,
또 저렇게 길을 여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것에
자부심을 가지되,
또한 이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이 하셨음을 고백하는
참된 겸손을,
늘 마음에 품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여보,
너무 잘했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호흡 하나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아름다운 결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9년 6월 7일 금요일

행복하게 건강하게 그렇게 / 아직은 아무것도 아냐 - 박정현


아내랑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감사합니다.

워낙
늦게 들어가는 일이 잦아,
만나면 잠시라도
짬을 내어 이야기합니다.

한동안
중요한 대화의 주제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건강하게
은퇴할 때 까지 목회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요즘에 어깨가 꽤 무겁습니다.
단순히 가족을 부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무게가 진하게 느껴집니다.

굳이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들을 가져오지 않아도,
남자로, 남편으로, 아빠로, 목회자로, 한 인간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은,
많은 상처를 받는 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표현입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목표들,
현실과 이상의 건너갈 수 없는 괴리들,
다른 이들에 대한 실망 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아내와 대화한 끝에 저의 결론은,
"나는 나의 일을 포기하지 말고 해야겠다"
라는 것입니다.

수 많은
실망들과 아픔과 상처는,
나의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에,
제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이기적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노력이 있어도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최선이
아직 누군가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는
영광의 시간에 도착하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누군가는,
아직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이를 향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때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 오늘 하루에,
제가 할 일들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저의 인생을 쏟아 놓기로 했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저 아무 누군가에게도,
활짝 웃으면서 사랑으로
살고 싶습니다.

인생이 고달파도,
자비로운 하나님께 기대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더 큰 은혜가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첨단의 시대 가운데 책을 읽는 우리 / Kindle, Logos 그리고 Vyrso

유학이 인생에 큰 결단이고 어려움이었지만, 주님께서 헤아릴 수 없는 유익을 주셨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영어로 된 자료들을 접하는 것입니다. Amazon.com에는 수 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이북(Kindle) 버전으로 저렴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기존 종이 책보다 할인을 많이 해줍니다. 또 제가 모든 할인하는 좋은 책들을 찾을 수는 없지만, 친절하게 대신 찾아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theologyebooks?fref=ts)

성경 프로그램 사이트인 Logos.com에서는 신학 참고서적과 주석들을 이북 형태로 판매합니다. 로고스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성경 프로그램이자 목회 툴입니다. 그리고 자회사인 vyrso.com에서는, 일반 기독교 서적들을 이북 형태로 판매합니다. 가끔씩 free book으로 프로모션도 하는데,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무료로 받았습니다. 평생에 소중한 책, 완전한 진리(total truth)도 원서로 살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logos.com 과 vyrso.com 에서 판매되는 책들을 구입하면, logos 성경 프로그램 안에서 이북을 자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팀캘러 목사님 책은 vyrso에서 구입해서, logos 프로그램으로 보고 있습니다. logos는 기본적으로 무료 프로그램이며,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자료들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석과 신학 참고자료들이 전자화 되어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호튼의 책들도 대부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logos프로그램 안에서 이북을 볼 경우, 모든 성경 구절들과 각주들이 그 안에 같이 구입한 성경들과 자동으로 연동되어서 보게 됩니다. 로고스 프로그램 안에서 그 효율성은 극대화가 됩니다.

훌륭한 사람들을 책을 통해서 만나고 배우는 학습자로서의 삶은, 평생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혹은 성도로서의 "본질"을 향해 다가가는 "중요한 통로" 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 틀은 또한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영어라는 그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지만, 평생이라는 기간을 두고 노력한다면, 어쩌면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고 신해철을 기리며 / 민물장어의 꿈 - 신해철


누구나,
가장 어려운 시절에 들은 음악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음악이라기 보다는 위로이고,
사랑이고 또한 삶 그 자체입니다.

힘든 학창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무거운 걸음들을 옮기면서,
고 신해철의 음악을 통해 위로 받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존경하는 뮤지션이었던 고 신해철씨의 비보를 듣고서
한동안 감정이 다스려지지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몇번이나 흐르는 눈물과 분노를 참아야 했습니다.
그의 음악을 통해서 그리고 멘트를 통해서 인생을 배웠고,
많은 시간들 위로를 받았는데,
이렇게 안타깝게 그리고 억울하게 소천했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다시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요?
천재적인 음악과 사회를 향한 소신과 정신을 겸비한 사람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너무나 안타깝고 또 마음이 슬픕니다.

비록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음악과 치열했던 삶이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고통 없이 평안하시기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주님의 평안이 있기를...

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 / 커피잔 - 커피소년


한국에서 사역할 때에, 구치소에 정기적으로 설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준비할 때에 더 정성이 갑니다. 비록 중죄인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으로 격리된 사람들, 차가운 창살이 있는 곳입니다.

언젠가 설교하는데, 설교를 시작하자 마자 한 여성분이 계속 우셨습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들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도 많이 무거웠습니다. 물론 언제나 설교는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끝은, 그 죄 조차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안전하고 따뜻한 부모님의 품을, 그리고 내 나라를 떠나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삶의 모습들을 봅니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겨우 1미터가 조금 넘는 사람들의 인생 속에는, 누군가를 붙잡고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다 못할 아픔도 고민도 괴로움도 눈물도 그렇게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은 우주와 같고, 그 깊이는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이 요즘에는 더욱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우주의 창조자가 연약한 인간으로 이 땅 가운데 들어오셔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무엇을 느끼셨을까요? 자신을 닮은 유일한 존재를 위해서, 그리고 망가져 버린 그들을 위해서 그분이 하신 결심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죄로 인해서 다 망가져버린 세상 그 한복판으로, 가장 더러운 장소 중 하나를 자신의 탄생의 장소로 스스로 정하시고, 세상의 명문 가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가정 가운데 오시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로 살아갈 수 있어서 요즘 더욱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살피고 돌보고 격려하는 자리라서 감사합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임을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픈 이들과 함께 하는 곳, 그곳이 제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저의 목회도 설교도 찬양도 삶도, 모든 것이 사람을 향하기를 원합니다. 마치 주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오신 것 처럼, 저의 작은 삶도 사람을 향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것이 복음이고, 목회자의 삶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시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4년 10월 19일 일요일

사랑하는 아들 이든에게 - 인생의 기준 / Hard to say I'm sorry - Chicago





사랑하는 아들 이든에게

이든아 아빠야, 지금은 밤이 깊은 시간이란다. 이쁜 이든이도 자고 있는 깊은 시간이고, 아빠는 너에게 글을 쓰고 있단다. 너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또 아빠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언젠가 너에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단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 있단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살면 인생을 성공한다는 그런 주장들이란다. 한번쯤 그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빠는 너의 인생 가운데, 중요한 기준들을 가지고 있으면 하는 마음이란다. 그리고 그 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연약한 이들을 아끼는 마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사랑하는 이든아, 인생은 단순하지 않단다. 아빠는 그래도 지나치게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감사하게도 밥을 굶은 적은 없지만, 세상에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단다. 그리고 아빠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어느 정도는 병들어 있단다. 세상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의미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 가운데 사랑가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을 향한 마음과 관심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단다.

아빠는 사실 네가 어떤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될지 보다는, 그 직업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앞으로 너는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재능 가운데, 사회에서 너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서 또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너의 마음 가장 근본에,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네가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단다.

이든이가 아프고 연약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진정으로 품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그리고 너의 일이, 바로 그것을 위해서 크게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단다. 네가 버는 돈의 크기보다, 너를 통해서 연약한 이들이 유익을 얻는 그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란다.

너가 크면서 점점 확실히 깨닫겠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돈이 있고 외모가 잘생기고 이쁘고, 또 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우 받는 곳이란다. 아빠는 어느 정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남이 아빠를 그렇게 무시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간단다. 물론 우리 모두가 병들어 있기 때문에 완전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음부터 기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하나님께서는 이든이도 아빠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못생기고 또 가난한 사람이라도, 모두 똑같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특별한 존재들로 만드셨단다. 그래서 그 사람의 외적인 것과 상관 없이, 모두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란다. 혹시 그 사람이 병들었더라도, 혹시 그 사람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도, 혹시 그 사람이 화상으로 얼굴과 몸이 망가진 사람이라도, 혹시 그 사람이 지능이 너무 낮아서 공부를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과 상관 없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모두가 동일하단다.

아빠는 그런 생각을 했단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의 병들고 아픈 모습을 보시고 우리를 버리셨다면, 얼마나 우리는 비참했을까?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는 도저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실 이유가 없었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이든이와 아빠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단다. 그래서 아빠는 오늘 참 마음에 하나님께 감사했단다. 아빠가 언젠가 이든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찬양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낭비 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로, 그분의 자녀로 우리의 신분이 회복되었단다.

사랑하는 이든아, 아빠는 이든이의 마음 가운데,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네가 어떤 사람이 되든, 어떤 일을 하든, 너의 주변에 아프고 병들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 있고, 그런 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친절과 사랑을 받고 행복하기를 바란단다. 아빠가 너를 위해서 준비한 이 노래처럼, 모든 사람들은 그 마음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또 아름다운 사랑을 받기를 원하면서 살아간단다. 당연히 그 사랑의 가장 완전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아름답게 자라나는 것이고, 아빠는 그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아빠의 마음에 또 이든이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바란단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갈 때에, 이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이, 우리 마음 가운데 넘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단다.

사랑하는 이든아, 누군가가 너의 앞에 다가와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단 한가지의 태도만 보면, 그 사람이 정말로 누군가를 알 수 있단다. 아빠는 사실 그것이 너무나 신기했단다. 왜냐하면, 근사한 말로 자기를 꾸미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네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빠에게 주신 목회자라는 직업도, 어떻게 보면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을 꾸미기가 너무 쉽단다. 그러나 이든아 꼭 기억하렴. 그 어떤 사람이, 병들고 아프고 연약한 사람에게 대하는 그 마음과 태도가, 바로 그사람이 가진 꾸밈 없는 진짜 모습이란다. 누군가의 화려한 말에 속지 말고, 그 사람의 태도를 살펴보렴. 그 사람의 연약한 이들을 향한 그의 태도를 살펴 본다면, 그것이야 말로 네가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단다.

만약 네가,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고 함께 공감하고 도우기를 힘쓰는 사람을 만난다면, 꼭 그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단다. 네가 먼저 다가가렴, 아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끌릴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참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렴.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작은 빛들이 모일 때에 그것이 더 소중한 법이란다. 아빠는 너의 인생이, 화려한 빛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란단다.

이든아, 아빠는 아빠 자신도 그리고 이든이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늘 더 들어가기를 원한단다. 우리 같은 사람도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이 깨달아지고 감사해져서, 아빠와 이든이의 삶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처럼 대하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하늘로 부터 온 사랑이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너무너무 사랑한다, 이든아.
너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 너의 아빠가, 10월 19일에 -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때론 마음이 흔들릴 때 / All Of My Journey


새벽 예배를 가기 위해서, 아주 잠깐 high way를 달립니다. 아직도 캄캄한 밤, 그때 만큼은 마음이 그 어느때 보다 고요하고, 또 잠잠합니다. 그리고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생각,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현실에 대한 그저 어린 마음의 한탄은 아닙니다. 그토록 집을 좋아하던, 그저 삶의 작은 공간 안에서 만족하던 제가, 이곳 미국에서, 차갑고 때론 외로운 길을 홀로 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가끔씩 저를 놀라게 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은 한 없이 작고 여린데, 저에게 주어진 현실은 어느 덧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아주 어릴 때에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 수록,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일 뿐임을 더욱 절감합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것 하나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결국 온전히 믿을 사람은 못된다는 것을요.

아내와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결국,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을 깨달아 갑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삶이 버거울 때,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때 만큼은 마음이 조금은 흔들립니다. 삶과 현실은 너무나 커보이고, 나 자신은 더욱 작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의 설교를 녹음한 것을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달변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새벽 설교 가운데, 천천히 말을 합니다. 화려한 언변 보다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진실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그 진심이 더 필요한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진실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더 앞세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때론 부질없어 보이더라도, 때론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도, 그리고 그것이 홀로 가는 것 처럼 보일 때라도.. 적어도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그렇게 걸어가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그늘과 같은 사람 / How Deep Is Your Love (The Bee Gees) - Tommy Emmanuel, John Knowles



  존경하는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오랜만에 듣다가, 설교 마지막에 인용하시는 시의 한 구절이 마음을 칩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요즘 제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참된 목회자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 한편 속에서, 그 답을 발견합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자녀됨, 성도의 성화를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설교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마음이, 이 짧은 시 한편으로 보여지는 듯 합니다. 사막처럼 뜨거운 세상, 누군가에게 작은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도로서 또한 목회자로서 저의 삶은 행복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의 삶을, 그분의 길로, 선하신 뜻 가운데 인도해주시기를...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2014년 4월 13일 일요일

반환점 / My Life Is In Your Hands - Brooklyn Tabernacle Choir


지나간 이번 생일이, 서른 다섯 번 째 생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생일을 지나면서, 마음이 불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유독 이번에는 마음 한 구석이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은퇴의 때를 계산해보니, 서른 다섯의 나이가 그래서 올해가, 바로 반환점을 도는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한 것 같았는데, 스스로 점검해 볼 때에 너무 아쉽고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후회가 되고, 이룬 것은 없는 것 같고, 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받은 사랑은 그렇게 많은데, 베푼 사랑은 정작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목회자로서 마땅히 봐야할 책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감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마음 한 편에, 이제 인생의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꼭 붙들고 살아가던 것들이 참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을 갉아 먹는 미움과 분노, 다른 사람을 향한 정죄와 비난과 질투, 어색한 거짓과 가식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그렇게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 저의 인생에 전혀 쓸모가 없던 것들, 하지만 힘써 붙들고 있던 것들이 드디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소중한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관용과 이해, 좀 더 품어주는 마음과 격려, 다른 이를 향한 비난이 아닌 나를 돌아보는 것, 나를 희생할 때에 다른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 잠잠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해 보는 것,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야기하고 담대해 지는 것,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런 하늘의 빛나는 것들이, 이제서야 좀 더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졸업 논문을 거의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앞 길을 향해 달려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으로, 그리고 좀 더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붙들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나는 너무 작으니, 하나님께서 붙들고 가셔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마주보는 세상보다 주님이 훨씬, 그리고 훨씬 더 커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으로, 그렇게 앞길을 또 달려가려고 합니다.

기도할 때 마다, 수도 없이 되뇌입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요, 주님께서 인도해주십시요.

주님께서 저와 저희 가정을 붙들어 주시기를,
그리고 오늘도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구름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4년 2월 7일 금요일

Called to Serve


아마 모든 부모들 눈에는, 
자신의 자녀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저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이든이가 그렇습니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자주 학교를 가기에,
아내가 이든이와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그리고 오늘 아내가, 이든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이뻐서 보고 있는데,
아내가 사진 속 이든이의 가슴에
제 학교 명찰을 달아 주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제 명찰에는 제 이름과, 학교 이름과 그리고 작은 문구가 써 있습니다.
JIN BU Jung
student Calvin Theological Seminary
called to serve

처음에 명찰을 받고 읽었을 때,
그렇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자신만의 삶의 목표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섬기기 위해서 부름 받았다' 는 한마디의 문구는,
크리스천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에게 강렬하게 그리고 동시에 따뜻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제 명찰을 가슴에 달고 활짝 웃고 있는 이든이를 보니,
또 제 마음이 뭉클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든이의 인생을,
바로 이것을 위해 부르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이, 신앙이 세대를 이어가는 기쁨인가 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이든이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연약하고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섬김을 받고,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소망과 은혜와 기쁨이 넘쳐나기를
다시 한번 잠잠히 기대해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4년 1월 7일 화요일

잃어버리지 않기/ I Can't Imagine Living Without You - Bernard Harris


특히 요즘 들어, 성도의 향기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유독 추운 겨울이라 그런 걸까요? 어디선가 흘러와 아련히 코를 간지럽히는, 봄의 꽃 향기 같은 그 어떤 것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서 또 앞으로 바라보면서, 성도의 향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굉장히 단순하고, 그래서 그 인생 가운데 필요한 것은 너무 분명해 보입니다. 

제 글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 제 글이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많이 죄송했습니다. 교육도 잘 받으시고 훌륭한 목회자이신 어머니께 어렵다면, 다른 분들에게도 어려워보였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조금 더 쉽게 써야 겠습니다. 조금 더 분명하고 조금 더 따뜻해야 겠습니다.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다가 좋은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좀처럼 영어는 인용하지 않지만, 제 마음에 또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음미할만한 좋은 내용이라 인용해봅니다.

“There are many who seek knowledge for the sake of knowledge: that is curiosity. There are others who desire to know in order that they may themselves be known: this is vanity. Others seek knowledge in order to sell it: that is dishonorable. But there are some who seek knowledge in order to edify others: that is love [caritas]….” (Schwehn 60). 3

"지식 자체를 위해서 지식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호기심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알려지기 위해서 지식을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허영심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지식을 팔기 위해서 그것을 찾습니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 지식을 찾는,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자비)입니다."

- Schwehn, Mark R. Exiles from Eden; Religion and the Academic Vocation in Americ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45-46.

사람들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은, 때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 스스로 잊어버리는 것은, 더욱 비참한 일입니다. 이 짧은 인용을 볼 때 마음이 뜨거워져 눈물이 흐른 것은, 왜 공부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계절학기부터, 마지막 논문학기까지 달려갈 예정입니다. 언제나처럼 앞에는 큰 산이 있고, 온 힘을 다해 넘어가야 합니다. 그 정상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가족과 함께라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이라면, 못할 것이 없어보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칼빈에서의 생활, 그리고 공부 속에서, 성도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공부하는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저를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든이를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사랑하는 아들 이든에게 / Run to you - Whitney Houston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오랫동안 너를 기다리며,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늘 상상해왔단다. 그리고 언젠가 너를 위해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떨리고 행복한 순간이 될거라고 기대했단다. 그리고 오늘 바로 지금, 그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음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는 늘 가정을 위해서 헌신하셨단다. 그래서 아빠는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넓은 바다에서 배를 타셨기 때문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지는 못하셨어. 그리고 아쉽게도 아빠가 태어날 때에도 함께 하시지 못하셨지.

그러나 아들아, 아빠는 네가 태어날 때에 처음부터 끝까지 너와 사랑하는 엄마 옆에서 있었단다. 그리고 아빠는 그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아빠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힘들때 곁에 있었고, 네가 세상과 처음 만나는 그 엄청난 순간에 너를 지켜보고 함께 했다는 것은 아마 앞으로도 아빠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자부심이 될꺼야.

사랑하는 이든아, 아빠는 그리고 엄마는 네가 우리 가정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너무 기쁘단다. 그리고 네가 우리 가정에 온 이 기적과 같은 일들에 대해서 꼭 기록해 놓고 싶었단다. 아빠는 기억력이 약해서 비록 너의 할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기억이 적지만, 지금 아빠가 느끼는 감격, 그리고 감사함을 꼭 글로 기록해 놓고, 언젠가 네가 지금보다 훌쩍 자라서 아빠의 글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아빠가 엄마가 너를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꼭 알려주고 싶단다.

사랑하는 이든아, 아빠는 먼저,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아들아, 이것이 정말 너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란다. 아빠는 배가 아파서 너를 낳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너를 10개월 동안이나 품고 있었단다. 가장 힘든 순간에조차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가장 슬픈 순간에도 너를 위해서 견디고, 엄마가 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이라도 너를 위해서 참았단다.

아빠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의 너를 향한 사랑은,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강력하고도 숭고한 것이란 점이란다. 그래서 아빠는 네가 태어나는 모든 과정 속에서, 어쩌면 엄마가 아빠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단다. 왜냐하면 엄마에게 너는, 엄마 자신이자 몸의 일부분이고 또한 생명의 연장이기 때문이야. 너의 탄생을 기다리며 너의 이름도 엄마가 직접 지었단다. 에덴 동산과 같은 풍성한 삶을 살도록, 그리고 많은 이들이 너를 통해서 그런 삶을 누리도록 엄마가 고심해서 지었단다. 물론 아빠도 너의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네가 평생동안 엄마를 아끼고 보살피고 존경하기를 바란다. 엄마는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며, 그러한 너의 태도와 삶을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큰 상을 주실꺼야.

사랑하는 아들아, 며칠동안 아빠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리고 그것이 네가 볼 수 있는 첫번째 편지라면, 어떤 내용을 쓸까 많이 고민했단다. 너를 위한 아빠의 수많은 바램을 적는다면, 언젠가 이 글을 읽을 때에 많이 부담을 느낄 것 같고, 또 너의 자유로운 생각을 아빠가 너무 일방적으로 가로막을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있단다. 하지만 아빠 마음에 꼭 한가지가 생각이 났고 또 그것이 더 분명해 져서 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네가 '착한 사람' 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가 건강하길 바라고, 네가 공부를 썩 잘하기도 바라고, 네가 여러가지 재능을 가지고 또 그것을 사용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빠는 네가 착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아마 네가 철이 들고 세상을 알아갈 때에, 세상에는 악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꺼야. 그러나 아들아, 결코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렴. 네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기전에 세상이 점점 악해지는 당연한 모습이고,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한 이후에 악해져버린 성품의 당연한 결과란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아, 앞으로 네가 자랄 때에, 악하고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너의 주변에 많이 보인다 하더라도 결코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말기를 바란다. 숭고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탁월하고 빛나는 보석같은 사람은 그렇게 자주 보이지 않는단다. 마치 하루의 긴 시간 가운데 눈부시고 가슴저린 저녁놀은 아주 잠깐 보이는 것 처럼, 우리 인생 가운데 아름다운 사람들은 정말 몇명 되지 않는단다. 그러나 아들아,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게 적은 사람들이 결국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리고 어두운 세상에 빛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네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네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졌던 '착한 마음' 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단순히 네가 친절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마음' 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란다.

아쉽게도 세상은 구조적으로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단다. 그것은 한사람 한사람이 홀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힘과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단다. 가진자들은 없는 자들의 것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슬픈 세상이 아빠와 네가 살아가는 세상이란다.

그래서 아들아, 아빠는 진심으로 이것을 바란다. 너의 마음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하기를 바란다. 너의 재능이 너의 꿈이 그 어떤 것이든지, 세상에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서 그것이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단다. 네가 넉넉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너의 가진 것의 많은 부분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나누는 삶을 살기를 바란단다. 아빠는 비록 스무살이 넘어서 그런 것을 알았고, 또 서른살이 넘어서 겨우 세상에 눈을 떴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너는 어렸을 때 부터 그러한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방향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너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여기시고 또 너의 인생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주실꺼라고 아빠는 믿는다.

아마도 너의 주변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너의 지능, 너의 성적, 네가 가진 외모 등으로 너를 판단하겠지만, 아들아 기억하렴. 그러한 것들은 너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절대 될 수 없단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너의 진정한 판단자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렴. 설령 너의 지능이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너의 최선을 다한 그 과정을 평가하시고, 설령 너의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너의 성실함을 평가하시고, 설령 너의 외모가 남들보다 좀 좋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너의 마음을 평가하신단다.

오히려 하나님의 칭찬은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늘 기억하렴. 그래 아들아, 이것이야 말로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비밀이란다. 네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에, 너보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너의 가진 것을 나누어주었을 때에, 너의 가진 작은 재능들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사용했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것임을, 그리고 바로 천국의 보물을 가지는 것임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아빠는 바란단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 너를 설령 사람들이 무시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너를 격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렴. 하늘의 수 많은 천사들이 너를 바라보고 격려하고 있고, 너를 위해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렴.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놀라운 영적인 존재들이 너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렴.

그래서 아들아, 너의 인생이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을 쫓아가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너의 인생은 하나님의 기준을 쫓아감으로 너의 행복이 완성되면 좋겠다.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그러나 아들아 기억하렴.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이 너의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 안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은 수 많은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이 고백했던 내용이며, 그리고 바로 너의 엄마 아빠가 고백하는 내용이란다. 아빠와 엄마와 너의 마음 가운데 언제나 확고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설령 우리에게 실패가 있다 하더라도, 바로 그 한가지를 위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아들아, 너를 위해서 준비한 노래는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란다. 지금은 세상에서 만날 수 없지만, 휘트니휴스턴은 아빠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사람이란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마도 지금은 천국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노래하고 있을꺼야.

사랑하는 이든아, 아빠는 세상에 모든 사랑 노래들은,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심어주신 사랑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한 노래이지만, 사실은 노래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래서 세상에 모든 사랑 노래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답지. 아빠는 네가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아름다운 음악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결국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기를 바란단다. 그리고 언젠가 너 역시 아빠가 엄마를 만난 것 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주님 안에서 할 수 있기를 바란단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더욱 성숙할 날을 기다린다. 엄마와 웃으면서 이야기했단다. 이제 너의 인생은 12일일 뿐이라고. 아직은 네가 목도 가누지 못하고, 아빠가 엄마가 기저귀도 갈아줘야 되고, 스스로 밥도 먹지 못하는 어린 아기지만, 아빠는 네가 당당한 한명의 남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너를 나타내는 순간을 믿음으로 바라본단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빠가 경험했던 수 많은 것들을, 너에게 나눠주고 싶은 믿음의 이야기들을,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음악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비록 그때가 되면 아빠도 나이가 더 많이 들겠지만, 그리고 몸도 많이 약해지겠지만 그러나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만한, 네 앞에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를 다짐한다. 네가 하나님 안에서 자라나는 것처럼, 아빠 역시 하나님 안에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기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 사랑하는 아들 이든이 태어난 2012년에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날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빠가 -

2012년 12월 8일 토요일

가장 작은 것 / God Will Make a Way



아마 한달 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내와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장을 다 읽을 때도 있지만, 너무 길면 절반 정도를 읽기도 합니다. 기도는 아주 짧은 기도입니다. 지나간 오늘의 하루를 감사하고, 아내의 건강과 열매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 가운데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그때 마다 중요한 기도 제목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 동일하게 성경을 읽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마음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보면 이게 참 유치한 행동일 수도 있겠다" 성도가 아닌 사람이, 혹은 성도라 하더라도, 사실 굉장히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굉장히 작은 것입니다. 그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잊지 않고 성경을 읽고, 아내와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를 같이 읽었습니다. 7장에 멜기세덱이 등장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사랑이 넘치는 분 정도로 이해하는 현대적인 분위기에서, 오늘 말씀은 저에게도 그리고 아내에게도 더욱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읽는 성경을 들으며,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그 짧은 몇구절이, 충분히 중요하고 놀랍다는 것을 저도 아내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아내가 진지하게 말합니다. "오빠, 이 부분 내일 한번 더 읽어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동안, 제가 그리고 우리 가정이 극적으로 변했다 라는 말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혹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정죄하려고 글을 쓴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가장 작은 것에서 신앙은 시작하고, 그리고 그것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참 신비롭게도, 아내도 저도,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실 유치해보이기도 하고, 십분 남짓한 시간을 그렇게 가진다고 뭐가 그렇게 변하겠냐 라고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신앙은 육적인 관점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현대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늘 우리의 삶 속에서 크고 대단한 것,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것, 남들 보기에 모양이 좋아보이는 것에 길들여 져 있는 듯 합니다. 끊임 없이 만들어지는 특별한 기도회나, 특별한 예배나, 특별한 종교적인 헌신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우리는, 가장 작은 것 속에서 신앙의 유익을 발견하고, 천국에서 임하는 평안과 기쁨을 맛보는 것 같습니다. 과연 정말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요즘 새롭게 생각하게 됩니다.

목회자로서 무거운 혹은 무서운 권면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한명의 성도로서, 지금 글을 읽으시는 믿음의 성도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짧게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해보지 않겠냐고, 하루를 마감하며 사랑하는 가족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손을 잡고 기도해보지 않겠냐고, 우리의 힘든 인생을 주님께 아뢰며, 그분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해 보지 않겠냐고...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역지사지(易地思之) / If I Were Enveloped in Tenderness - Piano de Ghibli



한참 저도 아내도 교회일로 바쁠 때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주일에 더 힘든가? 저는 주일에 부서를 챙기고 설교를 하는 내가 제일 힘들다고 강력하게주장했습니다. 워낙 무대뽀로 제 주장만 했기에 아내가 그때는 저에게 져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한참 지나서 제가 너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 아내가 저보다 훨씬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거의 5년의 시간을 매 주일마다, 각기 다른 부서와 자리에서, 다섯시간 이상을 피아노를 쳤기 때문입니다. 초인적인 열심과 인내와 실력을 지닌 아내를, 저는 정말 존경합니다. 

요즘 저의 역할은 '주방 보조' 입니다. 아내가 몸이 많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쉐프의 지령을 받아, 콩나물국을 끓였습니다. 평소에 아내의 손길을 통해서 그렇게 쉽게 먹던 국이, 상당한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콩나물국의 맛이, 콩나물이 아니라 멸치의 '뜨거운 헌신' 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는, 식사를 거르지 않고 먹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에 깨닫고 있습니다. 아마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아내의 몫으로 남겨두고서는, 또 제가 가장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감사한 것은,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요즘 조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연약하기에, 저를 포함하여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사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위해서 정말 모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을 넓혀 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측은한 마음을, 자신의 세계 속에서 빠져버려 유아독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긍휼의 마음을 조금더 가지고 싶습니다.

이 작은 글을 읽으시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지 않는다면,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어두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조금 더 넓어지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만 더 넓어진다면, 아마 오늘보다는 훨씬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2년 9월 9일 일요일

성숙 / 비 오는 거리 - 이승훈


처음 아내를 만나고 데이트 할 때는, 늘 아내가 저보다 체력이 좋았습니다. 몇시간을 함께 걷고서도 아내는 의기양양했고, 저는 그만 지쳐 버리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방긋 웃는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마음에 생생합니다. 그때에는, 앞으로도 그렇게 쭉, 아내가 건강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주일 아침 일어났는데 아내 얼굴이 좋지 않았습니다. 간밤에 꿈을 꾸며 울길래 달래주었는데, 몸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며칠 째
 배탈이 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침에 기운이 많이 없었는지 일어나자 마자 배가 고프다고 말합니다.

제가 먹을 것은 많은데, 아내가 먹을 것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교회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도저히 아내는 나갈 수 없는 상황이고, 아내 혼자 먹을 것을 준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와서 처음으로 교회를 못가고 아내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급하게 마트에 가서 호박과 우유를 사서, 아내의 지시에 따라서 호박죽을 만들었습니다. 아내가 조금 먹었지만 여전히 배탈은 낫지 않았습니다. 배고프고 또 배아픈 상태로 아내의 하루가 겨우 지나갑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발하던 아내가, 거의 집에서만 지내고 무엇을 먹는 것도 쉽지 않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큰 인내와 수고와 눈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아내를 보면서 배우게 됩니다.

함께 예배 드리면서, 아내를 격려하기 위해 힘찬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위해서, 쉽지 않은 인생 가운데 주님만 의지하도록 돌아가며 기도했습니다.

인간은 결코, 평범한 혹은 편안한 삶 속에서 그 본모습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장 혹독한 상황에서, 견디기 어려운 감정 속에서, 얽히고 섥힌 그 고통 속에서, 감추어져있던 신앙과 인격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인지, 그 진실한 내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면서, 미안하게도 아내에게 몇번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도 가급적 아내가 힘들지 않도록 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때론 아주 많이, 마음이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을 주는 주님을 닮은 친절한 사람이, 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 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내가 상상하는 바로 그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받는 사랑' 에서 '주는 사랑' 으로 변화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 그것이 주님 안에서 참된 성숙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저의 지금의 시간이, 바로 그 때 인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2년 9월 5일 수요일

하루를 지나가며 /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 Glenn Medeiros



아내를 만나고 처음으로, 함께 바다를 갔습니다. (바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 큰 호수입니다. ^-^) 한국에 있을 때에는 차도 없고 운전도 미숙하고 시간의 여유가 없었는데,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많이 감사했습니다. 비록 작은 시간이지만 아내에게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이곳에서 아내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교육학 담당 교수님인 Glass ford를 만났습니다. 앞으로 제가 공부할 주제들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Prezi로 며칠을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허리가 다 아팠습니다. 비록 안되는 영어지만(요즘에는 말을 할 때에 거의 문법을 무시하고 말을 합니다. ^-^;;) 그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고민해 오던 부분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성품과 실력이 좋은분이라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다듬어주시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마음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아내의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서 서류를 신청하기 위해 관련된 센터로 함께 갔습니다. 사람이 많고 하필 컴퓨터 서버가 오늘 고장나, 신청 서류를 손으로 적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붐비는 사람으로 아내도 저도 좀 지쳤습니다. 함께 앉아 있는데 아내가 자기 배에 손을 대보라고 합니다. 사실 '태동' 이 그렇게 확실하고 강한지 오늘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열매'가 자기가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엄마 배를 뻥하고 찼습니다. 생명의 신비와 기쁨을 느끼며 감사했습니다. 

오랜만에, 제 인생에 가장 존경하는 사역자이자 멘토인, 어머니께 전화드렸습니다. 받자 마자 격려해주십니다. '아들아,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능력과 마음이 더욱 불타게 해야 한다. 기도 밖에 없더라..' 언제나 듣는 말씀이지만, 긴 거리를 뛰어넘어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갑니다. 시간이 지나갑니다. 바쁘게 지나갑니다. 육체의 한계를 향해서 달려가니 약간 헛소리도 하게 됩니다. 설겆이를 하고 나서 아내를 보며, '잘 먹었다!', 에이스 크래커를 먹고서는 '오예스 맛있다!' 원래 정신 없는 제가 약간 더 정신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

이제 내일이 첫 수업입니다. 이곳에서 Th.M. 과정은 학자적인 길을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사실 제 능력 밖에 과정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마음에 두렵고 긴장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지경입니다. 과연 이 과정을 잘 지나갈 수 있을까? 필요한 학점을 잘 소화하고 Research Paper까지 잘 쓸 수 있을까? 내가 학자적인 자질이 과연 있는걸까? 마음에 99%의 두려움과 1%의 희망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저의 인생의 태도는 변함 없기를 바랍니다. '가장 위대한 목표를 향해서, 최선을 다해서 주를 믿고 의지함으로 열심으로 나아가기' 를 원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목표가 흔들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잠깐 앉아 있을 때에 성경을 한장 보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9 자기를 의뢰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니 마음에 큰 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인생의 목표는, 성도가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마음을 여며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주의 사랑을 받는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오늘 하루 가운데서도 힘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은 인생 가운데, 늘 용기와 희망을 가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절망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긍정과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위대한 주님의 자녀이며, 그분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소망이 그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들'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 There You Were - Jessica Simpson ft Marc Anthony


두달만에 아내가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이틀째 입니다. 두주 정도 전 부터는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행복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끊임 없는 아내의 재미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비행기에서 보았다는 '벅스 라이프' 의 스토리를 들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요즈음 제가 고민하는 핵심이 그 만화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꼭 볼 예정입니다. 

인간은 비록,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절망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언제나 희망은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얼굴 속에서, 함께 부대끼는 인생의 소소한 부분에서 언제나 기쁨은 존재합니다. 어쩌면 신자의 가장 큰 능력이자 영광은, 낙망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들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바로 그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것이 느린 저이기 때문에, 깨닫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느립니다. 아내가 혹 저에게 짜증을 내거나 감정이 힘들 경우에,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익히고 연습하는데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잠시 헤어져 있던 두달 동안 제가 마음에 생각한 것은,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조금더 아내를 이해하지 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쉽게 화를 내는 습관도, 쉽게 짜증을 내는 습관도, 이제는 좀더 바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하는 아내의 삶이, 좀더 행복하고 좀더 편안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 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극도의 자기 수양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속에서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세상이 알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행복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주님께 감사합니다. 아내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열매에 대해서..

그래서 오늘도 행복, :)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친절을 베푸셨습니까? / Your Will (feat. Darick Rutley) - Ken Reynolds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리에게 돌아올 어떤 이익을 바라며 '친절' 을 베푼다면, 그것을 '친절' 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순수한 이기심' 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행동의 목적과 동기와 방향은 오직 '자기 자신' 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친절' 이 아니라 '투자' 라고 부릅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마음의 중심' 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동기' 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 앞에 호소했던 그들이, 결코 주님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들이 한 일이 결코 작은 일들이 아니었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서 가장 큰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그들의 행했던 수 많은 업적들이,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이것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적용하며, 우리가 더욱 선행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것을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책망받는 자들은, 행함의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또다른 그 어떤 기준에 대하여 책망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뜻' 이라는 것은 언제나, 철저하게 세속적인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결국 우리의 인생이 여기에 달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거스르는 진리입니다. 도저히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황금과 같은 인생의 길입니다. 틀림없이 그 문은 좁고, 찾는 이가 아주 적을 것입니다. 많이 사랑하셨습니까? 많이 선을 베풀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 존재하던 우리의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제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 인생을 예상해 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에게 유익이 되는 자에게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던 행동들을 진심으로 돌이키고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의 인생 가운데, 저의 작고 연약한 손길이, 세상에서 더 이상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런 이들에게 향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이, 주님 앞에 큰 칭찬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며 / 사람, 사랑 - 박정현 & 김범수


언젠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식사하고 있는 미국인 부부를 보았습니다. 두분 다 연세가 있어 흰머리가 많았습니다. 특히 부인은 몸에 힘이 없고 연약해 보였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묵묵히, 접시에 있는 수박을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그것을 천천히 먹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조용한 식사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마음까지 따뜻해졌습니다. 유독 그분들이 앉은 그 창가에만,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듯 했습니다. 서로 많은 말이 오고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활기찬 모습도 아니었지만, 그 모습 그대로가 '사랑' 이었고, '부부' 가 무엇인가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지 4년째가 되었고, 만난지는 10년이 넘어갑니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악하고 완고함이 아내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힘들게 한적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연약한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준 시간들은 저의 인생에 가장 큰 부끄러움이고 또 아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격려해준 아내가 있었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고 또 지금의 이 시간들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 자신을 돌이켜 보면 흠이 너무 많아, 때론 어디서 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좀더 책임감 있고 좀더 용기있는 모습으로, 좀더 따뜻하고 배려있는 모습으로 성숙해나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내일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비록 잠시 떨어져 있지만 짧은 글로 감사과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아내의 인생 가운데 진실로 행복하고 소중한 일들이 넘쳐나기를, 아내의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발견하고 천국을 경험하기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이 아내로 인해 희망과 사랑을 발견하기를, 아내의 주님을 사랑함이 날로 승하여지고 육체와 마음이 건강하기를, 주님의 뜻이 늘 아내 인생 가운데 따뜻하게 펼쳐지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 가운데 행복과 감사함이 넘치기를, 넉넉하지 못함이 우리의 서로를 향한 기쁨을 가로막지 못하기를, 혹 어려운 일들 속에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욱 든든해지기를, 새롭게 태어날 생명을 통해 더욱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세월이 흘러갈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강하여지고 깊어지기를, 이것들을 진심으로 바라고 소망하고 또 기도합니다.

진희야, 사랑해 :)
그래서 오늘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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