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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6) - 주가 주되심을


1. 가사 살펴보기

내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 사용하셔서
주님만이 주 되심을 나타내소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시고
주 이름만 높이게 하소서 

완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로
선하신 주 의지하여 살게 하소서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주의 자녀로
주 이름만 따르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유일하신 이름
그 위대하심 찬양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자로
주가 주되심을 나 선포하리라

 

2. 곡 소개

이 곡은, 마스커워십 2023 주가 주되심을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찬양은, 성도의 삶을 통해서 오직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나며, 주님의 구별된 자녀로 거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소원을 담은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출애굽기 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평범한 목자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20)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도구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이후 재앙과 출애굽 사건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14–115.

출애굽기 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장엄한 승리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전에 여러가지 재 앙을 일으킬 때 사용되었던 그 지팡이가 이제는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갈 수 있는 골짜기를 열었고, 그 골짜기에서 이집트 군대는 수장되었습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Ex 14:16.

요한복음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시편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145: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한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다. 모세는 목자였기 때문에 원래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보잘것없는 지팡이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러한 성경의 스토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우리의 재능과 경험과 노력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용하시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불러내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도록 명령하신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해야 하며,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성도의 진정한 삶의 목적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감격과, 나를 기꺼이 사용하신다는 기쁨이 넘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맥락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마음껏 드러내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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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6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5) - 눈을 들어 주를 보라


1. 가사 살펴보기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주는 빛 거룩과 진리 능력의
주의 영광 나타나셨네 

선포하라 선하신 주 주의 인자는 영원함이라
선포하라 선하신 주 주의 인자는 영원함이라

 

2. 곡 소개

곡은, 현대적인 워십 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Chris BowaterSee His Glory의 번안곡이다. 이 곡은, 성도의 평생 동안에 추구해야 할 영적인 태도를 알려준다. 우리에게 이미 드러내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과, 영원한 주님의 인자를 선포할 것을 권면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6: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히브리어에서 반복은 최상급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중요함과 무게감을 내포합니다. 땅의 모든 영광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아닌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178.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호나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예표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251.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영광을 묘사하는 것이며 출애굽기 34 6절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과 병행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진 선하심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은혜로운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며, 진실함은 신실한 말씀, 즉 진리를 뜻합니다.

D. A. Carson, “The Gospels and Acts,”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892.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거울에 비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들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종교 개혁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유익, (1) 칭의와 (2) 변화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는 말씀은, 변화가 점진적인 성화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신자들의 삶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74.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성도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평생의 태도를 그려낸 곡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오직 주님만이 위대하신 분이심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분의 뜻대로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늘 묵상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전히 보여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신약의 관점에서 이 곡을 이해하자면, 주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에, 우리는 후렴의 가사처럼 그리고 고린도후서 3장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주님의 인자의 영원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감격하게 된다. 모든 죄인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 가운데 비추심으로 죄인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주목하고, 그것을 묵상하고 붙들 때에,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전히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한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나의 삶을 통해서 오직 주님만이 영광 받으시기를,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닮아가기로 더욱 결단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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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97) - 그래도

 


1. 가사 살펴보기

네가 나를 떠나가도
그래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으며
네가 나를 버려도
그래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며
네가 지은 죄 많으나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하리라 

네가 천하고 미련하나
그래도 나는 너를 받으리라
네가 천하고 미련하나 나는 너를 받으리라

 

2. 곡 소개

곡은 CCM 가수 박종호씨의 9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죄인을 구원하시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 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강렬하고도 탁월하게 그려낸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03:12 as far as the east is from the west, so far has he removed our transgressions from us. 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03:13 As a father has compassion on his children, so the LORD has compassion on those who fear him;

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43:25 “I, eve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remembers your sins no more.

주님만이 죄의 죄책을 용서할 권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신 후에는, 그 사람에 대한 그분의 태도와 대우는 더 이상 그 사람의 죄책과 처벌을 받을 만한 자격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005.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1 It was just before the Passover Festival. Jesus knew that the hour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디모데후서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 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2:13 if we are faithless, he remains faithful, for he cannot disown himself.

비록 우리가 인내하고 신실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지만, 궁극적으로 구원은 우리의 신실하심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실함에 달려 있음을 확증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과,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향한 그분의 변함 없는 구속의 목적에 뿌리 박고 있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172.

히브리서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12 For I will forgive their wickedness and will remember their sins no more. (NIV)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우리의 이성이나 도덕적인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잘 드러내는 찬양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1:1로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은혜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우리를 선택하셨으며,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 심지어 우리가 그분을 떠나 있을 때조차 그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끝까지 붙드신다.

왜 그런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분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주신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우리를 기꺼이 용서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그러한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감격하여 그분께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성탄의 계절 가운데 우리의 수준과 생각을 뛰어넘어 우리를 붙드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붙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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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5일 일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18) - 모든 것 되시는 예수 /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 되시어

 


1. 가사 살펴보기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 되시어
늘 바른길로 오직 한길로 인도 하시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 되시어
가르치시며 서로 나누라 말씀 하시네
우리 모두 다 주 찬양 사랑 나누며
크고 작은 만물들아 다 주께 찬양해 

모든 것 되신 그 이름
영광과 찬송 
주님께 모두 모두 드리리
놀라운 예수 그 이름 
영광과 찬송 주님께 모두 모두 드리리
모두 모두 드리리 주께 드리리


2. 곡 소개

곡은 옹기장이 찬양 선교단의 3집 앨범, “주만 섬기리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진리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곡이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 되시며, 기꺼이 모든 영광과 성도의 삶 전체를 받으실 존귀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14:6 the way. Thomas’s confusion about Jesus’ destination and route at His departure prompts another “I am” announcement from Jesus. He is going to the Father (v. 12), and He is the only “road” by which anyone may approach God (Matt. 11:27; Heb. 10:19–22).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을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있는 유일한 되십니다.

except through me. This is a strong affirmation that Christ alone is the way of salvation. To imagine and proclaim other ways is to mislead people and forget the necessity of His coming and redemption (Acts 4:12; Rom. 10:14, 15; 1 John 5:12).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강하게 확언하는 진술입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을 상상하거나 선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땅에 오심과 구속의 필요성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885. 

요한1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3:16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3:16–18 Christ’s example shows that real love involves self-sacrifice. We do this by becoming truly concerned about the needs of other Christians and by unselfishly giving time, effort, prayer, possessions, and even our lives to supply those needs.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은, 진정한 사랑은 자기 희생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다른 크리스천의 필요에 대해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이타적으로 시간, 노력, 기도, 재산, 심지어 우리 생명까지라도 주는 것을 통해 이루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요일 3:16–18.

히브리서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3:15 Through Jesus, therefore, let us continually offer to God a sacrifice of praise--the fruit of lips that confess his name.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3:16 And do not forget to do good and to share with others, for with such sacrifices God is pleased.

13:15, 16 Although the Old Testament sacrifices are now obsolete (8:13), believers are to offer spiritual sacrifices, which include their praise, their possessions, and even their lives (see Rom. 12:1, 2). 비록 구약의 제사는 낡아지고 쇠하여지는 것이지만, 신자들은 그들의 찬양, 그들의 재산,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생명까지도 포함하여 영적인 제사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3:15–16.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개역개정) 11:36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the glory forever! Amen. (NIV)

11:36 God is the source, means, and end of all things. He is the Creator, Sustainer, and the goal of everything. Therefore He should be praised and glorified forever.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요, 수단이시며, 목적이십니다. 그는 창조주이시며, 유지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의 목적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영원히 찬양과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1:3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삶의 진정한 길, 목적, 그리고 방향에 대하여 탁월하게 노래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유일한 길이 되신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 사함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다. 비록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가 아니지만, 주님은 오직 주님 자신의 은혜에 근거하여서 죄인을 기꺼이 사랑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를 혹은 믿지 않는 자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사랑스럽거나 멋지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먼저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을 보이시고 그렇게 행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풍성한 찬양, 그리고 우리의 시간, 노력, 물질 더 나아가서 우리의 생명까지 주면서,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희생적인 사랑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자신을 죄인을 위하여 내어 주셨고, 지금 현재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그분의 구원을 이루시고, 마지막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가심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통해서 모든 것을 능력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주님께 우리의 삶 전부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그러한 진실한 믿음과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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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17) - 나를 통하여

 


1. 가사 살펴보기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높임을 받으소서
내가 밟는 땅 주님의 땅이니
하늘이 주의 이름 높이 올리며 넓은 바다가 주를 노래해
모든 만물 주를 경배해 모든 입술 주를 찬양해
천지를 만드신 만물의 통치자 높임을 받으소서

내 평생의 주의 이름 높이며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을 예배 하리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아버지의 영광이 선포 되야 하리
찬양하며 주님을 예배할 때 하늘 가득한 주의 영광 보리라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인하여 주의 이름 높임을 받으소서

 

2. 곡 소개

곡은, “도우시는 분 성령이라는 앨범에 수록된 이권희님의 곡이다. 특히 이 곡은, 일본 선교 중에 얻은 확신과 경험을 바탕으로 녹여낸 곡이다.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나를 통하여서 역사하시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웅장한 찬양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4:1 Of David. A psalm.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24:1 the Lord’s. God’s name is the first word of the psalm in Hebrew, placing the emphasis on him: he is the one—not anyone else (like another god)—who owns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everything in it. Everything that exists in the created world, living and non-living (50:12; 89:11). Paul quotes this verse in 1 Cor 10:26 to explain that since God owns everything, all foods may be enjoyed without qualms. 히브리어에는, 이 시편의 첫 단어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놓음으로 그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신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라는 것은,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창조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01.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0:31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10:31 do all to the glory of God. The exercise of rights and liberties is never more important than God’s glory. If God’s glory is at stake even in eating and drinking, then Christians do well to factor God’s glory into everything they do.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먹고 마시는 것에서 조차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여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59.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7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The nurse, the teacher, the architect, the musician—all should do what they do as an expression of their love for God and in the name of Christ. Each person should approach his discipline, whatever it may be, understanding that it leads not just to a job, but to a life through which God is glorified and humanity is benefited. 간호사, 교사, 건축가, 음악가 등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표현으로 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훈련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훈련이 단지 직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인류에게 유익을 주는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David S. Dockery and Gregory Alan Thornbury, Shaping a Christian Worldview: The Foundation of Christian Higher Education (Nashville, TN: B&H Academic, 200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탁월함은, 지금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잘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마치 어떤 특별한 순간에만 혹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며 이 찬양이 고백하는 것처럼,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인 생각으로의 전환은, 우리의 마음에 초월적인 견고함, 안정감 그리고 희망을 준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순탄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함께하시며 도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낙심할 만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힘과 동기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순간에 모든 곳에서, “성도의 살아가는 삶의 목적하나님의 영광이다. 나의 삶의 최 우선 순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분이 높아지시며, 그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에, 나의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그분을 드러낼 때에,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감사와 감격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넉넉하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그런 삶을 소망하고 믿음의 한걸음을 담대하게 걸어가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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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9일 금요일

새로운 사람이여,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아가라 / 에베소서 4장 17-24절 설교

 

도입 부분에 사용한 예화는, 아마도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나왔던 내용을 살짝 각색한 것입니다. 편지는 한번에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신서도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설교 본문을 나누어서 설교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그러나 맥락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매일 아침 성경을 듣지만, 그래도 에베소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자신이 가장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칫하면 마치 우리의 행위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이 이해되기 쉽지만, 맥락 속에서는 바울 사도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 그리고 그것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성도에 대한 각성과 촉구입니다.

요즘에 일반 은총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타락한 자들에 대한 묘사와 일반 은총을 조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마음으로 억지로 억누르는 인간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릴 뿐입니다.

주석을 보면, 많은 문법적인 구조와 논리적인 해석이 등장합니다. 목회자인 저도 마치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별히 심령의 새로움 이라는 것은 논쟁적인 부분입니다. 저는 설교 가운데 신학적인 논쟁을 두드러지게 넣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회자인 제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신학자 다수의 의견은 아니지만, 아래 내용을 통해서 설교의 방향을 잡고 부드럽게 설명을 넣었습니다. 저자의 설명과 에베소서 전체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설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majority of English translations (and many commentators) have taken the spirit (τῷ πνεύματι) as a reference to the human spirit. This is a plausible interpretation because Paul speaks of the human spirit on many occasions (e.g., Rom 1:9; 8:16; 12:11; 1 Cor 5:3; 7:34; 14:15; 2 Cor 2:13; Col 2:5). Although nowhere else does Paul speak of the human spirit being renewed, conceivably he could do so. A number of factors, however, lead us to conclude that Paul is here referring to the Holy Spirit, who is the operative influence in renewing the minds of believers.

(1) Paul never refers to the human spirit in Ephesians; every reference is to the Holy Spirit. In fact, the theme of the work of the Spirit is a major motif in this letter, occurring thirteen times.

(2) Some of the statements about the Spirit earlier in the letter point toward seeing the operation of the Spirit here. In the prayer of 1:17, Paul prays that the Spirit will bring to them wisdom and revelation in knowing Christ better (an activity of the mind). In the prayer of 3:16, he asks the Father to strengthen them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their inner selves (which would include the mind).

(3) The only other time this precise combination of the dative article with the “Spirit” (τῷ πνεύματι) occurs is in 1:13, where it clearly refers to the Holy Spirit (“you were sealed with the Holy Spirit”).

Clinton E. Arnold, Ephesians,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0), 288–289.

본문에 대한 대부분의 주석은, 정체성의 문제를 다룹니다. 저는 물론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실제의 성도님들의 삶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내면을 살펴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바꾸면서 마음에 닿게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 성경적인 확신과 자유로움이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음성을 높이지 않아도 내용이 마음에 깊이 닿고, 이분이 정말 확신 가운데 설교한다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요즘에는 조금 차분하게 천천히 설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음성이 높아집니다. 자신이 흥분할 것이 아니라, 들으시는 성도님들이 은혜 받으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이번 설교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방인과 성도의 내면과 외면의 연결의 구조를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였지만, 안에서 깊이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프렌시스 쉐퍼는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고 확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일반 심리학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마치 그런 사람인 처럼 행동하면 생각까지 바뀐다고 설명합니다.

아직 역시 고민중입니다. 저의 지식과 안목이 넓혀져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라는ㄱ ㅓㅅ은 내면에서 시작해서 외면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저의 역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에베소서 4 17-24 설교

혹시 성도님들께서는 학창 시절에 연애 편지를 쓰셨거나 받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일입니다. 내가 연애 편지를 받았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서 편지지를 꺼내 보는 것입니다. 편지지가 무려 다섯 장이 넘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그리고 첫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이미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한번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늦었는데 어떻게 해야될까요? 나머지 장을 한꺼번에 읽어야할까요? 아니면 그냥 잠자리에 들어야 할까요? 이건 물어보는 자체가 민망한 상황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한명도 연애편지를 한장만 읽고 잠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누구 누구에게 라는 시작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번에 읽어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치 연애편지를 읽는 처럼 에베소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시간과 공간과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의 구원의 역사가 저의 마음 깊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구절들이 새롭게 마음에 닿았지만 내용들을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예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크신 능력을 넘치게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의 가르침이 우리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든지 담대하게 나아갈 있으며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마땅히 함께 힘을 더하고 서로 도우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4장의 앞부분에서는 성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면 이제는 성도가 아닌 사람들을 등장시키면서 대조를 하시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의 전형적인 어떤 모습을 염두에 두고 계신 같습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걸어가고 있는 공통의 방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분명한데, 먼저 사람들은 허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열심히 살기는 열심히 사는데 삶이 곳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진정한 참된 방향과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은 그들의 총명이 다시 말해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과 힘이 어두워졌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이방인들 중에도 남들이 감탄할 만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한계는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어두움 때문에 그들의 판단과 생각과 선택들이 악한 영향 아래 놓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진정한 생명에서부터 완전히 떠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면 마치 로마서 1장의 말씀이 연결되는 같습니다. 이방인들은 결코 핑계를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은 무지하여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고 말할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영원한 능력이 만물 속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방인들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께서는 이방인들에 대해서 묘사할 때에 단순히 그들의 마음에 대해서만 묘사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하나님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어두워진 마음은 그들의 행동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감각 없는 자라는 것은 감각이 없는, 냉담한, 무정한, 태연한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해서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마음이 굳어지고 어두워진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차갑고 냉정하고 죄를 지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그런 악한 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방인들이 죄를 지을 때에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 짓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절에서 자신을 방탕에 방임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죄에 넘겨주는 것입니다. 죄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죄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주목할 것은 욕심으로 행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욕심 혹은 탐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끊임 없이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다. 끊임 없이 어떤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코 만족할 없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도 이렇게 앞에서는 이방인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셨다면, 이제 바울 사도는 우리 성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20절에오직이라고 번역된 단어는그러나라고도 번역될 있는 단어입니다. 앞에 등장한 이방인들과 뒤에 등장하는 성도들을 분명하게 대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울 사도께서 이방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처음에 먼저 이방인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이어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설명하신 처럼 성도들에게도 있어서 동일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 우리 마음 가운데 이미 들어와 있는 지식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1절에 보니 우리가 예수님으로 부터 듣고 예수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이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능력의 복음입니다.

주목할 표현은 20 말씀에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아주 독특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울 때에 사람 자체를 배우기 보다는 어떤 율법이나 규례를 배우는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는 그분과 영적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절대로 분리될 없고 우리가 그분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운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2절부터 24절까지는 성도가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분명히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도 여전히 어려움과 유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계해야 것이 바로 완전 주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마치 성인군자처럼 저절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상 아무런 죄의 유혹도 없고 완전해 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탐욕의 욕심이 여전히 우리 안에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예전의 모습이 약해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벗어버리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습관과 살아가던 방식을 면밀히 살피고 그것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더욱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삶의 방향을 명령하십니다.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심령이라는 것은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영혼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풀어서 이해할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밀마암아 마음과 영혼이 새롭게 되어라 라고 이해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의 다스림을 간구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24 말씀을 보니, 하나님을 따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러하신 처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새로운 정체성과 삶의 패턴을 가지고 연습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사람을 입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닿으셨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성도의 삶이라는 것이 생각과 태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먼저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이방인들의 생각과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허망해졌는가 그리고 얼마나 그들이 어두워졌는가 그것을 먼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은 허망하고 어두워진 마음을 가지고 마음 때문에 방탕함에 자기 자신을 내어 주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내면과 외면의 연결이라는 것은 성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단순히 성도의 내면이 중요하다 혹은 단순히 외면이 중요하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성도의 내면은 전쟁 중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분명히 사람의 영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내면에서 여전히 육신의 탐욕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성도는 반드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거룩한 행동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절반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행동만 바꾸도록 추구한다면 우리는 자칫 바리새인과 같은 내면의 변화 없이 겉만 그럴 듯한 위선적인 신앙을 가질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유 때문에, 만약에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리의 내면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라고 먼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내면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을 성경에 비추어서 제대로 파악하고 분석하고 그것이 얼마나 문제가 가득한가를 이해하고 탈피하고자 노력하며 주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에 그때에서야 사람을 입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과 이어지는 다른 말씀의 강조점은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면의 변화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기독교에 대한 오해 중에 하나는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이 기독교이다라고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면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분명히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 혹은 목표라는 것은 단순히 내면만 관찰하고 생각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하신 처럼 의롭고 거룩한 새로운 삶을 우리가 반드시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인격적인 내면의 변화가 중요하고 그것이 시작이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의 의롭고 거룩한 행동으로 연결되고 반드시 거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고린도전서 6 19-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6:20 값으로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 누구이신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결국에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일한 패턴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다스리시는 성령 하나님을 힘입어서, 우리의 외면적인 행동과 섬김과 사랑과 태도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마땅한 것이며 우리가 단순히 우리의 내면에 대해서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겉모습의 변화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크게 깨달은 한가지는, “성도는 세상과 반대로 살아가야만 한다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중에역행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자로 쓰여진 제목입니다. “어떤 일에 순응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것이 바로 역행자의 뜻입니다. 사실 책은 기독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책인데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성도와 교회야 말로 역행자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되겠습니까? 이방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반대로 역행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도대체 어떻게 신앙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질문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방인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없이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탐욕을 부리는 것입니다. 방탐함을 즐기면서 나를 거기에 던지는 것입니다. 하도 많이 죄를 지어서 감각조차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성도가 어떤 사람인가? 교회는 어떤 것인가? 이방인들과 역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싶은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탐내고 남까지 해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방탕하고 악한 것들을 즐기지 끊어내는 것이고 이상 나를 거기에 던져서 타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의로운 태도와 말과 생활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무감각해지고 잔인하고 냉정한 마음을 돌이켜서 깨어있고 따뜻하고 배려있는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성도가 걸어가야 하는 역행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리에 세우시기 위해서 얼마나 은혜와 능력을 베푸셨는지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의 뜨거운 사랑을 날로 깊이 배워 가기를 원하고,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바로 일을 통하여서 나의 생각이 변하고 세상의 역행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여전히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옛날의 나의 정체성과 습관을 벗어 던지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자아와 새로운 태도와 행동을 날마다 힘써 추구하며 전진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위하여 베푸신 놀라운 사랑과 능력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자아와 태도와 습관과 악행들을 버리게 하시고, 오늘 하루 동안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세상이 감당할 없는 세상을 거스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로운 정체성과 행동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더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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