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6일 금요일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에 빠져들었습니다 of GOSPEL IN LIFE by AntennaPod

저의 청년시절을 돌이켜 보면, 수련회에서 항상 은혜의 정점을 맛보고, 그리고 다시 침체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우리는 보통, 은혜의 정점을 맛보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다시 경험합니다.

그런데 저의 삶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꾸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아마 몇년 동안 집중적으로 NIV 드라마 성경을 듣고 다닌 것이 전환점이 된 듯 합니다. 그때 부터 제가 깨달은 중요한 한가지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주심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말 치열한 은혜를 향한 갈망과 추구가 매일마다 새롭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넓은 바다 앞에서 발만 담그고 살았는데, 이제는 다리까지 이제는 허리까지 은혜의 바다 속에 들어간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은혜를 크게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마음에 고통도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심적인 아픔입니다. 삶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족,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그 사랑에 비할 때에 저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마음과, 어떻게든 그 간격을 좁혀 보고자 하는 열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마치 능력이 부족한데 한계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온 마음을 다해서 부단히 애를 쓰는 그런 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은혜 받은 제가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언어 자체의 신비"입니다. 자음과 모음이 모아져 글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자가 모아져서 결국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함께 하여 논리 구조를 만들어집니다. 글자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어떤 생각과 느낌과, 정확하게 말하면 "저라는 존재 자체"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기록되고 동시에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제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은, "설교의 문단과 문단 사이에 존재하는 논리적인 흐름의 신비" 입니다. 완전히 여기에 빠져있습니다. "신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논리란 무엇일까? 왜 설득적으로 들릴까? 왜 감동적으로 들릴까? 왜 이렇게 흐름이 부드러울까? 왜 여기서는 그렇게 논리를 전개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수 많은 궁금증들 속에서 신비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목회자의 설교의 그 흐름과 연결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그 위대하심을, 살짝 엿보는 기분입니다. 

저는 원래 원래 출퇴근 시간에는 Core Christianity를 항상 들었는데, 탁월한 프로그램입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성도님들의 수 많은 신앙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해주고 상담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ask pastor John 보다 더 대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앙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해드립니다! Core Christianity 팟케스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0/12/core-christianity.html

* Core Christianity의 3주년을 함께 축하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9/core-christianity-3.html

그런데 거의 3년을 듣고 다녔더니 그것의 한계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에 여러가지 질문을 받다 보니, 깊이 있는 답변을 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질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답변이 이제 어느 정도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저의 출퇴근 시간을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토니 에반스 목사님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깔끔하고 탁월한 논리력, 그리고 성도님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성경의 말씀이라는 면에서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그래서 스터디 바이블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분 설교를 먼저 들었습니다. 좋았지만 또 한계가 보였습니다. 매우 보수적인 목사님이시지만 아무래도 개혁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에, 설교 가운데 핵심적인 논리를 펼쳐 나가는데 있어서 어떤 한계점이 보였습니다. 그때 팀켈러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찾아 보았습니다.

원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팟 케스트를 찾아보니 거의 100편의 설교가 무료로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옛날 것부터 들어보니 거의 10년전 설교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Core Christianity 를 구글 팟 케스트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구글 팟 케스트 앱은, 특정 에피소드를 다운로드 받은 이후에 9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가 되더군요. 데이터 사용에 상관 없이 팀켈러 목사님 설교 100편 정도를 모두 셀폰에 넣고 가지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앱을 찾아 보았습니다. 광고가 붙지 않고 깔끔하게 화면을 볼 수 있는 팟케스트 앱을 찾았습니다. 기능면에서도 구글 팟 케스트 앱에 비교했을 때에 뒤쳐지지 않습니다.

* antennapod


안테나팟은 안드로이드 앱에서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설치를 하면 아래의 화면처럼 셀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단의 검색창에다가 Tim Keller라고 검색하면 그 아래의 그림처럼 GOSPEL IN LIFE 에서 제공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편 정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원래도 워낙 설교를 잘하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유명하실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영어가 조금은 더 늘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좀 더 신앙적인 면에서 깊이를 가져서 그런 것일까요? 과거와는 또 비교할 수 없을만큼, 들으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잘하는 설교는 어떤 설교일까요?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설교자가 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이다" 멋있는 설교는 별로 어렵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데 잘하는 설교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상하게 제 마음에 자꾸 그런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분이 설교를 하는 것을 들으면, "아, 저분은 정말 성도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심지어 책망하는 설교라 할지라도 그것이 달콤하게 들립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숨소리"도 은혜롭게 들렸습니다. 제 스스로 놀랐습니다. 아니 숨소리 조차 따뜻하게 들리다니? 이건 거의 사랑에 빠지는 것 아닌가? 뭐랄까요, 꼭 이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해주고 싶을때 나오는 그런 조금은 긴장되지만 기대감에 가득한 의미 있는 숨소리라고 느껴졌습니다. 

사실 설교는, 목회자 한명의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학, 삶, 목회, 인생, 눈물, 기쁨, 고민, 환희 그 모든 것이 그 설교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설교 안에 그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 본문의 단어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장으로 넓혀지고, 문단으로 넓혀지고, 성경 전체로 넓혀지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까지 넓혀져서 품고 설교한다는 것은, 아마도 극소수의 목회자들만 가능한 경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단으로,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조금 더 그리고 삶에서 조금 더 넓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참 좋았습니다. 큰 스승이라고 느꼈습니다. 충분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집중된 원포인트 설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 구조에 딱히 구애 받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원고를 준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어떤 받은 영감 자체를 그대로 말하는 것 처럼 느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필요한 주해에서 부터 시작해서, 성도님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전체에 대한 조망까지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혹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집중력이 좋았습니다. 사실, 보통의 목회자들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분은 적어도 나와는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자들과 당대의 학자들의 논리의 허점들을 지적하면서, 왜 성경이 진리인가, 왜 하나님만이 참된 분이신가를 논증하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논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딱딱한 것인데, 그것조차 굉장히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책으로 읽어보면, D.A. 카슨의 영어는 너무 어렵습니다. 마이클 호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팀 켈러 목사님의 영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내용이나 논지 자체는 복잡하더라도 언어 자체를 쉽게 사용하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더욱 설교가 마음에 와 닿는 듯 합니다. 

단지 다섯편을 들었을 뿐인데도, 배우고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C.S. 루이스가 사용했던 논리들이 설교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저 역시 다시 루이스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성과 무조건성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의 성경적인 이해, 다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 논리를 어느 정도로 펼쳐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어느 정도 예화를 논증적으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등을 단지 다섯편의 설교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정말 이분처럼 설교를 잘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언감생심"이라는 말이 생각 났습니다.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표절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분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면, 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설교는 결국 문단의 구조들로 연결되는 최종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한 문장 한 챕터 정도를 가져와서는 그 감동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전체 설교 한편을 그대로 표절하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신학교 처음 시절은, 마이클 호튼의 논리와 생각들로 제 마음을 채우던 시기입니다. 사실상 호튼의 신학과 논리 구조를 거의 가져다가 설교에 사용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로 제 마음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만큼 배울 수 있을지, 또 얼만큼 그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 과연 그것들이 제 설교에 깊이 있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전혀 현재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방향이 맞다면 전진하는 것만이 제가 좋아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글쎄요, 일단 100편의 설교를 두번 세번 정도 반복해서 듣고 난다면, 뭔가 그때에는 더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일단 2년 정도 들어보면 더 좋은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요? 행복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목표를 저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 동안에, 저에게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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