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파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나 비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감사보다는 고통과 비참함이 가득한 것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인정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때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인생의 때”에 대한 가장 유명한 본문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물론 설교할 것이 기대가 된 것도 있지만 긴장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난 주처럼 차가 도로에 서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의 저의 때는,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도로에서 떨면서 주님께 기도하도록 하신 때입니다. 그리고 또 오늘은, 무사히 설교단에 서게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보다는 저의 내면이 참 강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연약해진 듯 합니다. 마음에 갈등과 낙심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번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전도서 설교는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주님을 향한 참된 믿음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본문을 보면서도 어떤 스터디 바이블들은 한 없이 비관적이고, 또 어떤 책들은 매우 긍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망적이고 또 영적인 소망들을 담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들이 비슷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보지 않던 Defenders’ Study Bible의 내용이 은혜롭고 참 좋았습니다. 모든 성경 구절에 대한 설명이 있지는 않지만, 내용이 참으로 충실하고 또 은혜롭습니다.
Ecclesiastes 3:1
a time to every purpose. In Ecclesiastes 3:2–8 of this chapter there is a
remarkable listing of twenty-eight “times,” arranged in fourteen pairs of
opposites (e.g.,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Every timed event has a “purpose” (Ecclesiastes 3:1) and every
thing is “beautiful” in God’s time for it (Ecclesiastes 3:11). Even when in our time,
we may not understand how a particular event can be either purposeful or
beautiful, we can have faith that, in God’s time, it is (Romans 8:28).
Although it is beyond our finite comprehension, it is still bound to be true
that the infinite God “worketh all things after the counsel of His own will” (Ephesians 1:11).
Henry M. Morris, The Defender’s Study Bible (WORDsearch, 2012), 전 3:1.
Welwyn Commentary 전도서 주석은 사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주석을 찾아보니 이미 가지고 있더군요. 다만 John Currid의 주석을 좋아하는데 내용이 굉장히 탄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1절에 대한 이해부터 자신 있게 논지를 펴 나갈 수 있었습니다.
The opening line of this verse
literally reads, ‘To everything there is an appointed time.’ Some translations render ‘appointed time’ as ‘season,’ and that certainly is a proper
translation of the word. However, it often is better translated as a reference
to a set, fixed time. For example, Ezra tells the people of Judah to come to
Jerusalem as follows: ‘Let all in our cities who have taken foreign wives come at
appointed times’ (Ezra 10:14). Also, Nehemiah says that he established the work
of the priests and Levites in Jerusalem and that he ‘provided for the wood offering
at appointed times’ (Nehemiah 13:31). The Hebrew word in those cases is not
referring to some generic time or season, but to definite times. Thus, it is
likely that the proposition of the verse in front of us simply means that for
everything that happens there is a set, fixed, and appointed time.
John D. Currid, Ecclesiastes: A Quest for Meaning: Ecclesiastes
Simply Explained, Welwyn Commentary Series (Welwyn
Garden City, UK: EP Books, 2016), 50
11절과 12절에 대한 이해는, 최근에 들었던 팀켈러 목사님의 로마서 설교에 먼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모든 이들이 일반 은총의 관점에서는 가진 것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말씀처럼,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그러할 수 있다고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떤 주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안에서 묵상한 내용을 풀어낸 것입니다.
14절과 15절은 시간 관계상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15절은 해석의 관점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 있어서, 새벽에 간단히 설명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절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다음에 언젠가 이 본문으로 설교하게 된다면 충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Ecclesiastes 3:14
shall be for ever. In addition to emphasizing
the immutability of God and His works, this passage anticipates the great
scientific principle of conservation (conservation of energy, mass, momentum,
charge, etc.). Nothing is now being either created or annihilated. An entity
may be changed in character and even deteriorate in quality, but it must be
conserved in quantity.
Henry M. Morris, The Defender’s Study Bible (WORDsearch, 2012), 전 3:14.
저도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시고 저의 미래를 이끌어가십니다. 비록 제 눈에는 많은 부분이 답답하고 아쉽고 때론 슬프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과 은혜와 기쁨을 누립니다. 제가 설교한 그 내용에 제 자신이 먼저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은혜를 누리며,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 전도서 3장 1-15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궁금증을 다루고 있는 본문입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궁금증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예를 들어서, 내 사업은 언제 성공하게 될 것인가? 내 자녀는 언제 결혼하게 될 것인가? 이 고난의 시간은 언제 지날 것인가? 이런 궁금증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러한 "언제"라는 궁금증에 대한 중요한 답변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범사에" 라는 표현입니다. 범사라는 것은 모든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모든 질문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범사가 일어나는 그 때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기한이 있다 때가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가지 표현은 모두 비슷한 표현인데, 막연한 때가 아니라 특정한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삶의 일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특정한 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2절부터 8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어떤 규칙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극단의 경우를 다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태어난다면 반드시 죽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의 전체가 이 말씀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식물이 심을 때가 있다면 이유는, 모르지만 잘 자라다가 갑자기 뽑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의 생명의 시작과 끝이 이 말씀 안에 들어가 있는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다양한 경우의 처음과 끝을 포함해서 8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개의 상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28개의 특정한 시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4와 28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7의 배수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 안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점은 분명한 것입니다. 2절에서 8절까지는 1절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때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아무 목적 없이 아무런 방향 없이 우연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혹은 세상 안에 속해 있는 어떤 존재가 그 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그 정확한 때를 정하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보면 이 말씀은 굉장히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에 내용을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면 그거 일 좀 해봐야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렇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수고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아무리 일을 열심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10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행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행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결정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의 내용만 우리가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울한 느낌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삶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내 삶을 살아가도록 허락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삶의 모든 때를 내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내 사업의 성공, 고난이 지나가는 것, 자녀의 결혼 등은 내가 내가 마음대로 그 때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음이 낙심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쪽을 항상 바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보다는 당연히 생명을 원하고 전쟁보다는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우는 것 보다는 당연히 웃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라운 신비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지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눈에 보기에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허락하셨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그것을 아름답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차원을 넘어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인간의 눈으로는 때론 좌절하고 때론 슬픈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일하시는 그 전부를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에 감추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통하여서, 우리가 경험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도록, 가장 선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그렇게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누가 깨닫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는 내용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식과 본능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본능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사람까지라도 이런 영원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 영적인 아주 기초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이 영적인 놀라운 진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8장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놀라운 고백,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 고백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들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그분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영적인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그것을 굳게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함께 얻는 그분의 자녀로 우리를 삼아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거의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은 역사 가운데 증명된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성령님을 통하여 그 놀라운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아름답게 변화시키시고, 마지막에는 결국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아버지께서 만들어내실 것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12절과 13절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말씀의 겉모습만 보면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바라고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원하지 않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깊이 깨닫는 자들이 그분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은 어떻게 살게 되는가? 오히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설령 어떤 일의 때가 우리가 기대한 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계속 꼬이면서 해결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웃음이 아니라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그 모든 상황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 안에서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부분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뻐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선을 행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일한 열매를 통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주목할 것은, 성경은 한편으로는 삶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뛰어 넘는 절대적인 긍정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때는 절대로 우리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어떤 특정한 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 여전히 성경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우리의 영역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열매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크기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월 만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월 천불을 벌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며, 하나님 안에서 오늘을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는데, 두가지 정도 떠오르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최근에 두번째 읽고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나치 수용소에 잡혀 들어가서 죽음의 위기를 겪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정신과 의사로서 자기 자신과 수용소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가 바로 그것에 대해서 깊이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을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지닌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뿐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적어도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 준 사람들도 있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외적인 만족과 행복이 차단된 상태가 된다 하더라도, 오늘 성경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내가 바라는 어떤 좋은 것도 이루어 지지 않는 때라 하더라도, 인간은 얼마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 선택이라는 것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을 붙들고 삶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 폴리캅 감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폴리캅이 박해 가운데 잡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부르고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협박 당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욕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회유 당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내게 절대로 해를 입히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의 왕이요 나의 구주이신 그분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불에 태워서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타다가 잠시 후면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경건치 못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지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속히 시행하시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안면에는 은혜가 충만했다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모든 인간이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자신의 죽음이라는 바로 그 기한에 다다랐을 때에 어떻게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저는 빅터 프랭클의 책과 폴리캅의 순교의 내용을 보면서 오늘 말씀에 꼭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불행과 어려움과 부정적인 일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런 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숭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성도는 어떤 존재인가? 여호와 하나님의 그 사랑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의 그 은혜가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마치 오늘 전도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완성하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기뻐하며 감사하며 명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또 온 우주를 그분의 모든 깊으신 뜻 가운데 다스리시는 여호와 앞에서 두려워하며, 그분을 높이며 그분을 참되게 이해하고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모든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과 그분의 사랑 안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닥쳐올 때에 잠시 낙심할 수는 있겠지만 다시 한번 믿음으로 주님 앞에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실 여호와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지는 놀라운 사랑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속에서 여호와께 기쁨과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들을 오늘 하루 동안 행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삶의 소중한 것들을 감사하시며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로서 명예롭고 아름다운 태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와 평생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주님의 뜻대로 다스리시며 모든 것의 기한과 때를 정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장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며 경외하며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으신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고난 중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삶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여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믿음의 성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복된 성도 복된 교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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