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5일 일요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실함 / 사무엘상 17장 1-23절 설교

 



설교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익숙하고 또 성도님들이 익숙하신 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본문을 놓고 씨름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면서 큰 은혜입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고민하고, 또 그 안에서 영적인 원리들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단순히 주해의 작업이 아니라 성도님들을 위하여서 영적인 원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주해가 매우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목회적으로 그것을 넓게 접근하는 태도도 필요한 듯 합니다.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것은,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전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현재 주어진 그의 삶에 대한 전념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큰 행복이고,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고난과 아픔이며 끊없는 도전과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한뼘도 자라지 않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 역시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시도하고 싶지 않다는 약한 마음이 종종 듭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궁극적인 삶의 진정 의미이기 때문에, 설교를 준비했고 저에게 적용하였습니다. 

* 사무엘상 17장 1-23절 설교문

오늘의 말씀은 어제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는 하나님을 버린 사울 왕 대신에 여호와를 향한 아름다운 중심을 가진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가 막내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은 사울로부터 떠나고 악신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 때에 사울은 큰 회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 어떤 스토리를 기대하시고 계십니까? 저는 16장부터 사실 이어지는 스토리 속에서, 다윗이 당당하게 왕으로 자리 잡는 스토리를 기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경우에는, 사무엘상 10장에서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바로 그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그를 왕으로 추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바로 세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긴박한 전쟁의 스토리 속으로 다윗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골짜기를 중간에 놓고 서로 마주보고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가운데 거인인 골리앗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의 키는 아마도 2미터를 훌쩍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엄청난 갑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방패든 사람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임에 분명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마치 전차와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했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명이 나와서 자기를 이기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사울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울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앞에 나가 싸울 사람으로 사울을 뽑았지만, 정작 온 나라의 가장 큰 위기가 닥쳤을 때에 사울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큰 두려움에 사로 잡히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사울에게 왜 두려움이 찾아왔을까? 사무엘상 11장으로 잠깐 돌아가보면 그가 왕으로 세워진 직후에 암몬 자손이 쳐들어와서 백성을 협박했습니다. 그때에도 오늘 본문과 매우 유사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구원할 자가 없었습니다. 백성이 힘이 없어서 소리 높여 울 때에 11장 6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라고 말씀하시지 

무슨 의미입니까? 방금 왕으로 세워진 사울왕이 그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 되고 그분의 뜻이 사울의 뜻이 되었을 때에는, 사울왕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고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없이 능히 대적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사울은 어떤 상태인가? 16장 14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상 다른 모든 조건들은 동일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왕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울의 앞에는 대적들이 동일하게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하였을 때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신이 떠났을 때에는 그는 도망치고 숨는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 과거로 돌아가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백성을 인도해야 했을 때에 여호수아가 염려하며 걱정하며 미래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7-8절 말씀입니다.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음의 담대함이라는 것은 혹은 용기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가진 조건에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며, 여호와의 편에서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으로 부터 진정한 용기와 담대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하여서 용기를 잃고 방황할 때 마다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기를 힘쓰면서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여호와의 편에서서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전반부에서는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는 사울이 집중적으로 조명이 되었다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이어서 다윗이 등장합니다. 12절에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다" 그리고 14절에 보니 "장성한 삼인은 사울을 쫓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두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형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인간 왕인 사울 왕을 따라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울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고 사울의 병사였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방금 살펴본 그 골짜기 앞에서 대치 상황이 무려 40일 동안이나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군인들은 대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가져온 개인 물품으로 전쟁터에서 생활을 감당하곤 했었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음식이 떨어지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다윗의 아버지가 다윗을 불렀어 형들에게 곡식을 가져다 주라고 다윗에게 시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 16장에 말씀에 보면 "다윗은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였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그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에게 맡겨진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음식을 챙겨가서 형들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굳이 다윗이 아니더라도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만약에 다윗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저 같으면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누구인데 이런 하찮은 일을 시키시는가? 내가 겨우 형들의 도시락이나 가져다 줄 사람인가? 이런 하찮은 일은 종에게 시켜서 해도 되지 않는가?" 저 같으면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20절에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놀라운 것은, 다윗은 여전히 양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평소에 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그의 신분이나 그의 지위는 완전히 변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버리거나 혹은 소홀히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놀라운 것은, 그가 일찍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라고 했을 때에 늦장을 부리거나 귀찮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일어났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다윗이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의 태도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처럼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현재의 상황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금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일로 알고 매우 성실하게 그것에 전념하여 감당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평범한 삶을 진실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념"이라는 책의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전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꾸준하게 전념하면서, 결국 그것을 통해서 개인의 깊이와 긴밀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주장을 하나 인용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전념하는 것은, 큰 위험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은,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걸을 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지루함boredom이다. 오랫동안 전념하려면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둘째는 산만함distraction이다. 길을 가다 보면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계속 눈에 띈다. 셋째, 불확실성uncertainty도 깊이를 위협한다. 내가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넷째는 유혹temptation이다. 이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소년 다윗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 책 전념의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현재 다윗의 상황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그가 자신이 전념하던 삶을 내팽개치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왕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왕권을 위해서 그것만을 쳐다보면서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가 보여준 것은, 현재 자신에게 맡겨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여전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전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양을 치는데 전념하는 자로서, 그리고 아버지의 새로운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소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 사도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현재 우리가 살아야할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과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평소의 생각과 성경의 말씀은 완전히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의심을 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전념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과연 좋은 열매들을 허락하실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마땅히 지금 전념해야 할 것을 너무나 쉽게 내팽개쳐버린다는 것입니다. 

전념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앙의 훈련과 반복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을 끊임없이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땅한 것에 힘을 쓰기 보다는, 허망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현재 맡겨진 일에 충실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멋진 것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쳐다보면서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열매는 반드시 얻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오늘 이 시간에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가, 낙심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정진하고 있는가, 이것을 물으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다윗이 자신의 모든 상황에서 마땅히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한 것 처럼 우리에게 그런 믿음의 삶에 대한 전념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귀한 것으로 부어 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힘써 행하고 진실하게 하루를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삶의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성령 충만을 구합니다. 저의 마음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물리쳐주시고 오직 주의 말씀을 힘있게 붙들고 순종함으로 삶의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저에게 지금 맡기신 모든 것들을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땅히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에 오늘 하루를 전념하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하되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uymeacoffee.com/jungjinbu5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3년 9월 업데이트)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