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멀리 할 때에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탄식을 일으키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참된 것의 구별을 잃어버리고, 잔인함과 위선으로 가득 채운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악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 가운데 마땅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 하셨고 앞으로도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라는 것은 좋은 설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으로 우리 삶 가우데 역사하시며, 또한 우리가 아주 예민하게 깨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이번 설교가 굉장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울의 무너진 모습이 새롭게 보이고, 다윗의 신실함이 새롭게 보이고, 또 하나님을 떠난 자를 철저하게
낮추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신앙의 길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고, 위선을 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히쓰는 것입니다. 그 길을 정말 진지하게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 사무엘상 19장 1-24절 설교문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에 그의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죽인 자가 만만이라면서 그를 칭찬했습니다. 사울은 자신보다 높아진 다윗을 심히 질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 하였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사위로 삼겠다는 것을 미끼로 그를 전쟁터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지혜로웠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면서 평생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1절에서 7절까지는 “요나단의 변호”, 그리고 8절에서 17절까지는 “미갈의 변호” 그리고 18절에서 24절까지는 “사울의 옷을 벗기시는 하나님” 이라고 소제목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이 내용으로 함께 말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19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적대감은 누가 봐도 분명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인격적으로 인격적으로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사울의 모습은 사울로 부터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 때에 그의 인격과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게 추락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의 아들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옳고 그름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듣고서 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게 숨어 있으라고 말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담대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4절에 하반절이 그 핵심입니다.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매우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울 명령과 행동은 분명한 범죄라는 것을 요나단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행하는 일은 분명한 범죄이지만 다윗은 사울에게 범죄한 일이 없고 오히려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심히 선하게 대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울에게 말하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6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응이고 그리고 뜻밖의 반응입니다.
이 장면에만 집중해서 보자면 사울은 하나님께 맹세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 같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꾼 것 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이 이어지는 맥락에서 사울의 상태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울의 상태라는 것은 사울로부터 하나님께서 떠나신 상태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거짓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그 사람의 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역시나 사울이 하나님을 걸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성경은 바로 이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 말씀 속에서 다윗의 신실함과 사울의 거짓이 계속 대조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다윗은 미련해 보일 만큼 사울을 믿고 있습니다. 그는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그를 떠나지 않고 그의 옆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블레셋으로 부터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집에 계실 때에손에 칼을 계속 들고 계신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은 사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광기와 살기가 넘치는 지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 와중에 사울을 엄습한 악령으로 부터 그를 돕기 위해서 다윗은 수금을 타고 있습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의 단창을 자신을 돕고 있는 다윗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급하게 그 자리를 피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사울은 사람을 능숙하게 속이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말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었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는 여호와의 뜻을 대적하는 자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여호와의 다스림을 거절하는 자였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신앙의 고백과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분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언 26장 24절에서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악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무섭고 철저한 악인이 어떤 악인인가? 그럴 듯한 신앙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속 마음을 감추는 겉으로만 그럴 듯 하게 자신을 꾸미는 악인이 진짜 악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인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악을 회중 앞에 드러내겠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히브리서 10장 2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를 믿고 그분의 보혈을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 가운데 진실하고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셨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다른 이를 속이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성으로 남아 있는 위선과 거짓을 날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다운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과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야기의 핵심은, 사울은 다윗을 해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한 맹세를 뒤집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니,
사울이 끝까지 다윗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형편이 얼마나 위급하고 긴박했던지,
다윗이 도피했다 도망했다 라는 표현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은 극도로 다윗을 미워하고 질투했지만, 오히려 사울의 아들과 그의 딸은 다윗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리더인 아버지가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래도 그 가정에 영적으로 바로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상을 침대에 뉘여 놓고 다윗처럼 꾸며서 다윗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서 다윗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사울은 분노하며 딸에게 책임을 추궁했지만,
미갈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다윗을 도망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가 충성심을 최대한 발휘해서 장인의 옆을 지키려했지만, 사울의 죽음의 위협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니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갔다,
그리고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다, 그리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욧이라는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8마일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자신의 위협을 피해서 도망을 갔지만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행방을 알리자, 바로 나욧으로 전령들을 보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사울의 전령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대신하여서 그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엄한 왕의 명령을 받아서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왕의 전령이기 때문에 사실상 왕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다윗을 찾아서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이 전령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무리가 예언을 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리더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하나님의 영이 그 사울의 전령들에게도 임하였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사울의 명령을 받고 다윗을 죽이려 하던 전령들이 모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사울이 분노하여서 두번이나 더 전령들을 보냈지만, 모두가 동일한 현상에 사로잡혔습니다. 보다 못한 사울이 직접 다윗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흥미로운 것은 22절에 보니,
마치 사울은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에게 다윗의 행방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울이 라마 나욧에 도착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사울조차도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그는 심지어 걸어가면서 예언을 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4절에는, 아주 충격적인 말씀이 등장합니다.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지금 사울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살아있는 이스라엘의 실세였습니다. 그는 질투에 눈이 멀고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조차 서슴치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부하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세자였고, 아무도 그의 뜻을 막을 수 없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무엘 앞에 서자,
사실은 사울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처음에 라마 나욧으로 갈 때에 무슨 옷을 입고 갔겠습니까? 당연히 왕의 옷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갔을 것입니다.
왕복이라는 것은 왕의 신분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고, 그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무엘 앞에 다다랐을 때에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에게 부으시고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옷을 벗겨 버리셨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왕 위에 진짜 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왕을 세우고 다시 폐하는 모든 권세는 사울왕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살기 등등하여 다윗을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다윗의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은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을, 사울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 명백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그것은"감히 여호와를 대적할 자가 없도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여호와를 버린 사울은 끊임없이 살기를 품고 다윗을 죽이려합니다.
겉보기에 다윗의 처지는 너무나 처량한 것입니다.
그는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연 죽음이 그의 바로 앞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그를 추적하고 있지만, 감히 사울 왕 조차 여호와를 이길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강권적으로 그가 예언하게 하시며 그의 옷을 벗겨버리심으로서, 감히 여호와를 대적할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무엘 상을 열어가는 중요한 기도인 사무엘상 2장 10절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왕으로 삼으시며, 그를 대적하는 이를 철저하게 낮추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사울의 추락을 보이시면서 그것을 실제로 역사 가운데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인가?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인인 나를 용서하시며 이제는 자유롭게 하시는 것 그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들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역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 백성은 진정한 자신의 왕을 마땅히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온 세상이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리 악인들이 횡횡하며 자신들이 왕인 것 처럼 행동하며 그들이 의인들을 핍박하고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이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온전한 왕이 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겠습니까? 그것은,
살아계신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의 겸손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담대함을 가지는 삶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우리의 주인으로서 사람을 높이시고 낮추시며,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재력과 어떤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 앞에 한 없이 겸손하여지고 그분을 높이고 그분 앞에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다윗처럼 여호와를 따르고 여호와의 편에 선다면, 우리의 삶의 고난 속에서도 무한한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편에 우리가 당당하게 서 있다면, 우리의 삶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친히 돌보시고 지키신다는 그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도 주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한없는 겸손한 마음으로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모든 삶 속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삶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매일 저의 삶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왕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그 어떤 인간도 감히 여호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왕 되신 주님의 신하로 종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자 되게 하시고,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그리고 주님의 편에 선 자로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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