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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6일 수요일

'생명'을 건 말씀을 만나다 - 틴데일 성경 500주년 전시회

* 소래선교회 (게이트신학원) 이사회

볼티모어 교회에서 이사 교회로 섬기는 소래선교회 이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아틀란타 새교회에서 귀한 목사님들을 처음 뵙고 교제하면서 많은 부분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시는 게이트신학원의 1년 사역을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 동안 특별히 좋았던 것은, 에모리 대학에 속한 캔들러 신학교를 방문한 것입니다. 장로교 출신 목회자인 저로서는 거의 이런 기회를 가질 수가 없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리교 신학교에 처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틴데일 성경 500주년 전시회

신학교를 한번 둘러보는 정도를 예상하고 갔는데, 마침 좋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That the scripture should come to light': William Tyndale and 500 Years of the English New Testament, 윌리엄 틴데일의 영어 성경 번역 5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였습니다.  



학교의 시설과 분위기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현대식 건물 안에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었고, 그 공간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공부한다면 더 진지하게 신학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속으로 감탄하며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전시 공간도 참 좋았습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수준 높은 전시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성경 번역본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그러나 여전히 압도적 힘을 가진 과거의 성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찼습니다. 

루터의 번역 성경과 틴데일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루터의 번역 성경입니다. 중세의 가장 어두운 시대 속에서 목숨을 건 루터의 성경 번역이 없었다면, 종교 개혁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단을 떠나 이 시대의 모든 개신교 성도는 루터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루터의 성경 번역은, 틴데일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벌게이트 성경과 틴데일

벌게이트 성경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라틴어로 쓰여진 성경이고,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방 교회의 유일한 표준 성경이었습니다. 귀한 번역 성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성경 원문에서 멀어진 부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오류가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틴데일은 이러한 시대 속에서 벌게이트 중심의 전통을 넘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서 직접 영어 성경을 번역하며,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게 됩니다. 


* 번역의 쟁점: 회개하라 vs 고해성사하라

특별히 쟁점이 되는 것은 '회개하라'의 번역입니다. 라틴어 번역은 'paenitentiam agite'라고 번역함으로써, 보속을 행하는 것, 즉 고해성사라는 참회 의식을 하라는 뜻에 가깝게 번역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면의 진정한 돌이킴이 아니라, 교회가 정한 예식이나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당시에 널리 사용되던 라틴어 신학 사전 자체가, 이러한 벌게이트 번역의 의도를 그대로 담고 있었음을 전시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μετανοεῖτε (회개하라)

그러므로 이 전시회가 보여주는 것은, 성경의 번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분명한 목적을 가지는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성경 번역은 성경의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보존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틴데일은, 헬라어 μετανοεῖτε (metanoeite)를 'repent'로 번역합니다. 외적 의식이 아니라 '마음의 돌이킴'이라는 뜻을 성경 원문 그대로 드러내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 틴데일의 번역은, 마태복음 3장 2절을 'Repent, the kyndome of heuen is at honde'라고 번역합니다. 



* 틴데일의 순교

틴데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보전하여 번역한 그 댓가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536년 10월 이단 혐의로 인해 순교합니다. 그는 기둥에 묶여 교살 당하고 불로 태워집니다. 그리고 그는 삶의 마지막에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순교의 장면은, 전시장 한편에 펼쳐진 존 폭스의 저서 속 삽화 가운데 생생하게 증언되고 있었습니다. 


* 순교 이후 틴데일의 선한 영향력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는, 어쩌면 그 사람의 죽음 이후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틴데일의 수고와 헌신, 그리고 그의 생명을 건 번역과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아서, 영어 성경을 금지했던 영국의 헨리 8세가 모든 교회에 영어 성경의 비치를 명령합니다. 또한 이후 틴데일 성경은 가장 중요한 영어 번역본 중 하나인 킹 제임스 성경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틴데일의 삶을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셨고, 지금도 그의 업적은 주님의 교회에 큰 양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라

전시회장을 나오는데, 잠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 했습니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그리고 디지털로 편리하게 보는 그 말씀이, 누군가의 삶과 생명에 빚지고 있음에 너무나 깊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소중히 여긴 것 만큼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그 말씀 한글자 한글자를 진리로 그리고 생명으로 마음에 받고 있는가? 

목회자는 본질적으로 설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회자 이전에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홀로 정직하게 서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회는 제 인생에 가장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인생에 여러 목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저 말씀 앞에 엎드리고, 그것을 마음에 담고, 깊이 받아들이고 힘껏 묵상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고 붙들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 행복의 전부가 될 것입니다. 섭리 속에서 저를 인도하시고 귀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9월 16일 금요일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에 빠져들었습니다 of GOSPEL IN LIFE by AntennaPod

저의 청년시절을 돌이켜 보면, 수련회에서 항상 은혜의 정점을 맛보고, 그리고 다시 침체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우리는 보통, 은혜의 정점을 맛보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다시 경험합니다.

그런데 저의 삶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꾸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아마 몇년 동안 집중적으로 NIV 드라마 성경을 듣고 다닌 것이 전환점이 된 듯 합니다. 그때 부터 제가 깨달은 중요한 한가지는,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주심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말 치열한 은혜를 향한 갈망과 추구가 매일마다 새롭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넓은 바다 앞에서 발만 담그고 살았는데, 이제는 다리까지 이제는 허리까지 은혜의 바다 속에 들어간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은혜를 크게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마음에 고통도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이상의 심적인 아픔입니다. 삶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족,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그 사랑에 비할 때에 저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마음과, 어떻게든 그 간격을 좁혀 보고자 하는 열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마치 능력이 부족한데 한계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온 마음을 다해서 부단히 애를 쓰는 그런 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은혜 받은 제가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언어 자체의 신비"입니다. 자음과 모음이 모아져 글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자가 모아져서 결국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함께 하여 논리 구조를 만들어집니다. 글자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어떤 생각과 느낌과, 정확하게 말하면 "저라는 존재 자체"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기록되고 동시에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제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은, "설교의 문단과 문단 사이에 존재하는 논리적인 흐름의 신비" 입니다. 완전히 여기에 빠져있습니다. "신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논리란 무엇일까? 왜 설득적으로 들릴까? 왜 감동적으로 들릴까? 왜 이렇게 흐름이 부드러울까? 왜 여기서는 그렇게 논리를 전개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수 많은 궁금증들 속에서 신비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목회자의 설교의 그 흐름과 연결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그 위대하심을, 살짝 엿보는 기분입니다. 

저는 원래 원래 출퇴근 시간에는 Core Christianity를 항상 들었는데, 탁월한 프로그램입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성도님들의 수 많은 신앙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해주고 상담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ask pastor John 보다 더 대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앙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해드립니다! Core Christianity 팟케스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0/12/core-christianity.html

* Core Christianity의 3주년을 함께 축하합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9/core-christianity-3.html

그런데 거의 3년을 듣고 다녔더니 그것의 한계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에 여러가지 질문을 받다 보니, 깊이 있는 답변을 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질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답변이 이제 어느 정도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저의 출퇴근 시간을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토니 에반스 목사님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깔끔하고 탁월한 논리력, 그리고 성도님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성경의 말씀이라는 면에서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그래서 스터디 바이블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분 설교를 먼저 들었습니다. 좋았지만 또 한계가 보였습니다. 매우 보수적인 목사님이시지만 아무래도 개혁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에, 설교 가운데 핵심적인 논리를 펼쳐 나가는데 있어서 어떤 한계점이 보였습니다. 그때 팀켈러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찾아 보았습니다.

원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팟 케스트를 찾아보니 거의 100편의 설교가 무료로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옛날 것부터 들어보니 거의 10년전 설교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Core Christianity 를 구글 팟 케스트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구글 팟 케스트 앱은, 특정 에피소드를 다운로드 받은 이후에 9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가 되더군요. 데이터 사용에 상관 없이 팀켈러 목사님 설교 100편 정도를 모두 셀폰에 넣고 가지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앱을 찾아 보았습니다. 광고가 붙지 않고 깔끔하게 화면을 볼 수 있는 팟케스트 앱을 찾았습니다. 기능면에서도 구글 팟 케스트 앱에 비교했을 때에 뒤쳐지지 않습니다.

* antennapod


안테나팟은 안드로이드 앱에서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설치를 하면 아래의 화면처럼 셀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단의 검색창에다가 Tim Keller라고 검색하면 그 아래의 그림처럼 GOSPEL IN LIFE 에서 제공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편 정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원래도 워낙 설교를 잘하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유명하실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영어가 조금은 더 늘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좀 더 신앙적인 면에서 깊이를 가져서 그런 것일까요? 과거와는 또 비교할 수 없을만큼, 들으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잘하는 설교는 어떤 설교일까요?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설교자가 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이다" 멋있는 설교는 별로 어렵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데 잘하는 설교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상하게 제 마음에 자꾸 그런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분이 설교를 하는 것을 들으면, "아, 저분은 정말 성도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심지어 책망하는 설교라 할지라도 그것이 달콤하게 들립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숨소리"도 은혜롭게 들렸습니다. 제 스스로 놀랐습니다. 아니 숨소리 조차 따뜻하게 들리다니? 이건 거의 사랑에 빠지는 것 아닌가? 뭐랄까요, 꼭 이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해주고 싶을때 나오는 그런 조금은 긴장되지만 기대감에 가득한 의미 있는 숨소리라고 느껴졌습니다. 

사실 설교는, 목회자 한명의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학, 삶, 목회, 인생, 눈물, 기쁨, 고민, 환희 그 모든 것이 그 설교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설교 안에 그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 본문의 단어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장으로 넓혀지고, 문단으로 넓혀지고, 성경 전체로 넓혀지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까지 넓혀져서 품고 설교한다는 것은, 아마도 극소수의 목회자들만 가능한 경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단으로,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조금 더 그리고 삶에서 조금 더 넓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참 좋았습니다. 큰 스승이라고 느꼈습니다. 충분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집중된 원포인트 설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 구조에 딱히 구애 받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원고를 준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어떤 받은 영감 자체를 그대로 말하는 것 처럼 느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필요한 주해에서 부터 시작해서, 성도님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전체에 대한 조망까지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혹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집중력이 좋았습니다. 사실, 보통의 목회자들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분은 적어도 나와는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자들과 당대의 학자들의 논리의 허점들을 지적하면서, 왜 성경이 진리인가, 왜 하나님만이 참된 분이신가를 논증하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논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딱딱한 것인데, 그것조차 굉장히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책으로 읽어보면, D.A. 카슨의 영어는 너무 어렵습니다. 마이클 호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팀 켈러 목사님의 영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내용이나 논지 자체는 복잡하더라도 언어 자체를 쉽게 사용하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더욱 설교가 마음에 와 닿는 듯 합니다. 

단지 다섯편을 들었을 뿐인데도, 배우고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C.S. 루이스가 사용했던 논리들이 설교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저 역시 다시 루이스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성과 무조건성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의 성경적인 이해, 다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 논리를 어느 정도로 펼쳐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어느 정도 예화를 논증적으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등을 단지 다섯편의 설교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정말 이분처럼 설교를 잘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언감생심"이라는 말이 생각 났습니다.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표절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분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면, 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설교는 결국 문단의 구조들로 연결되는 최종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한 문장 한 챕터 정도를 가져와서는 그 감동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전체 설교 한편을 그대로 표절하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신학교 처음 시절은, 마이클 호튼의 논리와 생각들로 제 마음을 채우던 시기입니다. 사실상 호튼의 신학과 논리 구조를 거의 가져다가 설교에 사용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로 제 마음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만큼 배울 수 있을지, 또 얼만큼 그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 과연 그것들이 제 설교에 깊이 있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전혀 현재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방향이 맞다면 전진하는 것만이 제가 좋아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글쎄요, 일단 100편의 설교를 두번 세번 정도 반복해서 듣고 난다면, 뭔가 그때에는 더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일단 2년 정도 들어보면 더 좋은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요? 행복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목표를 저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 동안에, 저에게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2021년 12월 4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을 시작하며 & GT 스터디 바이블 마태복음 저자 Michael Wilkins 소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면 좋겠지만, 자신이 처음 보는 분야에서 우리는 초보자입니다. 그것은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여전히 저는 종종, 사실은 매우 자주 제가 초보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면에서 언제나 배움이 설레이고 또 즐겁습니다. 

시편 묵상을 하면서 GT바이블의 저자를 살펴보았더니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GT바이블의 시편 저자인 David Gundersen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서 GT 바이블을 통해서 시편 묵상을 계획하면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시편을 시작하며 & GT 스터디 바이블 시편 저자 David Gundersen 소개

자 그렇다면 마태복음의 묵상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궁금해 졌습니다. 마태복음 편의 저자는 누구인가? 찾아보니 Michael Wilkins라는 분입니다. 

* Michael J Wilkins

이 분은 탈봇 신학교에서 가르치시고, 학위는 퓰러 신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으셨습니다. 특이하게 이분은 서던 신학교 출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분의 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The Concept of Disciple in Matthew’s Gospel: As Reflected in the Use of the Term maqhths" 입니다. 

저는 성경 신학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일단 제목이 아주 흥미로워 보입니다. 마태 복음에 나타난 제자의 개념을 분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라는 헬라어 단어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찾아보니 이 분은 본인의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셨더군요. 도서관까지 갈 시간은 없어서 찾지 못했지만, 마침 이 책을 리뷰한 북 리뷰가 있어서 읽어 보았습니다. 

* Book Reviews: Michael J. Wilkins, The Concept of Disciple in Matthew's Gospel as Reflected in the Use of the Term Mathētēs. Leiden: E. J. Brill, 1988. Pp. xi + 261

사실 외부 학술지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에서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재학생들을 위해서 이러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졸업 이후에는 지원을 끊는 것이 당연합니다. 

얼마 전에 졸업한 사우스웨스턴의 아이디로는 볼 수 없지만, 이미 오래 전에 졸업한 칼빈 라이브러리 아이디로 볼 수가 있네요. 칼빈을 졸업하기 전에 이러한 혜택을 설명해 주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누군가의 도네이션을 통해서 유지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칼빈 신학교의 관대함에 세삼 감사하게 되네요. 

일단 이분의 논문은 1986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이해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분의 논문은 단어 연구에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Michael J Wilkins는 제자라는 것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및 여러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안에서 제자에 대한 개념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를 살펴보았고 그것을 통해서 마태의 의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제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이 서평의 결론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하는군요. 

There are no real surprises here. In the portion of his study dealing specifically with Matthew, W. does not contend against any well-established views or uncover any unexpected new insights. He does, however, provide fairly systematic documentation for what numerous others have proposed on the basis of less detailed research.

이 서평을 미루어서 볼 때에, Michael J Wilkins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서 학계에 어떤 특별한 통찰력을 제공했다기 보다는, 기존의 연구를 좀 더 심화시킨 듯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한 것을 아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분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GT스터디 바이블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묵상하면서 어떤 유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저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의 마음 가운데에는, 성경을 묵상한다는 것이 어떤 기상천외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것 처럼 생각할 때도 종종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묵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것을 확인하고 또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성경을 성경 그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잘 정리하고, 단어부터 차근차근 분석하고 문장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것은 성경을 묵상하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 순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Michael J Wilkins는 유익을 주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학계에 마태복음의 권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GT 바이블을 준비하면서 분명히 최종 편집자인 Dr. R. Albert Mohler, Jr.가 신중하게 저자를 결정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분을 통해서 마태복음을 배우고 묵상하면서, 기본기를 단단히 다질 수 있으리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시편을 시작하며 & GT 스터디 바이블 시편 저자 David Gundersen 소개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공부를 잘해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를 잘 받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공부는, "진리에 대한 탐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공부라는 것을 학교 제도의 틀 안에 집어 넣기를 좋아합니다. 굉장히 심플하고 이해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위를 받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학위가 있으면 다방면으로 유익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청년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공부를 더 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항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학교를 가지 못하면 공부를 할 수 없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탐구"를 추구할 때에 일어납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부는 황홀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진리에 대한 탐구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배우는 것 자체도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드려서 도전할 만한 위대하고 아름다운 목표입니다. 

이미 원하는 학위를 다 받았지만, 오히려 제 마음에는 진리에 대한 탐구가 더욱 불타는 것을 느낍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약간 광인의 마음이 아닌가 스스로 염려할 정도입니다. 말씀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 한 이백년 정도는 살면 조금은 덜 아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결혼이야 말로 최고의 전환점이자 축복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제외한다면, 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것 배우는 그 모든 과정을 저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더 큰 전환점은, 스터디 바이블을 통해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좋은 저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글을 읽고 공부하고 또 묵상하고 설교하고 적용하면서 저는 사실상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저자들, 저의 신학과 교단적인 상황에 갇혀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글을 읽고 지적으로 그들과 교류하면서 저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이하 GT)는 저에게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많은 스터디 바이블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종합적으로 가장 본문을 잘 보여주는 귀한 책입니다. 창세기를 최근에 전체 읽고 묵상하면서 새롭게 창세기를 알게 되고 또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을 변화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원대한 목표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저는 약 칠년 정도 안에 성경 전체를 묵상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주에 한번은 시편 묵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럼 늦어도 약 사년 안에 시편 전체를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시편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마음이 막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GT에 대한 리뷰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이 스터디 바이블은 서던 침례 신학교 출신들이 주로 참여하였습니다. 성경 중심적인 보수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아주 좋은학교입니다. GT 바이블은 모든 필진에 대한 이름과 학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의 시편 묵상을 함께할 분이 누구인가 찾아보았습니다. David Gundersen 이라는 분이네요. 이분은 서던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BridgePoint Bible Church에서 섬기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은, 그 사람이 어디에서 공부했는가, 그리고 어떤 주제로 공부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찾아보니 David Gundersen은 The Master's Seminary에서 석사를 받았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이 오랫동안 총장으로 섬겨왔던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굉장히 보수적인 학교라고 이해할 수 있겠고, 그러한 좋은 영향을 Gundersen이 받았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Gundersen이 쓴 박사 논문은 어떨까요? 과거에는 어떤 분의 박사 논문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신학교 도서관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네요. 이분의 논문을 찾았습니다. 

* DAVIDIC HOPE IN BOOK IV OF THE PSALTER (PSALMS 90-016)

전체를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시편의 구조에 대한 논문입니다. 이분이 성경 신학을 전공하면서 구약 특별히 시편에 집중하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편에 대해서 GT바이블에 기고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문에 이런 내용으로 그의 논문을 시작합니다. 

Without Christ, the Psalms would be silent for me, and I would be silent about the Psalms. So I am first grateful that God rescued me in Christ, forgave my sins, and gave me a new song (and a new Psalter) to sing.

읽으면서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이분을 만난 적은 없지만,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사로잡힌 분입니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이분의 논문의 전체 내용은, 다른 학자들이 시편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자신이 집중한 시편 90-106편은 비록 다윗의 왕조가 망하는 어려움을 겪지만, 여전히 여호와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며 희망을 말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논문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Through his unfolding revelation God made known his plan to rule the world not through a godless monarchy or a kingless theocracy but a theocratic monarchy. The king he chose was David, and David’s line forever. This covenant will surely be kept, in the Psalter and beyond, because God always keeps his promises. A just Davidide will indeed rule the earth. His intentions will be pure (101), his afflictions severe (102), and his restoration glorious (103).

Gundersen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할 때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을 떠난 군주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적인 군주제를 통해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왕은 다윗의 혈통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Gundersen은 자신의 시편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시편에서 그리고 시편을 넘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편의 내용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시편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고백하고, 시편을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희망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분과 함께 시편을 공부할 때에 충분히 성경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묵상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묵상의 내용들을 보게 될까요? 가보지 않은 길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의 은혜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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