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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1) - 주님은 너를 사랑해

 

1. 가사 살펴보기

주님은 너를 사랑해
주님은 너를 사랑해
우리를 사랑하신 주 널 사랑해 

주님은 너를 기뻐해
주님은 너를 기뻐해
우리를 기뻐하신주 널 기뻐해 

주님은 너를 위로해
주님은 너를 위로해
우리를 위로하신 주 널 위로해 

주님은 너를 축복해
주님은 너를 축복해
우리를 축복하신 주 널 축복해

 

2. 곡 소개

찬양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사랑, 기쁨, 위로, 그리고 축복을 받는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하는 곡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며, 그 안에서 성도 개개인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영원한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은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그 사랑을 거절하더라도 이 언약적, 관계적 사랑은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428.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기뻐하시고, 그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안식하시며, 그들에 대해 기뻐 노래하시는 것은 불가해하지만 귀중한 진리이며,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반응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13.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겪게 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사역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위로를 베풀 때, 당신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며, 당신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의 더 깊은 차원을 경험하도록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364.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 구절은 종종 ‘송영(doxology)’이라 불리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열거하며 그분께 경배와 찬양, 영광을 돌리는 표현입니다. 이 장엄한 부분에서 바울은 교회가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누리는 복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이 복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은 신분, 양자됨, 구속, 선택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모든 영적 은사와 섬김의 능력도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이 영적 복에서 흘러나옵니다.

David S. Dockery, “Ephesi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7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시고 어떤 은혜를 부어주시는가를 깊이 깨닫게 하는 곡이다. 굉장히 단순한 가사이지만, 성경적으로 깊은 은혜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사랑 속에서 성도를 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너무나 기뻐하시며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는 것처럼 기쁨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을 모른 척 하시지 않으시고 깊이 위로하시며, 또한 그 위로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늘의 복을 누린다. 우리는 주님의 선택 속에서 구속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모든 능력과 세상을 살아갈 힘을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때로는 세상의 기준과 판단 속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깊은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회복되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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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9일 금요일

간절히 하나님을 원했던 축복의 사람, "고 임종인 장로님"을 기억하며


목회자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시만, 또 내일은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가슴 아파하며 유가족을 위로합니다. 

죽음에 대한 감각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그 숭고한 마음은, 오늘 내 설교가 마지막 설교일 수도 있다는 그 절박함은, 우리의 태도의 근본을 뒤흔듭니다. 

임종인 장로님을 처음 뵌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교회를 떠나셨다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연세가 80이 훌쩍 넘으셨지만 예배를 사모하시고 빠지지 않고 나오셨습니다. 다만 섬겨야 하는 성도님들이 여러분이라, 깊은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그분의 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임장로님께서 속하신 순 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제일 연장자이시기 때문에 순장님께서 장로님에게 대표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때 그분의 진지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진실하고, 순수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그 음성을 처음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로 눈 앞에 계시는 것처럼 기도하시는 그 간절함이 저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참 감사했던 것은, 저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저의 목회를 위해서, 저와 저희 가족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셨습니다. 손자뻘에 불과한 목회자를 귀히 여겨주시고 또 기도해 주심에 참으로 마음이 기뻤습니다. 목회자는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기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분들이 특히 더 고마운 듯 합니다.

암 투병 중이시던 장로님께, 더 이상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댁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하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권사님 혼자 남편을 돌보셔야 해서 집이 정리가 안되어 부담스러워하셨지만, 꼭 찾아뵙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은 무리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장로님이 의식이 있으셨습니다. 비록 힘이 없어 많은 말씀은 못하셨지만, 권사님께서 장로님이 얼마나 귀하게 그동안 교회를 섬겼는지,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선하게 대하셨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권사님께서 부탁하셔서 면도기로 장로님 면도도 해드렸습니다. 

시편 23편을 천천히 크게 읽어드리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아프신 분들을 찾아뵈면 크게 기도합니다. 때론 그래서 목이 상하지만, 그저 잠잠한 기도로는 제 마음의 간절함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의 가장 큰 어려움과 고통 앞에서 어찌 제가 조곤조곤 기도할 수 있겠느냐는 마음에 결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고민하다가, 장로님의 가슴에 올려진 손을 조심스럽게 꼭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께서 힘을 내서 제 손을 끌어 올리시고는 결국에는 본인 머리에 제 손을 올리셨습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안수 기도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의 마지막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크게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 어려운 시간을 오직 목자 되신 주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만 이겨내실 수 있기를, 성령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문장이 정지할 때마다 힘을 내어 아멘하시는 그 음성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 평생에, 장로님의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한 것은 처음인 듯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신 분을 놓고도 그러합니다. 장로님의 그 순간은 단순히 어린 목사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을 존대하며 간절히 주님의 은혜와 복을 사모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이 나고 장로님과 권사님 격려해 드리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래도 조금은 가벼웠습니다. 넘치게 위로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함께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례한 어제의 하관 예배를 마지막으로, 임장로님의 모든 장례 절차를 마쳤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무너져도 성도는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저의 설교는, 단순히 설교가 아니라 저의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설교를 들으실 장로님에 대한 진실한 고백이었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의 바라고 그분의 복을 사모했고 누렸던 장로님이야 말로, 목회자로서 저의 삶 속에 오래 남으실 것입니다.

임장로님의 관이 내려가는 것을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습니다. 그 순간이 마치 저에게는 친할아버지께서 하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아 장로님을 뵐 생각에 마음에 위로가 있었습니다. 임장로님을 뵙는 그 날에 더 기쁘게 만나기를 원합니다. 저도 장로님처럼, 누군가를 간절하게 축복하는 삶으로 살았다고 조금은 자랑하고 싶습니다. 장로님 다시 뵐 그 날까지 부끄럽지 않은 목회를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023년 8월 6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3) - 블레싱 (The Blessing)

 


1. 가사 살펴보기

주 네게 복 주사 주 너를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네
그 얼굴 비추사 평안주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의 은혜 너의 위에 천 대까지 흘러가리
너의 가정 너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까지

주의 임재 앞서가며 지키시고 동행하리
둘러싸고 채우시며 주가 너와 함께하리

아침에도 저녁에도 너의 모든 출입에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주님 너를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2. 곡 소개

곡은, 미국의 대표적인 찬양 사역자인 Kari Jobe 의 곡이며, 한국에서는 아가파오를 비롯한 다양한 찬양팀에서 번역해서 불렀다. 이 곡은, 민수기와 신명기의 축복의 말씀을 바탕으로, 주의 백성을 돌보시고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이 얼마나 놀랍고 풍성하며 또 감격적인 것인지를 고백하는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신명기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5:9 You shall not bow down to them or worship them; for I, the LORD your God, am a jealous God, punishing the children for the sin of the father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of those who hate me,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5:10 but showing love to a thousand generations of those who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5:1–21 Deuteronomy 5–26 contains the laws that Israel was to keep in the land they were about to enter. The Ten Commandments stand at the beginning of all other laws, and at the beginning of the Ten Commandments we read,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slavery” (5:6). 신명기 5-26장은 이스라엘이 들어가려는 땅에서 지켜야 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다른 유럽의 시작이고, 십계명의 시작은 나는 너를 애굽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하나님 여호와라 말씀입니다.

Law follows grace. God saved Israel before he gave them his law to follow. God rescued Israel not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 law but because of his promise to Abraham, Isaac, and Jacob (Ex. 3:15–16). Israel’s deliverance was therefore not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 law but because God saw their affliction and cared enough to deliver them from their suffering to an abundant life (Ex. 3:7–8). This truth provides the context in which to read the whole of Deuteronomy 5–26. Indeed, this gospel rhythm provides the context in which we carry out our obedience to God. Law follows grace. We obey from, not for, God’s favor. 율법이 은혜를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따라야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이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을 보시고 그들을 고통의 삶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으로 이끌어내실 만큼 그들을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신명기 5-26 전체를 읽을 있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복음의 리듬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율법은 은혜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Mark D. Futato, “Deuteronomy”,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226–227.

신명기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1 If you fully obey the LORD your God and carefully follow all his commands I give you today, the LORD your God will set you high above all the nations on earth.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2 All these blessings will come upon you and accompany you if you obey the LORD your God: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3 You will be blessed in the city and blessed in the country.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4 The fruit of your womb will be blessed, and the crops of your land and the young of your livestock--the calves of your herds and the lambs of your flocks.

The problem is that we do not abide by all the things written in God’s law. Left to ourselves, the result can only be curse rather than blessing (Gal. 3:10). But Christ obeyed for us (Rom. 5:19) and bore the curse for us (Gal. 3:13), so that we might receive these blessings through our faith and not by our obedience (Gal. 3:14). Those who are free from the obligation to keep the law in order to merit the promised blessings (Gal. 5:1) do not use that freedom to sin (Gal. 5:13) but rather to serve in love (Gal. 5:14). As we do, we can expect to receive more of the covenant blessings in this life even as we anticipate experiencing the fullness of those blessings in the life to come…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남겨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직 저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순종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믿음으로 축복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은, 자유를 죄를 짓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섬기는데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때에, 내세에서 그러한 축복의 충만함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면서, 땅의 삶에서 많은 언약의 축복들을 받을 것을 기대할 있습니다.

Mark D. Futato, “Deuteronomy”,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252–253.

민수기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4 "'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5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26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 and give you peace." '

The ultimate expression of God’s desire to bless us is found in the giving of his Son to bear the curse of God’s wrath upon our sin (Gal. 3:13–14). In reconciling us with God and bringing us near to him, Jesus himself is our peace (Eph. 2:14–22).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의 궁극적인 표현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담당하도록 그의 아들을 주신 것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그에게 가까지 게가 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L. Michael Morales, “Number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7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찬양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순종이 아니라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분의 언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마땅히 지킬 것을 요구하시지만, 그것은 그들이 두려움 속에서 무서워하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랑에 응답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자 하는 그 풍성한 사랑은, 궁극적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복이며, 예수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단순히 이 세상의 물질의 복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성도는 심지어 수 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늘의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감격을 누린다. 성도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순종하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죄와 실패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성도는 그저 감사함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믿음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 순종은 마땅한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고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순종을 추구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한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복된 길이 된다. 주님께서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은혜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며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을 마땅히 가르쳐야 함을 보여주신다. 이 찬양을 통해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주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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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70) - 야베스의 기도

 

1. 가사 살펴보기

내가 엄마 품속에서 고통 중에 태어났지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날 택하시고 존귀케하셨네
내 평생에 여호와를 섬기며 그 말씀만 따라 살아가리
주의 집에 나 항상 거하리니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내가 진심으로 구하였더니
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내 간구하는 모든것 허락하셨도다

원컨데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하옵소서


2. 곡 소개

곡은 한국의 대표적인 CCM 작사, 작곡가인 설경욱 목사님의 곡이다. 성경에 짧게 등장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어려운 중에서 태어난 야베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내용의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역대상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4:9 Jabez was more honorable than his brothers. His mother had named him Jabez, saying, "I gave birth to him in pain."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4:10 Jabez cried out to the God of Israel, "Oh, that you would bless me and enlarge my territory! Let your hand be with me, and keep me from harm so that I will be free from pain." And God granted his request.

The best honor is that which one gains in communion with the Most High. Jabez, we are told, was more honorable than his brothers, and his prayer is recorded, as if to intimate that he was also more prayerful than his brothers. 최고의 영예는, 지극히 높으신 분과 교통하는 자가 얻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더 존귀하고, 그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마치 그가 그의 형제들보다 더 기도하기를 바랬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Spurgeon, The Spurgeon Study Bible: Notes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512.

4:9–10 Jabez was singled out only because of his simple, powerful prayer of faith that moved God to respond. … Much about this man is left to speculation, but we know a few things. First, his name means pain, so something happened surrounding his birth that caused his mother to give Jabez this unusual name (4:9). Now, a name like that is quite a burden to overcome. I believe God wanted us to read about this man in part as a reminder that pain doesn’t have to be the last word in our lives.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도록 그분을 감동시킨 힘있는 믿음의 기도 때문에 발탁되었습니다. 이 남자에 대한 많은 부분은 추측으로 남겨져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첫째, 그의 이름은 고통을 의미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에게 이 특이한 이름을 지어준 그의 출생을 둘러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런 이름을 극복해야 할 부담이 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고통이 우리 삶의 마지막 말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키시키기 위해, 부분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서 읽기를 원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Second, Jabez realized that he didn’t just need someone to bless him; he needed the impartation of spiritual favor that comes from God alone. It’s interesting that Jabez’s request is open-ended instead of specific. … Jabez brought God an empty cup and asked him to fill it as he saw fit. That’s a prayer of faith. Let God decide what to fill your cup with and how high. 둘째로, 야베스는 단지 자신을 축복할 어떤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은혜의 분배가 필요했습니다. 야베스의 요구는 구체적이지 않고 개방형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빈 잔을 가져다가 그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채워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당신의 잔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얼마나 높게 채울 것인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도록 하세요.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449.

4:9–10 Among those listed in the genealogies of Judah, the author of Chronicles chose to highlight Jabez as one who “was more honorable than his brothers.” In addition to his honor and the account of how the circumstances of his birth resulted in his name, the author of Chronicles took the time to record one of Jabez’s prayers. In the context of the exile and the difficulty of returning home, this prayer reminded God’s people that his gracious hand remained upon them to deliver from pain and to restore the blessings of the covenant. 역대기의 저자는, 유다 족보에 열거된 사람들 중에서 야베스를 그의 형제들보다 더 존귀한사람으로 강조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야베스의 영예와 그의 출생 상황이 어떻게 그의 이름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외에도, 시간을 내어 야베스의 기도 중 하나를 기록했습니다. 포로 생활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구하고 언약의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 위에 머물러 있음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Miles Van Pelt, “1-2 Chronicle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495.

Instead, we should read this prayer in light of the Chronicler’s hope for the restoration of God’s people despite their struggles: if they humble themselves and seek the Lord in prayer, as Jabez did, God will respond by restoring them and establishing his kingdom in their midst. 대신에 우리는 이 기도를, 그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대한 역대기 기자의 소망에 비추어 읽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야베스가 그러했던 것 처럼 스스로 겸손해지고 기도로 여호와를 찾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심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Jabez’s story and his prayer point to the Lord’s sovereignty over both suffering and deliverance and his willingness to fulfill all his promises to his people who seek his face in prayer. Jabez, despite the sorrowful circumstances of his birth that remind us of the curse of a fallen world, entrusts himself completely to God and calls on God to fulfill his promises. The Chronicler implies that the struggling Israelite community of his day should likewise pray and seek the Lord to help them in their challenges. The theme of suffering and deliverance also points us to the Lord Jesus Christ, who endured the suffering of death, whose prayer for deliverance from death was heard because of his reverence, and who became the source of salvation for all who trust and obey him (Heb 5:7–9). 야베스의 이야기와 그의 기도는, 고난과 구원에 대한 주님의 주권과, 기도를 통해 그의 얼굴을 찾는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기꺼이 성취하려는 주님을 가리킵니다. 야베스는 타락한 세상의 저주를 생각나게 하는 비통한 출생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역대기는 그 시대에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기도하고 그들의 어려움에서 그들을 도우시도록 주님께 구해야 한다고 암시합니다.  

Aubrey Sequeira, “1 Chronicle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51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야베스의 기도를 찬양으로 승화시킨 탁월한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야베스의 이름이 그는 고생을 만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이름이 함축한 상황을 문학적으로 잘 풀어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고통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하나님을 따르는 자로 살게 되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야베스는 단순히 복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복을 구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야베스는, 자신의 어려운 타고난 어떤   배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도우시고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한 귀한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야베스의 기도를 기뻐 받으셨다는 것을 성경은 확실히 말씀하고 있다.

야베스의 기도가 기록된 역대상은, 바벨론의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에 기록된 성경이다. 성전과 성이 재건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과거의 영광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 역대기 기자는 야베스의 기도와 응답을 기록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야베스의 기도는, 단순히 개인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연약해진 공동체 가운데, 이 말씀과 찬양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키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지경을 넓히시고, 하나님의 손의 도움으로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기쁘신 때에 반드시 기도를 이루실 줄로 믿으며, 함께 이 찬양을 묵상하고 부르기를 원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곡의 묵상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11월 3일 수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48장 / 야곱을 기르신 하나님, 그리고 나중된 자의 기쁨

 

요셉과 함께 지내는 야곱의 꿈같은 시간도 끝을 향해 다가옵니다. 야곱은 병이 듭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것과 병이 드는 것은 얼마든지 같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단 하나의 관점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기억합니다. 그리고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온전한 자신의 가족으로 입양합니다. 물론 궁금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미 자신의 손자들을 만난 것이 오래 전인데, 이제와서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왜일까?

야곱은 힘을 다해서 두 손자를 축복합니다. 요셉은 당연히 장자가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자인 므낫세가 야곱의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놓아서,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놓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축복합니다. 

성경은 요셉이 기뻐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NET BIBLE은 이것이 원어적으로는 It was bad in his eyes라고 말합니다. 요셉의 눈에는 이것이 나빠보였습니다. 탁월한 믿음의 사람인 요셉도 이 순간 만큼은 인간적인 눈으로만 상황을 이해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아버지의 행동에 당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실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이미 누가 장남인지를 알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이렇게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생인 에브라임을 끝까지 앞세웁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야곱의 축복 속에서, "나의 출생으로 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15절)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shepherd라는 단어가 등장했다고 주목합니다. 야곱의 삶은 고난이 가득했지만, 그는 평생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르시고 돌보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 어디에 있을까요?

스터디 바이블은 에브라임이 더 큰 축복을 받는 것을 주목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는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야곱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어린 자가 더 큰 복을 받는 창세기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을 정말 많이 봅니다. 자신이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고, 신앙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점점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너무나 미약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의 믿음이 성장하여,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신앙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즐거운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는 사람,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나라이며 영광의 나라입니다. 

저도 성도로 목회자로 묵상에 대한 글을 적고 있지만, 나중 된 자에 불과합니다. 그저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믿음이 연약해질까봐 제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이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나중된 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One of the main subjects in Genesis is upside down. As Jacob got God's blessing more than Esau, in this chapter, Joshep's second son Ephraim got more blessing than his older brother. This is God's providence and his will of grace. 

As a pastor, I saw many people who became weaker in their faith than past easily. In this case, they forgot the grace of God and his abundant love for them who is the sinner. When they had an arrogant attitude before God, they fell to the lowest level in their faith journey. 

However, I saw many people who became the hero in their faith. When I saw them the first time, they are so weak, however, when they seek God himself and his grace in the Bible, they grow and grow in their faith. Actually, I am always afraid of becoming to be arrogant. I want to seek God humbly every day. Do you?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신앙 질문 - 평신도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한 권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성경적으로 틀린 가요? 오직 목사님께 만 한정되어 있는 가요? 제가 듣기로 하나님 자녀로 성령 받은 자에게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해도 된다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성경적 해석으로 이번 기회에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쉬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이에게 복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는 몇 가지 눈 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사에게만 한정되어 있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선포라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위해서 간구할 수 있는가?” 라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 듯 보입니다. 좀 더 복합적인 질문들을 한 번에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보통의 성도님들이 다른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이, 목사들의 기도처럼 소위 말해 파워가 있는 것인가? 바로 그런 특별한 기도는 목사에게만 한정된 것인가? 그리고 평신도인 내가 그렇게 축복을 선포하면, 목회자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이루어 주실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첫째, “축도라는 개념의 축복 기도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도는 보통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 이후에 하는 축도를 의미합니다. 이때의 축복 기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경우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모인 예배의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특별한 경우의 축도는, 그 교회 공동체의 리더인 목사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질서의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실 때에, 목사를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고 섬기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배라는 공동체의 모임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리더인 목회자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특별한 축도의 개념이 아닌 보통의 축복은, 보통의 성도님들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보통의 성도님, 혹은 평신도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모든 성도를 교회 안에서 동일한 존귀한 지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목회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간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저는 선포라는 개념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한글 표현으로 선포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선포하는 내가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누군가에게 누구누구 성도님, 제가 당신에게 복을 선포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에게 어떤 주술적인 느낌을 주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본인은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영적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주게 될 것입니다.

개역 개정 성경 번역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선포라는 단어는 여섯 번 정도 사용됩니다. 누가복음 81, 로마서 14, 로마서 221, 디모데후서 111절과 417, 히브리서 212, 베드로전서 29, 그리고 베드로전서 319절입니다.

성경에서 선포라는 단어의 의미는, “내가 너를 위해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게 하겠다라는 소원의 성취, 다시 말해서 어떤 복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행하는 선포하는 개념은 없습니다. 개역 개정 번역 기준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복음을 널리 알리는 것 혹은 설교를 선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정의가, 선포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포하다(宣布-, declare) 널리 세상에 알리다. 분명하게 드러내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할 ( 1:1; 대상 16:23),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신 일을 선포할 ( 2:12)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선포는 유창한 말솜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요(고전 2:4),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있다( 10:14–15).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526–527.

저는, 누군가에게 복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복을 구하는 상황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구절을 꼭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214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2:14 Bless those who persecute you; bless and do not curse.

이 말씀에서 축복이라는 표현은, 마가복음 1016절과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0:16 An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put his hands on them and blessed them.

조금은 충격적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 다른 이들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축복하셨던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축복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많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축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내가 간구하는 복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가 아닌가 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사실상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처럼 심지어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까지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라는, 복을 받는 그 대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우리는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의 축도를 샤머니즘 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분명히 거절합니다

담임 목사님의 축도는 효력이 있고, 부목사의 축도는 효력이 약하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기도는 효력이 크고, 부목사의 기도는 효력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기도는 큰 능력이 있지만, 평신도인 나의 기도는 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효력은 기도자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그리고 영혼의 진실함을 가지고 말씀에 따라 기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극단적인 경우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기도나 나의 기도는 단 하나의 차이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역할과 그 질서상의 차이조차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축도가 미신적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리더 격인 목회자만이, 예배 때에 교회 공동체의 리더로서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특별히 구별하여서 공동체를 맡기셨음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다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라고 무분별하게 말하는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만약 제가 병자를 위한 기도를 위해 심방을 간다면, 저는 가능하면 담임 목사님과 함께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기도의 특별한 능력이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상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서 기도할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에 맞춰서 예배 마지막 순서로 축도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목회자만이 축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이든 보통의 성도님이든,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목회자 역시, 보통의 경우에는 보통의 성도님처럼, 다른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기를 담담하게 간구합니다. 자신이 기도한다고 무조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모든 성도님들 역시 그렇게 복을 빌어줄 수 있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의 축도가 아니라면, 보통의 성도님들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포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에서 그런 개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선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마치 자신에게 대단한 영력이 있어서, 내가 하나님 이름으로 복을 선포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며, 그것 역시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샤머니즘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넓은 맥락에서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내가 복을 선포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 그것 자체가 아니라, “나를 핍박하는 원수에게 조차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이를 위해서조차 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모든 복을 빌어주는 말 속에서, 예수님과 같은 진실한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다른 이를 위해서 복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 안에는, 진정한 겸손이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간구하는 그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어떤 사람이 어떤 복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 때문입니다.

결국 복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당장 그 사람이 내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복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하시며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자녀 됨 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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