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리디셀렉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리디셀렉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2년 9월 6일 화요일

나는 책을 읽는다, 넓은 세상 속에서 진리의 조각들을 만난다.

 












    조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 전기 저자인 해리 스타웃(Harry Stout) 칼빈주의 복음전도자인 휘트필드가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아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기록한다. 사람 서로가 갖고 있는 사상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서로 친했다는 사실에 다소 놀랄 것이다. 휘트필드는 칼빈주의 교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고 청렴하고 도덕적으로 엄격한청교도라는 용어의 표상이었다. 반면에 프랭클린은 종교에 대해서도 모독하는 발언을 일삼았던 종교회의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문란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프랭클린이 하나님께 선택받지 않은 자들 하나인지는 우리가 없을지라도 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증거로만 때에는 그는 분명 선택받지 않은 자들의 범주 안에 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휘트필드도 프랭클린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고 평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 복음전도자 휘트필드가 종교회의주의자인 프랭클린과 시간을 보낸 것은 단지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과연 하나님은 휘트필드가 벤저민 프랭클린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허락하셨을까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물론 어느 칼빈주의자라도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우정을 통해 미리 예정하신 특별한 목적이 있으셨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대한 목적론적인 논의 말고, 그들이 나눈 순수한 우정 자체에 대해서 묻고 싶다. 하나님은 휘트필드가 프랭클린과의 사귐을 즐기는 것을 허락하셨을까? 우리 주님은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우정을 그저 기쁘고 즐거운 일로 여기셨을까? 하나님은 사람이 편지를 통해 주고받는 내용들에 흡족해하셨을까

휘트필드는 친구의 건강을 걱정해주었고 필라델피아에 때마다 그의 집에 머물기를 원했으며 프랭클린이 잘못한 일로 가슴 아파했다. 하나님은 선택받지 않은 백성 중의 하나라고 거명된 사람과 나눈 우정 자체에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휘트필드가 프랭클린과 나눈 시간이 발생하기를 원하셨던 것일까? 다시 말해 구원의 특별한 은혜 바깥의 사람들에게 있는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 사이를 어떻게 명확히 구분할 있을까? 우리는 이미 질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서 이를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하였다. 우리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별한 은혜의 경계 바깥에 있는 자들에게 있는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에 대해 과연 하나님의 관점과 동일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리처드 마우, 문화와 일반 은총: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운 가운데 빛나신다, trans. 권혁민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 57–59.

    만일 우리가 신학적으로 성령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나아가 지성, 음악적인 재능, 건강, 튼튼한 체력과 같은 타고난 재능을 주셨다고 말할 있다면,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과 의지가 건설적이며 외적으로 선한 것들을 행할 있도록 주권적으로 역사하고 있다고 말할 없는가? 예를 들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고레스가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반포한 것이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해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만일 우리가 교리문답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모두 선하다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이 인간의 모든 역사를 다스리시고, 인간들이 선을 행하도록 이끄신다고 말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이러한 역사는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말이다.

John Bolt, “Common Grace, Theonomy, and Civic Good: The Temptations of Calvinist Politics,” Calvin Theological Journal 33, no. 2 (November 2000): 237.

리처드 마우, 문화와 일반 은총: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운 가운데 빛나신다, trans. 권혁민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 73.

학위를 위한 공부가 모두 끝난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좋아하는 C.S. 루이스나 마이클 호튼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의 독서를 지켜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십대 때에는, 제가 중요하게 읽어나가야 하는 책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책들이 있었습니. 그리고 오래전에 그것을 정리해 놓았고 이 책들이 저의 생각과 삶의 방향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 정진부 목사의 "독서 간증"
https://prezi.com/xkmxlmjzkp-x/for/?utm_campaign=share&utm_medium=copy

하지만 사십대의 저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익혀야할 내용들과 책들을 섭렵한 이후는, 이제 저는 일종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자유롭게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한 분야에 굳이 얽매이지 않고, 어쩌면 저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그런 책이라도 자유롭게 읽고 생각하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깊이 있는 책 한권을 여러번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정독의 독서"는 한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키며 그 내용을 내면 속으로 자리잡게 합니다. 저 역시 단 한권의 책을 들고 그 책을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다섯권 정도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면서 저는 한권을 정독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진리의 조각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 신학책만 읽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비슷한 해석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가장 익숙한 일입니다. 물론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진리인 성경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다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제가 염려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조차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성경 해석에 대한 이야기만 붙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는 목표는 너무나 숭고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도의 가장 높은 수준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속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고 평가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성경적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만" 매몰된다면, 그러한 숭고한 목표는 실질적으로는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성경만 알아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만 이해해서는 나의 삶 가운데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도 방향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면에서 목회자로 그리고 성도로서 제 삶 속에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집니다. 

만약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으로만 나눈다면 사실상 다양한 책을 읽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배척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교회의 주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죄를 억제하시며, 죄인들에게도 여전히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을 주십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성도를 넘어서는 지식과 지혜들을 그들에게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세상 속에서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심을 보이십니다.

흘러가듯이 사는 것 같았는데 저도 모르게 뭔가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섯권 정도를 한꺼번에 틈나는대로 읽으면 매우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책들이 비교가 되고, 그 안에서 저자들의 논리를 한꺼번에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더욱 확장되어서 성경적인 이해와 비교해보게 됩니다. 

이러한 독서법은, 단순히 신학 책 한권을 읽어나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면의 치열함을 만들어냅니다. 혹은 세상과 저의 영적인 대결이기도 합니다. 배우면서 도전하면서 싸우면서 겸손해지면서 성숙해집니다. 이것은 제가 과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고, 저에게 있어서 삶의 지식의 확장과 성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방향입니다. 

물론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자가 진실하게 마음을 담아서 쓴 책이라면, 비록 부족하더라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책들 중 대부분은 철저하게 진화론을 기반으로해서 쓰여진 책들입니다. 읽으면서 철저히 반대하고 또 마음이 상당히 불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는 그런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이 이 시대에, 그리고 제 자신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그 어느때 보다 진지하게 탐구하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책을 읽어서 요즘에 너무 행복하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니 좋겠다"고 아내가 웃더군요. :) 어쩌면 저의 행복의 기준이 매우 낮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책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흩뿌려져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궁극적인 성도의 영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분이라면,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2년 1월 8일 토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11) - 100일의 인내,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쁨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까요? 목회데이터 연구소의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인 남녀 기독교인 700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년간 신앙서적 독서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신 분들 중에도 독서 권수는 2.6권 정도입니다. 

* 독서의 계절, 신앙인들의 성경읽기 실태는?

통계 전공이 아니라 700명 정도가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주 쉽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분들도 분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 읽는 내용이 삶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에, 제 취미는 독서와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이 블로그에서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어렸을 때 부터 다양한 책을 읽었고, 책을 함께 나누는 기쁨이 너무 좋아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북클럽을 해보려고 시도해보니, 흥미를 가지시는 분들은 종종있지만 꾸준히 하시는 분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잠깐의 기쁨을 맛보기는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의 뒤로 밀리기 때문에 결국 의미있는 독서 혹은 북클럽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한 동안 현실의 어려움에 마음이 눌려 낙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에, 저의 가까운 주변에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꾸준하게 읽는 분이 있을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책 이야기를 해서 면박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 

세상의 흐름을 보면, 가치있는 것에 관심과 시간을 쏟기 보다는, 단지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에만 관심과 시간을 쏟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미가 있고 돈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곳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독서와 북클럽은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성도님들과 대화를 하고 신앙 교육을 해 보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문해력"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신앙의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면, 성숙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신앙의 논리와 내용이 우리의 삶에 바탕을 우리기 때문에, 그것들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구성하지 못한다면, 실질적으로 신앙의 성숙이 정말 어렵습니다. 

펜데믹으로 인해서 많은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목회자인 제 자신도 낙심하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신 것은, 이럴 때 일 수록 더 부지런하고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제 자신은 가치 있는 것을 향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하루에 한번 책 읽기 입니다. 

네이버 밴드를 이용해서 아주 짧은 분량이라도 매일 매일 책을 읽는 것을 습관화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많은 분량을 읽어서 소화하기 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영적인 혹은 지적인 활력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장르는 다양합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조금씩 읽고 있고, 자기 계발서와 인문학 책들을 동시에 읽고 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양서라고 판단이 되면 바로 읽어봅니다. 감사하게 리디 셀렉트 플랜안에 좋은 책들이 많이 있어서 책을 구입하는 비용을 상당히 절감하였습니다. 물론 마음에 들면 바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싱크 어게인"을 아침에 읽었습니다. 어떤 논지에 맞춰서 그 사안이 복잡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향한 설득의 계기가 된다는, 다소 복잡하지만 상당히 적용점이 높은 내용이었습니다. 인증샷을 만들어서 올리니 바로 오늘이 백번째 인증이라고 알려주세요. 


"100일차"라는 메시지를 보는데, 마치 신학교 학위를 받는 것 처럼 너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꾸준함이야 말로 가장 귀중한 덕목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결심을 하고, 하루하루를 인내로 이기고, 그리고 작지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을 오늘 맛 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는 동일하지만, 그 목적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십 대 때에는 워낙 아는 것이 없어서, 기독교 혹은 일반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보았습니다. 삼십 대 때에는 학위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전공 서적들을 읽어야 했습니다. 이제 모든 학위를 마친 지금에 있어서는, 이제 사십이 넘어서는, 제 자신을 깨우기 위해서, 영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하루 하루가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습니다. 내용을 줄이고 또 늘리고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오늘이 100일차이기는 하지만 매일 본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지난 한주는 너무 마음이 분주하고 할 일이 많아서 거의 5일을 연속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돌이키고, 독서의 목적을 기억하면서 새롭게 시작한 보람이 있습니다. 

아직 젊지만, 노년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노년이 아름다울까요? 평생 성경과 책을 가까이 하면서 제 마음을 새롭게 만들고, 새로운 지성을 만들어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미래"는 두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새롭게 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의 주권 가운데 정하셨지만, 우리의 손을 잡으시고 우리의 아름다운 결심과 선택들을 통해서 그 미래를 그려 나가십니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예상하지만, 이미 신앙의 길에서 멀어지신 분들이 돌아오는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미 더 이상 성도들이 모이지 않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교회들은 진지하고 참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저 역시 뒤쳐지고 싶지 않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힘들다 하더라도, 그러나 좋은 방향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 경주하며 달려가고 싶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오늘 저에게 위로를 해 주시는 것 같네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책을 가까이하며, 그 행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1년 8월 23일 월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05) - 리디 셀렉트로 본 책을, 실제로 구입하면 어떻게 되나?

모든 사람의 자신의 삶에 큰 전환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우연히 일어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둘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책이라는 관점에서 저에게는 스무살에 북클럽을 시작한 것, 로고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북클럽으로 논문을 쓴 것, 그리고 리디 북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저의 인생에 큰 전환점입니다. 

리디 셀렉트는 정해진 풀 안에서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플랜입니다. 리디 셀렉트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아래 글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All You Can Eat
- 리디셀렉트 : 세상의 모든 책을 월정액으로 읽으세요

리디 셀렉트를 구독한 이후에 처음에는 열심히 읽다가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네이버 밴드를 열고 하루에 한번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하루에 작은 분량이라도 읽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은, 제 인생에 가장 의미있는 도전이었고 가장 탁월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 "하루 한번 " 밴드 시리즈 (성경, 영어, 책) 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책을 좀 더 열심히 읽다보니, 예전에 리디 셀렉트를 통해서 읽었던 책 중에서 꼭 다시 한번 읽고 리뷰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책이 "보통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책입니다. 4차 산업 혁명과 맞물려서 펼쳐진 미국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개인과 정부를 향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탁월한 책입니다. 

처음에 읽고 너무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했던 책입니다. 너무 귀한 책인데 리디 셀렉트에 포함되어서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지금은 리디 셀렉트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다시 읽기 위해서는 구입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오늘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구입하기 전에 한가지 정말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과거에 리디 셀렉트 안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에 하이라이트 한 것, 그리고 메모로 남긴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습니다. 

리디 셀렉트를 통해서 책을 보면 사실상 거의 공짜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리디북스에서 제한 사항을 걸어 놓지 않았는가 염려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하이라이트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정말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겠다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구입하려고 카트에 담으니 "예전에 대여한 책입니다"라고 문구가 뜨더군요. 갑자기 희망으로 마음이 두근대기 시작했습니다. :) 다행히, 제 계정 안에서 그 책을 보았던 정보가 저장이 되어 있었고, 만약 그렇다면 제가 기존에 기록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구입하고 바로 셀폰 어플에서 열어보았습니다. :)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사하게도 아래 그림처럼, 제가 과거에 리디 셀렉트를 통해 보았을 때에 기록했던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


아,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 결론적으로 리디 셀렉트에서 보았던 모든 책에 대한 과거 자료는 그대로 서버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추후에 사용자가 리디 셀렉트에서 본 책을 실제로 리디 북스에서 구입할 경우에는 그 자료는 그대로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이제 남은 것은, 책을 더 열정적으로 읽는 것이네요.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02) - 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 목회의 참된 비전을 발견하다

 



제 나이대에 비슷한 분들이 모두 경험하는 것이겠지만, 제 마음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존재합니다. 더 이상 어린 아이나 청년이 아니며, 저의 삶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지금까지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전혀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우여곡절까지 겪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른적이 없고, 가정을 이루었고, 좋은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이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누구도 저에게 언제부터 담임 목회를 해야한다라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음을 주신 것은, 그 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마치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사람처럼, 이미 제 핸드폰 안에 담임 목회를 시작하는 그 남은 날짜를 카운드다운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마음에 강하게 드는 생각은 목회적인 방향을 정립하고, 그것을 제 자신에게 훈련시키며, 그것에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열심히 살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더 부지런히 움직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삶을 돌이켜 보면, 모든 부분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고, 준비한 부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담임 목회로 나가기 전에, 몇권의 책을 반드시 마스터해야겠다 라고 결심하였습니다. 10여년 전에 미국 유학을 결정하기 이전에 정독하고 유학을 결심하였던 맥그라스의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 가장 신학적으로 목회를 잘 정립한 팀 캘러의 "센터처치" 그리고 좌파 경제학자로 부를 수 있는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 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독서가 지적인 유희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는 어떤 절박함 속에서 나오는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책을 읽어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또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요즘에 더 독서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리디 셀렉트 플렌을 실천하고 나서 다양한 책들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중간에 슬럼프도 있었지만 다행히 포기하지 않고 한달에 몇권 이상은 읽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리디 셀렉트 안에서 볼 수 있는 책이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의 "복음이 울다"가 포함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전 작품인 "래디컬"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읽고 있는 책들도 버겁고, 또 제 마음 한켠에 기독교 고전을 더 중시하는 이유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라, 어렵고 두꺼운 책만 책이라고 여기는 안 좋은 습성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리딩으로 리드하라" 입니다. 이지성씨의 "상위 0.1 퍼센트의 뇌에 접속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습니다. :) 한마디로 오래된 책 중에 시대의 비평을 이겨낸 인정 받은 좋은 책만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클럽을 실제로 성도님들과 하면서 배운 것은, 얇고 쉬운 책도 얼마든지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고전이 아니더라도, 동시대에 나온 책 중에도 읽을만한 좋은 책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담임 목회를 준비하면서, 목회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고 집중하면서 "복음이 울다"라는 책을 읽게 된 것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참된 복음의 길을 저에게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이 책은 아주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이 우연히 히말라야 산맥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단지 8일간의 이 여행으로 통해 삶의 큰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느꼈던 경험했던 그리고 말씀 안에서 고민하며 변화하고자 몸부림쳤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목사님은 히말라야 산맥 지역에서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삶이 너무나 가난해서 모든 것이 망가져 버린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납니다. 

그는 그 안에서 복음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진정한 복음의 의미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복음이 누군가의 삶 가운데 실현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과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데이비드 목사님이 이 여행동안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영적으로 그리고 육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실제로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제의 삶 속에서 들어가서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가 단순히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로 경험 되었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목사님은 자기 자신의 설교 속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그런 유익을 얻었습니다. 안락한 사무실 방 안에서 에어컨 아래에서 앉아 있으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의 어려운 삶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고 같이 기도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목회라는 것을 수도 없이 깨닫습니다. 

그런면에서, 제가 고민하고 적었던 수 많은 설교에 대한 고민과 방향들이, 자칫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늘 경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데, 성도에 대한 사랑이 없는데, 무슨 말씀 주해가 의미가 있고 또 그것을 통해 만들어낸 설교가 감동이 되겠습니까? 진실로 사랑이 없다면, nothing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글과 설교의 완성은, 성도님들과의 사랑의 관계와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에게 언제나 감사합니다. 평생을 여자 전도사님으로 성도들을 돌보고, 지금은 목사로 성도들을 돌보십니다. 얼마전에 그러시더군요, 가족들조차 포기해 버린 알콜 중독자에게 매일 찾아가, 밥을 먹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몇개월을 그렇게 했더니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고, 대화하는데 제 마음이 먹먹해서 눈물이 나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를 닮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언제나 강조합니다. 

이제 저에게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주중에 심방을 계속 잡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더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정한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어려움 속에 목회자가 실제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책이 참 좋았던 것은, 데이비드 목사님이 자신의 성경적인 삶과 목회의 비전을 결심하게 된 과정을 자연스럽게 적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더 높은 사랑"으로의 부르심을 깨닫습니다. 말 뿐인 사랑, 대면대면하고 미지근한 사랑, 기브 앤 테이크로 가장한 사랑, 그런 사랑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사랑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고, 진정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바로 그런 사랑을 위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결심하게 됩니다. 

저 역시 요즘에 이런 부르심을 마음에 깊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신비적인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제 마음 속에 부으시는 영적인 부담감으로 나타납니다. 저의 모든 목회적 섬김 가운데, 그저 피상적인 관계와 친절을 넘어서서, 참된 복음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지금까지도 말씀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말씀을 대하고 절실하게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데이비드 목사님은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자신의 삶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메달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심들을 가지고 자신의 사역의 방향을 바꾸고 실천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 짧은 여행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천을 이루었는지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논문을 쓰면서 저는 지적인 담론에 그치는 세계관 운동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K.A. 스미스가 탁월하게 풀어낸 것 처럼, 인간은 "아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 사랑은 "실천과 반복"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은 "끝없는 신앙에 대한 실천과 도전"이 그 사람을 빚어냅니다. 이것이 변화에 대한 전부입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라고 백번 듣는 것" 보다, "고통 받는 사람을 자발적으로 찾아가서 함께 식사하며 위로하는 한번의 경험"이 훨씬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변화한 이후에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변화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복음 안에 들어간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실천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그 긍휼의 눈으로 아픈 이들을 경험하고, 그들을 참된 사랑으로 돕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 공동체 안에서 변화하는 한 사람의 영적인 여정을 보여줍니다. 충분히 이론적이면서도 또 너무나 충실하게 실천적입니다. 이론과 실천을 평이한 언어로 감동적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저는 이것보다 더 좋은 책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생각한 것은, 담임 목회를 하게 되면 반드시 이 책을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읽고 나누어야겠다 라는 생각입니다. 책이 너무 쉬워서,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결심한 것은, 적어도 제가 섬기는 교회는 복음으로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픔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들로 성장해 나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이 아닌 것을 붙들고 삶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붙들고 삶을 의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남은 삶과 목회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처럼 복음을 통해 가장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앞 날을, 복음이 이끄시는 방향으로 확고하게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