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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55) - 온 땅의 주인


1. 가사 살펴보기

온 땅의 주인 되신 주님이
내 이름 아시며 상한 맘 돌보네
어둠을 밝히시는 새벽 별
방황하는 내 맘 주의 길 비추시네 

주님은 나의 죄를 보시고
사랑의 눈으로 날 일으키시네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듯
내 영혼의 폭풍 고요케 하시네 

나로 인함이 아닌 주가 행하신 일로
나의 행함이 아닌 오직 주로 인하여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과 같네
바다에 이는 파도 안개와 같지만
주는 나를 붙드시고 부르짖음 들으시며
날 귀하다 하시네

나 오직 주의 것

 

2. 곡 소개

곡은 어노인팅 12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온 땅의 주인 되시는, 그리고 그분의 백성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풍성한 고백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신명기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0:17 For the LORD your God is God of gods and Lord of lords, the great God, mighty and awesome, who shows no partiality and accepts no bribes.

10:17 The phrase God of gods does not affirm the existence of other gods; rather, it affirms God’s absolute sovereignty over all powers in heaven and earth. The Hebrew ʾelohim, translated gods, can also refer to angels or other powerful beings (see Ps 82:1). 신 가운데 신이시며 라는 표현은 다른 신들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신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천사나 다른 강력한 존재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Dt 10:17.

10:17 accepts no bribes. In ancient Near Eastern religion, gods could be manipulated because they had needs. By providing food, clothing and shelter for the god, an individual could win favor. Yahweh here makes it clear that he will not distort justice for personal gain.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고대 근동 종교에서 신은 무엇인가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조종할 수 있었습니다. 신에게 음식, 의복, 거처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은 호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신 / 역자 추가여호와는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 정의를 왜곡하지 않으실 것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Craig S. Keener and John H. Walton, eds., 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Bringing to Life the Ancient World of Scriptur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6), 314.

16: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16:2 I said to the LORD, "You are my Lord; apart from you I have no good thing."

2 The psalmist approaches God as “my Lord” (Adonai) and as “my good” (NIV, “I have no good thing”). The designation “my Lord” reveals the psalmist’s submission to him as “Master” and “Ruler” (see 8:1), in contrast to those who run after other gods (v. 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나의 주” (아도나이) 나의 복으로 표현합니다. 나의 주라는 명칭은 다른 신들을 따르는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시편 기자가 통치자로서 그분께 복종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Willem A. VanGemeren, “Psalms,”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Psalms (Revised Edition), ed. Tremper Longman III and David E. Garland, vol. 5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8), 187.

16:2 apart from you The psalmist finds contentment and sufficiency in Yahweh. The psalmist of Psalm 73 makes a similar statement in response to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73:25). 시편 기자는 여호와 안에서 만족과 충분함을 찾습니다. 시편 73편의 기자는 악인의 형통에 대한 응답으로 비슷한 진술을 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Ps 16:2.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4:14 you. These business people think they control events. They fail to recognize God’s authority and the temporary nature of life. Planning and investing are not wrong, but arrogant self-confidence and boasting are. 이 사업가들은 자신이 사건들을 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와 인생의 일시적인 본질을 인식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계획과 투자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오만한 자신감과 자랑은 잘못된 것입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1777.

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6: 30 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you of little faith?

6:32–33 the Gentiles seek … seek ye first. Those who do not know God are characterized by their pursuit of earthly needs and pleasures, whether out of fear or greed, but Christ’s disciples must give their highest priority and greatest efforts to their pursuit of God’s glorious reign (kingdom) and obedience to His will (righteousness; v. 10), trusting God to provide for their needs.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두려움이나 탐욕으로 세상의 필요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왕국)를 추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을 신뢰하면서,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의 순위에 놓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66.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4:8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14:9 For this very reason, Christ died and returned to life so that he might be the Lord of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NIV)

14:8 we die for the Lord Indicates that in all things, the believer’s purpose is to serve and please God.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 이것은 모든 일에서 신자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we are the Lord’s Paul affirms that neither life nor death can adversely affect the believer’s union with Christ (see Rom 8:35; 1 Thess 5:10).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바울은 삶이나 죽음 모두가 신자의 그리스도의 연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o 14:8.

14:4–9 jesus christ, Lord—As Lord, Jesus Christ not only rules over us. He provides needed strength for our weaknesses. Life is lived in relationship to the risen Lord and his will for us not in relationship to the opinions and judgments of other people. Only he earned the right to be our Lord through his death and resurrection.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필요한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성도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판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직 그분만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주님이 되실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4. 찬양에 대한 묵상

여호와 하나님은, 단순히 교회의 주인이실 뿐 아니라 온 땅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분의 뜻대로 완전히 다스리고 계신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그분의 자녀 삼으시는 분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과 영적으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인하여 성도는 하나님께로 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공급 받는 것이다. 성도는 너무나 연약하여서 풀과 안개와 같은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안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성도는 여전히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그리스도의 은혜와 긍휼로 인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늘 기억하는 것이다. 사나 죽으나 성도는 주의 것이며 오직 주님의 뜻만이 삶의 유일한 기준과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성도는, 오직 겸손함으로 자신의 삶의 유한함을 늘 깨닫고 주님을 붙들고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기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여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며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나의 주인되신 주님께 마음을 돌이키고 그분을 따르시는 삶의 변화를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36) - 내 삶의 주인이라

 



1. 가사 살펴보기

흘러간 어제 일과 마주한 오늘의 삶 속에
내 주님 계시네
위태로운 내 삶을 신실한 주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시네

창조의 사랑이 나를 빚으시고
따스한 숨결 날 온전케 하네
태초부터 영원토록
그 사랑 내 영혼 붙드시네

내 모든 삶 속에 참 길이 되시고
이 길 끝에서 날 안아 주시네
내 평생의 모든 순간
그 사랑 내 삶을 인도하시네

내 삶의 주인이라
깊어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라

 

2. 곡 소개

곡은, 2021년에 발매된 마커스 워십 스튜디오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매일의 나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모든 상황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곡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이미 성도를 사랑하셨고 성도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자녀를 인도하심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6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power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7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앞서신다 라는 것은,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신 주님이심을 의미합니다.

Lyman Coleman, 편집자,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904.

이 초기 기독교의 찬송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상은 나중에 골로새 교회에서 퍼진 영지주의로 알려지게 된 거짓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모순됩니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은 다양한 천상의 존재들이 지구의 창조자들이며 그리스도는 이러한 천사들 중 하나라고 믿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16.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118:6 The LORD is with me;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an do to me?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7 The LORD is with me; he is my helper. I will look in triumph on my enemies.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신다”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나를 유효하게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857.

여호와의 임재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믿음 때문에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 믿는 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D. A. Carson, 편집자,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019.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 세상에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에 대한 궁극적인 해독제입니다. 의로운 오른손 : 하나님은 잘못을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포로로 보낼 때 의롭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이끌어내시는 것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의로운 행위가 될 것입니다.

D. A. Carson, 편집자,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236.

시편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개역개정) 40:17 Yet I am poor and needy; may the Lord think of me. You are my help and my deliverer; O my God, do not delay. (NIV)

주를 찾는 모든 사람은 여호와께 충성된 사람과 같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는 말은 겸손하고 주님을 그들의 유일한 도움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5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이 함께하시는 것이 성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부터 계셨고 창조주이시다. 그분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미 사랑하셨고 때가 되어 나의 믿음을 통하여 나의 구원자이시며 주인이 되신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야 말로 모든 삶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진정한 위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고난과 괴로움과 외로움도 성도를 영원히 넘어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고 건지시는 분이시며 진정한 주인이심을 매일마다 새롭게 고백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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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17) - 나를 통하여

 


1. 가사 살펴보기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높임을 받으소서
내가 밟는 땅 주님의 땅이니
하늘이 주의 이름 높이 올리며 넓은 바다가 주를 노래해
모든 만물 주를 경배해 모든 입술 주를 찬양해
천지를 만드신 만물의 통치자 높임을 받으소서

내 평생의 주의 이름 높이며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을 예배 하리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아버지의 영광이 선포 되야 하리
찬양하며 주님을 예배할 때 하늘 가득한 주의 영광 보리라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인하여 주의 이름 높임을 받으소서

 

2. 곡 소개

곡은, “도우시는 분 성령이라는 앨범에 수록된 이권희님의 곡이다. 특히 이 곡은, 일본 선교 중에 얻은 확신과 경험을 바탕으로 녹여낸 곡이다.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나를 통하여서 역사하시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웅장한 찬양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4:1 Of David. A psalm.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24:1 the Lord’s. God’s name is the first word of the psalm in Hebrew, placing the emphasis on him: he is the one—not anyone else (like another god)—who owns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everything in it. Everything that exists in the created world, living and non-living (50:12; 89:11). Paul quotes this verse in 1 Cor 10:26 to explain that since God owns everything, all foods may be enjoyed without qualms. 히브리어에는, 이 시편의 첫 단어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놓음으로 그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신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라는 것은,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창조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01.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0:31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10:31 do all to the glory of God. The exercise of rights and liberties is never more important than God’s glory. If God’s glory is at stake even in eating and drinking, then Christians do well to factor God’s glory into everything they do.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먹고 마시는 것에서 조차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여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59.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7 And whatever you do, whether in word or deed, do it all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The nurse, the teacher, the architect, the musician—all should do what they do as an expression of their love for God and in the name of Christ. Each person should approach his discipline, whatever it may be, understanding that it leads not just to a job, but to a life through which God is glorified and humanity is benefited. 간호사, 교사, 건축가, 음악가 등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표현으로 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훈련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훈련이 단지 직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인류에게 유익을 주는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David S. Dockery and Gregory Alan Thornbury, Shaping a Christian Worldview: The Foundation of Christian Higher Education (Nashville, TN: B&H Academic, 200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의 탁월함은, 지금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잘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마치 어떤 특별한 순간에만 혹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며 이 찬양이 고백하는 것처럼,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인 생각으로의 전환은, 우리의 마음에 초월적인 견고함, 안정감 그리고 희망을 준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순탄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함께하시며 도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낙심할 만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힘과 동기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순간에 모든 곳에서, “성도의 살아가는 삶의 목적하나님의 영광이다. 나의 삶의 최 우선 순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분이 높아지시며, 그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에, 나의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그분을 드러낼 때에,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감사와 감격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넉넉하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그런 삶을 소망하고 믿음의 한걸음을 담대하게 걸어가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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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0일 금요일

예배를 통해 변화되는 삶을 꿈꾸며 / 사무엘상 20장 24-42절 설교

 


수 많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요? 언젠가 부터 예배가 우리를 위로해주는 어떤 위로의 수단으로만 전락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한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나와서 마음을 위로 받는 것, 한번 마음에 찡하게 감동을 느끼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 것이 예배가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염려의 마음이 있습니다. 

초하루라는 중요한 예배의 날에, 사울은 여전히 자신의 탐욕과 살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은,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 왕으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지만, 그러나 그는 어떤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자로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설교자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이에게 들으라고 하는 설교가 아니라, 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제는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가라고 부르시는 꾸중과 자비의 우렁찬 음성으로 이번 설교가 들렸습니다. 

* 사무엘상 20장 24-42절 설교

다윗이 도망하였던 라마나욧까지 사울이 찾아왔기 때문에, 다윗은 다시 도망을 하여서 요나단을 은밀히 찾아갔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죽음의 위기를 토로하였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사울의 마음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요나단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만약에 왕실의 잔치에 다윗이 나가지 않았을 때에, 요나단이 허락해서 다윗이 가족에게 잠시 방문했다 라고 말했을 때에 사울이 이에 대해서 분노한다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0장 14절과 15절에 이렇게 요나단이 말합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할 뿐 아니라,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왕권을 이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집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오늘의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계속 숨어 있었고 특별한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24절은 오늘의 스토리의 배경을 아주 간략하게, 하지만 무게감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4절에서 말하는 초하루라는 것은 유대인들의 절기를 의미하는데 매 달의 첫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무엇을 하는 날인가? 이 날은 안식일과 비슷하게 휴식을 취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민수기 28장에 그 내용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수송아지와 양과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그것과 함께 곡식도 함께 제사로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제물 위에 부어드리는 전제도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추가하여서 속죄제를 여호와께 바치는 날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매달 첫 날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는 것 처럼, 초하루는 매달의 첫째 날이기 때문에 그 달 전체를 대표하는 날로서 중요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달을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또 새로운 한 달을 주님께 맡긴다 라는 의미로 나팔을 불어서 그 날을 선포하고 거룩한 날로 지켰습니다. 한마디로 초하루라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날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하루가 기쁨과 감사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2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작은 단서가 사울의 현재 심리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 뒤에 벽을 두고 앉으면 어떻습니까? 자신의 뒤에서 누구도 자신을 공격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은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앞으로 한달을 또 다시 지키실 주님을 기대하는 날이지만, 정작 지금 사울의 상태는 굉장히 불안하고 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예상한 것처럼, 왕궁에 신하들이 모두 함께 해야 하는 중요한 잔치에 다윗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첫날에 다윗이 안 보였을 때에는 혹시 개인적인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둘째 날에도 보이지 않자 요나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요나단이 대답하기를, 다윗이 그에게 직접 부탁을 하셨는데 가족이 제사가 있어서 형의 명을 받고 가야된다 라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다윗을 보내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30절에 이렇게 소리치며 이야기했습니다.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자리여야 했지만, 공포와 폭력과 저주가 휘몰아치는 자리가 되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극도로 분노하면서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욕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속 마음을 꽤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다윗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고 너무나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실상 사울에게는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친 아들이 자신이 원수처럼 여기는 다윗의 편에 섰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가 정말 놀라운 것이 무엇인가? 사울은 지금 심각하게 요나단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죽지 않는다면, 요나단과 요나단의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의 머리에 꽉 차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나라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나라이며 마땅히 자신의 아들이 물려 받아야하며, 그 누구도 감히 그 나라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다윗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 사울의 변함 없는 논리입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끌어 오라 다윗은 죽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이렇게 심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다윗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윗을 변호한다기 보다는,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잘못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울은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답변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답을 회피하는 대신에 자신의 아들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금 요나단을 향한 창을 던진 그 행위 자체가 그냥 위협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울이 요나단을 향해서 소리칠 때에는, 마치 언뜻 들으면 그가 요나단을 위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 어리석은 요나단아 아직 알지 못하느냐? 너와 너의 나라가 위태로운 것 아니냐? 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것 처럼 그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들조차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사실 사울은 요나단과 그의 왕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머리 속에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이지. 다윗으로 인해서 자신의 나라가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심히 노하였고 식탁에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3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가 창을 던진 것 보다 의로운 다윗이 모욕 당한 것을 더욱 큰 일로 여겼습니다. 선하고 잘못이 없는 다윗이 모욕당하는 것을 매우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장면이 바뀌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기 위해서 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화살을 멀리 쏘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신호입니다. 시종은 무기를 가지고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만나서 요나단에게 세번 절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입맞추고 심하게 울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요나단은 더 이상 다윗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라고 그에게 말하며 다시 한번 다윗에게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42절 말씀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라고 서로가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 있는 그 약속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확인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초하루의 절기에 오늘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사울의 영적인 태도입니다. 여호와의 절기에 참여하고 그 절기의 음식을 먹고 모두 함께 모여서 그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상 사울은 단 한걸음도 그 예배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예배를 드리긴 했으나 그 예배를 드리는 동안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하나님께 엎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이키는 역사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절기의 음식을 먹고 절기의 자리를 베풀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분노와 질투와살인에 대한 마음이 가득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울의 탐욕의 그 깊은 중심에는, 나의 나라 나의 왕국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겉으로는 아들을 염려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 영원히 자신이 왕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아들조차도 자신의 나라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창으로 죽이려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서 그리고 그의 마음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든지 자신의 나라를 유지해야겠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들어가 있었지만, 자신의 욕망과 탐욕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악한 죄인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셔야 하는 예배인데, 자신의 탐욕이 중심이 되어서 그것을 놓지 못하는 너무나 죄악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과 대조되는 것이 요나단의 모습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상 다윗은 요나단에게 있어서 더 큰 대적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보다 더 라이벌 위치에 있던 요나단의 관심은, 자신의 나라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20장 42절에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울의 관심은 온통 자기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방해가 되는 어떤 것이라도 없애는 것,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은 어떠한가?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참 아름다우니그 우정을 본 받자 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우정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모든 관심과 삶의 목적이 여호와의 이름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께서 그들 사이에 계시고, 그들의 삶을 다스리시고 여호와가 주인 되시는 참된 신앙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진정한 우정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장 중요한 날조차도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한 사울과, 죽음과 위기의 순간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며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두 청년의 모습을, 엄청난 대조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된 예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예배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를 통해서 어떤 결과를 보아야하는가?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에 대한 깊은 인식입니다. 모든 무릎은 오직 예수의 이름에 꿇는 것이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참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마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이 세대는 "사울의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 나의 성공 나의 행복 나의 목적 나의 왕국, 내가 이루고 싶은 일만 가득한 것이 바로 이 세대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어떻게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하는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은혜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예배 가운데 경험하는, 어떤 짠한 감동적인 마음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예배의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이 없는 나 중심적인 죄인의 삶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원하신 그분의 은혜에 응답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중심을 가득 차지하시는, 바로 그 마음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런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악한 것들을 돌이키며, 나 중심적이고 탐욕적인 삶에서 돌이켜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주인으로 온전히 역사하시는, 참된 예배와 복된 믿음의 삶을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발견하기 원합니다. 세상의 목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삶을 돌이키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복된 성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모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더욱 나의 중심이 되시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성령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참된 예배자로 성숙해가는 성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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