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 우리 위해 수치를 참으신 주 생명의 빛 우릴 비추시네 주의 마음 눈물로 이 땅에 씨를 뿌려 생명의 빛 비추게 하소서
우리
2. 곡 소개
이 곡은 마커스 라이브워십 7집에 수록된 곡으로, 어두운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우리도 이 땅 가운데 주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고 어둠을 밝히겠다는 아름다운 결단을 담고 있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동시에 안도감을 줍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가 있는 것 또한 오직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목적을 누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가치 있고 독특한 잠재력을 어떻게 실현하며 살 수 있는지 기쁘게 보여주십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289.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이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로 슬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죄와 비참함을 슬퍼하십니다. 죄와 그 결과가 우리를 둘러싸고 그것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도록 유혹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의 감정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격려와 힘주시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098.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아무런 소망이 없던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완전히 어두움에 가득했으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으로 빛이 되어 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하늘의 소망과 위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죄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간구하며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세상 속에서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도로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그것처럼 성도의 삶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성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며, 이 땅에서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의 위로로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진정한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선행과 섬김이라는 믿음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캄캄한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 받아 잃어버린 자들과
나누라고 하시네 주의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네 우리가 나눌 때에
그들 알겠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2. 곡 소개
이 곡은
Steve Green 의 People Need the Lord를
번안한 곡이다. 1994에 발매된 앨범이기 때문에 거의 30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 안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필연적으로 공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잘 그려낸 곡이다. 세상 사람들은
절실하게 주님이 필요하기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을 세상 속에서 나누어야 함을 노래한다. 그리고 사랑의 복음을 듣고 그리고 선행을 통한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야, 그들이
주님을 알 수 있음을 고백하며 결단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전도서 2: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2:10 I denied myself nothing my eyes desired; I refused my heart
no pleasure. My heart took delight in all my work, and this was the reward for
all my labor.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2:11 Yet when I
surveyed all that my hands had done and what I had toiled to achieve,
everything wa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nothing was gained under
the sun.
2:11toil with
which I toiled Great effort was put forth to amass all the wealth and
possessions. 내가수고한모든것: 모든부와재산을모으기위해많은노력을기울인것을의미합니다.
Everything is vanity
Based on his search for pleasure and wealth, the author concludes that pleasure
and wealth are senseless and provide no real value. 모든것이다헛되어:
쾌락과부에대한탐구를바탕으로저자는쾌락과부는무의미하며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Ec 2:11.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1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55:2 Why spend money on what is not bread, and your labor on
what does not satisfy? Listen, listen to me, and eat what is good, and your
soul will delight in the richest of fare.
55:1 THIRSTY, COME TO THE WATER.
Thirst speaks of the desire for spiritual answers to life’s mysteries. Waters
represent the satisfaction of knowing God as Savior and provider (Jn 4:10–14). 목마른자들아물로나아오라:
갈증은삶의신비에대한영적인답을얻고자하는갈망을표현하는것입니다. 물이라는것은, 하나님을구원자와공급자로아는만족을상징하는것입니다.
55:2 SPEND SILVER … WAGES ON WHAT
DOES NOT SATISFY. Throughout history, people have
tried to find satisfaction through many things other than God. But the joy of
salvation cannot be obtained except through God’s free gift. 배부르게하지못할것을위하여수고하느냐:
역사를통해서사람들은하나님아닌다른많은것을통해서만족을얻으려고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구원의기쁨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을 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10 The thief comes only to
steal and kill and destroy; I have com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10:10
HAVE IT IN ABUNDANCE. The eternal life one has in Christ
has to do with more than length of life—but quality of life as well. 풍성히얻게하려는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생은 단순히 삶의 길이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10:10
that they may have life … abundantly. The
life that Jesus gives is unique because it is eternal, and He gives this life
in ever-growing abundance to His redeemed. 예수님이주시는생명은독특한생명인데왜냐하면그것은영원한것이기때문입니다. 그리고그분은이러한생명을자신이구속하신자들에게 계속 더 충만해지는 방식으로 주십니다.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5 Neither do people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bowl. Instead they put it on its stand, and it gives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개역개정) 5:16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NIV)
5:14–16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is an allusion to Is 9:1–2; 42:6; 49:6—texts that
describe the ministry of Messiah, Servant of the Lord. This indicates that
Jesus’s disciples are to be extensions of his ministry, carrying salvation to
the ends of the earth. Such ministry is intrinsic to true discipleship. A
disciple should no more conceal his righteousness or the gospel message than a
glowing city should douse its light
at night. The reference to giving light for
all combines with the reference to “the world” to show that Christ’s ministry
is intended for all people. This anticipates the Great Commission of Mt
28:18–20. 너희는세상의빛이라는말씀은주의종인메시아의사역을묘사하는성경구절인이사야말씀들의간접적인언급입니다. 이는예수님의제자들이땅끝까지구원을전하는그분의사역의연장선이될것임을나타냅니다. 그러한사역은참된제자도의본질적인것입니다. 빛나는도시가밤에빛을밝혀야하는것처럼제자는자신의의로움이나복음의메시지를숨겨서는안됩니다. 집안모든사람에게빛을준다는언급은“세상”에대한언급과결합이되어서그리스도의사역이모든사람을위한것임을보여줍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8장의 대위임령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Charles L. Quarles, “Matthew,”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07.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질적인 처지에 대하여 잘 묘사한 곡이다.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공허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영혼의 본질적인 갈망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유사한 신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고 추구했지만, 역사적으로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영원히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하여, 인간의 수고는 마치 바람을 잡는 것과 같고 해 아래에서 무익하다
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오직 하나님만이 영적으로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채우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선포한다.
세상은 받은 대로 갚아주는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깨어지고 상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직접 오셨다. 그리고 성도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속에서
전하여야 한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성경은
마치 빛이 어두움을 비추듯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세상 속으로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성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그 입술을 통해서 세상은 드디어 그 깊고 길었던 허무함을 벗어나 고침을 받고 회복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성도 안에 있는 세상을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또한 기꺼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좋은 설교는 어떤 것일까요? 항상 설교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분명히 “전통적인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질은 항상, “새로운 옷”을 입게 됩니다. 저는 항상 꿈을 꿉니다. 충분히 성경적이면서, 충분히 적용적이고 시대에 걸 맞는 설교에 대한 꿈입니다.
지난 번 The Healer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아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반면에 비판적인 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인용한 것에 대하여 부작용이 있었던 듯 합니다. 책 인용으로 인해서, 설교에 대한 집중력이 오히려 약해졌고 또 산만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설교자로서 제가 발전하는 과정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것이지만, 비판의 이야기는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성숙해져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단점을 계속 보완해나가야 합니다.
* 책을 인용하는 것의 의미
독서를 오래하면, 마치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수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십대 중반부터 그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한 없이 혼자 길을 걸으며 책을 읽고 줄을 치고, 잠시 벤치에 앉아서 독서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는 그 행위 자체가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담은 순간 만큼은,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되고 나서도,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의 본질에 대한 소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잃어버린 시대에, 누군가의 깊은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하고, 또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 놓으며 길을 찾아가는 것은 "성숙한 성도의 태도"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의 설교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설교자와 성경과 책들이 대화를 나누고, 성도는 그 자리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책을 인용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일반 은총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일반 은총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일반 은총을 통해서도 주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일반 은총이야 말로 “현실의 컨텍스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현실을 이야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만 인용하고, 성경만 이야기하고, 성경에서만 모든 설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탁월한 세상의 진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결국에는 성경의 진리가 가장 탁월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 항상 저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성도에게 가장 좋은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설교의 구성
이번 설교는, 산상 수훈의 일부분입니다. 보통의 주석들과 스터디 바이블들은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을 다각도로 오래 묵상하고 생각하고 자료들을 찾으면서, 제 마음에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두가지는 이것입니다.
첫째로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원수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을 접근할 때에, "원수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 원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 보통의 접근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원수 뿐만 아니라, "나와 가장 친한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까지 한꺼번에 언급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친근한 관계에서 원수까지 나아가는 "인간 관계의 넓은 스펙트럼"이라는 관점으로 본문을 접근하였습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접근인데, 저는 이러한 이해가 성도의 현실에 훨씬 부합된다고 느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완전하시다 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라는 Carson의 주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verse does justice to the word teleios but also notes that the form of the verse is exactly like
Leviticus 19:2, with “holy” displaced by “perfect,” possibly due to the
influence of Deuteronomy 18:13 (where the NIV renders LXX teleios by “blameless”; cf. Gundry, Use of the Old Testament, 73–74). Nowhere is God directly and
absolutely called “perfect” in the OT: he is perfect in knowledge (Job 37:16)
or in his way (Ps 18:30), and a man’s name may be “Yahweh is perfect” (so yôtām [Jotham], Jdg 9:5; 2 Ki 15:32).
But here for the first time perfection is predicated of God (cf. L. Sabourin,
“Why Is God Called ‘Perfect’ in Matthew 5:48?” BZ 24 [1980]: 266–68).
D. A. Carson, “Matthew,”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Mark (Revised Edition), ed. Tremper
Longman III and David E. Garland, vol. 9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0),
194.
그렇다면, 결국에는 “우리의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드러나야 하며, “성숙의 차원”에서 우리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며, 그리고 “성숙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까지 설교자는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설교에 대한 논지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결국 “가장 작은 수준에서 습관을 만들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책들과 성경을 통해서 논증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작게 시작한 사랑의 습관으로부터 관계의 폭을 넓혀서, "결국에는 원수를 사랑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고 상을 주신다라는 구조로 마무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설교의 자료 준비
설교가 단순히 “주해의 모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팀캘러 목사님의 설교들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적이고 적용적인" 설교의 이상향은, 주해 이상의 것을 목회자에게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자료들을 폭 넓게 찾고 다루는 것이 항상 필요합니다.
이번 설교는 의도적으로 "기브앤테이크"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설교자의 대화 상대”로 삼았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책 자체가 워낙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설교 본문과 잘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애덤 그랜트는 “인간 관계에서 주고 받는 사람의 본질”에 대하여서 굉장히 잘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설교 제목인 The Giver 역시 이 책에서 따 온 것입니다.
"진정한 기버이신 하나님" 이라는 논지까지 내용을 끌고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설교 처음부터 애덤 그랜트의 용어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설교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니, 설교 전체에서 Giver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어색했다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글 설교를 하면서, 주로 사용된 용어는 정작 R발음이 계속 들어가서 어색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용어라도 “좀 더 한글 자체로 풀어서” 설교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친밀한 관계에서만” 기버가 되는 것은, "성경의 문맥상"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기브앤테이크와 루터 저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는 루터 전집을 로고스로 가지고 있지 않지만, 루터란 스터디 바이블이 루터 전집에서 인용하고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터디 바이블 하나로 primary source까지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특권입니다.
Luth
“Do you see now how pious you are if you are friendly and kind only to your
friends? You are just about as pious as the thieves and the scoundrels, as the
whores and the criminals, or as the devil himself” (AE 21:127).
AE Luther, Martin.
Luther’s Works. American Edition.
General editors Jaroslav Pelikan and Helmut T. Lehmann. 56 vols. St. Louis:
Concordia, and Philadelphia: Muhlenberg and Fortress, 1955–86.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589.
그리고 "최종적인 적용 부분"을 끌어내기 위해서, 진정한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은 "실천을 통한 우리의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며, 그리고 그 습관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반복"부터 필요하다는 것을 책 두권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논증하였습니다.
실천과 습관에 대한 신학적 의미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람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제임스 스미스입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지성 중심의 인간관”에 도전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 필요한데, 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덕에 대한 실천 그 자체"가 필요하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반드시 "사랑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내용을 압축하여서 이번 설교에 인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덕을 실천함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습관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을 인용하였습니다. 실질적인 임상 결과도 그렇고, 저에게 스스로 적용할 때에도 성도의 변화에 대한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 이 설교가 저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반응
이 설교는,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는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변화에 대한 지금까지 저의 모든 고민과 답”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디민 논문을 쓰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연구해 본 결과, 한 사람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으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반드시 실천을 필요”로하고, 또한 “실천은 습관”을 만들어야 하며, 그렇게 “평생”을 달려가는 것이 성도의 삶 입니다.
설교에 대한 반응은 이번에도 다양했습니다. 은혜 받았다고 따로 연락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쉽게도, 들으시는 분들 중에 지루해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번 설교 때에는 유독 세분 정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중에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좀 더 잘 준비했으면 좋았을텐데, 혹시 너무 지루했던 것일까?"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도 가졌습니다.
사실 설교자로서 이번에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현재로서는 주일 설교 세번이 저에게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서적으로 잘 제 자신을 다스리고 충전하려고 해도, 이미 두번의 설교를 하면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거의 소진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번의 설교 모두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담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설교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전체 설교라는 관점에서는 제 자신의 힘을 더 잘 안배해야 할 듯 합니다.
*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길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길은, “한걸음 전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모든 고민과 연구를 담아서 The Healer, 그리고 The Giver 라는 두번의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전통적인 설교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탁월한 책들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성도님들의 마음과 현실의 삶 가운데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의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제 주일 설교자로서 저의 상황은, 좀 더 전통적인 설교 형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저의 생각을 뛰어넘으시고, 또 제가 알 수 없는 어떤 길로 인도하시며, 저는 그 길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은 성도님들을 향하기 전에 언제나 제 자신을 향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저에게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계속, 한걸음 그리고 한걸음 더 전진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 모든 것이, 혹시 헛된 것은 아닐까요? 제가 꿈꾸는 설교의 이상향으로 더 나아가고, 주일 예배 이후에 활짝 웃으며 집으로 향하시는 성도님들의 행복을 계속 지켜볼 수 있을까요?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고, 진실한 설교자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