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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6일 금요일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에 빠져들었습니다 of GOSPEL IN LIFE by AntennaPod

저의 청년시절을 돌이켜 보면, 수련회에서 항상 은혜의 정점을 맛보고, 그리고 다시 침체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우리는 보통, 은혜의 정점을 맛보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다시 경험합니다.

그런데 저의 삶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꾸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아마 몇년 동안 집중적으로 NIV 드라마 성경을 듣고 다닌 것이 전환점이 된 듯 합니다. 그때 부터 제가 깨달은 중요한 한가지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주심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말 치열한 은혜를 향한 갈망과 추구가 매일마다 새롭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넓은 바다 앞에서 발만 담그고 살았는데, 이제는 다리까지 이제는 허리까지 은혜의 바다 속에 들어간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은혜를 크게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마음에 고통도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심적인 아픔입니다. 삶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족,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그 사랑에 비할 때에 저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마음과, 어떻게든 그 간격을 좁혀 보고자 하는 열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마치 능력이 부족한데 한계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온 마음을 다해서 부단히 애를 쓰는 그런 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은혜 받은 제가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언어 자체의 신비"입니다. 자음과 모음이 모아져 글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자가 모아져서 결국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함께 하여 논리 구조를 만들어집니다. 글자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어떤 생각과 느낌과, 정확하게 말하면 "저라는 존재 자체"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기록되고 동시에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제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은, "설교의 문단과 문단 사이에 존재하는 논리적인 흐름의 신비" 입니다. 완전히 여기에 빠져있습니다. "신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논리란 무엇일까? 왜 설득적으로 들릴까? 왜 감동적으로 들릴까? 왜 이렇게 흐름이 부드러울까? 왜 여기서는 그렇게 논리를 전개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수 많은 궁금증들 속에서 신비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목회자의 설교의 그 흐름과 연결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그 위대하심을, 살짝 엿보는 기분입니다. 

저는 원래 원래 출퇴근 시간에는 Core Christianity를 항상 들었는데, 탁월한 프로그램입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성도님들의 수 많은 신앙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해주고 상담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ask pastor John 보다 더 대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앙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해드립니다! Core Christianity 팟케스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0/12/core-christianity.html

* Core Christianity의 3주년을 함께 축하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9/core-christianity-3.html

그런데 거의 3년을 듣고 다녔더니 그것의 한계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에 여러가지 질문을 받다 보니, 깊이 있는 답변을 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질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답변이 이제 어느 정도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저의 출퇴근 시간을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토니 에반스 목사님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깔끔하고 탁월한 논리력, 그리고 성도님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성경의 말씀이라는 면에서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그래서 스터디 바이블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분 설교를 먼저 들었습니다. 좋았지만 또 한계가 보였습니다. 매우 보수적인 목사님이시지만 아무래도 개혁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에, 설교 가운데 핵심적인 논리를 펼쳐 나가는데 있어서 어떤 한계점이 보였습니다. 그때 팀켈러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찾아 보았습니다.

원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팟 케스트를 찾아보니 거의 100편의 설교가 무료로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옛날 것부터 들어보니 거의 10년전 설교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Core Christianity 를 구글 팟 케스트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구글 팟 케스트 앱은, 특정 에피소드를 다운로드 받은 이후에 9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가 되더군요. 데이터 사용에 상관 없이 팀켈러 목사님 설교 100편 정도를 모두 셀폰에 넣고 가지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앱을 찾아 보았습니다. 광고가 붙지 않고 깔끔하게 화면을 볼 수 있는 팟케스트 앱을 찾았습니다. 기능면에서도 구글 팟 케스트 앱에 비교했을 때에 뒤쳐지지 않습니다.

* antennapod


안테나팟은 안드로이드 앱에서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설치를 하면 아래의 화면처럼 셀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단의 검색창에다가 Tim Keller라고 검색하면 그 아래의 그림처럼 GOSPEL IN LIFE 에서 제공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편 정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원래도 워낙 설교를 잘하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유명하실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영어가 조금은 더 늘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좀 더 신앙적인 면에서 깊이를 가져서 그런 것일까요? 과거와는 또 비교할 수 없을만큼, 들으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잘하는 설교는 어떤 설교일까요?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설교자가 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이다" 멋있는 설교는 별로 어렵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데 잘하는 설교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상하게 제 마음에 자꾸 그런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분이 설교를 하는 것을 들으면, "아, 저분은 정말 성도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심지어 책망하는 설교라 할지라도 그것이 달콤하게 들립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숨소리"도 은혜롭게 들렸습니다. 제 스스로 놀랐습니다. 아니 숨소리 조차 따뜻하게 들리다니? 이건 거의 사랑에 빠지는 것 아닌가? 뭐랄까요, 꼭 이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해주고 싶을때 나오는 그런 조금은 긴장되지만 기대감에 가득한 의미 있는 숨소리라고 느껴졌습니다. 

사실 설교는, 목회자 한명의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학, 삶, 목회, 인생, 눈물, 기쁨, 고민, 환희 그 모든 것이 그 설교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설교 안에 그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 본문의 단어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장으로 넓혀지고, 문단으로 넓혀지고, 성경 전체로 넓혀지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까지 넓혀져서 품고 설교한다는 것은, 아마도 극소수의 목회자들만 가능한 경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단으로,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조금 더 그리고 삶에서 조금 더 넓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참 좋았습니다. 큰 스승이라고 느꼈습니다. 충분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집중된 원포인트 설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 구조에 딱히 구애 받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원고를 준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어떤 받은 영감 자체를 그대로 말하는 것 처럼 느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필요한 주해에서 부터 시작해서, 성도님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전체에 대한 조망까지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혹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집중력이 좋았습니다. 사실, 보통의 목회자들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분은 적어도 나와는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자들과 당대의 학자들의 논리의 허점들을 지적하면서, 왜 성경이 진리인가, 왜 하나님만이 참된 분이신가를 논증하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논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딱딱한 것인데, 그것조차 굉장히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책으로 읽어보면, D.A. 카슨의 영어는 너무 어렵습니다. 마이클 호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팀 켈러 목사님의 영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내용이나 논지 자체는 복잡하더라도 언어 자체를 쉽게 사용하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더욱 설교가 마음에 와 닿는 듯 합니다. 

단지 다섯편을 들었을 뿐인데도, 배우고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C.S. 루이스가 사용했던 논리들이 설교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저 역시 다시 루이스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성과 무조건성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의 성경적인 이해, 다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 논리를 어느 정도로 펼쳐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어느 정도 예화를 논증적으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등을 단지 다섯편의 설교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정말 이분처럼 설교를 잘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언감생심"이라는 말이 생각 났습니다.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표절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분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면, 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설교는 결국 문단의 구조들로 연결되는 최종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한 문장 한 챕터 정도를 가져와서는 그 감동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전체 설교 한편을 그대로 표절하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신학교 처음 시절은, 마이클 호튼의 논리와 생각들로 제 마음을 채우던 시기입니다. 사실상 호튼의 신학과 논리 구조를 거의 가져다가 설교에 사용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로 제 마음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만큼 배울 수 있을지, 또 얼만큼 그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 과연 그것들이 제 설교에 깊이 있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전혀 현재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방향이 맞다면 전진하는 것만이 제가 좋아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글쎄요, 일단 100편의 설교를 두번 세번 정도 반복해서 듣고 난다면, 뭔가 그때에는 더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일단 2년 정도 들어보면 더 좋은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요? 행복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목표를 저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 동안에, 저에게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이제 신학교로 들어가는 당신에게 / 블로그 글 500을 기념하며

 

블로그 글을 쓴지가 꽤 되었습니다. 대략 10년 정도 된 듯 합니다. 글을 쓰려고 하니 글이 500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쓰다가, 글이 사라지는 곳이 아닌 존재할 수 있는 곳에 삶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구글 블로그가 벌써 500개의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합니다. 

한분의 성도님이, 제 글 중에 하나를 출력해서 여러번 읽었다는 말씀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얼굴이 빨개 졌습니다.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사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을 주는 듯 합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쓴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데 있어서 글을 쓰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탁월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분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글을 쓰는 존재입니다. 

네이버의 로고스 까페에서 한 분의 질문을 보았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늦게 신학을 시작하시고 고민하시는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아서 짧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떤 의미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겠다 싶어서 블로그 500개의 글을 기념하며 저의 블로그에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분야에 논문을 쓰게 되면, 자신이 세상의 모든 분야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글이든지 결국 한정된 주제를 한정된 영역 안에서 다루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지기를 바라고 적어 봅니다. 

처음에 합신을 들어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벌써 15년도 더 된 일입니다. 참 좋았던 것은, 좋은 학교에 좋은 동기들과 교수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진실한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대원 때에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성경에 대한 기본지식과 개요 정도는 가지고 있었고, 나름 다양한 신학 책을 읽은 상태였지만, 실제로 신학교에 들어가서 수업 시간에 따라가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는 심화 과정까지 해야 졸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물을 흘리며 그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신대원 시절 참 어려웠던 것은, 모든 교수님들이 훌륭한 분들이셨지만, 각자 본인의 관점 혹은 전공에서 모든 것들을 강조하셨기 때문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돌이켜봅니다. 예를 들어서 조직 신학 교수님은 조직신학기 없으면 절대로 제대로 된 신학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경 신학 교수님도, 실천신학 교수님도 모두 동일하게 자신의 관점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회를 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 관점에서, 단순히 어떤 한가지 영역만을 가지고 그 분야만을 붙들고서 목회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목회는 종합 예술입니다. 설교, 상담, 심방, 행정, 인간 관계, 사회성 혹은 눈치 등등이 종합된 것입니다. 단순히 한가지 영역에 올인해서만 목회를 잘 할 수는 없는 듯 합니다. 

목회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에 몸을 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신의 노력만 가지고도 안됩니다. 저는 한 사람이 이루었다는 성공 신화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의 컨텍스트가 모두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만 신앙이 좋은 가정에서 자란 저는, 부모님의 많은 지원 속에서 유학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사역을 통해 스스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지만 초반의 유학 기간은 부모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과연 이렇게 환경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는 그래서 제가 공부를 마친 것을 제 자신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곰곰히 돌이켜보니 제가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을, 신대원의 기간을 "신학의 방향을 잡아가는 기간"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향이라는 것은 어떤 관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과 신학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저에게 신대원의 기간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두분이 박영선 목사님과 마이클 호튼입니다. 물론 저는 이 두분이 저의 완벽한 롤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박영선 목사님처럼 탁월하게 설교를 하지 못할 뿐더러, 그분의 설교 스타일이 제가 섬기는 현재의 컨텍스트와도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호튼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호튼의 모든 논리를 한국 교회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분이 참 좋았고 지금도 좋아하는 것은, 그분들의 신학과 성경, 그리고 삶을 읽어내는 그 방향성을 좋아하고 또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이며,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결국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다보면, 하나님의 주권에 더 강조를 둘 것이나 혹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더 강점을 둘 것인가의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른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한 없이 자유롭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자유를 사용하셔서 그분의 뜻을 반드시 이뤄내십니다. 심지어 인간의 구원과 자녀됨은 이미 창세전에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내가 읽는 성경, 모든 신학책,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 개입을 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글의 의미 혹은 삶의 컨텍스트에 노출되는 그 순간 이 모든 관점은 발동되게 됩니다. 그 순간마다 우리는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둘 것인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지인가? 그리고 저는 오랫동안 씨름한 끝에,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더 강조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결론은, 절대로 인간의 열심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하고, 또한 누구보다 성도의 성화에 긍정적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또 도전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주도성과 능동성을 잃어버린 것은, 교회의 큰 아픔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인간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그것이 저를 지금까지 버티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든 부분에 적용됩니다. 제가 말씀을 묵상할 때에, 누군가를 만나서 상담을 할 때에, 교회 안에서 행정을 할 때에, 모든 영역에 이러한 큰 기초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큰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영혼의 무게를 젤 수 있는 저울이 없기 때문에 목회자의 역할은 너무나 버겁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는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신학과 성경과 삶에 대한 일관성입니다. 주권적인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간에 대하여, 나 자신과 성도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일관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오랜 시간 호수를 걸었습니다. 한 손에는 늘 박영선 목사님 그리고 호튼의 책이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읽으면서 묵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신대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들은, 교수님들께 배우고 숙제를 하던 시간을 뛰어넘어, 저라는 목회자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CFNI에서 Worship and Technical Arts 를 공부할 때에도 학장이었던 조나단은 늘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으로 워십을 인도하였습니다. 교육학 Th.M.과 D.Min.을 할 떄에도 제 마음 속에 늘 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포기하지 않는 일하심 그리고 죄인에 대한 그분의 열심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가 어떤 학위 과정에 들어가서 만들어졌다라기 보다는, 이미 신대원 시절에 흔들릴 수 없이 만들어진 신학적인 방향이며 관점이었습니다. 

신학교를 들어가면 공부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카데믹한 책들이 쏟아지고, 그 안에서 씨름하며 암기하며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찬 일입니다.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목회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공부는 끝이 아닙니다. 

좋은 설교를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신학교 때에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던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종종 조직신학 책을 다시 꺼내들고 읽어보곤 합니다. 사실 신학교 다닐 때 보다 학교를 모두 졸업한 지금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저 역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로고스 프로그램은 효율적으로 다양한 책들을 보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방향 혹은 관점" 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흔들릴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합니다. 흔들릴 수 없을만큼 견고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그것을 붙들고 씨름해야 합니다. 영혼에 새겨질 만큼 그 관점이 성경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박영선 목사님도 호튼도 젊은 시절의 그 방향 혹은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젊은 시절의 강의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지금보다 훨씬 힘이 있다는 것이 차이일 뿐, 그 내용적으로는 거의 비슷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더 완숙하게 본인의 신학을 표현하십니다. 

호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튼의 젊은 시절의 책부터 읽은 저의 입장에서, 요즘에 Core Christianity에서 설명하는 그의 신학과 관점은, 젊은 시절 그 표현과 그 방향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더 따뜻해지고 더 여유가 있어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신학교에 지금 들어갔다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포커스는, "당신의 신학과 성경과 삶에 대한 그 방향과 관점을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신학교의 커리큘럼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은, 결국 그 방향과 관점이, 앞으로의 목회의 내용의 사실상의 대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교수님이 추천하는 어떤 신학자의 아카데믹한 네임벨류에 압도되지는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넓고, 탁월한 학자는 너무나 많습니다. 내 교단을 뛰어 넘으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세상의 모든 학자를 다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학자도 사람입니다. 교수님이 추천하는 어떤 학자 한명이 나의 목회를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설교 때에 어떤 학자를 인용한다고 해서 성도님들이 크게 감동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딱딱하게 느끼고 더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동안 눈물로 빚어낸 성경과 신학과 삶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설교와 목회 가운데 녹아져 들어갈 때에, 성도들은 당신을 훌륭한 목회자로, 그리고 성도를 이해하는 목회자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신학은 목회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신학적인 관점과 방향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교단에서 가장 목회를 잘 하시는 혹은 신학적으로 탁월한 분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가급적, 너무 아카데믹한 분보다는, 평신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함께 아파하는 분의 책을 읽고 고민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본인의 목표가 신학교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좀 더 다르겠지만, 적어도 보통의 경우는 보통의 성도님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의 고민과 아픔을, 내가 고민한 성경과 신학 그리고 삶의 방향 속에서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학 공부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어쩌면 삶의 가장 어려운 시간들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목회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저는 이원론을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라는 직업 만큼 성도의 직업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에게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혹시라도 삶에 실패한다고 넘어진다고, 혹은 목회를 계속 할 수 있겠는가 고민이 드시겠지만 포기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고민과 눈물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그 시간까지도 주님의 뜻 안에서 아름답게 만들어가시고 당신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처음에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던 그 시간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기억력이 안 좋은 저에게 있어서도 신대원 시절은 삶의 황금기였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고, 그만큼 너무 행복했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신대원이라는 삶의 가장 소중한 바로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9월 5일 일요일

Core Christianity의 3주년을 함께 축하합니다

 


저는 마이클 호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젊은 시절부터 호튼의 책을 탐독하면서 신학을 다듬어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박영선 목사님이 있다면, 미국에는 마이클 호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주권 중심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과 성도의 삶,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탁월한 두분입니다. 

저는 사실 영어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 그래서 오히려 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누군가의 말과 글을 한번 해석을 거쳐서 듣는 것과, 자신이 직접 그 이야기를 접하고 해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영어를 가까이하고 연습하는 것은 인생의 큰 유익이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살펴보니, 보통의 성도님들을 위한 자료와 프로그램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Core Christianity입니다. 프로그램의 포멧에 대한 간단한 내용은 제가 예전에 쓴 글을 통해 확인하시면 됩니다. 

* 신앙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해드립니다! Core Christianity 팟케스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0/12/core-christianity.html

어제 방송을 들으니, Core Christianity가 3주년이라고 합니다.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세상에,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때에 3개월을 지속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의 단체를 만들고 도네이션을 통해서 운영하면서 주중 매일 방송을 3년동안 완성한다? 이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Core Christianity를 3년동안 지속시키셨습니다. 비록 저는 영어권 성도는 아니지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요즘에는 "복음"을 듣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속상합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제 스스로 흐려졌다는 것을 확인할 때 마음이 한 없이 무너집니다. 

복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언급한다는 것과는 충분히 다른 것입니다. 철저하게 예수님 중심적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나 자신과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일입니다. 성경 하나만 그렇게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성도님들의 쏟아내는 수 많은 질문 속에서 그것을 해낸다는 것은 그것 역시 거의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오랜만에 마이클 호튼이 나와서 본인의 최근 신간 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음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복음은 세상의 이야기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중심으로 나를 살피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복음 중심적인 호튼이 부럽습니다. 저도 호튼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제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켜나가고 싶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오랜만에 호튼이 나오고 나니 산체스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 처음에는 호튼의 제자인 산체스가 메인 진행자가 된다고 했을 때 참 염려를 많이 했는데, 호튼을 버금가는 목회자로 산체스 형제가 세워져가는 것을 보는 것도 너무 기쁜 일입니다. 자신의 제자이지만, 자신의 후임으로 당당하게 세우고 격려해주는 호튼의 리더쉽이 빛이 납니다.

저의 지난 3년 정도를 돌이켜 보니, 대략 150-200개 정도 에피소드를 들은 듯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복음을 새롭게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성도님들의 질문을 듣는 것도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각 타이밍마다 미국 교회 안에서 이슈들을 다루는 것도 너무 유익했습니다. 

가장 큰 유익은, "성도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사실 호튼은 영어가 제 수준에서는 많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라디오 프로그램 포멧에서는 편안하고 쉬운 영어를 씁니다. 그리고 복잡한 신학적인 용어 보다는 보통의 성도님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씁니다. 특히 산체스의 영어를 통해서는 성도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응대하고 그들의 고민을 어떻게 소화해서 지혜롭게 말할 수 있을지를 정말 집중적으로 배웁니다.

Core Christianity가 3주년이 되었다는 것이 마치 저의 일처럼 너무 기쁩니다. :) 앞으로도 이런 귀한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기를 바라고, Core Christianity를 만들어내는 귀한 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계속적으로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부하면서 함께 장로교 목사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데 제 자리에서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신앙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해드립니다! Core Christianity 팟케스트

 


저에게는 목회자로서 확고하게 붙들고 있는 두가지 중요한 습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매일 아침 출근 할 때에 드라마 바이블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퇴근할 때에 Core Christianity 팟케스트를 듣는 것입니다.

대략 2년 정도 전에 마이클 호튼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Core Christianity를 시작하였습니다. 기본적인 포맷은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신앙에 관한 질문들을 받아서, 그것에 대해 간단하게 답을 해주는 포맷입니다. 

비슷한 포맷으로 존 파이퍼 목사님의 Ask Pastor John 이 있습니다. 그런데 존 파이퍼 목사님의 팟케스트는 한동안 듣다가 흥미가 좀 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존 파이퍼 목사님의 질문을 풀어가는 방식이 약간 지루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튼의 팟캐스트도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직신학자가 그저 바른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다만 더 이상 학교를 다니면서 추가적인 공부를 할 형편이 안되는데, 호튼이 나와서 하루에 20분씩 다양한 신앙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준다고 하니 그런 면에서는 큰 기대가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으면서 느낀 것은, 정말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이클 호튼이 존 파이퍼 목사님보다는 젊은 편이라서 질문을 뽑아내고 그것에 대해서 간단하지만 깊이 있게 답하는 것이 굉장히 통찰력이 있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농담도 잘 합니다. 

그리고 Core Christianity라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수호하는 입장에서 진행하지만, 당연히 개혁주의에 입각해서 답을 하기 때문에 내용도 믿을만 합니다. 이런 귀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매일 방송해 준다니 이것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1년 반 정도 팟케스트의 메인 스피커로써 호튼이 역할을 하고 지금은 뒤로 물러선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원래 교수 사역을 위해서 그렇게 한 듯 합니다. 그리고 호튼이 아끼는 제자인 Adriel Sanchez가 메인 스피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Sanchez 목사님은 영어 발음이 빠르고 때로는 한 질문에 너무 시간을 많이 쓴다는 것 빼고는 제 기대를 뛰어넘었습니다. 역시 이런 프로그램 운영자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처음에 호튼이 전면에서 물러서면서 많이 실망했는데, 아무래도 전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팀이 훌륭해서 Sanchez 체제로 바뀌고 나서도 수준 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목회자로서 얻는 가장 큰 유익은, 첫째로,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어떤 질문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애, 이단, 종말, 믿음, 교회 분열, 성경 난제 등 성도님들은 정말 다양한 질문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성실하게 준비해서 답하는 것을 듣는 것은 너무나 큰 유익입니다. 그저 팟케스트를 한번 듣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경험을 자주합니다.

성도님들의 진지한 질문으로 마음이 새로워지니 설교가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단순히 목회자의 일방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의 입장에서 성경을 고민하면서 설교하고 목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저에게 보석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유익은, 목회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Core Christianity의 대답은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깊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어려운 포인트입니다. 교회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신학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평범하면서도 탁월한 대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호튼이 대답하는 스타일과, 산체스 목사님이 대답하는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현재 목회를 하는 분의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답변들이 마음에 굉장히 와 닿습니다. 사변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실제적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참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정말 소중합니다. 혹시 한번도 안 들어 보셨다면 꼭 한번 들어보세요. 홈페이지에서 직접 듣거나, 아니면 보통 쓰는 팟케스트 프로그램에서 Core Christianity로 검색하면 됩니다. 영어가 많이 빠르고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큰 유익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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