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구19)시139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구19)시139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0) - 주의 신을 내가 떠나

 


1.
가사 살펴보기

주의 신을 내가 떠나 어디로 피하리까
주는 모든 것 아시오니 어디로 다니리까

내가 새벽 날개 치며 저 바다 끝에 거해도
어둠도 숨기지 못하리라 주님의 손이 날 인도해

주님은 내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위대하심을 내가 고백하리다

 

2. 곡 소개

곡은, Kelly WillardWhere Could I Go from Your Spirit 이라는 곡을 번안한 곡이다. 이 찬양은 시편 139편의 말씀을 바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또한 세심한 사랑으로 주님의 자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신앙을 고백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을 어떤 것을 발견할까봐 두려워 나를 감출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아 주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과 시련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598.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그분의 영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임재에서 결코 멀리 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598.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다윗은 그의 상상력을 펼칩니다. 어둠은 죽음 혹은 구덩이를 의미하는 것인데, 8절에서 스올에 자리를 펼친다라는 것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 다윗을 찾기 위해 어둠을 빛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시편 18편의 말씀처럼, 주님은 자신을 경배하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주의 구조를 뒤엎으실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Ps 139:10–12.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대중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실제로 그를 엮어내셨다 라고 단언합니다. 당신 역시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예술 작품입니다. 당신은 놀랍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떻게 잉태되었는가에 상관 없이, 당신의 존재는 의도적입니다. 당신의 존재는 실수가 아닌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수를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한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진리는 한 사람의 자존감과 자부심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69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다윗의 시편인 139편의 핵심을 담고 있는 찬양이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친히 지으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모든 상황 속에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너무나 큰 위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부족하고 흠이 많으며,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어쩌면 평생 동안 사람들 앞에 나를 감추고 살아왔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안심하고 나의 존재 자체를 내어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세상은 진화론을 주장하며 나라는 존재는 목적도 없고 우연히 세상 속에 던져졌다고 말한다. 이것보다 더 비참하고 슬픈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상 허무함 그 자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에 찾아오는 잠깐의 기쁨은 있을 수 있겠지만, 영원한 평안과 소망은 그들에게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자녀는, 시편의 말씀 속에서 그리고 이 찬양 속에서 진정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나의 처지와 상황 그리고 수준과 상관 없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심히 기묘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기대를 뛰어 넘어 나의 인생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며, 이러한 성경적인 믿음과 참된 소망 가운데, 넘치는 기쁨으로 담대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3년 6월 10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35) - 주님을 보게 하소서

 


1. 가사 살펴보기

나의 주님께 찬양 드리며
그 크신 사랑 주 임재 감사해
어두움 속에 찾아 오셔서
주님의 영광 보게 하시네 

의심하는 나를 손 내밀어 잡아 주시네
두려운 맘 내려놓고 주 바라봅니다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내 뜻과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 엎드려 주의 음성 기다리니
나를 부르실 때 믿음으로 걸어가리

 

2. 곡 소개

곡은, 마커스 라이브 워십 4집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주님을 고백하면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오직 주님의 뜻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39:9 If I rise on the wings of the dawn, if I settle on the far side of the sea,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39:10 even there your hand will guide me, your right hand will hold me fast.

주님은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다윗은 먼저 하늘의 높음과 깊음을 대조합니다. 주님은 두 곳에 모두 계십니다. 또 그는 새벽이 나타나는 동쪽 그리고 서쪽을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서 바다는 항상 서쪽에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가장 끝에 계시므로, 그 사이의 모든 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D. A. Carson, 편집자,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042.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The LORD is close to the brokenhearted and saves those who are crushed in spirit.

마음이 상한 사람은 깊은 회개의 심령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혼을 합당한 제물로 받아 주십니다. 악인은 마음이 상한 자를 미워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치유하십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34:18.

고린도후서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1:22 set his seal of ownership on us, and put his Spirit in our hearts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우리에게 인치시고 : 이것은 부드러운 밀랍을 문서 위에 놓고 스탬프로 밀랍을 각인하여서 그것의 소유권, 진정성 및 보호를 표시하는 고대 관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신자들을 영적으로 인치시는 그의 행위를 통해서 이 모든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보증 : 성령님은 신자의 영원한 유업에 대한 계약금과 같은 역할을 하십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고후 1:22.

히브리서 3: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3:7 So, as the Holy Spirit says: "Today, if you hear his voice, 3: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개역개정) 3:8 do not harden your hearts as you did in the rebellion, during the time of testing in the desert, (NIV)

여기서 “오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아직 잘 남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에 즉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긴박감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긴박감은 시편 95편 7절의 “오늘”에 대한 언급을 히브리서 말씀에서 세번 더 반복함으로써 강조되며, 필자인 바울 사도의 강해의 주제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3:7.

 

4. 찬양에 대한 묵상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며, 감히 인간이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며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 고난이 심하여서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함께 하신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는 성도 안에 계시고 구원을 인치시고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고 약속하셨다.

고난이 닥쳐오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삶의 많은 문제들 속에서 분명한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하심을 믿고 주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며 그분을 의지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시고 치유하여 주신다. 나 자신이나 상황을 보지 않고, 전능하신 여호와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성도의 중요한 특권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성도의 선택 사항이 결코 아니며, 가장 긴박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가장 큰 위로이다. 비록 고난 속에서 마치 암흑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이 찬양의 고백처럼 주만 바라보면서 주의 음성을 듣고 담대히 믿음으로 걸어가시기를 바란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2년 9월 23일 금요일

하나님만 바라보는 진실한 리더 / 사무엘하 3장 27-29절 설교

 


한 성도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설교에 대한 이런 저런 아쉬움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목사님은 강해설교 안하면 안됩니까?”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마음에 제 눈이 저도 모르게 동그라졌습니다. 아마도 설교중에 목회자가 한절 한절 설명하는데 치중하는 것을 의미하시는 듯 했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시더군요.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앞에서 설교하시면, 왜 목사님이 내 이야기를 하지? 라고 마음이 찔리면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그냥 설명만 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에 대한 혹은 설교자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셨지만 그래도 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설교자로서 또 성도로서 그런 아쉬움을 경험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 집사님께서 하신 부분은 설교의 가장 수준 높은 차원입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많이 힘을 쓰겠습니다.” 저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요즘에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듣는 것이 큰 유익이 있습니다. 논리적인 흐름을 배우는 것도, 그리고 어느 정도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마치 탁월한 교수님이 저의 설교의 바운더리를 그려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참 행복합니다.

팀켈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설교의 내용이 자유롭다 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좋은 표현이 있을 것도 같은데, 현재로서는 자유롭다 라는 표현이 저의 한계입니다. 이것이 좋았던 이유는, 저 같은 경우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용을 마음으로 먼저 그릴 때에는 굉장히 자유로운데, 막상 원고로 그것을 옮길 때에 그 자유로움을 많이 절제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말 마음에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까지는 설교로 하지 못하고 뭔가 가로막는 듯한 느낌을 스스로 가졌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조심스러움 때문인 듯 합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설교의 내용으로 확신있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지만 있지만, 뭔가 성도님들을 대할 때에 제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있는 듯 합니다. 여전히 이 부분은 고민중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기도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제 설교가 더 발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번 설교는 의미가 컸습니다. 이번 설교는, 제가 처음에 묵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견했던 중요한 부분과 테마들 그리고 목회적으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충실하게 담아 냈습니다.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 부분이 제일 스스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향해서 타겟을 삼는 설교가 아니라, 제 자신이 말씀 앞에 서고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라는 것을 확신 있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번 설교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앞 부분은 압축적으로 배경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아브넬이라는 인물을 완벽한 의인으로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T 스터디 바이블의 내용에 따라서 평화를 위하여 온 사자로 좀 더 정형화해서 설교 가운데 묘사하였습니다.

3:22–27 On three separate occasions the narrator highlights that David sends Abner away “in peace” (vv. 21, 22, 23). David carries no hostility toward Abner and desires a peaceful settlement between his house and Saul’s. Again, David shows commitment to achieving kingship without insurrection. Joab, however, does not share David’s commitment and is hoping for vengeance for the death of his brother Asahel. Joab has Abner brought back and then stabs him in the stomach, just as Abner stabbed Asahel in the stomach (2:23). The author highlights that David is innocent with regard to Abner’s death.

3:28–39 David rebukes Joab seriously but ineffectively. This is not the last time Joab will cause problems for David. His actions were extraordinarily unwise and harmful to David’s cause. Abner had offered David the kingship on peaceful terms, but Joab ruined that opportunity. David once again shows his loyalty to Saul’s house by leading his people to mourn for Abner. David proves his innocence with regard to Abner’s death before all Israel.

Samuel C. Emadi, “2 Samuel,”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385.

저는 어떤 말씀을 인용할 때에, 거의 반드시 그 말씀에 대한 간단한 의미를 덧붙입니다. 그저 인용만하고 그 핵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사실상 인용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빌립보서 2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짧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넷 바이블의 각주를 인용한 것입니다. 진정한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이 좋았습니다.

Tn Traditionally, “servants” or “bondservants.” Though δοῦλος (doulos) is normally translated “servant,” the word does not bear the connotation of a free individual serving another. BDAG notes that “ ‘servant’ for ‘slave’ is largely confined to Biblical transl. and early American times … in normal usage at the present time the two words are carefully distinguished” (BDAG 260 s.v.). The most accurate translation is “bondservant” (sometimes found in the ASV for δοῦλος), in that it often indicates one who sells himself into slavery to another. But as this is archaic, few today understand its force.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Second Edition. (Denmark: Thomas Nelson, 2019).

저는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 복음에 대한 이해와 이어지는 설명들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논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자의 깊은 마음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번 설교는 새벽 설교이기 때문에 시간이 짧아서 더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진실한 행동 사랑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설교는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신 큰 영광입니다. 쉽지 않은 한주와 스케쥴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성실하게 준비했고 성도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한걸음씩 더 배워가면서 발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 사무엘하 327-29절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전혀 다른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스토리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장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다윗의 그들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고 조가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생전에 사울과 다윗의 관계가 참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 모두를 진심으로 아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2장에서는 다윗이 드디어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사울의 왕가는 매우 어려워졌지만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보셋 왕의 옆에서는 사울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브넬이 실권자로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이 사울 왕가의 왕이 된지 2년 쯤 이후에 다윗의 장군인 요압 장군과 이스보셋의 아브넬 장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전쟁에는 요압 장군의 형제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 중에 한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브넬 장군이 전쟁에 물러나고자 도망을 하는데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그를 집요하게 추격했습니다. 아브넬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계속 만류했지만 아사헬이 계속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에는 아브넬의 손에 아사헬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요압은 동생의 복수를 다짐했던 것입니다. 

아브넬이라는 사람은 매우 복합적인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장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전쟁의 형세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넬이 생각하기로는 이제는 다윗이 대세라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아브넬은 사울왕 쪽에 속했던 장로들과 사울의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까지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호의적인 태도를 잘 모아서 다윗을 찾아와서 자신과 언약을 맺기를 요청했습니다. 다윗을 향하여서 충성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거기에 필요한 일들을 추진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찾아온 아브넬과 부하들을 환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제 자신이 모든 지파를 모아서 다윗의 통치와 리더쉽 안에 들어오게 하겠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마음에 얼마나 큰 기대가 있었을까요?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을 피해서 도망을 다녔습니다. 그는 수 많은 전쟁을 치뤄야만 했던 사람입니다. 여전히 정치적인 대결 구도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꿈꾸던 평화가 그리고 자신이 왕으로서 모든 지파를 다스리는 날이 바로 목전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억울하게 당하는 입장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했던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눈 앞에 두고서도, 도저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요압 장군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는 다윗의 가장 중요한 장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측근으로서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비참함과 온 나라의 어려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주 놀라운 것은, 요압은 다윗에게 말할 때에 마치 자신의 마음이 다윗을 너무나 위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순수하게 평화를 위해서 찾아 온 아브넬을 마치 첩자의 목적으로 왕을 감시하기 위해서 온 것처럼 몰아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덥쳐서 다시 헤브론으로 그를 끌고 돌아왔습니다

요압은 사람을 속이는 것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27절에 말씀하십니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라고 말씀하십니ㅏ.

결국 요압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평화를 위해 찾아온 사람을 죽였어 무슨 의미인가? 지금 요압이라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복수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그가 지금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요압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복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거짓 간계를 통해서 그 복수를 결국 이룬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과연 다윗은 알았는가? 다윗은 이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평생을 자신을 힘들게한 사울 조차도 품었던 다윗이었는데 그러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인 상황입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28절에 이렇게 다윗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요압과 다윗을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요압을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그에게 힘을 불어 넣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말도 안되는 복수심입니다. 그의 동생이 죽은 것은 순전히 동생의 책임입니다. 거기다가 전쟁 중에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복수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요압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의 마음에 가득차고 그를 움직인 것이 "복수"라면, 과연 다윗의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차 있는가? 그의 말 속에 답이 들어 있어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셨는가? 여호와 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처한 모든 현실 속에서 여호와를 의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이 잔인한 범죄에 가담한 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29절 말씀에 보니 모든 죄의 결과는 반드시 요압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윗은 여전히 자신의 진실함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다윗이 지금 무엇인가 행동하는데 있어서 편안한 환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31절에 말씀하시기를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다윗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는가? 다윗은 자신의 모든 평화에 대한 노력을 망치고 자신을 눈 앞에서 망하게 한 요압을 지금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이 너무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낙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윗의 행동 다윗이 슬퍼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어떻게 나오고 있는가? 31절에 말씀하시기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갔다 그리고 32절에 보니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다윗은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라는 체면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아브넬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는 진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35절에 보니 다윗은 심지어 그날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까지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진실한 그의 행동을 보고 나서야 36절에 보니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7절에 보니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라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다윗이 자신의 진실한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에는, 백성들은 다윗에 대해서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아브넬을 죽인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사울을 여전히 미워하고 전쟁을 좋아한다라는 온갖 소문이 돌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십 거리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윗에게 의심을 품고 그를 뒤에서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다윗이 무엇을 하였는가? 그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면서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꾸며낸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브넬의 억울한 죽음을 고통스러워했고 그의 아픔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가지고 울었습니다. 마치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그러했던 것 처럼 아브넬을 위해서도 조가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은 아주 선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압이라는 악한 장군은 끝까지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의도를 숨긴 사람입니다. 마치 왕을 위하는 것 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거짓된 복수를 위하여 움직인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호소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또 아브넬을 아꼈다는 것을 자신의 진실한 행동들을 통해서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과연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에 대해서 매우 진중하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간교하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내면에 있는 진짜 동기를 감추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마치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혹은 겉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얼마든지 속으로는 다른 생각과 다른 동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속이는 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압은 매우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인 다윗조차 대범하게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화를 위하여 찾아온 아브넬조차 속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그의 동기를 가장 정확하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중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27절 하반절에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그리고 반복이 되고 있어 30절에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압을 움직이는 것은 철저한 이기심이었고 분노와 복수심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야 말로, 한 사람의 그 중심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집착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야만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 사실상 다윗은 아주 오랫동안 아무런 결과 없이 방황하는 것 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도망치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그는 여전히 지금 이 시점에서도 유다 지파의 왕일 뿐인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그토록 바라던 평화의 조약을 바로 눈 앞에서 완전히 놓쳐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참으로 지지리도 복도 없고 고생만 하고 아무런 소득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주목하시는가?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당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그 동기를 모두 아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비록 정치적으로는 세력이 약해서 자신의 장군 조차 어떻게 하지 못하는 형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앞에서 무죄하다라고 선포함으로써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거나 다다를 수 없는 가장 완전한 평화와 안정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139편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 아시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의 24절 마지막절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그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을 고백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그분의 영원한 길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살펴보며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진 이기심과 복수심과 악한 마음들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오직 여호와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하며, 그 길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또 하나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진정한 리더쉽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꼭 아브넬의 상여를 따라가야만 했을까? 혹은 꼭 다윗이 그렇게까지 소리 높여서 울어야했을까? 혹은 꼭 다윗이 그렇게까지 금식까지 하면서 자신을 절제해야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은, 그러한 다윗의 모든 행동을 일일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진실한 행동의 결과입니다 그저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자신의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것을 애통해 할 때에 그때서야 백성들의 오해가 풀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서야 모든 백성이 왕을 좋게 여겼다는 것은 그의 진실한 모든 행동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규모이든 어떤 공동체이든 그것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혹은 교회 공동체이든 리더의 모습은 그 사람의 행동이 진실하여야 하는 것이고 반드시 그 진실함이 동반되어야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 5절에서 8절까지 이렇게 말씀하힙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마치 기독교를 지적인 종교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논리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앉아 계시고 그분이 그저 말씀으로만 내가 너희를 용서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돌본다 이렇게 하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진실하게 행동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되시지만 도저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이 낮아지셔서 직접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이 누리시던 모든 영광과 기쁨을 다 포기하시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기를,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것은 내가 그냥 자유롭게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된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종으로 판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낮아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철저하게 상대방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저 논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역사 가운데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종이 되셨고 그럴 필요가 없으셨지만 기꺼이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진정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이 그 모든 권세를 포기할 때에 큰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지 혹은 그저 위선적으로 행동하는지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진실하시며 그분의 모든 사랑은 거짓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며 진정으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자리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진실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기꺼이 나를 낮추고 참된 리더쉽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가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든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리더쉽으로 섬김의 모습으로 진실한 공동체를 이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첫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저의 내면에 있는 악한 것들을 버리기 원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앞에 부끄러운 것들을 모두 남김없이 버리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과 주님을 가까이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부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진실한 마음과 진실한 행동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거짓과 가식이 아닌 진실한 모습을 주시고, 주님께서 그렇게 섬기신 것처럼 다른 이들을 진실하게 섬기며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리더로서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제가 되도록 주님께서 오늘도 저를 붙들고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98) -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1. 가사 살펴보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를 경배 합니다
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깨뜨릴 옥합 내게 없으며 주께 드릴 향유 없지만
하나님 형상대로 날 빚으사 새 영을 내게 부어주소서 

고통 속에 방황하는 내 마음 주께로 갈수 없지만
저항 할 수 없는 그 은혜로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를 경배 합니다
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2. 곡 소개

곡은, 2007년에 발매된 올네이션스 심포니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을 나의 주라고 표현하면서 매우 친근하게 주님께 간구하며 나아가는 곡이다. 성령을 충만하게 부으시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으시기를, 그리고 주권적인 은혜로 주님을 따라가도록 인도해 달라는 간절한 간구를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A psalm of David. When he was in the Desert of Judah. O God, you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63:1 my God. Even in the wilderness and on the run, David expresses his faith and trust in God. dry and weary land. Either the arid place where David has taken refuge, or figurative for the difficult times in life when God seems far off. 나의 하나님이시라 : 심지어 광야에서 그리고 도망하는 중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표현합니다.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 이것은 다윗이 피난처로 삼은 건조한 땅이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처럼 보이는 삶의 어려운 시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907.

시편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139:1 For the director of music. Of David. A psalm. O LORD, you have searched me and you know me.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139:2 You know when I sit and when I rise; you perceive my thoughts from afar.

139:1–5 You have searched me: God is active to search and test His servants. He knows our motives, desires, and words before they are expressed. In short, He knows His servants completely. But as v. 5 makes clear, the purpose of His intimate knowledge of His servants is protective and  helpful, not judgmental and condemning.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찾고 시험하시기 위해서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기와 욕망 그리고 말들을 우리가 표현하기도 전에 아십니다. 요컨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완전히 아십니다. 그러나 5절에서 분명히 있듯이, 그분의 종들에 대한 그분의 친밀한 지식의 목적은 심판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39:1–5.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개역개정) 3:18 And we, who with unveiled faces all reflect 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likeness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NIV)

3:18 But we all. Not only Jewish believers but Gentile believers also. with open face. Not veiled like Moses. beholding … the glory of the Lord. As Christians gaze upon the glory of the Lord in the mirror (glass) of the gospel they are changed into the same image. The Reformers and those who followed them spoke of the double benefit of Christ: (1) justification and (2) transformation. As Christians experience their union with Christ and behold Him by faith they are transformed into His image. from glory to glory. Transformation is ongoing by means of progressive sanctification. as by the Spirit of the Lord. God works this transformation in the lives of believers through the ministry of the Holy Spirit. 우리가 다 : 유대인 신자들 뿐 아니라 이방인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주의 영광을 보매 :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거울에 비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들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개혁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유익, (1) 칭의와 (2) 변화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 변화는 점진적인 성화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신자들의 삶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674.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0 And those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those he called, he also justified; those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1 What, then, shall we say in response to this?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8:30 Those predestined are, in due time, “called,” or effectively summoned through the gospel into saving fellowship with Christ (1:6; cf. 1 Cor. 1:9). We note that all of those “called” are also “justified.” The call cannot refer to the outward call of the gospel that many reject (Matt. 22:14). It is an inward call of God, by the Holy Spirit, that accomplishes what He intends. All who are predestined are called in this way. Predestination includes God’s determination that a person will receive such an inward call (called the “effectual call”). Predestination is not based on God’s knowing beforehand how people will respond to the gospel. Just as the predestined are called, so the called are both justified and certain to be finally glorified. The past tense of “glorified” indicates that from God’s standpoint the work is as good as done. He will complete it as planned. 예정된 자들은 때가 되면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교제 안으로 부르심을 받거나 또는 효과적으로 불려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가 또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따라서 부르심은 많은 사람이 거부하는 복음의 외적 부르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부르시는, 그의 뜻을 이루게 하는 내적인 부르심인 것입니다. 모든 예정된 자는 이런 방식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예정에는 사람이 이런 내적 부르심 (효과적인 부르심) 입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결심이 포함됩니다. 예정은 사람들이 복음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지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정된 자는 반드시 부르심을 받는 것처럼, 부르심을 받은 자는 의롭다하심을 받고 마침내 영화롭게 것이 확실합니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에서 나타난 과거 시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런 사역이 이미 완수된 것과 다름 없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대로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99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한 사람의 진실한 기도를 담고 있는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윗은 도망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찾으며 여전히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그분을 향한 신뢰를 표현하였다. 마치 이것처럼,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하고, 가장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새로운 차원의 신앙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곡의 전반에 깔려 있는 분위기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한 사람의 힘든 마음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에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주님께 드릴 향유도, 그리고 너무 방황하기 때문에 주님께 갈 수도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더욱 자신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빚어가시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주님의 길을 걷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낙심한 마음으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삶을 방향을 잃어버리고 낙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가사에 드러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전 존재를 이미 아시는 분이시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아픔을 아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기 시작하신 구원을 그분께서 친히 완성하실 것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 볼 때에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에서,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낙심할 때에도 새롭게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며,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프로그램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5월 28일 금요일

금요찬양교실 (33) - 온 맘 다해

 

1. 가사 살펴보기

(1) 주님과 함께 하는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마음을 쏟네
모든 아시는 주님께 감출 없네
맘과 정성 다해 바라나이다.

(2) 나 염려하잖아도 내 쓸 것 아시니
나 오직 주의 얼굴 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날마다 순종하며 주 따르오리다 

(후럼) 다해 사랑합니다
다해 알기 원하네
모든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다해

 

2.  소개

 곡은미국 ccm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Dove Awards 두번이나 수상한 Babbie Mason 곡이다 곡은, 1990년도에 발매된 With All My Heart 번안한 곡으로좋은 번역과 비교적 쉬운 멜로디로 편곡되면서 대중적인 회중 찬양곡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곡은성도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과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나누는 영적인 관계를 보여준다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는 주님만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알아가며 섬기겠다고 결심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가사로 이루어진 곡이다.

* Babbie Mason 개인 홈페이지
https://babbie.com/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139:1 For the director of music. Of David. A psalm. O LORD, you have searched me and you know me.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139:2 You know when I sit and when I rise; you perceive my thoughts from afar.

아시나이다 시편 139편의 핵심 단어입니다다윗은 주님께서 자기 자신과 그의 상황을 완전히 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아갈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알려져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안심할 있었습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042.

다윗은하나님의 경이로운 전지하심을 묵상합니다주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것을 아실 뿐만 아니라주님의 종을 살피시고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세부적인 것들도 알고 계십니다그분의 지식에서 벗어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697.

마가복음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개역개정12:29 "The most important one," answered Jesus, "is th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NIV) 12:30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개역개정12:30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NIV)

예수님은경건한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낭송하는 신명기 6 4절과 5절인 쉐마를 인용하셨습니다 말씀은 하나이신 하나님이라는 유일신론의 전통 신앙을 확인하고사랑이라는 주된 감정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과영혼과지능과 의지라는 사람의 전체를 통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Ross H. McLaren, Mark,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583.

 

4. 찬양에 대한 묵상

누구나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이유는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는 시대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소설 네트워크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오늘도 많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애써 알리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절망하는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고 보살 피신다” 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성경은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히 알려주신다우리는 분명한 죄인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통해 의인으로 인정받았다그러므로 이제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아버지 하나님을 가까이할 있게 되었다.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주셨기 때문에절대자이신 여호와께서는 마땅히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실 자격이 있으시며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부를 때에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도우시는 하나님께 위로를 받으며그리고 나의 존재를 통해서 오직 분만을 사랑할 것을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추천 글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 119:103) 누구나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은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꿀보다 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

리딩 크리스천 독서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