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성경적으로 틀린 가요? 오직 목사님께 만 한정되어 있는 가요? 제가 듣기로 하나님 자녀로 성령 받은 자에게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해도 된다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성경적 해석으로 이번 기회에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쉬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이에게 복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는 몇 가지 눈 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사에게만 한정되어 있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선포”라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위해서 간구할 수 있는가?”
라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 듯 보입니다. 좀 더 복합적인 질문들을 한 번에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보통의 성도님들이 다른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이, 목사들의
기도처럼 소위 말해 파워가 있는 것인가? 바로 그런 특별한 기도는 목사에게만 한정된 것인가? 그리고 평신도인 내가 그렇게 축복을 선포하면, 목회자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이루어 주실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첫째, “축도”라는 개념의 축복 기도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도는 보통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
이후에 하는 축도를 의미합니다. 이때의 축복 기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경우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모인 예배의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특별한 경우의 축도는, 그 교회 공동체의 리더인 목사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질서의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실 때에, 목사를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고
섬기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배라는 공동체의
모임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리더인 목회자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특별한 축도의 개념이 아닌 보통의 축복은, 보통의 성도님들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보통의 성도님, 혹은 평신도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모든 성도를 교회 안에서
동일한 존귀한 지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목회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간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저는 “선포”라는 개념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한글 표현으로 선포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선포하는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누군가에게 “누구누구 성도님, 제가 당신에게 복을 선포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에게 “어떤 주술적인 느낌”을 주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본인은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영적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주게 될 것입니다.
개역 개정
성경 번역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선포”라는 단어는 여섯
번 정도 사용됩니다. 누가복음 8장 1절, 로마서 1장 4절, 로마서 2장 21절, 디모데후서 1장
11절과 4장 17절, 히브리서 2장 12절,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 19절입니다.
성경에서
선포라는 단어의 의미는, “내가 너를 위해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게 하겠다”라는 소원의 성취, 다시 말해서 어떤 복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행하는
선포하는 개념은 없습니다. 개역 개정 번역 기준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복음을 널리 알리는 것 혹은 설교”를 선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정의가, 선포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포하다(宣布-, declare) 널리 세상에 알리다. 분명하게 드러내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할 때(신 1:1; 대상 16:23),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하신 일을 선포할 때(히 2:12)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선포는 유창한 말솜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요(고전 2:4),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롬 10:14–15).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길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526–527.
저는, 누군가에게 복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복을 구하는 상황”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구절을 꼭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2장 14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2:14 Bless those who persecute you; bless and do not curse.
이 말씀에서
축복이라는 표현은, 마가복음 10장 16절과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0:16 An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put his hands on them and blessed them.
조금은
충격적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 다른 이들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축복하셨던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축복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많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축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내가 간구하는 복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가 아닌가 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사실상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처럼 심지어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까지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라는, 복을 받는 그 대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우리는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의 축도를 샤머니즘 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분명히 거절합니다.
담임 목사님의
축도는 효력이 있고, 부목사의 축도는 효력이 약하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기도는 효력이 크고, 부목사의 기도는 효력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기도는 큰 능력이 있지만, 평신도인
나의 기도는 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효력은 기도자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그리고 영혼의 진실함을 가지고 말씀에 따라 기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극단적인 경우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기도나 나의 기도는 단 하나의 차이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역할과 그 질서상의 차이조차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축도가 미신적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리더 격인 목회자만이, 예배 때에 교회 공동체의 리더로서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특별히 구별하여서 공동체를 맡기셨음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다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라고 무분별하게 말하는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만약 제가
병자를 위한 기도를 위해 심방을 간다면, 저는 가능하면 담임 목사님과 함께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기도의 특별한 능력이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상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서 기도할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에 맞춰서 예배 마지막 순서로 축도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목회자만이 축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이든 보통의 성도님이든,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목회자
역시, 보통의 경우에는 보통의 성도님처럼, 다른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기를 담담하게 간구합니다. 자신이 기도한다고 무조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모든 성도님들 역시 그렇게 복을 빌어줄 수 있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의 축도가 아니라면, 보통의 성도님들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포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에서 그런 개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선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마치 자신에게 대단한 영력이 있어서, 내가 하나님 이름으로 복을
선포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며, 그것 역시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샤머니즘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넓은
맥락에서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내가 복을 선포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 그것 자체”가 아니라, “나를 핍박하는 원수에게 조차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이를 위해서조차 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모든
복을 빌어주는 말 속에서, 예수님과 같은 진실한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다른
이를 위해서 복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 안에는, 진정한 겸손이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간구하는 그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어떤
사람이 어떤 복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 때문입니다.
결국 복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당장 그 사람이 내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복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하시며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자녀 됨 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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