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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일 일요일

'형제'와 함께라면 두려움이 없어라

 


볼티모어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파가 같이 찾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회를 한주 클로주했고 다시 교회를 오픈하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트럭으로 눈을 치웠지만 손이 미치지 못한 곳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서 눈을 치우기로 했습니다. 정말 추운 날씨였지만 모두가 자신의 일인 것처럼 교회로 모였습니다. 도저히 걸어갈 수 없던 곳에 길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마치 홍해의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교회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 분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교회를 섬깁니다. 그리고 그런 귀한 분들을 통해서 모든 분들이 흘러 넘치는 은혜를 누립니다. 

눈을 치우면서 마음이 참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형제'와 함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힘들 수 밖에 없는 인생의 길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하는 것은 기적이며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목사이기 이전에 볼티모어 교회의 한 성도로서, 저 역시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그래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어쩌면, 좋은 설교를 하고 또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섬기고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저 역시 교회의 일원으로서 더 진실하게 열심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이며,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1월 4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39) - 함께 지어져가네




1. 가사 살펴보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 사랑 안에 우리 거할 때
주님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네 

우리는 주의 몸 된 교회
모든 지체가 하나될 때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고통과 즐거움 함께 나누네

하나님 안에서 우리 서로 이어져
주가 거하실 성전이 되네
모퉁잇돌 되신 예수와
하나 되게 하신 성령 안에
함께 지어져 가네

  

2. 곡 소개

이 곡은, 팀룩워십 팀의 '함께 지어져가네'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교회의 본질과 영적인 하나됨과 성장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곡이다. 주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 이루어지며, 그 사랑 안에서 더욱 충만해지고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음을 고백하는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신자로서 우리의 자존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부르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멀고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바로 그분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도록 격려합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830.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목적을 이루었다는 것은,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할 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됩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1782179. 

고전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믿는 자들의 공동체가 현재의 유행이나 흐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한 자들의 영적 유산 위에 세워졌다는 의미입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74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교회의 정체성과 성장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진실한 고백을 담고 있는 곡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쏟아부어졌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우리 안에서 진실한 사랑을 만들어내며, 서로를 사랑하는 영적인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영적인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의 기준들을 뛰어넘어 서로를 보듬고 품어주며 섬기는 유일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오직 교회만이, 진정으로 한 사람의 고통과 영광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하며, 이것이야 말로 주님이 이루신 교회의 놀라운 영적인 하나됨이다.

교회의 정체성 그리고 성장은, 오직 모퉁이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분의 은혜를 붙드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언제나 주님 앞에서 용서 받은 죄인임을 인정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과 은혜를 누리며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이야 말로 교회가 나아가는 영원한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나를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공동체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성장해 나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10월 4일 토요일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보통 새벽에 출근해서 여러 일을 섬기다 보면 금새 저녁이 됩니다. 나와보니 늦은 시간인데 장로님 한분과 집사님 한분께서 교회 마당을 정리하고 계십니다. 일전에 교회 앞에 있는 나무의 굵은 줄기들을 잘랐는데, 이제 그것들을 치우기 위해서 한 곳에 모으고 계셨습니다. 

땀 흘리면서 일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합니다. 목회자로서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일을 본인의 일처럼, 교회의 앞 마당을 본인의 집 앞마당처럼 여기시는 분들의 열심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성도님들의 귀한 사랑 덕분에, 한주가 멀다하고 교회가 더 아름다워집니다. 

해가 지는 저녁 노을이 마침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마 제가 찍은 사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진인 듯 합니다. 물론 저녁 노을도 참 좋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두분 때문에 이 사진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중년을 넘어가니, 정말 아름다운 인생이 무엇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저도 함께 도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를 했습니다. 귀한 두분처럼 저도 더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 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고, 또 영원에 잇닿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9월 12일 금요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23) - 지역 사회를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도움을 필요로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는 널싱홈의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가족이 있고 어떤 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돌보기가 어려워서, 혹은 더 이상 혼자 댁에서 지낼 수 없기 때문에 널싱홈으로 들어가서 생활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고 해도 지내시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 두분이 좁은 방 하나를 같이 씁니다. 거기에는 간단한 가구와 침대가 있을 뿐입니다. 물론 시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있지만,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 납니다. 

이미 볼티모어 교회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노숙자 시설도 방문하고 장애인 단체도 섬기고 있습니다. 또 이미 교회 근처에 널싱홈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라 전도회에서, 콜롬비아에 있는 한 곳도 방문하면 좋겠다고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 가운데 사랑의 마음이 더욱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억지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강제로 누군가를 섬기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충만할 때에, 우리는 기꺼이 자원하여 넉넉히 세상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어르신들이 참 좋아하셨습니다. 크로마하프 팀과 권사님들 모두가 함께 찬양하는데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비록 연세가 있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시는 모습이 은혜로웠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기도하다가, 갑자기 통성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의 각자의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이를 초월하는 것이고, 어르신들의 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널싱홈을 방문하는데 간식이 빠질 수 없습니다. 사라 전도회에서 떡과 과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셨습니다. 사랑이 듬뿍 담긴 귀한 음식들로 대접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꼭 다시 오라는 말씀을 여러분이 하셨고 언젠가 또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널싱홈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연약한 분들을 향해 있습니다. 볼티모어 교회가 앞으로도 지역 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의 의지와 열정으로, 그렇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더욱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When we look around, we see many people in need. Among them are the elderly in nursing homes. Some have families, some do not. But often they can no longer live at home, so they move into nursing homes. No matter how good the facilities are, life there is not easy. Usually, two people share a small room with only simple furniture and a bed. Though the facility offers programs, loneliness and sadness still remain on their faces. 

Baltimore Church already serves the community in many ways—visiting homeless shelters, supporting organizations for the disabled, and regularly visiting nearby nursing homes. Recently, the Sarah Missionary team suggested visiting one in Columbia, and this brought me joy. I saw that love was rising naturally in our church. We cannot be forced to love or serve. But when our hearts are filled with the Lord’s love, we can gladly serve others. 

The elderly were very happy to worship together. As the Chromaharp team and deaconesses sang, we were all moved. Though advanced in years, they focused on God’s Word with grace. After the sermon, I felt led to pray together for their personal requests, and my heart grew warm. Faith transcends age, and I saw again their deep longing for God’s grace. 

Snacks are always part of a nursing home visit. The Sarah Missionary team carefully prepared rice cakes and fruit, and we served them with love. Many asked us to return, and we left hoping to come again. 

A church that pleases God is a church that knows the Lord’s heart. And His heart is always toward the weak. May Baltimore Church continue to serve the community with warm hearts, love, and passion—becoming more and more a church that brings joy to the Lord.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5년 8월 17일 일요일

나의 자리에서, 나의 역할로 섬긴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목회로 섬기면서 제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저의 자리에서, 저의 역할로 섬기는 것' 이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다보면, 내가 드러나고 빛날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눈에는 당연히 그런 자리가 더 잘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리에 있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는 언제나, 저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제 개인의 소유라면, 제가 가고 싶은 곳에, 제가 가장 드러나고 멋져 보이는 자리로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드러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전 교회에서 섬길 때에, 몇분이 저를 부추겼습니다. 이제 저의 위치 정도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를 좋게 봐 주시고 이야기해 주신 것입니다. 듣는 분은 조금 불편하셨겠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교회는 저의 교회가 아니라고, 그리고 저는 담임 목사가 아니라고, 제 역할은 담임 목사님의 목회를 잘 이루고 또 교회가 유익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실 상당히 미련하게 지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몇번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목사로 섬긴 과거의 시간이 후회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 자랑스러운 것이 별로 없지만, 이렇게 지켜온 저의 태도만은 참 좋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긴 시간의 훈련이, 지금의 담임 목회에도 큰 유익이 됩니다. 이렇게 연결될 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담임 목사는, 모든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꼭 있어야 하는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의 역할에, 제가 할 일에, 그리고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데 전심전력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향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그렇게 훈련했던 것처럼, 제 자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고, 또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의 뜻을 마음에 두고 순종할 때에, 한번도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그분께서 친히 열어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2024년 8월 27일 화요일

볼티모어 교회 청빙 투표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저의 결심 / 하나님의 열심 - 배다해

 


한동안 너무 바빴습니다. 마음에 쓰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또 가슴 벅찬 생각들이 많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처음에 담임 목회 청빙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에,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자신을 준비하고 또 단련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큰 어려움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결코 쉬웠다고 말할 수 없고 또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한걸음 한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볼티모어교회의 담임 목사 청빙 투표에 제가 통과 되었습니다. 

* 볼티모어교회
https://kpcbmd.org/

인터뷰 이후에 최종 설교의 기회가 왔을 때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물론 처음 방문하는 교회 처음 뵙는 성도님들이기에 많이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결과이든지 간에 후회없이 설교하고 싶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온 가족이 교회를 방문했고 모든 일정을 소화하면서 큰 행복이 있었습니다. 

시무장로님과 부인 권사님들을 뵙고 식사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장로님들의 진실함이 좋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좋았습니다. 어린 저의 음성에 경청해주셔서 좋았고 교회를 잘 세우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합해졌기 때문에 좋았습니다. 

예배를 섬기는데 좋았습니다. 전통적인 교회 건물이 좋았고, 층고가 높아서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로 울림이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찬양대의 찬양과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좋았습니다. 성도님들의 열정의 눈빛이 좋았고 손을 잡는 악수가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설교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꿈의 무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설교 이후에 부른 찬양이 좋았습니다. 

목회자들이 함께 모인 시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섬길 분들이 훌륭한 분들이라서 정말 좋았고 또 사모님들도 귀한분들이라 좋았습니다. 청빙위원들을 뵙고 생각을 나눈 간담회의 시간이 좋았습니다. 몇개월의 시간을 수 많은 후보들을 놓고 토론하고 기도한 그분들의 열심과 교회를 향한 사랑이 좋았습니다. 그분들의 눈에 담긴 저를 통한 미래를 향한 기대감도 좋았습니다. 

전체 성도님들과 함께 모여 나눈 대화의 시간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진솔한 대화를 서로 나누고 교회의 앞날을 함께 생각하고 염려하며 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습니다. 가족과 같은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해서 좋았고 저의 가족을 향한 환대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다시 돌아와 시카고로 돌아와 주일 설교를 하고 나니 청빙 위원장 장로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최종 통과가 되어서 이제 담임으로 섬기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동안의 수고, 염려, 아픔 등을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셨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 마음에 느낀 것은 책임감의 무게였습니다. 사실 청빙이 거의 확실해 질 수록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 교회의 최종적인 책임자가 된다는 그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담임 목회를 시작한다는 그 기쁨보다, 제가 감당해야 할 교회의 소중함과, 하나님의 중한 책무를 맡는 자로써 경험하는 무게가 훨씬 크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목회는 제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늘 알고 있었지만, 더 그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몇가지를 기도하며 마음을 올려 드렸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바쁘지만, 앞으로 사역하는 동안 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고 변하지 않고 그분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짧은 결심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볼티모어 교회 담임으로 시작하는 저의 결심입니다.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볼티모어 교회 앞에서, 진실한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순간 사람의 눈에 들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진심을 담아서 목회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청빙 위원중 한분이 저에게 격려해주셨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의 자기 소개서를 보는 순간 목사님이 정말 진실한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분의 눈이야 말로 진실했기 때문에 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큰 격려가 저에게 더 큰 목회적인 책임감으로 돌아왔습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지 않는 사람으로 교회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볼티모어 교회 앞에서, 설교에 힘을 쏟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목회의 상황은 너무나 복잡하고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은 언제나 저의 한계를 넘어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 앞에 제 자신이 먼저 서고, 그리고 성도님을 위하여 정성껏 준비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또 선포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설교를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을 맛볼 수 있도록 교회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 앞에서 볼티모어 교회 앞에서, 기도에 힘을 쏟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성도님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잊지 않게 적어놓고, 교회의 대소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그렇게 기도하겠습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목회를 하겠지만, 목회의 처음과 과정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와 능력을 저와 교회에 부어주시기를 간구하며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넷째로, 하나님 앞에서 볼티모어 교회 앞에서, 성도를 부지런히 만나고 섬기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비록 제 몸은 하나이지만, 항상 성도님들 곁에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도님들의 아픔을 저의 아픔으로 여기고, 성도님들의 기쁨을 저의 기쁨으로 여기며,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목회자가 되어, 그렇게 교회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 앞에서 볼티모어 교회 앞에서, 성도를 주님의 성숙한 자녀로 만들어가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설교를 했다고 혹은 심방을 했다고 만족하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지혜를 함께 배우고 나누고 내면에 심어서 성도님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과 변화가 일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최선의 양육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이끌면서 교회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볼티모어 교회 앞에서,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저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히 넘어지고 낙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리고 제 자신이 다시 일어설 뿐 아니라 넘어진 성도를 다시 일으키는 사람이 되도록 교회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결과를 저의 작은 두 손에 받아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드리고, 오직 그분께 영광을 올립니다. 과거의 저의 눈물을 다 덮을 만큼, 따뜻한 환대와 사랑 속에서 청빙의 과정이 끝났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앞으로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소중함, 그리고 진리의 말씀의 영원함을 기억하면서 그것을 붙들고 볼티모어 교회를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 헤브론 교회를 사임하며
- No Regret, 후회가 없기에 기쁨이 넘치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4/10/no-regret.html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4년 4월 8일 월요일

제1회 '로고스와 설교 포럼'을 마치고 - 우리는 같은 길을 간다

 


한국에 와서 여러 일정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하던 일정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로고스 프로그램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저의 모교와 같은 열린비전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그곳이 목사님들께서 부탁하셨습니다. 

사실 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에게 있어서 뭔가 더 배우고 발전하겠다라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목회지는 학교가 아닙니다. 정말 녹녹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막상 목회 속으로 들어가면 무엇인가 더 배워서 자신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부탁하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정을 맞춰보니 밤 시간만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 분이 이미 하신 설교 본문을 가지고, 제가 마치 설교를 준비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로고스를 이용해서 준비한 이후에 비교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모임의 이름도 지었습니다. '로고스와 설교 포럼' 입니다. 

사실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여행 중에 틈을 내서 설교를 들어보고 로고스를 띄워서 자료들을 살피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잠깐 통화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이제 너는 나눌 때가 되었다, 배우고 익힌 것 아끼지 말고 나누거라'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피곤한 중에 밤에 찾아뵈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저보다 더 피곤한 얼굴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서로 피곤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참 좋았습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교회를 더 잘 섬기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하시는 분들도 그리고 제 자신도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를 부르셨는지 먼저 여쭤보았습니다. 목사님들의 목표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설교를 위해서 로고스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또 로고스에 계속적으로 자료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준비한대로 잘 말씀드리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의 성경 주해 단계부터 스터디 바이블의 효율적인 사용과 필요한 자료 추천, 그리고 원어 검색과 사전의 사용 그리고 주석들까지 연결해서 설명 드렸습니다. 

단 한번의 모임이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들, 그리고 블로그 안에서 정리했던 것들을 활용해서 두시간 정도의 시간을 강의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자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필요한 자료를 우선 구입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자료의 특성을 파악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앵커 기능을 통해서 나만의 해석과 통찰들을 계속 모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순환을 타면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설교에 능숙해질 수 있다고 설명드렸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 나눔이 참 좋았습니다. 들으신 분들도 좋아하셨지만 사실 제 마음이 가장 기뻤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분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시간이, 마치 저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제 마음에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설교학 전공은 아니지만 목회자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본인의 설교를 더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분들과 함께, 설교를 깊이 연구하고 자료를 추천하고 공유하고 피드백을 나누면서 목회에 유익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생각지도 못하게, 하나님께서 그 첫 걸음을 내딛게 하셨습니다.

제 블로그에 다양한 분들이 방문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목회자들 중에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댓글로 혹은 제 이메일 jungjinbu@gmail.com 으로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됩니다. 특별히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로고스를 사용하기 위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의 능력 안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언어와 리더십에 대한 진정한 지혜 / 전도서 10장 12-20절 설교

 




전도서를 설교하면서 삶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말씀 앞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점검하고 제대로 잡아가는 것은 너무나  유익이며 설교자로서 말씀을 대할 때에  특권입니다설교를 준비하면서 평소에 읽었던 혹은 읽고 있는 책들이 자꾸 떠오릅니다원래 새벽에는 한권 정도만 인용하지만이번 설교에서는  권을 인용하였습니다일반 은총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의 조각들입니다.

최근에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설교의 무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저의 고충을 이야기 나누었을 때에 힘을   빼는 것이 좋겠다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너무나 귀하고 지혜로운 조언인데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로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저의 개인적인 강의나 소견을 발표하는 자리라면  힘을 빼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있을  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설교자로 선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두려운 일입니다단순히 설교를 잘해야 한다라는 맥락을 넘어서서설교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난  새벽 설교는 너무 내용이 많았습니다줄이기에는 논리가 너무 약해져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말이 너무 빨라서 아쉬웠습니다그래서 조금  무난하게 설교를 준비해야겠다 잠깐 생각했습니다그런데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계속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새벽 설교도 짧은  시간이라도하나님의 말씀은 진지하게 전해져야 합니다제가 능력은 부족할지언정저의 준비와 태도는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요즘에 저는해석이  이렇게 되는가를 그렇게 많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설교의 자리는 해석학의 강의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다만 제가 충분히 소화하고 간단하여 영어 성경 혹은 현대어 성경 정도를 사용해서 내용을 이끌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성도님들이 이해하실 때에 훨씬 수월하게 이해할  있는  합니다.

이번 설교에서는 스터디 바이블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내용이 정말 번뜩이는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느꼈습니다왕이 어리다 라는 부분에서는 영어 성경을 인용했지만 내용은 넷바이블 각주를 참조한 것입니다이미 사용하는 스터디 바이블들을 충분히 읽어보고 설교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10:14 Who after him: This rhetorical question about the fools lack of knowledge about the future is one of the repeated themes of Ecclesiastes. The same question is asked in 3:22; 6:12; 8:7; in part in 9:12; and especially in the grand conclusion of 12:14.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0:14.

tn Or a child; or a servant. The term נַעַר (naar) has a wide range of meanings (HALOT 707 s.v. נַעַר; BDB 65455 s.v. II נַעַר). Used in reference to age, it may refer to an infant (Exod 2:6; Judg 13:5; 1 Sam 1:22; 4:21; 2 Sam 12:16), a child just weaned (1 Sam 1:24), an adolescent in puberty (1 Sam 16:11), or a young man of marriageable age (Gen 34:19; 2 Sam 14:21; 18:5, 12). Its technical or titular use denotes servant (Num 22:22; Judg 7:1011; 19:3; 1 Sam 3:9; 2 Sam 16:1; 2 Kgs 4:12, 25; 19:6), retainer; attendant; follower (Gen 14:24; 1 Sam 25:5; 2 Sam 2:14; 2 Kgs 19:6; Isa 37:6; Job 1:1517; Neh 4:10, 17) and soldier (1 Kgs 20:1516). The parallel Ugaritic term is used in reference to physical age (lad; son; youth) and in a technical sense (guild members; servitors; soldiers); see UT 19.445. The LXX rendered it with νεώτερος (neōteros, youthful). The English versions vary: child, (KJV, ASV, NASB, MLB, RSV, NRSV margin, NIV margin); childish (NIV margin); servant or slave (NEB, NAB, ASV margin, NRSV, NIV); and lackey (NJPS). When used in reference to rulers, it emphasizes incompetence, naiveté, inexperience, and immaturity (Isa 3:4, 9; 1 Kgs 3:7). This use must be understood in the light of the parallel antonym: son of freemen (בֶּן־חוֹרִים, ben-khorim). This suggests servant, that is, one who was not well trained and prepared by noble birth to ascend to the throne.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Second Edition. (Denmark: Thomas Nelson, 2019).

10:16 king is a child. A child ruler or a ruler acting childishly. Such rulers seek to satisfy their own needs before attending to the needs of the people. This is not the poor and wise youth of 4:13.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062.

제가 자주 사용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자료에는 오늘 본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묵상하면서 가장 완전한 은혜의 언어, 그리고 가장 완전한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예수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요즘에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계속 공부하면서 얻은 일종의 감각이라고도 느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묵상하는데 마음이 벅찼습니다. 제가 감격하고 좋았던 만큼, 함께 들으시는 성도님들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소망하면서 원고를 준비하였습니다.

설교는 언제나  자신이 먼저 첫번째 회중이며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저의 평생에 언어가 은혜롭고 사랑과 격려가 가득하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저의 리더십이 섬기는 리더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끄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역시  길을 힘있게 걸어가겠습니다.

전도서 10 12-20

전도서의 구조 안에서 오늘 말씀을 본다면인간의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지혜가 무엇인가거기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특별히 오늘 말씀은 언어에 대한 지혜 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지혜  두가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12절과 13절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말과 언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시는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은  사람이 지혜로운가 아닌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과  사람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이상으로 우리의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우리의 언어라는 것이 두가지의 극단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먼저 12절에 보니 “언어라는 것은 은혜로울  있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은혜라는 것은 힘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자비로운 행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조건 없는 호의를 표현하는 것이 은혜입니다그런데  인간이 쓰는 언어라는 것이 얼마든지 그러한 놀라운 의미와 거대한 힘을 담을  있다고 오늘 말씀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의 경우도 있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은혜롭지 않은 언어들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자기를 삼킨다” 그리고 13 말씀들은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표현들은 굉장히 강한 표현이라고 말씀드릴  있겠습니다사실  말씀을 놓고 보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목사님 이건  과장법이 아닐까요사람의 언어라는 것이 그저 몇마디 밖으로 나오는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자기를 삼키고  결말이 미친 것이고 혹은 악한 것이라고 말할  있을까요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궁금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정말 성경이 말씀하시는  처럼 언어가 은혜라는  힘을 끼칠  있는 것이고 혹은 자신을 삼키며 너무나 악한 것으로도 사용될  있는 것일까?

제가 읽었던  중에서 언어라는 맥락에서 가장 통찰력이 있었던 책은, "무례함의 비용이라는 책이었습니다저자인 크리스틴 포래스라는 분은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MBA 과정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분은 원래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인데 처음에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거기에서 막말과 무례한 행동이 판치는 조직 문화를 경험했습니다그리고 결국에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나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하는데무례함이라는 것이 인간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20 넘게 연구하였습니다.

그중에 몇가지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의사와 간호사 4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그런데 무려 71퍼센트가 상대방을 깔아뭉개거나 모욕하는 언행을 경험했을 때에그것이 자신의 의료적 실수와 관련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그리고 심지어  중에 27퍼센트는무례한 언행과 자신이 돌보던 환자의 죽음 사이에 관련이 있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내과 병원장 800명을 설문조사 했더니  중에서 99퍼센트의 응답자는 말하기를자기 병원에서 발생하는 무례한 언행이 환자를 치료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무례함은 우리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간다우리를 감정적 롤러코스터 상태에 빠뜨린다우리의 인지능력을 빨아들인다심지어 정신건강을 해치기도 한다결국 우리는 산산이 부서져 극도로 위축되고 평소의 모습을 찾아볼  없는 지경에 이른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어리석은 자는 악한 말들을 밖으로 내는 것이고 악한 말들은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준에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망친다는 것을 연구 결과들이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매한 자의 언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매한 자는 말이 많다라고 말씀하십니다그렇다면 무슨 말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부분에 거기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우매한 자가 하는 말의 내용이 무엇인가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우매한 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마치 자신이 모르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처럼마치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처럼 교만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은  재미있는 말씀입니다15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아마도  말씀의 의미는 이런 것이라고 이해할  있습니다. NLT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어리석은 자는 약간의 일만해도 지쳐버려서 심지어 집에 가는 길조차 찾을 수가 없다”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사람의 힘과 시간이라는 것은 한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쓸데 없는 교만한 말들만 하다가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정작 자신이 마땅히 해야   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런 맥락에서 허망하게 힘을  소진하여 버려서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도 찾지 못하는 일상의 생활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무례하고 악한 말을  뱉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입니다그런 맥락에서 사람을 격려하고 살리고 돕는 언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언어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지혜라는 것은 교만하여서 자신의 손에 미래가 달린  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혹은 쓸데 없이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하는데 힘쓰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6절부터는 장면이 전환이 되고 있습니다이것은 리더십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공동체에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리더가 지혜로운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먼저 오늘 말씀에서 강조해서 보여주시는 것은 지도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니 왕은 어리다 그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리다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기 보다는  마음과 생각과 태도가 굉장히 어린아이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자기만 생각하고자기만 돌아보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지 않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만약에 공동체의 리더들 가운데 그런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왕은 자신이 최고 지도자인데 자기 생각만 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먹고 즐기는데만 관심을 가진다면 도대체  공동체가 어떻게 되겠는가너무나 슬픈 일이고 너무나 끔찍한 일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인가 17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메시지 영어 성경은  부분을 번역할 때에 “왕이 성숙한 사람이다”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앞에서 등장한 어린이와 같은 왕과 비교되는 적절한 표현입니다자기만 알고 자기만 내세우고 자기의 필요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타인의 아픔을 알고 타인의 필요를 알고 공동체 전체를 돌보는 그런 성숙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밑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은 어떠한가? 17절에 보니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여기서 우리가   있는 것은 성경은 인간의 즐거움에 대해서 절대로 완전히 금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없애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삶의 우선 순위에 있는 것입니다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리더의 책임감입니다자신이  일을 망각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리더이고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미루지 않고 먼저 하는 사람이 리더이고 이후에 자신들의 즐거움을 필요한 만큼만 누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부가 행정학 전공이기 때문에조직과 리더십에 대한 책들을 좋아합니다 중에서 최근에 읽었던 가장 좋은 책은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라는 책입니다원래 영어 제목은 leading matters 라는 제목인데 처음에는 한국어 제목이  특이하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비춰보면서 생각해 보니어른다운 성숙한 리더십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헤네시는무려 16 동안 스탠퍼드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이분은 과학자로 벤처 사업가로 총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모든 생각들을  책에 정리하였습니다.

저자는 리더십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내가 아는 많은 권력가나 권위자가 가장 배우기 힘들어 하는  그리고 일부는 평생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바로 리더십은 봉사라는 사실이다 그럴까리더의 거의 모든 측면이 봉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리더는 전형적으로 다른 구성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결정을 우선시한다그런 상황에서 리더로서 당신의 역할은 구성원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기 어려울  있다이런 식으로 생각하려면 머릿속으로 조직도를 뒤집어 당신이  있는 피라미드의 정점이  아래로 내려가 나머지 사람들을 떠받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자각하고 봉사하는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조직을  이끌어 나갈  없을 것이다그런 사람은 자기가 이끄는 공동체와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것이다그리하여 끝내 리더로서 실패하게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내용을 읽으면서 참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세계 최고의 대학을 가장 높은 자리에서 이끌면서 저자가 배운 것은리더십의 본질은 섬기는 자리이고 리더란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살피는 섬기는 자리라고 단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사실상 성경이 요구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리더십을 평범한 세상의 언어로 탁월하게 표현한 것이다 라고 이해할  있는 것입니다.

탁월한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18 말씀은 더욱 흥미로운 말씀입니다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8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두가지인데하나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지혜라는 것은 부지런함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리더십이라는 것을 정의할 때에 머리가 명석하고 번뜩이는 리더에  포커스를 맞추는  같습니다그런데 사실 성경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사람의 뛰어난 머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는가 얼마나 헌신적인가 그리고  사람이 얼마나 부지런히 공동체를 살피는가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리더가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단지 손을 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동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우리는 흔히 리더십을 생각할 때에 그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그런 소극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같습니다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리더가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이미 그러한 소극적인 태도로 인하여서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다는 것을 경고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언어와 리더십에 대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마태복음 20 28 말씀입니다28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그분의 열심을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게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그리고  창조물의 정점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그러나 그분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반역하였습니다사실상 인류의 역사는 거기에서 끝이 나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세상을 포기하시지 않았았습니다.

놀라운 것은그분께 범죄하고 반역한 아담과 하와에 대하여서비난과 폭력의 언어가 아니라 생명의 약속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창세기 3 15 말씀입니다마귀를 향한 심판에 대한 선포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에 대한 선포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머리를 상하게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은혜와 구원의 말씀입니다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오늘 전도서의 말씀은 진정한 리더가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그는 은혜로운 말을 하고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섬기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수가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서 기꺼이 사랑을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열심으로 약속하신 예수님을 보내기 위한 모든 일을 역사 가운데 친히 이끌어오신 것입니다.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 9 6절과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모사라전능하신 하나님이라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것임이라 7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의 약속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때가 되어 2천년 전에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하나님의 열심과 그분의 지혜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가장 고상한 분이시며 가장 성숙한 분이시며자신의 생명을 죄인을 위하여 기꺼이 사용하신 분이십니다예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  땅에 오신 것입니다그분은 죄인을 살리시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는 참된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있는 예수님이 세우신 공동체인 교회는 어떤 곳인가가장 높으신 예수님이 가장 낮아지셔서 섬기신 것처럼세상적으로 가장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낮은자리로 들어가서 기꺼이 섬기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고린도전서 15 5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안에서 헛되지 않은  앎이라” 라고 교회를 격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과연 무엇이 주의 일이라고   있는가어리석고 상처를 주는 악한 말을 하는 곳이 아니라 부지런히 사람을 살리며 격려하며 생명을 주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나누는 것이 바로 주의 일인 것입니다모든 이들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특별히 공동체의 리더들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며 공동체를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헤브론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따뜻하고 격려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넘치고어려운 이들의 필요를 살피고 돌보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섬기기를 원합니다그렇게 평생을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추구해 나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첫째로 기도하실 때에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나님께서 언어를 선물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무례하고 교만하고 악한 말이 아니라 따뜻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언어를 사용할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나님의 열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보내시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자녀 삼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예수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저에게 맡겨진 것들을 삶의 우선 순위에 놓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으로 저를 변화시켜주시옵소서저를 통해서 공동체가 더욱 회복되고 풍성해지도록 저의 삶을 사용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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