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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6) - 주가 주되심을


1. 가사 살펴보기

내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 사용하셔서
주님만이 주 되심을 나타내소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시고
주 이름만 높이게 하소서 

완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로
선하신 주 의지하여 살게 하소서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주의 자녀로
주 이름만 따르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유일하신 이름
그 위대하심 찬양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자로
주가 주되심을 나 선포하리라

 

2. 곡 소개

이 곡은, 마스커워십 2023 주가 주되심을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찬양은, 성도의 삶을 통해서 오직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나며, 주님의 구별된 자녀로 거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소원을 담은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출애굽기 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평범한 목자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20)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도구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이후 재앙과 출애굽 사건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14–115.

출애굽기 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장엄한 승리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전에 여러가지 재 앙을 일으킬 때 사용되었던 그 지팡이가 이제는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갈 수 있는 골짜기를 열었고, 그 골짜기에서 이집트 군대는 수장되었습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Ex 14:16.

요한복음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시편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145: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한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다. 모세는 목자였기 때문에 원래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보잘것없는 지팡이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러한 성경의 스토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우리의 재능과 경험과 노력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용하시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불러내셨고,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도록 명령하신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해야 하며,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성도의 진정한 삶의 목적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감격과, 나를 기꺼이 사용하신다는 기쁨이 넘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맥락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마음껏 드러내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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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2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5) - 주께서 주신 동산에


1. 가사 살펴보기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내 사모하는 내 주님께 

땅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땅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 안고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 길 예비하라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2. 곡 소개

찬양은 고형원씨의 곡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충실하며 헌신하겠다라는 고백과, 그러한 신실한 섬김 가운데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겠다는 재림 신앙을 아름답게 표현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이 말씀은 창세기 1 28절에 나오는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줍니다. 인간은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듯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분의 창조 세계를 돌봅니다. 인간은 다스릴 권능을 가졌고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합당한 방식으로 다스리도록 지시 받은 것입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Ge 2:15.

 

시편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편 96: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96:12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96:1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영광의 왕께서 오심에 대해 온 피조물이 응답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신다라는 것은 시편 98 9절에서 비슷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에서 그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Ps 96:11–13.

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고대 세계에서도 큰 건물은 반드시 시험과 승인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건축 계약서에는 검사일이 언제인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 검사일을 가리킬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정확한 표현, 그 날이 밝히리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종말론적인 검사일, 즉 건축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복음의 기초 위에 어떻게 건축했는지를 조사하실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F. Alan Tomlinson, “1 Corinthi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1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과 그 열매를 주님 앞에 드릴 날을 고대하는 소망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이 땅을 맡기셨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간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사명이다. 성경은 성도의 삶을 결코 꽃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편은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다 라고 말하면서 성도의 삶이 결코 녹녹치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의 결산을 주님 앞에 드릴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죽음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중에 어느 것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복음 위에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주님께서 평가하실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오늘 하루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그날을 기대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기다리는 그 영광스러운 마지막 날은, 우리가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고 또한 감격적일 것이다. 우리에게 확정된 그 미래를 바라 볼 때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또한 주님께서 크게 칭찬하실 그 날을 기대하며,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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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7일 수요일

팀 켈러에게 배우다 (10) - Sarah and the Laugh / 가장 연약한 자에게도 놀라움(Wonder)을 베푸시는 분

 


* Sarah and the Laugh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것과, 그것을 다시 읽고 정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마 몇배의 수고는 더 들어가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너무나 달콤하고 풍성합니다. 이번 설교는 열번쯤 들은 이후에 원고를 확인하고 정리하였고 더 풍성한 이해와 감격을 얻었습니다.

좋은 문학 작품은 행간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 말씀 안에는 수 많은 행간이 존재합니다. 한절과 한절 사이에 풍성하게 담겨진 의미들이 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그런 행간을 읽어내는데에 탁월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청중을 끌어당기는 최고의 매력입니다. 좋은 주석들을 읽어내는 것도 이러한 능력을 얻는 방법이겠지만, 오랜 고된 사고의 훈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설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장면입니다. 저도 이 본문은 꽤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했다고 자부심이 있었는데,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보니 저의 사고의 수준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라고 느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하나님께서는 단지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사라에게 분명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잘 드러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단지 웃었다라는 사실 자체만을 이해하고 있었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라를 사랑하시고 부드럽게 그녀를 회복시키시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분명히 사라이며, 하나님께서 그녀를 만나시고 그녀를 변화시키십니다.


오늘 말씀을 풀어가시는 논리는 언제나처럼 아주 섬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제는 성관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증, 그리고 절망으로 인해서 부부 사이의 친밀한 관계까지 잃어버린 사라를 배려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사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너무나 따뜻한 분이십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찾아오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버지나 혹은 존 번연에게 그러하셨던처럼, 엄위하신 하나님 그리고 죄를 심각하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라에게처럼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처럼, 한 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순수한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 두가지를 믿는 것이 성도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보수적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폭이 넓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그 넓이에 대한 설명이 참 좋았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 중심적인 관점으로 하나님의 일하심과 다른 이들을 보지 않고, 나의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새롭게 신뢰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설교의 전반적인 흐름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일하시는 "Wonder"에 대한 이해와 추적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창세기 18장 14절을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팀켈러 목사님은 여기에서 "능하지 못한" 이라는 것이 사실은 "Wonderful" 번역이 되어야 함을 설명합니다. 이 부분이 이 설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오셔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믿기에는 너무 좋은 너무나 wonderful한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C.S. 루이스가 그러한 것처럼, 팀켈러 목사님 역시 복음의 놀라움을 이 설교를 통해서 강조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최고의 강점입니다. 복음을 복음답게 이해하고 확신 가운데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끊임없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내가 해야 하는 그 어떤 것으로 변질시킵니다. 저 역시 그러한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비온 뒤에 물이 고인 더러운 곳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왜 해변가에 가서 놀지 않냐고 물어보는 루이스의 비유는 굉장히 유명한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그리고 상상조차 뛰어넘는 은혜를 설명하는 탁월함이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죄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축소시키며 그분은 이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가장 놀라운 것이며,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깨닫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러한 놀라움을 항상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놀라면서 듣는 미녀와 야수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 복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최근의 저의 설교에도 약간 다른 표현들로 이 내용을 집어 넣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복음에 대한 놀라움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라를 사랑하시고 그녀의 믿음을 통해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지를 설교를 통해서 논증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비난하며 자기 스스로에게조차 실망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그렇게 놀랍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가고 그분을 의지해야 함을 설명합니다. 

설교의 원고를 읽으면서, 어떤 문장들과 논리는 마치 황금의 실로 엮어 놓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한 문단에서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는 논리 구조를 너무나 아름다워서, 비슷하게라도 한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인생에 큰 기쁨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팀켈러 목사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약점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결국 배운 것은, 놀라움(Wonder) 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놀라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서 놀라고, 그분의 부드러움과 그분의 설득과 그분의 일하심에 놀라는 것입니다. 평생동안 이러한 복음의 본질을 전하고, 또한 저의 마음에 은혜에 대한 놀라움과 감출 수 없는 감격이 넘처나기를 기도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1/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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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5일 일요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실함 / 사무엘상 17장 1-23절 설교

 



설교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익숙하고 또 성도님들이 익숙하신 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본문을 놓고 씨름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면서 큰 은혜입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고민하고, 또 그 안에서 영적인 원리들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단순히 주해의 작업이 아니라 성도님들을 위하여서 영적인 원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주해가 매우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목회적으로 그것을 넓게 접근하는 태도도 필요한 듯 합니다.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것은,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전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현재 주어진 그의 삶에 대한 전념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큰 행복이고,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고난과 아픔이며 끊없는 도전과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한뼘도 자라지 않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 역시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시도하고 싶지 않다는 약한 마음이 종종 듭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궁극적인 삶의 진정 의미이기 때문에, 설교를 준비했고 저에게 적용하였습니다. 

* 사무엘상 17장 1-23절 설교문

오늘의 말씀은 어제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는 하나님을 버린 사울 왕 대신에 여호와를 향한 아름다운 중심을 가진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가 막내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은 사울로부터 떠나고 악신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 때에 사울은 큰 회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 어떤 스토리를 기대하시고 계십니까? 저는 16장부터 사실 이어지는 스토리 속에서, 다윗이 당당하게 왕으로 자리 잡는 스토리를 기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경우에는, 사무엘상 10장에서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바로 그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그를 왕으로 추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바로 세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긴박한 전쟁의 스토리 속으로 다윗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골짜기를 중간에 놓고 서로 마주보고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가운데 거인인 골리앗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의 키는 아마도 2미터를 훌쩍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엄청난 갑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방패든 사람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임에 분명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마치 전차와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했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명이 나와서 자기를 이기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사울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울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앞에 나가 싸울 사람으로 사울을 뽑았지만, 정작 온 나라의 가장 큰 위기가 닥쳤을 때에 사울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큰 두려움에 사로 잡히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사울에게 왜 두려움이 찾아왔을까? 사무엘상 11장으로 잠깐 돌아가보면 그가 왕으로 세워진 직후에 암몬 자손이 쳐들어와서 백성을 협박했습니다. 그때에도 오늘 본문과 매우 유사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구원할 자가 없었습니다. 백성이 힘이 없어서 소리 높여 울 때에 11장 6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라고 말씀하시지 

무슨 의미입니까? 방금 왕으로 세워진 사울왕이 그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 되고 그분의 뜻이 사울의 뜻이 되었을 때에는, 사울왕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고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없이 능히 대적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사울은 어떤 상태인가? 16장 14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상 다른 모든 조건들은 동일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왕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울의 앞에는 대적들이 동일하게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하였을 때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신이 떠났을 때에는 그는 도망치고 숨는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 과거로 돌아가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백성을 인도해야 했을 때에 여호수아가 염려하며 걱정하며 미래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7-8절 말씀입니다.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음의 담대함이라는 것은 혹은 용기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가진 조건에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며, 여호와의 편에서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으로 부터 진정한 용기와 담대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하여서 용기를 잃고 방황할 때 마다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기를 힘쓰면서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여호와의 편에서서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전반부에서는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는 사울이 집중적으로 조명이 되었다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이어서 다윗이 등장합니다. 12절에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다" 그리고 14절에 보니 "장성한 삼인은 사울을 쫓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두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형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인간 왕인 사울 왕을 따라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울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고 사울의 병사였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방금 살펴본 그 골짜기 앞에서 대치 상황이 무려 40일 동안이나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군인들은 대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가져온 개인 물품으로 전쟁터에서 생활을 감당하곤 했었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음식이 떨어지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다윗의 아버지가 다윗을 불렀어 형들에게 곡식을 가져다 주라고 다윗에게 시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 16장에 말씀에 보면 "다윗은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였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그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에게 맡겨진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음식을 챙겨가서 형들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굳이 다윗이 아니더라도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만약에 다윗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저 같으면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누구인데 이런 하찮은 일을 시키시는가? 내가 겨우 형들의 도시락이나 가져다 줄 사람인가? 이런 하찮은 일은 종에게 시켜서 해도 되지 않는가?" 저 같으면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20절에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놀라운 것은, 다윗은 여전히 양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평소에 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그의 신분이나 그의 지위는 완전히 변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버리거나 혹은 소홀히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놀라운 것은, 그가 일찍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라고 했을 때에 늦장을 부리거나 귀찮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일어났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다윗이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의 태도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처럼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현재의 상황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금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일로 알고 매우 성실하게 그것에 전념하여 감당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평범한 삶을 진실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념"이라는 책의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전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꾸준하게 전념하면서, 결국 그것을 통해서 개인의 깊이와 긴밀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주장을 하나 인용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전념하는 것은, 큰 위험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은,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걸을 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지루함boredom이다. 오랫동안 전념하려면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둘째는 산만함distraction이다. 길을 가다 보면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계속 눈에 띈다. 셋째, 불확실성uncertainty도 깊이를 위협한다. 내가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넷째는 유혹temptation이다. 이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소년 다윗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 책 전념의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현재 다윗의 상황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그가 자신이 전념하던 삶을 내팽개치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왕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왕권을 위해서 그것만을 쳐다보면서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가 보여준 것은, 현재 자신에게 맡겨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여전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전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양을 치는데 전념하는 자로서, 그리고 아버지의 새로운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소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 사도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현재 우리가 살아야할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과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평소의 생각과 성경의 말씀은 완전히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의심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전념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과연 좋은 열매들을 허락하실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마땅히 지금 전념해야 할 것을 너무나 쉽게 내팽개쳐버린다는 것입니다. 

전념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앙의 훈련과 반복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을 끊임없이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땅한 것에 힘을 쓰기 보다는, 허망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현재 맡겨진 일에 충실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멋진 것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쳐다보면서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열매는 반드시 얻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오늘 이 시간에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가, 낙심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정진하고 있는가, 이것을 물으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다윗이 자신의 모든 상황에서 마땅히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한 것 처럼 우리에게 그런 믿음의 삶에 대한 전념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귀한 것으로 부어 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힘써 행하고 진실하게 하루를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삶의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성령 충만을 구합니다. 저의 마음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물리쳐주시고 오직 주의 말씀을 힘있게 붙들고 순종함으로 삶의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저에게 지금 맡기신 모든 것들을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땅히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에 오늘 하루를 전념하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하되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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