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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8일 화요일

15개월만에 성경 1독을 마쳤습니다 with 드라마 바이블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성경을 통독하는 것입니다. 20대 초반에 3년 정도 NIV Dramatized Bible에 빠져서 큰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드라마 바이블이 나오면서, 새롭게 성경 통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전 글을 찾아보니, 2021년 1월 1일에 새롭게 통독을 시작했네요.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드라마 바이블로 성경 1독을 마쳤습니다. 지난 번에는 1년 정도가 걸렸는데, 이번에는 15개월 정도가 걸렸네요. 

* 말씀의 꿈을 붙들고 달려가세요 / N.EX.T - 해에게서 소년에게

사실 드라마 바이블이 어플이 새롭게 바뀌면서, 개인적으로 약간 혼란이 있었습니다. 인터페이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용해보니 한가지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 읽기 플랜을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처럼 완전히 만들어 놓아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기가 아주 용이해졌다는 것입니다. 

예전 어플에서는, 성경 전체 장이 있고 그 장들을 일일이 따라가면서 성경 읽기 플랜이 작동하는 그런 형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플랜을 듣다가 내가 놓치면,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다시 기억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플랜 자체에 어디를 읽어야 하는가를 한 곳에 다 묶어 놓아서 정말 수월하게 통독할 수 있었습니다. 

많지 않은 나이이지만,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세상을 살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두가지는 이것입니다. 첫째는,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계속 추구하자 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들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여러 분들을 만나보니,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배운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고통 중에 살아갑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아무리 배운 것이 많아도 이 "비교의 병"에 걸리면, 마치 말기 암과 같은 끔찍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의 삶은, 엄청나게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게 날려버리게 됩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할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이 있으심을 믿고 집중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남들과 비교하느라 모든 선한 미래의 길들을 스스로 막아버리고, 혼자 골방에 들어가서 나보다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을 비난하며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저는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가 썩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 늘 결심하는 것은, 남들과 저를 비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도 다르고, 내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조건들도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각자의 마음에 비전을 주십니다. 각자의 미래에 대한 선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편애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그분은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 각자를 한 없이 동일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 앞에 열리진 길이 하나님의 사랑의 길입니다. 이것을 믿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까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저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 통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고작 하루에 삼십분 정도 성경 통독하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까지 목회자가 성경 통독을 해야 하냐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을 비난 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신해철이 노래한 것 처럼, "꿈을 비웃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을 앞에 보여줘도, 그런 것 따위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고 비웃는 사람들로 차고 넘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성경을 펴 본적이 없습니다. 삶의 중심에 말씀을 놓고 그 말씀을 읽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개인과 공동체가 부흥하기를 기대하는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말로는 부흥과 은혜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나본 누구도 "나는 은혜가 정말 필요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한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을 알아가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말씀을, 자신의 삶의 열정을 다하여 읽는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말씀의 은혜를 누려보지 못했거나, 혹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남들을 따라 그저 앵무새처럼 떠드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어렵습니다. 믿음의 길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이 있어야만, 하루에 적은 분량이라도, 이것이 바른 길이라고 믿고 통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이기 전에 성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성도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어떤 분들은 독서를 취미 생활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독서라는 것은 "생존" 입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성경을 읽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로서 제가 말씀을 읽는 이유입니다. 

아침마다 조금씩이라도 말씀을 듣지 않고 묵상하지 않으면,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가능성이 너무나 큽니다.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그리고 말씀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을 바로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로서 성경 통독을 하는 이유는, 성경과 하나님의 마음을 균형 있게 경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만약 꾸준한 성경에 대한 통독 없다면, 설교를 위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만, 주어진 한정된 본문 안에만 나의 묵상이 갇힐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마치 나에게 주어진 본문만이 모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무나 넓습니다. 신학적인 입장이 나뉠 수 있는 마치 상충되어 보이는 그런 본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목회자는 꾸준한 성경 통독을 통해서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서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설교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경 통독이 필수적입니다. 주석을 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경을 꾸준하게 읽는 것입니다. 속도가 아니라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하루에 열장씩 다 읽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경 전체를 꾸준하게 읽어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성경 통독을 하면서 어떤 때는 너무나 황홀하고, 또 어떤 때는 너무나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슬프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담담하게 아무런 느낌 없이 들은 적도 있습니다. 비록 모든 순간이 황홀함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역사하셨음을 믿고 또한 감사드립니다.

오늘 1독을 마쳤기 때문에, 이제 내일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저는 드라마 바이블에서 97일 플랜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일년이 걸릴지, 또 일년 반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앞만 보며 날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며, 마땅히 제가 할 일이며, 또 저의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 살아가는 삶이라는 기쁨과 무게감이 다시 마음을 움직입니다. 다시 한번 1독을 끝내고 그것을 감사하며 글을 쓸 때에는, 더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과 마음으로 쓰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30장 / 야곱의 아들들과 하나님의 축복

 

야곱의 가족 안에는 질투가 끊이지 않습니다. 언니와 동생이 서로 아들을 낳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확인 받고자 합니다. 출산의 능력이 여성의 자존감을 결정하는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스터디 바이블은 설명합니다. 사실 우리 시대에도 아들을 낳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고자 노력합니다. 당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고대의 사람들은 성경에서 표현하는 합환채가 인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임신을 유도한다고 믿었다고 스터디 바이블은 설명합니다. 레아이든 라헬이든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 인간의 지혜를 따라서 어떻게든 자녀를 낳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고, 또 라헬의 소원을 들으셨고 그녀들의 태를 여셨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마도 야곱의 가정은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2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야곱을 시기했던 그 감정이, 30장에서 레아가 라헬을 시기하는 단어로 그대로 사용됩니다. 라헬이 언니를 시기하여서 자기가 자식을 낳게 하라고 야곱에게 억지를 부리자 야곱은 성을 냅니다. 넷 바이블은 "the anger of Jacob was hot" 이라고 번역하면서 야곱의 화를 그대로 표현합니다. 

이런 와중에 주시는 넘치는 자녀들을, 일반적인 복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순수하게 좋은 일들의 모습으로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통 중에 선한 일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자녀들의 복 뿐만 아니라 그는 큰 부를 얻게 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이제는 떠나고 싶다고 어려운 이야기를 꺼냅니다. 라반은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이지만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라반이 야곱의 성실함과 그를 통해 오는 축복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의 성실함과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보여주면 세상이 감탄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억울한 경우입니다. 성실함과 탁월함이 반드시 형통함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무늬 있는 양과 염소를 자신의 품삮으로 정하겠다고 제안합니다. "바로 그날" 야곱은 그런 무늬가 있는 가축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빼돌립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야곱을 부려 먹었지만 그는 여전히 구두쇠일 뿐입니다. 악덕 고용주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 당시의 문화적인 믿음에 따라서, 야곱은 동물들이 짝짓기를 할 때에 얼굴덜룩한 가지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무늬를 가진 가축들이 태어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이것이 유전적 조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이며 기적임을 설명합니다. 야곱은 결국 부자가 됩니다. 

야곱은 이제 속이는 자가 아니라 속임을 당하는 자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였고 그것은 라반조차 인정하였습니다. 야곱은 진실한 청지기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야곱은 부자가 됩니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자기 자신의 탁월한 지혜에 스스로 탄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습니다.

2020년 12월 8일 화요일

질투를 넘어 오직 주님을 위하여 / 브라운 아이드 소울 - 폭풍속의 주

 

디모데후서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4:7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저는 사실 질투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어쩌면 남과 비교할 만한 능력 자체가 없으니, 남을 질투할 여지 자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어제의 제 자신을 비교 대상으로 삼고 노력하면서 잠잠히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것인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질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이런 저런 것들이 더 뛰어나 보이면 질투가 일어납니다. “나도 저렇게 저 정도는 살았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무엇인가 불만족하고 아쉬워하는 감정이 진하게 일어납니다. 우습게도 굉장히 낯선 감정이고 또 저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비교 의식을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소유라는 것은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것 그 자체를 선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며, 그것으로 끊임없이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비교하도록 은근히 부추깁니다.

아이돌은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들 사이에도 아이돌이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삶의 구석 구석까지 방송을 통해 전달이 되고, 성공한 인생의 기준이 됩니다. 결국 모든 이들에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비교의 삶이고, 질투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정신이 제 마음에 깊숙이 들어온 것을 느낍니다. 스스로 질투로 인해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보이지 않는 질투가 저를 잠식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더욱 간절하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묵상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노래의 가사처럼, 주님만 바라보아야 겠다고 결심합니다.

아직 달려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지 않은 저에게 주신 저의 삶과 저의 사명, 그 일에 묵묵히 노력하고 달려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오직 주님과 제 자신만이 존재하고 싶습니다. 다른 곳에 곁 눈짓하면서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저 주님 보시기에 충실하게 그것으로 충분하게 신앙의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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