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주어진 본문에 따라 설교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저의 설교 본문 가운데 역사하시고 섬세하게 그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처음을 설교하고, 또 에베소서의 마지막을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자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맥락을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마치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영적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함께 하시는 그 맥락 안에서 이 말씀을 이해하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목적을 이룬 것 같습니다.
의외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한 설명은 스터디 바이블들이 굉장히 약한 부분이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이 가장 탁월하게 설명하셨기 때문에 많이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한 부분들과 논리적인 연관 관계들은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의 에베소서 주석을 참조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는 것의 방법으로서 연결 고리를 찾는데에 주석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6:11a Put on the complete armor of God (ἐνδύσασθε τὴν πανοπλίαν τοῦ θεοῦ). Paul now explains how believers are to gain strength and spiritual power from the Lord. In addition to drawing on their present dynamic relationship to the risen Christ, they are also called to appropriate a set of divine gifts and cultivate some important virtues that will assist them in their conflict with the hostile spiritual forces. Paul here introduces an extended set of military metaphors that he epitomizes as the armor of God.
Clinton E. Arnold, Ephesians,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0), 443.
특히 성령의 검과 무기의 사용에 대한 두가지 중요한 해석의 흐름을 참고했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것, 그리고 개인의 삶에 말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그 두가지 입니다.
What, then, is “the word of God” that functions as the sword of the Spirit? There are two main options presented by interpreters. The first stresses the offensive aspect of the warfare by contending that Paul is speaking of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empowered by the dynamic activity of the Holy Spirit. This activity represents a major offensive maneuver against the kingdom of evil. O’Brien points this out well when he says that it refers to “the faithful speaking forth of the gospel in the realm of darkness, so that men and women held by Satan might hear this liberating and life-giving word and be freed from his grasp
The second view highlights the defensive position taken against the persistent and varied attacks of the evil one by explaining it as the relevant application of Scripture to every situation of testing or temptation, much as Jesus did when he was tempted in the desert. This has been an equally popular way of understanding the weapon and is captured well by Eadie: “The Captain of salvation set the example, and once and again, and a third time, did He repel the assault of the prince of darkness by three brief and simple citations from Scripture.”
There is really no compelling reason to be forced to choose between these two options. Both are simultaneously valid in this context. In any warfare situation, there are both offensive and defensive maneuvers that soldiers must perform. All of the armor needs to be seen in both aspects. Believers will assuredly come under attack and need to take a defensive stance, but this will frequently happen in the context of making offensive inroads into the dominion of darkness by sharing the gospel and freeing the captives.
Clinton E. Arnold, Ephesians,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0), 462.
전신 갑주를 다루는 설교이기 때문에, 새벽에 모든 것을 다룰 수도 또 너무 적은 분량을 다룰 수도 없는 아주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부득이 말을 빠르게 하여서 설교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방향으로 잡았는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천천히 의미를 음미하면서 성도님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또 이 설교를 읽고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함께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취하기를 원합니다.
* 에베소서 6장 10-20절 설교
저는 대한민국 공군 병장 출신입니다. 처음에 군대를 들어 갔는데 아주 인상 깊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군대 갓 입대한 이병들을 다 모아서 어디론가 데리고 간 것입니다. 큰 강당에 들어갔는데 가만히 보니 온 벽에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예술 사진이 아니라 전쟁 사진이었습니다. 화학 미사일이 날아와서 사람들이 다친 장면, 피부가 엄청나게 부풀어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 총에 맞아서 다친 사람들의 모습들, 그런 것들이 빼곡하게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강당 안에 들어가서 그 사진을 보는데 정말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가진 시간이 저에게는 매우 특별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깨달은 것입니다. 사회의 평화로움 속에서 살아가다가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록 저는 갓 입대한 이병에 불과했지만, 지금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내가 앞에 두고 준비하는 전쟁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바로 그날 처음으로 가장 생생하게 느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 6장 10-20절에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군사이며 우리는 전쟁 속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0절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를 마무리하면서, 성도들을 향한 그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의 말씀과 명령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성도들이 반드시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들이 강건해져야 하는데, 주님 안에서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힘을 얻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맨 앞으로 돌아가서 보면, 에베소서 1장 19절의 바울의 기도 속에 6장 10절과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라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도들 가운데 그분의 능력을 부으셨고 이미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말씀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성도들 너희가 알아서 힘을 내어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교회로 세우시고 돌보시며 우리에게 이미 능력과 힘을 부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 안에 머무르기를 더욱 힘쓰고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의 풍성한 힘을 얻게 되는가 바로 거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신갑주라는 것은, 온 몸을 단단하게 무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 사도는 지금 말씀 가운데 당시의 대표적인 로마의 군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용맹스럽고 훈련이 잘 된 그리고 전쟁을 위해서 모든 장비를 자신의 몸에다가 갖춘 그런 군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 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영적인 전쟁 속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11절과 12절에 말씀하십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전쟁이 실제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육체와 피를 가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귀와 악한 영적인 세력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는 11절에, “마귀의 간계”라는 부분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간계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속일려고 하는 교묘한 계획입니다. 마귀는 어떤 존재인가? 처음부터 속이는 자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에 대해서 말할 때에 거짓의 아비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어서 아담과 하와에게 사기를 치고 속인 것은 바로 마귀였습니다. 바로 이 악한 마귀과 그에게 속한 세력들과 싸우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신앙 삶이라는 것을 전쟁이라고 여기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삶이라는 것을 일종의 교양이나 혹은 일종의 자기 만족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품위를 더욱 고상하게 만들어 주고, 혹은 자신의 영적인 혹은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교회를 향한 이 중요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성도는 그리고 교회는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것이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1절에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리고 13절에 “전신 갑주를 취하라” 라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군인에게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고 좋은 도구가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사용자가 사용하지 않고 입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영적인 전쟁 속에 놓여져 있으며 이 악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이미 부어진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힘 입고 경험해야 하는데, 거기에 있어서는 우리 성도의 몫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스스로 입어야만 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스스로 취해야만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러한 영적인 전쟁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가 우리의 장비와 무기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옷을 갈아입고 로마 군사처럼 무장해도 소용이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사도가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유라는 것은 어떤 것을 빗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 군사의 전신갑주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어떤 전신갑주를 가져야 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평소에는 헐렁하게 내려오는 옷을 입었는데 당연히 이것은 거추장스러웠습니다. 특별히 고대의 전투는 육탄전이었기 때문에 느슨한 옷을 단단히 벨트로 동여 매야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느슨해 질 때에 하나님의 진리로 우리를 단단하게 묶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혹은 이 진리라는 것을, 진실함 혹은 신실함이라고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전쟁에 참여할 때에는 게으름이나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성실하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서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의의 흉배입니다. 흉배라는 것은 가슴을 보호하는 넓은 판인데 금속이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흉배가 굉장히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심장과 장기들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왜 이것이 비유로써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사단이 오래된 자신의 무기로 우리를 공격할 때에 우리를 거짓으로 비난하고 정죄할 때에, 예수님의 의의 흉배로 우리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흉배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의로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단의 공격을 능히 이겨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우리가 꾸준하게 의롭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멀쩡하게 살아가던 많은 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집사님들이 평소의 악한 행실이 갑자기 드러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도의 삶에서 의로움을 잃어버릴 때에 큰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의로움이라는 것이 당연히 예수님처럼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 사람은 참 의로운 사람이다 라는 그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구별 될 수 있도록 의롭게 살기 위해서 마땅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해 나갈 때에 영적인 전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무기는 복음의 신입니다. 로마의 병사들은 신을 신을 때에 적의 공격에도 넘어지지 않고 땅에 든든히 서기 위해서 신발에 돌기 같은 것이 달려 있는 그런 특별한 전투용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복음의 신" 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한 평화를 이루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언제 가장 심하게 넘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구원에 대해서 의심이 들 때입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정말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집니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면서 우리에게 파괴적인 죄책감을 덮어 씌우며,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던져주고, 우리를 영적으로 얽어매려고 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기억해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고 바로 그 때에 넘어지지 않고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다른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15절에서 말씀하실 때에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준비된 복음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세력에 대한 가장 큰 방어 혹은 공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우리는 사탄의 왕국을 대적하는 것이다 라는 그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믿음의 방패입니다. 여기서 헬라어로 방패라는 것은 우리 몸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큰 방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불화살을 쏘는 목적은 병사를 죽이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불화살을 쏘아서 병사들이 불에 휩싸일 때에 그 사람이 공포와 혼란 속에서 대열을 이탈하고 그 대열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다른 이들도 공황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 그것이 불화살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6절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대적이 유혹과 불신이라는 불화살을 우리에게 쏠 때에, 우리는 혼란과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분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유혹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와 여전히 함께 계심을 믿고, 또 그분이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능히 영적인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17절에 말씀하시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헬멧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항상 사람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전쟁 중에 머리를 다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치명적인 공격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무엇으로 공격하는가? 성도에게 의심과 낙심을 끊임없이 쏟아 부어서 우리가 가진 구원에 대한 확신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이 확실한 것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것이라도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24절에 말씀하십니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에베소서에서 처음부터 강조하신 것입니다.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신 그분의 계획과 능력에 따라서 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영적인 전쟁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능력 안에서 싸우는 것이라고 우리를 격려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달린 것 아니라, 친히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우리를 결정적으로 보호해주는 단단한 투구의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검이라는 것은 병사에게 있어서 유일한 공격의 무기입니다. 여기서 검이라는 것은 크지 않은 양날 검을 의미하는데 로마 군인의 전쟁에서 가장 필수적인 무기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이 검으로 적과 몸으로 부딪쳐 싸우면서 아주 날카롭게 적을 찌르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왜 말씀이 검이며 공격 무기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에 맞서 싸우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 없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마귀를 향해서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 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면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기록한 바울 사도는, 성경이야 말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라는 것은 세상의 다른 그 어떤 책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이며 그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마귀를 직접적으로 대적하며 마귀의 거짓과 사기에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마귀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됨으로써 악의 세력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침투해 들어가고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적과 같은 전쟁의 승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고 선포할 때에 그 말씀을 영적인 공격무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적절한 말씀을 사용하면서 영적으로 어둡고 낙심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여기 모인 우리가 말씀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지속하고 있는 90일 성경 통독도 좋고 저 같은 경우는 드라마 바이블을 매일 듣고 다닙니다. 우리가 항상 말씀을 옆에 놓고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말씀으로만 사단을 공격하고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근본적으로 거짓말로 우리를 속입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사단을 대적함으로써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놀랍게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쟁에 임하는 전신 갑주에 바로 이어서 기도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기도가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있기 위해서 기도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항상 힘쓰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기도는 “모든 기도이며 항상 기도”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의 삶 가운데 방심하거나 하찮게 여길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맡기면서 영적인 세력에 대항하면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도의 신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비록 육체의 눈을 감는 것이지만 오히려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도라는 것은, 고상한 종교 생활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을 좌지우지하는 영적 전쟁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영적인 전쟁을 잘 치를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일깨워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깊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기도를 해야 하는데 누구를 위해서 해야 하는가? 여러 성도를 위해서 구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하는 중요한 사실은, 영적 전쟁이라는 것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서 말씀의 전체 맥락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 공동체는 마땅히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속한 순과 그리고 선교회가 서로를 위한 중보 기도의 최고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들을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할 때에,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믿음의 공동체로 함께 전진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기를 원합니다. 오늘 성도님들의 마음에는 어떤 내용이 마음에 깊이 남으셨습니까? 우리는 영적인 군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사단의 세력에 대항하여서 맞서 싸우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기를 원합니다. 진리와 의와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말씀으로 우리를 단단히 무장하기를 원합니다. 또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영적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서 주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당당하게 싸워나가시는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기도 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주님 능력으로 붙들어주시고 주님 의지하여서 영적인 전쟁에 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취하는 깨어 있는 성도 되게 하시고 사단의 거짓과 유혹과 두려움과 불신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저에게 힘을 더하시며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홀로 있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지체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깨어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전진하며 승리하는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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