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피난처이며 힘이 되신다는 것은, 우리의 난공불락의 방어가 되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서 요새의 이미지를 계속적으로 사용합니다. 고대 중동의 도시는 방어를 위해서 높은 곳에서
높은 벽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뚫을 수 없는 도시나 구조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확실하게
우리를 지키시는 분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에서 지키신다라는 것은, 바울이 군사 용어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전쟁터에 있으며
군인에 의해서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 중에 경비병의 목적은 적의 침략을 막거나 포위된
도시의 주민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즉, 마음을
외부의 타락한 영향으로 부터 보호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원곡의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탁월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객관적인 진리와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찬양은, 그
두가지에 대한 깊은 신학적인 고백과 영적인 확신을 주는 찬양이다.
이 찬양은, 처음부터 오직 예수 안에
소망이 있다고 고백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소망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영적인 승리 안에 동참하게 된다. 죽음조차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택하신 자에게는 결코 실패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마치 성벽과 군사처럼 우리의 삶과 마음을 지키시는 분임을 이 찬양을
통해서 고백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찬양은, 진리 안에서
확신과 그것으로 부터 솟아나는 영적인 감격과 기쁨을 주는 찬양이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르면서, 성도인 내가 누구 안에 있는지를 새롭게 기억하기를 원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인 안정감과 기쁨과 용기를 충만하게 누리시고 삶을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이사야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41:13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takes hold of your right hand and
says to you, Do not fear; I will help you.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원수들은 패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Stefana Dan Laing, ed., “Isaiah,” in The
Study Bible for Women,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4), Is 41:13–14.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40:31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기다린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확신 있는 기대와 적극적인
소망을 수반하는 것이며 결코 수동적인 체념이 아닙니다. 올라가는 것, 달음박질하는 것, 걸어가는
것은 믿음이 사람에게 가져오는 영적인 변화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을 신뢰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사야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개역개정) say to those
with fearful hearts, “Be strong, do not fear; your God will come, he will come
with vengeance; with divine retribution he will come to save you.” (NIV)
이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그분의
임재와 목적을 확신시키십니다. 좋은 소식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심은 영적인 변화
그리고 원수들로부터의 구원을 가져옵니다.
이 찬양은, 두려움과 상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두려운 시대이다. 4차 산업 혁명, AI의 발전, 경제의
후퇴, 정치의 불안정, 관계의 위기, 가정의 파괴, 정체성의 붕괴 등 모든 것이 사실상 두려움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고 또 두려워하지 말라는 권면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그분을 찾는 것이고 주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은, 주님을 앙망하는 자가 새로운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비록 우리의 환경과 때로는 우리의 육신은 지쳐서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날마다 새로운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찬양을 통해서, 상한 마음 가진 자가 낙망치 말아야 한다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모든
고난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넘어지고 낙심하고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이 세상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압제하는 세상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과 마지막 날에 갚으실 것을 기대한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닦아 주실 것이며, 주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았던 우리에게 칭찬하시며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와 섭리를 묵상하고 기대하며 찬양으로 힘을 얻으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예수님께서 어느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데 유대인의
회당을 책임지는 야이로 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아주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5장 23절 말씀입니다.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라고 예수님 앞에서 간곡하게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바로 그의 집으로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오랫동안 병으로 아팠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가진것을
다 써서 의사들을 만났지만 도대체 낫지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내가 손만 대도 병이 나을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래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몰래 손을 대자 놀랍게도 여인의 몸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무리 중에서 굳이 찾으시고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마음이 바짝바짝 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왜 그런가? 시간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빨리 본인의 집으로 가셔야 하는데 빨리 가서 치료해 주셔야 되는데 자꾸 늦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달려 왔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35절 말씀 하반절입니다.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라고 너무나 슬픈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왜 그런가? 사랑하는
딸이 결국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딸을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마치 그런 야이로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회당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분이 온다고 해서 바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 하셨을까요? “야이로야 미안하다, 내가 좀더 빨리 갔어야 되는데 벌써 너의 딸이 죽었다니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이제 너의 집으로 가도 소용없으니 다시 돌아가겠다”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불신의 말을 무시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음의 소식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영혼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절망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죽음이라는 그 절대적인
운명 앞에서는 그 어떤 힘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분명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야이로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잠식당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고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도착해 보니 딸의 죽음으로 인해 난리가 났습니다. 그
온 집안에 곡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9절 말씀입니다. “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절 처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비웃더라”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지금 야이로가 처한 이 모든 상황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야이로의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딸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사실상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수 많은 기적들을 일으킨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불신의 분위기 속에서 그 참담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를 향해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의 분위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착하셔서
소녀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비웃은 것입니다.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야이로의 볼이 부끄러움을 붉어졌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노골적으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한 것입니다.
아마도 야이로는 방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떠올렸을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 모든 두려움과 비웃음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야이로는 그 자리에서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40절 말씀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비웃는 자들을 다 내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비웃는 자들은 그분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데려가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아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무릎을 꿇고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만지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녀의 시신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니까 죽었던 소녀가 그 자리에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랐다” 왜 그런가?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설마 죽었던 아이가 살아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죽은 사람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죽음 조차 다스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능의 말씀 단 한마디로 죽은 딸을 살리심으로 자신은 살아계신 여호와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심을
친히 증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조차 이기시는 분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심을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고 또 한쪽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비웃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죽음 이후에 생명이 있는가? 어떻게 죽은 이를 잔다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러나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삶의 모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죽음을 앞두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는
이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봐야 아무 소용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인가? 왜 굳이 손해를 감수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그래봐야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저러는 것인가? 정말 우리가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면 이러한 비웃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좀 대충 순종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면서 우리의 믿음도 연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6절에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이 기적의 사건 가운데 예수님 바로 옆에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웃던 수 많은 이들의 조롱을 바로 옆에서 함께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이렇게 격려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러 시험으로 잠깐 근심하게 되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기뻐하라, 왜냐하면
우리 앞에 영원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오히려 연단을
받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많은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감격시키시고 넘치는 행복으로 지금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계시다는 그 사실이, 우리가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그리고 그분이 주실 그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만약 우리에게 그 미래가 없다면 현재의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인간의 본질을 꿰 뚫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그 환경 자체가 그들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현재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래의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목표를 볼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는 사람은, 과거의 생각에 파묻혀 살게 됐다. 그들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시련을 내적 힘을 기르는 시험으로 여기지 않았다.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업신여겼다. 그들은 두 눈을 감고 과거에서만 살려고 했다.
그들의 삶은 의미가 없어졌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그 어떤 인간도 넘어서지 못한 죽음이라는
절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기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소녀에게 다시 생명을 주심으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친히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불신의 시대에, 그저 자기 탐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이 시대 속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선을 행하며 손해를 보며 주님의 뜻을 행하며 우리의 삶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반드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루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하실 그 날을 마음에 흔들림
없이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며, 주님의 자녀의 정체성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전능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기꺼이
오늘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지막 날에 사랑하는 주님을 뜨겁게 그리고
온전히 만날 것을 사모하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 어느 보석보다 귀하다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2. 곡 소개
이 곡은, 2020년에 발매된 심형진 목사의 Renown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의 눈에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가를
아름답게 노래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받는 주님의 자녀가, 오직
주님의 뜻이 자신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간절히 소망하는 곡이다.
아가서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10 My lover spoke and said
to me, "Arise, my darling, my beautiful one, and come with me.
2:8–10 The
man ardently desires to be in the woman’s presence. He finally arrives at his
lover’s home and takes her into the romantic countryside during the new,
budding spring. 그남자는여인과함께있기를간절히원합니다. 마침내연인의집에 도착한 남자는 새싹이 돋는 봄 동안 그녀를 낭만적인 곳으로 데려갑니다.
2:10Rise up, my love. Christ coaxes His dear
people to awaken, shake off their laziness, and walk with Him (Rom. 13:11; Eph.
5:14; repeated in v. 13). 나의사랑,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는당신의사랑하는백성들이깨어나게으름을떨쳐버리고 당신과 함께 걸으라고 권면하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와/과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945–946.
시편 65:9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65:9 You care for the land
and water it; you enrich it abundantly. The streams of God are filled with
water to provide the people with grain, for so you have ordained it.
65:9–13 Just
as creation displays fruitfulness when it receives God’s blessings, the same is
true for us. When we turn to God in repentance and faith—whether as new
believers or as those who have stepped out of fellowship with God because of
sin—we can know the blessing of Christ’s atoning work and live a life of
fruitfulness (see 1 John 1:9). 피조물이하나님의축복을받을때열매를맺는것처럼그러한진리는우리에게도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회개와믿음으로하나님께돌이킬때, 새로운신자이든지혹은하나님과의교제에서멀어진사람이든지상관없이우리는그리스도의속죄축복을 알 수 있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개역개정) 1:7 For God did
not give us a spirit of timidity, but a spirit of power, of love and of
self-discipline. (NIV)
1:7 Like
many believers, Timothy struggled with a
spirit of fear. His timidity probably resulted from a variety of factors.
Regardless, God’s Holy Spirit provides power,
love, and sound judgment—the necessary spiritual resources for fulfilling
ministry and employing spiritual gifts. Such divine resources are available to
all—that is, power for the use of our gifts, love for those who benefit from
them, and good discernment in the application of our gifts. 많은신자들이그렇듯이, 디모데도두려움으로어려움을겪었습니다. 그의소심함은여러가지요인에서비롯되었을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하나님의성령은사역을완수하고영적은사를사용하는데필요한영적인자원인능력, 사랑, 건전한판단력을제공합니다. 이러한신성한자원, 즉은사를사용할수있는능력, 은사를통해유익을얻는사람들에대한사랑, 은사를적용하는데있어서바른분별력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1:7 The
Holy Spirit is the One who gives us spiritual gifts and empowers us to use
them. God’s Spirit does not impart fear
or cowardice, but power, love, and a sound mind, or “self-control.” The
Spirit imparts power for the various circumstances of ministry. The love the
Spirit gives to us should be directed toward other individuals. Furthermore, as
we use our spiritual gifts to build up the church, we should exercise
self-control, using our abilities only at the appropriate times. 성령님은우리에게신령한은사를주시고그것을사용할능력을주시는분입니다. 하나님의영은두려움이아니라, 능력, 사랑, 절제하는마음(혹은자기절제)을주십니다. 성령님은사역의다양한상황에서능력을부여하십니다. 성령님께서우리에게주시는사랑은다른사람들을향해야합니다. 또한영적인은사를사용하여교회를세워나갈때에는, 적절할때에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자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좋은
외모와 능력과 재산, 그리고 인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유일하게 하나님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충만하고 완전하게 사랑하신다. 주님은 늘 우리를 가까이 하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시며, 그분과
함께 동행하자고 말씀하신다.
모든 성도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영적 엘리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의 모든 백성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이미 받았다. 새로워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갈망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리고 주님을 가까이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을 때에 가장 큰 기쁨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그러한 참된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 두려움으로 물러서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삶을 붙드심을 믿고 더욱 대범하게 주님의 뜻을 추구하며, 그것을 나의 삶의 실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주님으로부터 넘치게
사랑 받는 자의 참된 감격과 만족, 그리고 그분과 더욱 가까이하고 동행하고자 하는 열망이 충만해 지기를
바란다.
흘러간 어제 일과
마주한 오늘의 삶 속에 내 주님 계시네 위태로운 내 삶을
신실한 주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시네
창조의 사랑이 나를
빚으시고 따스한 숨결 날
온전케 하네 태초부터 영원토록 그 사랑 내 영혼
붙드시네
내 모든 삶 속에
참 길이 되시고 이 길 끝에서 날
안아 주시네 내 평생의 모든
순간 그 사랑 내 삶을
인도하시네
내 삶의 주인이라 깊어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라
2. 곡 소개
이 곡은, 2021년에 발매된 마커스 워십 스튜디오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매일의 나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모든 상황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곡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이미 성도를 사랑하셨고 성도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자녀를 인도하심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6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power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7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앞서신다 라는 것은,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신 주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이 초기 기독교의 찬송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상은 나중에 골로새 교회에서 퍼진 영지주의로 알려지게 된 거짓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모순됩니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은 다양한 천상의 존재들이 지구의 창조자들이며 그리스도는 이러한 천사들 중 하나라고 믿었습니다.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118:6 The LORD is with me;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an do
to me?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7 The LORD is with me; he
is my helper. I will look in triumph on my enemies.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신다”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나를 유효하게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와/과Gerald M. Bilkes, 편집자,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857.
여호와의 임재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믿음 때문에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 믿는 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 세상에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에 대한 궁극적인 해독제입니다. 의로운 오른손 : 하나님은 잘못을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포로로 보낼 때 의롭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이끌어내시는 것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의로운 행위가 될 것입니다.
시편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개역개정) 40:17 Yet I am poor and
needy; may the Lord think of me. You are my help and my deliverer; O my God, do
not delay. (NIV)
주를 찾는 모든 사람은 여호와께 충성된 사람과 같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는 말은 겸손하고 주님을 그들의 유일한 도움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Kevin
R. Warstler, “Psalm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와/과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85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이
함께하시는 것이 성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부터 계셨고 창조주이시다. 그분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미 사랑하셨고 때가 되어 나의 믿음을 통하여 나의 구원자이시며 주인이 되신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야 말로 모든 삶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진정한 위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고난과 괴로움과 외로움도 성도를 영원히 넘어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찬양을 통해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고 건지시는 분이시며 진정한 주인이심을 매일마다 새롭게 고백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