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모교인 합신을 방문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골 길에 한적한 곳에 있던 학교는 이제 그 높이를 가늠할 없는 빌딩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주변은 변했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당당하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합신은 언제나 저에게 따뜻함 입니다. 철없던 시절 그저 막내의 기쁨을 누리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때로는 숙제에 치여서 때로는 개혁주의 신학에 깊이 들어가서 감격하면서 그렇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의 근간이 바로 합신에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 섬기시는 이동열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교수님이 사우스웨스턴 신학교에서 PhD를 할 때에, 저는 DMin을 하면서 함께 교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합신 동문이기도 하고 저의 후배이기도 하지만,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저는 이교수님을 정말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학위를 받는다는 결과는 같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결과를 위하여 얼만큼 노력하고 얼만큼의 깊이를 만들어내는가는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이교수님은 ‘진짜’입니다.
합신에서 교수로 섬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정말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에서 누가 교수로 세워지는가는 학교와 교단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모교에서 탁월한 분이 섬기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교단과 한국 교회에 미칠 영향력이 너무나 기대가 되고 행복했습니다.
이교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적어도 제 마음에 감출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북클럽에 대한 저의 비전, 그리고 이후의 사역의 방향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은,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교수님이 ThM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북클럽 셋팅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깊이 있는 학습의 장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마음에도 저의 마음처럼 ’진정한 배움‘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습니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 몇줄을 더 이해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 안에서 통합적으로 그리고 내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서로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저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을에 책이 나오면 꼭 학교에서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천서도 부탁하였습니다. 저의 생각과 비전을 이해하고 함께 마음에 품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교수님의 발전된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4년전에 만났을 때 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깊어졌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본인이 주장하고 가르치고 설명하는 통합적인 배움을 스스로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계속적으로 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으로 기쁨이 가득해지고 또 마음이 풍성해 졌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유스 교육을 전공한 교수님의 입장에서, 저의 미래 목회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본인의 고민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세상의 유일한 목표는 ’자아실현‘이며 심지어 크리스천 조차 그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만들어 줄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의 부모는 자녀를 어딘가에 ‘맡기는’ 존재에 불과하며 바로 그 사실이 자신은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의 근본에서는 결혼의 회복, 그리고 가정의 회복이 최 우선에 놓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실천적인 방법으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복음적인 내용이 들어간 책을 매일 밤 아주 짧게라도 읽어주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저는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이 모든 것이 북클럽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도 저와 완전히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북클럽은 단순히 지적인 부분을 채우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이교수님의 용어를 빌리자면, thinker, feeler, doer를 모두 만족시키는 가장 탁월한 복합적인 교육 방식입니다.
또한 북클럽이야 말로, 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기반한 배움의 장입니다. 더 나아가서 가정을 살리기 위하여 부모를 양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부모를 성숙하게 만들 때에야 가정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북클럽은 한국 교회에 있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영역입니다.
자신이 최근에 가장 좋게 읽고 있는 몇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책 이야기를 할 때 교수님의 그 뜨거움이 좋았습니다. 서사의 위기, 사물의 소멸, 피로 사회, 경이라는 세계, 복음 집 열쇠, 뜻밖의 회심 등 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북클럽과 연결된다고 확신있게 이야기해줄 때에 제 마음에 감격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교수님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그 본질을 만지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단계에 올랐음을 보았기 땜문입니다.
이교수님은 저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후반부 그리고 내년까지 걸쳐서 읽을 책들이 정해졌습니다. 다시 연락을 나누고 교제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비록 또 잠시 헤어지지만 우리의 꿈과 하나된 마음은 계속 될 것입니다.
좋아하는 목사님을 만나기 위해서 아주 이른 시간 길을 나섰습니다. 혹시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새벽은 생각보다 공기가 찹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없는 시간입니다. 다행히 SRT 역까지 멀지 않아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한시간의 거리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 차로 여러번 다녔던 길인데 많이 새롭습니다. 사실상 전혀 다른 길 처럼 느껴집니다. 길가에 나무들이 보이고, 하늘이 보입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걷고 있는 그 길과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열심히 걸으면서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신앙도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직접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한번에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작은 걸음들을 차분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옮기는 것이 우리의 성도의 삶입니다.
저는 저의 길을 진실하게 걷고 싶습니다. 그 길을 실제로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걸어보지도 않은 것을 마치 해본 것처럼 그럴 듯 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기쁘고, 또 때로는 아름다운 그 신앙의 길을 힘써 걸어가면서 성도님들을 섬기고 싶습니다.
한참을 걸어서 역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안심이 됩니다. 혹시 기차 시간을 놓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그리고 시간을 생각하며 조바심을 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걷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은 좀 고단하지만, 마음이 밝아지는 아침입니다.
저는 항상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어른은 ‘길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길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시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탁월한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삶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실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번에 갖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드문일입니다.
약속의 교회 강진성 목사님과 교제할 때에 한철호 선교사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미션 파트너스 대표로 섬기고 계시고 한국 교회의 선교 사역에 큰 축을 담당하고 계시는 귀한 분이십니다. 본인에게 멘토와 같은 분이고 분명히 저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교사님과 저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병원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시간을 내주셔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먼길을 오셨고 또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을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들, 북클럽에 대한 이야기들,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은, 선교사님의 진실함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가득찬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열정이 존경스러웠습니다. 후배를 위해서 또 저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귀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특별히 선교사의 입장에서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북클에 관해서는 ‘C.S.루이스의 길’을 따라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서 성경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Books에서 궁극적으로 The Book으로 나가야 하는데, 자칫하면 북클럽을 하면서 책 자체에만 빠져서 성경을 소홀히 하거나 혹은 성경의 가치를 깨닫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둘째로, ‘이원론’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워주셨습니다 현재 우리의 교회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은 서구권의 개념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지식을 세분화시키면서 합리성 자체를 갖추는 것을 마치 성도의 궁극적인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동양적인 통합의 사고이며 그것을 충분히 발휘해야 깊이 뿌리 박힌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양적인 통합 사고를 위해서, 서양인의 사고가 아닌 한국인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맞는 내용과 교제를 만들기 위해서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결국 인식론의 문제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Books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성경까지 연결하는 통합적인 사고를 꾸준히 훈련하고, 다양한 책을 읽을 때에 궁극적으로 성경을 향해 사람들을 이끌어 가라고 정말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에 ‘새로운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하셨습니다. 개신교회가 복음을 붙들고 카톨릭으로 부터 나온 것처럼, 지금의 개신 교회 안에서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선교의 역사 속에서 변두리에서 어떤 운동이 항상 일어났던 것처럼, 현재의 교회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마도 그것은 조직 교회가 형성 되기 전의 아주 초기의 초대 교회로의 회복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넷째로, ‘사역의 영역’을 정해서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본인 역시 광야의 시간이 길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너무 의미가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광야의 시간을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본인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후배 목회자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광야의 사역에서 지역 교회 형태로 사역을 전환할 때에, 그것 자체는 좋지만 두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만류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교회 목회자로서 성도를 섬기고 심방하고 설교하는 것에 집중하든지, 아니면 한국 교회를 섬기는 역할을 위해서 단체로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로 꼭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교는 벽을 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단순히 어디를 가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벽을 넘는 것 자체가 선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데, 그것을 깨트리는 작업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의 진심어린 조언들을 들으면서,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충분히 이원론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 안에 복음과 세상을 연결하지 못하고 그것을 둘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태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감사한 것은, 리딩피플 북클럽을 섬기면서 그러한 부분을 저도 모르게 많이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의 사역의 범위를 결정하는데에도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지역 교회 목회자입니다. 물론 북클럽 단체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이민 교회와 한국 교회를 섬기겠지만, 그러나 제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제가 섬기는 지역 교회이며, 오히려 그 지역 교회를 잘 섬기고 양육해서 모델링을 하여서 다른 교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제 사역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북클럽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북클럽 안에 들어 있습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북클럽 자체가 선교입니다. 사람과 사이의 견고한 벽을 깨는 것이 북클럽이고, 조각난 지식들을 하나로 모아서 통합하는 것이 북클럽이고, 또 우리의 모든 사고를 연결해서 성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또한 북클럽입니다.
선교사님과 나눈 몇시간이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익히 들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전혀 다른 가장 가치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성으로는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새로운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이분처럼 깊어지고 싶다’
선교사님께서 귀한 책 몇 권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선교 그리고 초대 교회로의 회복에 대한 책입니다. 읽고 다시 한번 깊이 들어가야겠습니다. 성경과 책을 붙들고 저의 내면 안에서 힘써 씨름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약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년의 저는 이것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 그리고 누구의 조언을 듣는가는, 사실상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11년만에 은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용인의 하늘문 교회를 섬기시는 배영진 목사님이십니다. 영국 유학 후에 청년부 담당으로 저를 돌봐주시고 저는 목사님께 북클럽을 배웠습니다.
배목사님은 유학시절에 프란시스 쉐퍼가 세운 라브리에서 직접 쉐퍼의 사위와 대화를 나누고 배웠습니다. 그곳은 방식은 일단 멘토를 붙여주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추천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면서 그 책으로 함께 토론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맞춤형 북클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저의 북클럽 정신은 쉐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뵈었지만 참 좋았습니다. 항상 저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스스로 새롭게 도전하고 훨씬 더 발전하셨습니다. 목회 뿐 아니라 상담사로서 탁월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본인을 바라보는 객관성에 있어서도 훨씬 더 깊어지셨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집중해서 경청했습니다. 평생에 앞으로 몇번 누리지 못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 몇가지를 진심을 다해 전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위선’의 문제입니다. 위선에 빠져 큰 위기에 처한 몇 분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큰 슬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들으면서 섬뜩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이중성에 빠지면 스스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 개인의 ‘하나님과의 친밀함’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설 때 만이 변화의 실마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나누는 시간이 앞서야 한다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을 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카톡 프로필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영어로 풀어서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습니다. "even to the point of death" 죽는 순간까지 그 지점까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역의 크기가 아니며, 신실하게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실함에 목적을 두고 목회해야 은퇴 이후에도 허탈함에 빠지지 않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두가지 말씀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확고하게 저의 방향을 잡아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저의 설교의 첫번째 대상이 제 자신입니다. 그러니 부족함을 크게 느껴 개인 큐티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아주 좋은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가끔씩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데 반드시 이렇게까지 해야함을 마음에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신실함 역시 제가 최근에 더 깊이 생각하는 부분이기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더 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 붙이시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하시고, 이제 내가 죽는구나 라는 탄식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황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저는 무조건 신실해야 한다고 하루에도 수십번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야 말로, 제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신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이제 목사님의 은퇴도 7년 남짓 남았습니다. 헤어지는데 마음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찾아뵙고 하면 참 좋을텐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너무 멀리 보내셨습니다.
헤어질 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덕분에 제가 이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동안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제 진심으로 고백이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제가 다시 목사님을 뵐 때에 더 자랑스러운 모습이 되고 싶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대로 신실하게 목회했고 또 그래서 귀한 열매들이 있었다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날까지 다시 한번 달려갈 것을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