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왔나요
주님께 돌아가기엔 사랑의 주님 그
품을 떠나 내 영혼 잃어버린 지금 너무 늦은 건가요
내 영혼 회복 하기엔 수 많은 죄악 속에
갇혀서 주님을 잃어버린 지금
하지만 내 영혼
주님 기다려요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을 내 모습 이대로
주께 돌아가요 나의 손을 잡아
주소서
다시 주님의 얼굴
내 영혼 볼 수 있도록 나를 구원 하소서 다시 주의 임재
가운데 내 영혼 살 수 있도록
2. 곡 소개
이 곡은, 고형원 선교사님의 곡이다. 이 곡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주님 앞에 나가기를 주저하는 성도의 아픈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주님을 찾는 회개의 깊은 고백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엘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2:12 'Even now,' declares the LORD,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with fasting and weeping and mourning.'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2:13 Rend your heart and not
your garments. Return to the LORD your God, for he is gracious and
compassionate,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e, and he relents from sending
calamity. 2: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2:14 Who knows?
He may turn and have pity and leave behind a blessing--grain offerings and
drink offerings for the LORD your God.
로마서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개역개정) 2:4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forbea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is intended to lead
you to repentance? (NIV)
Joel 2:12–13 provides occasion to reflect on the nature
of evangelical repentance. As the Hebrew word “turn” implies, repentance
involves a reversal of direction, demanding a new way of thinking and living. 요엘2장12-13절은복음적인회개의본질에대해서숙고할수있는기회를줍니다. “돌아서다”라는히브리어단어가암시하는것처럼, 회개는방향을바꾸는것을포함하는것이고, 새로운사고방식과새로운생활방식을요구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251.
2:12–17 Once
again, in light of the coming of the day of the Lord, the call is to repent.
Joel says “return” to the Lord (vv. 12–13). The Hebrew word means “turn.” True
repentance is not only sorrow that we sinned against the Lord but a
determination to change direction in our lives—turning from the sin to God, in
love and dependence. You can tell that you have truly repented if you are
determined to turn your back on sin and walk with the Lord in loving obedience,
through the power he provides. 주의날이다가오기때문에, 회개하라고선지가가외칩니다. 요엘은여호와께“돌아오라” 라고말합니다. 히브리어단어는“돌리다”라는것을의미합니다. 참된회개는, 우리가주님께죄를지은것에대한슬픔일뿐만아니라, 죄로부터우리의삶의방향을바꾸어하나님을사랑하고의존하며돌이키겠다는결심입니다.
Our
motive for heartfelt “returning” to the Lord is his own character: “gracious
and merciful,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v. 13; quoting
Ex. 34:6). The apostle Paul will later echo these truths, saying, “God’s
kindness is meant to lead you to repentance” (Rom. 2:4). 하나님께돌이키고자하는마음에서부터의진실한동기는, 그분자신의성품입니다. 그분은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더디하시고, 인자가많은분이십니다. 사도바울은나중에이진리를되풀이할것입니다. 로마서2장4절에서, “하나님의인자하심이너를인도하여회개하게하신다” 라고말씀합니다.
Timothy Z. Witmer, “Joel,”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167–116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경적인 회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드러내고 있다. 성경적인 회개는 먼저,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죄인이 깊이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주님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과의 관계의 진실한 회복을 통해서 영혼이 회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기본적인
우리의 영적인 태도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 마치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것처럼, 죄인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피하면, 우리의 영혼이 점점 마르며 영적인 괴로움을 경험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주님과 너무나 멀어졌다”라는 것을 느낄 때라도, 기꺼이 주님 앞에 마음을 돌이킬 수 있고
반드시 그러해야만 한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도록
친히 인도하시며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해야겠다고 마음에 결심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자신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마음과 삶을 돌이키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임재 가운데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또한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슬픈 생각과 낙심한 감정,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조차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깊은 감격의 찬양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파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나 비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감사보다는 고통과 비참함이 가득한 것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인정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때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인생의 때”에 대한 가장 유명한 본문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물론 설교할 것이 기대가 된 것도 있지만 긴장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난 주처럼 차가 도로에 서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의 저의 때는,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도로에서 떨면서 주님께 기도하도록 하신 때입니다. 그리고 또 오늘은, 무사히 설교단에 서게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보다는 저의 내면이 참 강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연약해진 듯 합니다. 마음에 갈등과 낙심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번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전도서 설교는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주님을 향한 참된 믿음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본문을 보면서도 어떤 스터디 바이블들은 한 없이 비관적이고, 또 어떤 책들은 매우 긍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망적이고 또 영적인 소망들을 담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들이 비슷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보지 않던 Defenders’ Study Bible의 내용이 은혜롭고 참 좋았습니다. 모든 성경 구절에 대한 설명이 있지는 않지만, 내용이 참으로 충실하고 또 은혜롭습니다.
Ecclesiastes 3:1
a time to every purpose. In Ecclesiastes 3:2–8 of this chapter there is a
remarkable listing of twenty-eight “times,” arranged in fourteen pairs of
opposites (e.g.,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Every timed event has a “purpose” (Ecclesiastes 3:1) and every
thing is “beautiful” in God’s time for it (Ecclesiastes 3:11). Even when in our time,
we may not understand how a particular event can be either purposeful or
beautiful, we can have faith that, in God’s time, it is (Romans 8:28).
Although it is beyond our finite comprehension, it is still bound to be true
that the infinite God “worketh all things after the counsel of His own will” (Ephesians 1:11).
Welwyn Commentary 전도서 주석은 사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주석을 찾아보니 이미 가지고 있더군요. 다만 John Currid의 주석을 좋아하는데 내용이 굉장히 탄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1절에 대한 이해부터 자신 있게 논지를 펴 나갈 수 있었습니다.
The opening line of this verse
literally reads, ‘To everything there is an appointed time.’ Some translations render ‘appointed time’ as ‘season,’ and that certainly is a proper
translation of the word. However, it often is better translated as a reference
to a set, fixed time. For example, Ezra tells the people of Judah to come to
Jerusalem as follows: ‘Let all in our cities who have taken foreign wives come at
appointed times’ (Ezra 10:14). Also, Nehemiah says that he established the work
of the priests and Levites in Jerusalem and that he ‘provided for the wood offering
at appointed times’ (Nehemiah 13:31). The Hebrew word in those cases is not
referring to some generic time or season, but to definite times. Thus, it is
likely that the proposition of the verse in front of us simply means that for
everything that happens there is a set, fixed, and appointed time.
11절과 12절에대한이해는, 최근에들었던팀켈러목사님의로마서설교에먼저영향을받았습니다. 영원을사모하는마음은모든이들이일반은총의관점에서는가진것이지만, 그러나그리스도안에서참된하나님의자녀의특징으로더깊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2절에말씀처럼, 참으로기뻐할수있는사람은오직그리스도안에있는자만이그러할수있다고논리를전개했습니다. 이부분은어떤주석의도움을받지않고제안에서묵상한내용을풀어낸것입니다.
14절과 15절은시간관계상거의언급하지않았습니다. 특별히 15절은해석의관점이상당히복잡하게얽히고있어서, 새벽에간단히설명하기는무리라고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4절에대한과학적이해는다음에언젠가이본문으로설교하게된다면충분히주목할만한부분이었습니다.
Ecclesiastes 3:14
shall be for ever. In addition to emphasizing
the immutability of God and His works, this passage anticipates the great
scientific principle of conservation (conservation of energy, mass, momentum,
charge, etc.). Nothing is now being either created or annihilated. An entity
may be changed in character and even deteriorate in quality, but it must be
conserved in quantity.
저도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시고 저의 미래를 이끌어가십니다. 비록 제 눈에는 많은 부분이 답답하고 아쉽고 때론 슬프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과 은혜와 기쁨을 누립니다. 제가 설교한 그 내용에 제 자신이 먼저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은혜를 누리며,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 전도서 3장 1-15절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궁금증을 다루고 있는 본문입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궁금증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예를 들어서, 내 사업은 언제 성공하게 될 것인가? 내 자녀는 언제 결혼하게 될 것인가? 이 고난의 시간은 언제 지날 것인가? 이런 궁금증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러한 "언제"라는 궁금증에 대한 중요한 답변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범사에" 라는 표현입니다. 범사라는 것은 모든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모든 질문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2절부터 8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어떤 규칙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다양한 경우의 처음과 끝을 포함해서 8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개의 상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28개의 특정한 시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4와 28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7의 배수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 안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점은 분명한 것입니다. 2절에서 8절까지는 1절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때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아무 목적 없이 아무런 방향 없이 우연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혹은 세상 안에 속해 있는 어떤 존재가 그 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그 정확한 때를 정하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보면 이 말씀은 굉장히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에 내용을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면 그거 일 좀 해봐야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렇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10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행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행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결정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쪽을 항상 바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보다는 당연히 생명을 원하고 전쟁보다는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우는 것 보다는 당연히 웃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누가 깨닫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는 내용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식과 본능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본능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사람까지라도 이런 영원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 영적인 아주 기초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이 영적인 놀라운 진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8장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놀라운 고백,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12절과 13절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말씀의 겉모습만 보면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바라고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 폴리캅 감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폴리캅이 박해 가운데 잡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부르고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협박 당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욕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회유 당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내게 절대로 해를 입히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의 왕이요 나의 구주이신 그분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불에 태워서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타다가 잠시 후면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경건치 못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지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속히 시행하시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안면에는 은혜가 충만했다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