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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62) - 예수 예수

 

1. 가사 살펴보기

슬픈 마음 있는 자 몸과 영혼 병든 자
누구든지 부르시오 예수 이름 부르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부르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구원 얻으리 

은과 금 내게 없으나 나 가진 것 너에게 주니
능력의 이름 예수라 그 이름을 붙드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외치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주의 영광 보리라 

예수 예수 오 능력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부르네
예수 예수 오 구원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부르네 예수 그리스도 

우리게 주신 영광의 이름 나 어찌 잠잠하리
세상에 크게 외쳐부르리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2. 곡 소개

곡은, 2010년도에 발매된 CCM 사역자 김도현씨의 샬롬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장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믿을 때에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는 성경적인 진리를 아름답게 드러낸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사도행전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2 Now a man crippled from birth was being carried to the temple gate called Beautiful, where he was put every day to beg from those going into the temple courts.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3 When he saw Peter and John about to enter, he asked them for money. 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3:4 Peter looked straight at him, as did John. Then Peter said, "Look at us!" 3: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5 So the man gave them his attention, expecting to get something from them.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6 Then Peter said,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7 Taking him by the right hand, he helped him up, and instantly the man's feet and ankles became strong.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3:8 He jumped to his feet and began to walk. Then he went with them into the temple courts, walking and jumping, and praising God.. …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3:15 You killed the author of life,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We are witnesses of this.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개역개정)    3:16 By faith in the name of Jesus, this man whom you see and know was made strong. It is Jesus' name and the faith that comes through him that has given this complete healing to him, as you can all see. (NIV)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려는 일에 대해서 자신들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앞세웠고 그분의 이름, 다시 말해서 그분이 누구이신지로 인하여서 구걸하던 사람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사람의 권위와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은 그분의 이름 때문에 성령님께서 행하실 일을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Ac 3:6–7.

15절에서 생명의 라는 것은 생명의 창시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걸하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믿음을 가졌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사역을 들었고 그분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L. Scott Kellum, “Act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149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을 도와주겠다는 수 많은 사람들과 가르침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 찬양은 마치 베드로 사도가 담대하게 선포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인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전능자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이시며 우리의 왕이시며 또한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름을 붙드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힘써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신뢰하면서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의 상황 가운데 여전히 역사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다시 오셔서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매 순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나와 함께 하시며 손을 잡고 이끄시는 예수님을 의식하고 그분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가장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사모하면서 영적인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함과 그분의 탁월함과 아름다움과 그 소중함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넘치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신앙 질문 - 평신도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한 권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성경적으로 틀린 가요? 오직 목사님께 만 한정되어 있는 가요? 제가 듣기로 하나님 자녀로 성령 받은 자에게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해도 된다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성경적 해석으로 이번 기회에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쉬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이에게 복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는 몇 가지 눈 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사에게만 한정되어 있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선포라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위해서 간구할 수 있는가?” 라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 듯 보입니다. 좀 더 복합적인 질문들을 한 번에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보통의 성도님들이 다른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이, 목사들의 기도처럼 소위 말해 파워가 있는 것인가? 바로 그런 특별한 기도는 목사에게만 한정된 것인가? 그리고 평신도인 내가 그렇게 축복을 선포하면, 목회자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이루어 주실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첫째, “축도라는 개념의 축복 기도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도는 보통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 이후에 하는 축도를 의미합니다. 이때의 축복 기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경우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모인 예배의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특별한 경우의 축도는, 그 교회 공동체의 리더인 목사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질서의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실 때에, 목사를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고 섬기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배라는 공동체의 모임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리더인 목회자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특별한 축도의 개념이 아닌 보통의 축복은, 보통의 성도님들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보통의 성도님, 혹은 평신도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모든 성도를 교회 안에서 동일한 존귀한 지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목회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간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저는 선포라는 개념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한글 표현으로 선포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선포하는 내가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누군가에게 누구누구 성도님, 제가 당신에게 복을 선포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에게 어떤 주술적인 느낌을 주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본인은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영적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주게 될 것입니다.

개역 개정 성경 번역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선포라는 단어는 여섯 번 정도 사용됩니다. 누가복음 81, 로마서 14, 로마서 221, 디모데후서 111절과 417, 히브리서 212, 베드로전서 29, 그리고 베드로전서 319절입니다.

성경에서 선포라는 단어의 의미는, “내가 너를 위해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게 하겠다라는 소원의 성취, 다시 말해서 어떤 복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행하는 선포하는 개념은 없습니다. 개역 개정 번역 기준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복음을 널리 알리는 것 혹은 설교를 선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정의가, 선포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포하다(宣布-, declare) 널리 세상에 알리다. 분명하게 드러내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할 ( 1:1; 대상 16:23),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신 일을 선포할 ( 2:12)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선포는 유창한 말솜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요(고전 2:4),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있다( 10:14–15).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06), 526–527.

저는, 누군가에게 복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복을 구하는 상황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구절을 꼭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214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2:14 Bless those who persecute you; bless and do not curse.

이 말씀에서 축복이라는 표현은, 마가복음 1016절과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0:16 An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put his hands on them and blessed them.

조금은 충격적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 다른 이들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축복하셨던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축복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많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축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내가 간구하는 복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가 아닌가 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사실상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처럼 심지어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까지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라는, 복을 받는 그 대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우리는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의 축도를 샤머니즘 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분명히 거절합니다

담임 목사님의 축도는 효력이 있고, 부목사의 축도는 효력이 약하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기도는 효력이 크고, 부목사의 기도는 효력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기도는 큰 능력이 있지만, 평신도인 나의 기도는 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효력은 기도자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그리고 영혼의 진실함을 가지고 말씀에 따라 기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극단적인 경우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기도나 나의 기도는 단 하나의 차이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역할과 그 질서상의 차이조차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축도가 미신적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리더 격인 목회자만이, 예배 때에 교회 공동체의 리더로서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특별히 구별하여서 공동체를 맡기셨음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다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라고 무분별하게 말하는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만약 제가 병자를 위한 기도를 위해 심방을 간다면, 저는 가능하면 담임 목사님과 함께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기도의 특별한 능력이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상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서 기도할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에 맞춰서 예배 마지막 순서로 축도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목회자만이 축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이든 보통의 성도님이든,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목회자 역시, 보통의 경우에는 보통의 성도님처럼, 다른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기를 담담하게 간구합니다. 자신이 기도한다고 무조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모든 성도님들 역시 그렇게 복을 빌어줄 수 있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의 축도가 아니라면, 보통의 성도님들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포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에서 그런 개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선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마치 자신에게 대단한 영력이 있어서, 내가 하나님 이름으로 복을 선포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며, 그것 역시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샤머니즘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넓은 맥락에서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내가 복을 선포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 그것 자체가 아니라, “나를 핍박하는 원수에게 조차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이를 위해서조차 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모든 복을 빌어주는 말 속에서, 예수님과 같은 진실한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다른 이를 위해서 복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 안에는, 진정한 겸손이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간구하는 그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어떤 사람이 어떤 복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 때문입니다.

결국 복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당장 그 사람이 내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복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하시며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자녀 됨 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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