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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9일 목요일

'구약으로 예수님을 만나다' 설교 시리즈의 모세오경을 마치며 / My Father's Heart - Rachael Lampa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새로운 시리즈를 도전하다

평생 무엇인가 도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보자면 마음이 있을 때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작년 한 해 뉴시티 교리문답을 마치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어떤 것이 교회를 위해서 가장 유익할까? 다음 설교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부임 이후에 대부분 신약을 설교했기 때문에 구약을 설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구속사적으로 구약을 계속 설교하고 함께 배워 나간다면, 그것이 제 자신에게도 그리고 성도님들에게도 유익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구약으로 예수님을 만나다' 시리즈

처음에는 개관을 중심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설교를 하면서 느낀 것은, 개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인 맥락을 다루어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성경 개관과 강해 설교,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본문 해석의 그 어딘가에 위치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의 분량을 설교하느냐가 참 고민이었습니다. 대략 10장에서 15장 정도를 다루었습니다. 한 번에 인물 한 사람을 다룬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결국 그 모든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 참고한 자료들

기본 참고자료는 세 권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어 성경이 읽어지내'를 기반으로 제가 혼자 준비했던 자료를 계속 참고하면서 개관의 성향을 더했습니다. 

* 바이블키 
https://www.logos.com/product/145913/baibeul-ki-seonggyeongdaehag-seteu

* Grace and Truth Study Bible Notes
https://www.logos.com/product/209779/grace-and-truth-study-bible-notes

* ESV Gospel Transformation Study Bible: Notes
https://www.logos.com/product/43199/esv-gospel-transformation-study-bible-notes

바이블키는 구약의 키와 신약의 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성경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간단한 장별 내용과 해석을 설명하는 탁월한 자료입니다. 어 성경이 읽어지내와는 결이 다르지만, 평신도의 입장에서 성경을 공부하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자료가 있는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Grace and Truth Study Bible은 본문의 의미를 단락별로 탁월하게 설명합니다. 본문의 의미를 탁월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관점 자체가 그리스도 중심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설교에 사용할 수 있는 설명도 상당히 많이 발견했습니다. 

ESV Gospel Transformation Study Bible은 제가 가장 신뢰하는 자료입니다. 평신도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목회자 입장에서도 이것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드러내는 자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에 설교해야 하는 부분을 빠르게 스캔하고, 중요한 부분을 정리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 자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처럼, 자료가 전부는 아닙니다.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좋은 자료가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자 자신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제 자신조차 이런 시리즈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팀켈러 목사님의 경우 대부분의 설교의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모든 본문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도 이렇게까지 해 준 설교자가 없었지만 저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그 자체이시고 성경에서 계시하는 바라면, 알레고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문을 보고 해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준비한 것입니다. 


* 그간의 모든 경험과 통찰을 시리즈에 녹여내다

힘들었지만 좋았던 것은, 평소에 고민하던 성경에 대한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정체성, 구약과 신약의 연결 등등을 집중적으로 시도하고 풀어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경을 큰 그림 속에서 훑어 가면서 본문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설교 안에는 모든 것이 녹아들어갔습니다. 결국 이 강해 설교의 목적은, 성도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 전체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적인 경험들, 성도님들과의 대화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들은 성경에 대한 오해와 고민들, 그리고 제 자신 역시 성도로서 힘들던 부분들과 성경에 대한 이해들, 이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중심의 강해 가운데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 설교자 자신이 더욱 변화되다

그리고 설교를 하면 할수록, 모든 내용이 저의 내면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교는 단순히 조직신학의 내용을 강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혹은 성경 신학의 내용을 풀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설교는 너무나 중요하고 무게 있는 인간의 인생을 다루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설교에는 당연히 신학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설교를 조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학문을 뛰어넘어 인생을 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자신도 설교를 하면서 내면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딱딱하고 추상적인 신학을 넘어서, 저의 삶에도 연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있는 말씀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에 대한 경험이야말로, 이렇게 거대한 설교 시리즈를 힘겹게 그리고 정성으로 준비하며 얻은 가장 큰 유익입니다. 


* 모세오경을 마치다

그리고 어느덧 모세오경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마무리하는 데 마음이 벅찼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백성을 의탁하는 모세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긍정이 아니라, 성도의 삶의 어둡고 밝은 면을 함께 조명하시는 말씀의 지혜가 좋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인생의 고난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끝나는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모세처럼 너무나 탁월한 리더도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같은 죄인을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벅찼습니다. 신명기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나가면서, 저는 참으로 행복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주 한 주가 쉽지 않았는데, 벌써 모세오경을 마쳤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결과이고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주님의 귀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고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기를

지금 정도의 속도라면 올해 안에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설교를 준비하는 저도 그리고 성도님들께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구약 안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성경을 보는 지혜가 더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자신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참된 믿음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8월 7일 월요일

제자 훈련, 기독교의 생존 방식 3장,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학문적인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3장에서 구약의 처음부터 신약까지 연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분의 설명처럼 "천국"이라는 번역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며 나 역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실상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 있다.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다스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만 집중해도 사실상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 막연한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상관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희미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변질시켰다. 

김형국 목사님의 글을 처음 접할 때에는, 마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십자가 복음을 대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번 3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주제 "위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다 라는 설명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 십자가이다. 이 두가지 중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고 녹여낸 탁월한 설명이다.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사실 창세기로 부터 등장하는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좋았다. 나 역시 설교 가운데 창세기를 자주 인용한다. 보통의 접근처럼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그것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인간의 패역과 반역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분명한 목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분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이며 헌신이 아니라는 표현이 좋았다.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라고 덧붙이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면 "가치 투자"이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추구하는 목표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결국 김형국 목사님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 이다. 본인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면 그저 개인주의 영성에 치우칠 뿐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회 참여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 3장에서는, 성경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임을 생각하였다. 목회적으로는 모든 설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의 강조",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이 두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이 아주 공교하게 엮어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마치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한동안 곤란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의 한 없는 은혜와 그 은혜 가운데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책임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평생의 우리의 삶의 목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번 챕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2023년 8월 6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43) - 블레싱 (The Blessing)

 


1. 가사 살펴보기

주 네게 복 주사 주 너를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네
그 얼굴 비추사 평안주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의 은혜 너의 위에 천 대까지 흘러가리
너의 가정 너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까지

주의 임재 앞서가며 지키시고 동행하리
둘러싸고 채우시며 주가 너와 함께하리

아침에도 저녁에도 너의 모든 출입에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주님 너를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위하시네

 

2. 곡 소개

곡은, 미국의 대표적인 찬양 사역자인 Kari Jobe 의 곡이며, 한국에서는 아가파오를 비롯한 다양한 찬양팀에서 번역해서 불렀다. 이 곡은, 민수기와 신명기의 축복의 말씀을 바탕으로, 주의 백성을 돌보시고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이 얼마나 놀랍고 풍성하며 또 감격적인 것인지를 고백하는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신명기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5:9 You shall not bow down to them or worship them; for I, the LORD your God, am a jealous God, punishing the children for the sin of the father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of those who hate me,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5:10 but showing love to a thousand generations of those who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5:1–21 Deuteronomy 5–26 contains the laws that Israel was to keep in the land they were about to enter. The Ten Commandments stand at the beginning of all other laws, and at the beginning of the Ten Commandments we read,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slavery” (5:6). 신명기 5-26장은 이스라엘이 들어가려는 땅에서 지켜야 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다른 유럽의 시작이고, 십계명의 시작은 나는 너를 애굽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하나님 여호와라 말씀입니다.

Law follows grace. God saved Israel before he gave them his law to follow. God rescued Israel not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 law but because of his promise to Abraham, Isaac, and Jacob (Ex. 3:15–16). Israel’s deliverance was therefore not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 law but because God saw their affliction and cared enough to deliver them from their suffering to an abundant life (Ex. 3:7–8). This truth provides the context in which to read the whole of Deuteronomy 5–26. Indeed, this gospel rhythm provides the context in which we carry out our obedience to God. Law follows grace. We obey from, not for, God’s favor. 율법이 은혜를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따라야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이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을 보시고 그들을 고통의 삶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으로 이끌어내실 만큼 그들을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신명기 5-26 전체를 읽을 있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복음의 리듬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율법은 은혜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Mark D. Futato, “Deuteronomy”,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226–227.

신명기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1 If you fully obey the LORD your God and carefully follow all his commands I give you today, the LORD your God will set you high above all the nations on earth.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2 All these blessings will come upon you and accompany you if you obey the LORD your God: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3 You will be blessed in the city and blessed in the country.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4 The fruit of your womb will be blessed, and the crops of your land and the young of your livestock--the calves of your herds and the lambs of your flocks.

The problem is that we do not abide by all the things written in God’s law. Left to ourselves, the result can only be curse rather than blessing (Gal. 3:10). But Christ obeyed for us (Rom. 5:19) and bore the curse for us (Gal. 3:13), so that we might receive these blessings through our faith and not by our obedience (Gal. 3:14). Those who are free from the obligation to keep the law in order to merit the promised blessings (Gal. 5:1) do not use that freedom to sin (Gal. 5:13) but rather to serve in love (Gal. 5:14). As we do, we can expect to receive more of the covenant blessings in this life even as we anticipate experiencing the fullness of those blessings in the life to come…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남겨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직 저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순종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믿음으로 축복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은, 자유를 죄를 짓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섬기는데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때에, 내세에서 그러한 축복의 충만함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면서, 땅의 삶에서 많은 언약의 축복들을 받을 것을 기대할 있습니다.

Mark D. Futato, “Deuteronomy”,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252–253.

민수기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4 "'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5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26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 and give you peace." '

The ultimate expression of God’s desire to bless us is found in the giving of his Son to bear the curse of God’s wrath upon our sin (Gal. 3:13–14). In reconciling us with God and bringing us near to him, Jesus himself is our peace (Eph. 2:14–22).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의 궁극적인 표현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담당하도록 그의 아들을 주신 것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그에게 가까지 게가 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L. Michael Morales, “Number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7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찬양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순종이 아니라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분의 언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마땅히 지킬 것을 요구하시지만, 그것은 그들이 두려움 속에서 무서워하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랑에 응답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자 하는 그 풍성한 사랑은, 궁극적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복이며, 예수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단순히 이 세상의 물질의 복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성도는 심지어 수 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늘의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감격을 누린다. 성도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순종하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죄와 실패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성도는 그저 감사함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믿음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 순종은 마땅한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고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순종을 추구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한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복된 길이 된다. 주님께서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은혜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며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을 마땅히 가르쳐야 함을 보여주신다. 이 찬양을 통해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주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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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1일 토요일

팀 켈러에게 배우다 (8) - The Final Temple /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함

 



보통 글을 쓰기전에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최소 다섯번 정도 듣습니다. 처음 그리고 두번째 정도까지는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정도 이상부터는 꽤 많은 부분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내용의 전체적인 구조를 대략 알게 됩니다. 

그런데 안 들리는 부분은 끝까지 안들립니다. 대부분 특정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고, 그리고 문장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듣고 고민한 다음에 설교 원고를 읽으면서 공부합니다. 

원고를 읽으면서 눈이 밝아집니다. 아..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제야 온전히 보이는 환상적인 논리 전개와 방향 전환, 매력적인 표현들과 논리적이며 감성적인 조화는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속이 꽉 차 있습니다. 말이 상당히 빠른데 최소 35분 정도 이상의 설교이기 때문에, 조금 과장하자면 그 안에 무한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한편을 진득하게 제대로 공부하기만 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설교는 완전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설교입니다. 

최근에 저의 설교의 변화는, 좀 더 충실하게 내용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다더라의 방향이 아니라, 그것이 설교에 있어서 정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의 표현과 논리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라는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팀켈러 목사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분의 표현들이 저의 마음을 너무나 새롭게 하고 또 기쁘게 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가지의 양립되는 속성들, 예를 들어서 완전한 높으심과 완전한 접근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라는 연속되는 표현은, 마음에 감동을 주면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특별히 이번 설교는, 장엄한 성경 신학을 배운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보통 설교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설교하면 혹시 근거 없는 알레고리식 설교가 아닐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보수적이고 성경 중심적인 설교를 배운 저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팀캘러 목사님이 비유나 상징을 풀어내는 방식과 범위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그분이 그렇게 한다면,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는 room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이 참 된 하나님의 성전이었는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거기로 다시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염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죄의 댓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절대로 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방법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에덴 동산의 화염검을 그렇게 많이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창세기부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댓가를 치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정은, 요한계시록 5장 6절에서 "slaughtered Labm"에서 드러납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창세기의 그 하나님의 검과 연결지어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검으로 도살당하셨다고 연결합니다. 개역개정은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라고 표현하지만, 원어적으로는 도살된 것을 의미합니다. NASB는 "as if slai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잔인하게 찢기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공부하면서 마음에 감사가, 그리고 또 한 없는 은혜가 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하여 그리고 죄인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을 드리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히 찢어지셨고 그리하여 모든 죄의 댓가를 다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영광스러운 왕으로 또 죽임 당하신 어린 양으로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더욱 살아하고 갈망하고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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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 수요일

듣는 자 (The Listener) / 마태복음 17장 1-13절 주일 설교

 

* 마태복음 17장 1-13절 설교 

저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헤아릴 없을 만큼 많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서 예배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저의 교회에서 번째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는 무엇인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교회 자체는 2 동안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목사님과 같은 성도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특별한 집회가 있는 날도 아니었고 평범한 주일의 11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만큼은 예배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저의 영혼을 압도하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뭔가 저의 영혼을 감싸는 어떤 영적인 힘을 느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있는 저의 무릎이 모아지면서 겸손하게 되는 그런 영적인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후로 예배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모든 예배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특별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질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의 명의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영적인 체험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늘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과 각별한 관계 속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날 이들에게 어디론가 가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말씀에서 "데리시고" 라는 부분은 헬라어 문법으로 현재 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지금 예수님이 그들을 이끌고 가시는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서 제자들을 산으로 이끌고 가시는 것일까? 제자들은 너무나 궁금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산을 한참을 올라갔어 그리고 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안정을 취하려고 때에 그들의 평생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태양과 같았고 그분의 옷이 빛나는 하얀 색으로 변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감히 예수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몸에서 놀라운 광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 때에"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헬라어 로는 감탄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보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해처럼 밝게 빛나시는 바로 자리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거의 BC 1500 경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민족의 지도자이고 십계명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누구인가? 그는 BC 860 경의 사람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을 떠나 극도로 타락했을 때에 우상의 선지자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왕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으로 꾸짖었던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금 제자들의 앞에서 일어난 일은 시공간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놀라운 광경 앞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 말씀입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부분입니다.

한번 베드로와 제자들의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들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나타났다니 바로 자리보다 행복한 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함께 자리에 계속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함께 여기에 머무르겠습니다 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드로가 말하던 바로 때에 다른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5 말씀에서 "홀연히" 라는 것도 앞에서와 동일하게 "보라"라는 감탄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5 말씀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름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했던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구름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 말씀에 보니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는" 이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가 있고 예수님이 가장 아끼시는 세명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중에서 예수님만 특별히 지칭하시면서 예수님이야 말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무나 기뻐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산에서 내려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로마 제국을 뒤엎을 정치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놀랍게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을 때에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10 말씀입니다.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여쭤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산에서 엘리야를 보았기 때문에 말라기 4 5절을 떠올린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이미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어려운 시대에 담대하게 사역했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담대하게 사역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그분의 백성에게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결국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 핍박과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며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첫번째 적용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 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험 속에서 뭔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간 예수님께서는 원래 자신이 가지신 영광의 일부분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지만, 동시에  모든 능력과 권세와 그분의 본질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동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역시 절대자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신의 영광을 조금 드러내시자 그분 자신이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영광을 제자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어디에 감탄했는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에 감탄을 것입니다. 이들은 초막을 셋을 짓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조상이자 신앙의 위대한 영웅들에게 감탄하면서 예수님과 그들을 동급으로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사람의 위대함이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누구는 어떤 위대한 사역을 했다고 하더라 어디에서는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 이렇게 말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오늘 말씀과 동일한 음성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동일한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한결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주인공은 누구이신가? 그분은 모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가 바로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여정 자체가 구약의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6 그러나 이제 그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제사 제도를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 인간 제사장과 동물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동물에게 자신의 죄를 넘기고 동물을 대신 죽임으로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을 드리는 제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신 자기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본질은 태양처럼 빛나고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감히 인간이 측량할 없는 존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혹한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성부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죄의 댓가를 요구하시는 의로우신 성부 하나님을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비롯하여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 전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순종할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순종을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로마서 5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9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같이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요구를 완벽하게 순종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완전히 의롭다고 하나님 앞에 인정 받은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의 전환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8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떨며 엎드렸다가 다시 그들이 눈을 들어 보았을 때에는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던 유일한 ,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바라고 갈망하시던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만이 그들 앞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은, 예수님 이외에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는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자리에 있을 있는 것인가? 죄인이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입히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있게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나의 모든 잘못들이 마음을 짓누르고 괴롭게 때에 어떻게 감히 우리가 위로를 얻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있는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시며 우리의 주인과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인도자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확인하는 것인가? 우리가 바라고 갈망하고 마음에 원하고 사랑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넷바이블이라는 영어 성경은 2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Keeping our eyes fixed on Jesus”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고 우리의 눈을 오직 예수님께 고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제자들의 눈에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셨던 처럼 이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눈은 오직 예수님만께만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 그리고 모든 감각이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이 사랑 그분의 은혜, 그것이 우리를 압도하여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독점적인 위대하심과 그분의 영원한 가치를 확인하고 발견하고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로 변화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새로워져서 가장 존귀하신 예수님만 더욱 사랑하게 되는 복된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적용하면서 두번째 적용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 라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시는 편입니까?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만난 커플입니다. 저는 제가 스물네살 아내가 스무살때 처음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청년부 새내기였지만 저는 이미 청년부 안에서 최고 리더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이가 차이도 아닌데 그때에는 저도 모르게 아내가 많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던 같습니다.

아내가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어느날 좋은 음악회 표를 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주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공연이다 그러니 옷은 세미 정장 이상은 입어야 한다 세종 문화 회관에 몇시까지 와라 좋은 자리에 좋은 표니까 준비해 와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마음이 너무 교만한 상태라서 아내의 이야기가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세미 정장을 입고 오라고 했지만 답답한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행하던 제가 제일 좋아하던 짙은 파란색 잠바와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렇게 입고 집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서 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을 열고 세종 문화회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제가 한눈에 봐도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말한 처럼 대부분 세미 정장 혹은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애써 당황한 마음을 감추면서 아내 손을 잡고 함께 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저를 끌고 가는데 넓은 에서 자꾸 앞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저의 자리가 앞에서 거의 두번째 중앙 자리였습니다. 아내가 우리 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저에게 좌석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겠지만 교만한 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어쩔줄 몰라하며 의자에 최대한 몸을 파묻고서는 연주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가 무대 왼쪽에서부터 등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들어오면서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마도 파란색 잠바가 눈에 띄었던 같습니다

정명훈 씨가 걸어들어오면서 저와 눈이 마주친 것은 대략 5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인생의 가장 길고 민망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되어서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는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의 말씀에서 하이라이트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5절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영어 성경들은 listen to him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말할 있겠습니다. 단순히 사람으로 부터 나온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내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교회를 때에 염려하는 것이 있는데,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의 특별함을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단순히 성경에 있는 자체를 지키는 , 다시 말해서 마치 좋은 책을 읽고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정도로 생각하는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말씀하시고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라는 것과 9절의 말씀이 중요한 연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씀은 평범한 말씀이 아닙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 개개인은 분리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와의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하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하나됨에 대해서 영적인 연합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중요한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나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가 나와 떨어질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의 등을 만져주시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며 지금 우리와 하나가 되시며 우리를 품으시며 안으시며 우리는 그분 안에 있으며 세상에 누구도 감히 이루지 못한 가장 내밀한 관계를 지금 우리에게 만들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너무나 유명해진 대사가 있습니다. “ 안에 있다 속에 너가 있다 라는 대사입니다. 사랑의 극치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대사의 깊이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 그분의 형상에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인간이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당신이 안에 있다 라고 말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성경적인 대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를 우리와 만드시고 그러므로 이제는 관계 안에서 너희는 나의 말을 들으라 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이번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있는 예레미야 31 33절이 새롭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이제 신약의 시대가 열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변할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며 예언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33 그러나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으로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진리이시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제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놀라운 신비이며 감격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마태복음 16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제자라는 호칭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태는 계속해서그들이이라는 표현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다시 제자라는 말이 등장하는가? 오늘 5절에 말씀에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그리고 나서 6절에 드디어 다시 제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누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인가? 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들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안에 계시며 그분과 하나된 사람들, 존귀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울여 듣는 사람들, 예수님으로 인해 마음이 변화되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바로 사람들이야 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다 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확신하고 계십니까? 저는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겁게 느껴지는 " 바로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 가장 변화인 같습니다.

어렸을 부터 들었던 말씀이지만 말씀이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것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절대자인 신의 음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하며 존귀하며 결코 쇠하지 않는 무게와 영광을 지닌 것입니다. 말씀이 너무나 무거워서 너무나 소중해서 너무나 진중해서 그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의 생활을 사로잡고 나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저의 예배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말씀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무게를 놀랍게 새롭게 경험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맞춘 사람,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자만이 그분의 말씀의 무게와 영광을 경험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석과 같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나의 전부가 되시며 나를 품으시며 안으시는 바로 그분의 안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며 갈망할 때에 그제서야 참된 제자인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친히 이끌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이셨고 제자들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성도의 구원도 그리고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든 힘과 능력과 이유도 우리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영적인 임재와 능력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이 오직 그분께만 집중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시며 더욱 가까이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워지고 진중하고 무거워지는 영적인 깊이와 경지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을 내가 기꺼이 듣겠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깊은 영적인 고백으로 평생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원합니다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의로움이시며 능력이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갈망하며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복된 성도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오직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안에 살아계신 주님의 존귀한 말씀이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기 원합니다, 영원한 주의 말씀이 저에게 있어 가장 무거운 것이 되며 저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주의 자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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