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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일 월요일

문단에 구애받지 않고, 설교를 쓰기 시작하다

설교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단순히 설교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설교가 가진 가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통해서 그분의 뜻을 교회에 전달하시고,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부담입니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설교의 자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부끄럽고 또 제가 작아지는 자리입니다. 

아마 모든 목회자들이 설교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합신에서 공부하면서 귀한 교수님들 밑에서 배웠지만, 이후에 목회하면서 많은 부분은 제 스스로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묵상을 고민하고, 주석을 고민하고, 또 구조를 고민합니다. 저는 여전히 모든 것을 배우는 중이고, 또 아마 평생 그럴 것입니다. 

담임 목회를 하면서 더 절실히 깨닫는 것은, '설교는 목회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을 위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의 내용 자체는 설교자인 제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진심 어린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용과 구성은 철저하게 성도를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정말 좋은 통찰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주해 혹은 통찰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성도님들에게 필요한 바로 그것을 잘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이 설교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설교의 구조는 어떨까? 저는 지금까지 설교의 구조를 완벽하게 짜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해왔습니다. 마인드맵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목적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주일 설교와 수요 설교 준비의 흐름은, 묵상, 주해, 주석 참고, 원고 작성입니다. 특히 원고를 작성할 때에는 마인드맵에서 대략적인 소주제들을 넣고, 거기에 맞춰서 세부 항목들을 문단에 맞춰서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문단을 처음에 나누지 않고 그냥 쭉 써내려가면 어떨까?' 물론 이것이 아무렇게나 쓴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묵상과 주해와 주석을 거쳐 머릿속에 대략적인 구조를 다 가지고 있고 내용을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단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큰 흐름에 따라서 문장을 계속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쓴 다음에, 대략적으로 보기 좋게 문단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사실 약간 염려가 되기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완벽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문단들이 완벽하게 나누어져 있고, 심지어 그 문단들은 크기가 비슷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최대한 잘 쓰인 원고가 좋은 원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을 바꾸어서 새롭게 시도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아래 보시는 이미지는 주일 설교의 저의 최종 원고입니다. 결론적으로 정리를 했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일단 아래에 문장들을 쭉 쓰고 몇번 수정을 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문단을 나눈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문단마다 길이가 많이 다릅니다. 물론 지금까지 항상 원고를 full text로 쓰면서 훈련했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문단에 따라서 편차가 꽤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도해 보니 좋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설교가 덜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글의 구조보다는 좀 더 저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서 설교를 전개하다 보니, 들으시는 분들이 더 집중해서 들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 역시 완벽한 글을 설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더 설교답게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문단의 길이가 완벽하게 맞지 않아도, 또 심지어 흐름이 약간 흐려져도, 자유로움이라는 큰 강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설교의 큰 틀은 확고한 방향이 있지만, 실제 목회 속에서 완벽한 정답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지금까지 훈련하고 연습한 모든 것들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이렇게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저도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완벽한 정답은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새롭게 교회를 섬기려는 작은 수고 가운데,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3월 28일 화요일

"설교의 요소"와 "영역 구조"에 대한 고찰 - "성경, 설교자 그리고 청중"의 만남 / 마 24:15-31 주일 설교를 준비하며

 




* 설교는 참으로 "신비롭다"

설교는, 하면 할수록 신비로운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두렵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통해서" 선포된다는 것은, 설교자를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리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무게입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제 설교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더 열심히 할 수 없을만큼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거듭할 수록, 막연했던 것들이 더 선명해지고, 더욱 발전해야 하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록, 더 능동적으로 제 자신을 굴복시키고 훈련하게 됩니다.

*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를 깨닫다"

최근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설교의 요소들과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입니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위의 그림"입니다. 

저는 설교학 전공이 아니지만, 설교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성경 본문을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과연 설교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 설교에는 "성경"이 들어간다

이번에 준비한 설교는,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31절"까지 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으로 바탕으로 한 예수님의 예언과 미래에 닥쳐올 마지막 시대를 한꺼번에 다루는 사실 굉장히 복잡한 본문입니다. 하나하나 파고들면 주해적인 내용이 끝이 없고,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 때를 다루는 본문이기 때문에 예민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자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한 본문을 과연 어떻게 접근하고 설교해야 할까요? 우리는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맞는 말입니다. 성경이야 말로 설교의 가장 중요한 것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만약에 설교를 이루는 요소가 "성경이 전부"라면, 사실 성경만 봉독해드리고 설교자는 다시 내려오면 됩니다. '아무런 해석'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설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 설교에는 "설교자"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드디어 여기에서, 설교의 또 다른 요소인 "설교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성경은 설교자를 통해서 "해석"되어집니다. 설교자는 성경을 충분히 "묵상"하고 "주해"하면서 그 내용을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과 설교자 사이"에는 "주해"가 존재합니다. 

주해라는 것은 결국 "주관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최대한 좋은 주석들을 살펴보고 공통점들을 찾지만, 결국 성경을 살피는 해석자라는 점에서는 설교자의 주관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는 단순히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 아닌, "설교자의 주관성"이 개입하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그 어떤 오류도 없는 설교와주해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설교에는 "청중"이 들어간다

그러나 설교에는, 성경과 설교자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중"이 있습니다. 모든 설교는 "듣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들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청중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에 설교 가운데 성경과 설교자만 존재한다면, 설교 중에 설교자는 자신이 조사한 "주해 자료"만 발표하고 설교단에서 내려오면 될 것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했고, 누구는 저렇게 이야기했고, 누구는 이렇게 마무리 했다 라고 내용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 설교는 스터디 바이블 뿐만 아니라, 저명한 마태복음 주석들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Exegetical Summary를 꼼꼼하게 다 살펴보았습니다. 아마 그 내용만 이야기해도 두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설교일까요?

그러나, 설교자는 청중을 목회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본문이 "내가 섬기는 회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는 "목회"가 존재합니다. 설교자가 읽고 공부한 주해 자료는, "청중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 드러나며 압축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자는, "주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해를 어느 정도 선까지 어느 방향성에서 나눌 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해를 "청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청중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이라고 아무 내용이나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면에서 목회자는, 평소의 "목회"를 통해서 성도의 영적인 수준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준비한 본문은, "성경과 설교자, 그리고 주해만 생각한다면" 이렇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얼마나 정확했는지, 혹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고 또 그것이 비참했는지를 전달만 하면 됩니다. 

혹은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을 다루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학자들의 논의와 요한 계시록과의 연관성을 따지면서 그것을 나누면 됩니다. 아마도 상당히 아카데믹하면서 지루한 논의가 될 것입니다. 제 자신의 주해 자료들만 고려하면 이렇게 진행하는 것도 충ㅂ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설교에서 "청중"을 "목회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그 방향성"이 바뀌게 됩니다. 성도님들의 현실을 고려하여서 "택자"라는 성경적인 맥락, 그리고 "주님이 반드시 오신다"라는 그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설교의 방향을 조정하였습니다. 만약에 청중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설교의 방향을 결코 이렇게 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설교에는 "적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에는 "적용"이 들어갑니다. 적용은 결국 "목회의 꽃"입니다. 좋은 주해를 가지고 있는 설교자가, 목회적인 마음으로 청중을 고려하면서, 설교의 방향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주 날카롭게 적용의 핵심을 갈고 닦아서, 적용점이 "청중의 마음"에 박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청중 사이"에는 적용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정적"으로는 성경과 설교자 사이에 존재하는 주해가 있고, 또 목회적인 고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적용" 이다 라고 적용점을 느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적용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제가 만든 "퓨전 설교"구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번 설교도 철저하게 퓨전 설교의 구조였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갈고 닦지 않았다면, 정말 중요한 지금의 시점에 있어서 우왕자왕하면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 설교는 결국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 가운데, 과연 "설교 자체"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설교라는 것은, 성경과 설교자와 청중이라는 "세가지 요소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위의 "설교"라는 노란 원은,세 요소 사이 "중앙"에 위치합니다. 

기억하실 것은, 제가 "파란색 점선"으로 설교의 원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의 영역 안에 위치하는 "설교 자체"가,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설교는 "성경" 쪽에 더 가깝고, 어떤 설교는 "설교자" 쪽에 더 가깝고, 또 어떤 설교는 "청중" 쪽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유동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 같은 보수적인 목회자는, "성경 자체를 잘 드러내는 것"이 마치 "설교의 성공"인것 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상 좋은 설교는 "세가지 요소"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각각 분명한 위상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가급적 성경과 설교자 그리고 청중이라는 세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설교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설교의 요소를 생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설교를 이루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 설교자, 청중, 그리고 설교 자체를 지배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모든 요소와 과정을 포괄하여서" 그리고 "설교를 이루는 전체 구조"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분리된 설교"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고, 설교자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청중의 안에 함께 거하시고, 설교자가 청중을 목회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청중의 마음에 말씀을 적용하게 하십니다. 

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구조"가 중요할까요? 먼저 이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경적이라고 받아들였을 때에야 저는, "설교 직전의 기도"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강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 전에 기도할 때야 말로, 성령님의 역사를 간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이번에 더욱 확고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구조"라는 점에서 또 다른 중요한 한가지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설교자가 "원고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궁금합니다. 과연 그러한 주장은 무슨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사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미" 역사하고 계십니다. 설교의 요소들을 통해서, 그리고 설교의 전체 구조와 그 흐름 안에서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굳이 "정리되지 않은 언어들로 두서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을 마치 성령님의 특별한 역사라고 주장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 좋은 설교를 꿈꾸며

저는 오늘도 좀 더 좋은 설교를 꿈을 꿉니다. 제 설교를 듣고 제 자신이 변하고 싶고, 또 함께 들으시는 성도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시고 그분들의 마음과 삶이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의 불처럼 뜨거운 역사가 경험되고 느껴지는 그런 설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설교자로서 평생의 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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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9일 목요일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저는 성도이기 때문에, 배움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삶의 전체 여정은 배움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자녀로 살아가는 동안 수 많은 가능성들을 우리 안에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성품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을 삶의 목표로 받았습니다. 가슴 벅차는 삶의 목적입니다.

"대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한 영역 안에서 경지를 이룬 사람을 우리는 대가라고 부릅니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탁월한 수준에 다다른 그 사람을, 우리는 대가 라고 부릅니다. 배울 수 있다면, 대가에게 배워야 합니다. 인생을 낭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장 탁월한 사람, 그 분야를 깊게 들어간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야 말로 배움의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목회자의 삶의 거의 전부이며 사명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런 갈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목회의 황금기를 준비하면서 존파이퍼 목사님 같은 분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자신의 설교에 대한 모든 정수를 담아서 32편의 강의를 공개해 주셨습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개인적으로 분석하고 공부하면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깊게 공부하고 그 내용을 저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실제 설교와 연결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설교 때 마다 깨닫고 있습니다.

사실, 그저 목사님의 얼굴을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됩니다.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이며 또 너무나 따뜻하고 지혜가 풍성합니다. 연로하시지만 눈에서는 빛이 나옵니다. 하늘의 별을 마치 눈에 담은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담고 선포하는 자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가 저의 설교에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과 양분이 됩니다. 

공부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계속 진행중입니다. 이 공부는 다른 사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한 배움입니다. 어떤 것이 이제 필요하니 내가 공부하겠다라는 것은 하수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에 그 기회를 위한 준비가 이미 마쳐진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에게 설교에 대한 공부는 가장 시급한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의 짧은 글들과 공부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목회자들이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선포되는 일에, 그분의 전령으로서 주님의 나라의 일에 쓰임 받는 그 충만한 기쁨의 사역에 함께 힘을 모으기를 원합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설교는 위대한 일입니다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 출애굽기 35장 20-29절 설교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1강 설교자 만들기(Lecture 1: The Making of a Preacher)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1.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3강 설교란 무엇인가?
(Lecture 3: What is Preaching?) / 출애굽기 39장 22-43절 설교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4강 강해란 무엇인가?
(Lecture 4: What Is Expository?) / 사사기 2장 11-23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lecture-4-what-is-expository.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5강 희열이란 무엇인가?
(What is exultation?) / 사사기 6장 1-10절 설교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6강 설교는 예배다
(Lecture 6: Preaching Is Worship) / 사사기 9장 1-6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1/6-lecture-6-preaching-is-worship-9-1-6.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릭닉_7강 기적을 행하기
(Acting the Miracle) / 사사기 16장 15-31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2/7-lecture-7-acting-miracle.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8강 본문 선택하기
(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8-choosing-text.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9강 설교를 준비하기
(Sermon Preparation) / 요한복음 8장 21-30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1/9-sermon-preparation-8-21-30.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 10강 설교 구성하기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10-lecture-introduction-preaching-is.html

* "존 파이퍼 목사님"의 "공식 무료 설교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 Sermon of the Day & DesiringGod & Olivetree & Logos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2/sermon-of-day-desiringgod-olivetree.html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11강 설교문인가 기억력인가?
(Lecture 11: Manuscript or Memory?)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11-lecture-11-manuscript-or-mem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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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8일 수요일

10년 만에 제 설교의 큰 변화! by 설교 원고 문장의 길이를 조절하라!

목회자에게 있어서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물론 목회는 많은 것을 포함합니다. 심방, 상담, 행정 등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것이 목회입니다. 하지만 목회의 중심에는 설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에게 설교는 생명과 같은 것이고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본질이자 기술입니다. 

이 블로그에는 저의 설교에 대한 고민들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를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은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 가운데 저는 원고 설교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개인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설교 원고를 꼼꼼하게 다 쓴 다음에, 그것을 숙지해서 설교하는 것이 훨씬 더 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글에는 저의 원고 작성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2편 : 설교 구성)

벌써 목사 안수를 받은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설교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계속적으로 저의 설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저의 원고 작성은 마인드맵에서 시작해서 한글 프로그램으로 끝이 납니다. 마인드맵에서 원고를 복사해서 한글에 붙이면, 마인드맵의 형태로 세로로 자동으로 배열이 됩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마무리 작업은, 그렇게 배열이 된 설교 원고를 다시 좀 더 세세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분을 모욕하는 악인들이었다" 라는 문장을 썼다면, 그것을 의미 단위인 절반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분을 모욕하는 악인들이었다' 라고 다시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좀 더 자연스러운 설교를 위해서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설교가 지루한 이유는, 어조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마치 글을 읽는 것 처럼 설교하면 설교를 듣는 분들은 매우 지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라고 강조를 한 이후에 약간 쉼을 두고 "그분을 모욕하는 악인들이었다"라고 말을 하면 지루함이 덜하기 때문에 설교 원고를 그렇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저의 최종적인 한글 원고를 보시면 문장이 매우 짧게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거의 10년 이상을 이런 식으로 원고를 작성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에 한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원고를 자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문장을 의미 단위로 나누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원고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테블릿을 사용하는 저의 경우에는 계속적으로 손으로 테블릿의 화면을 내려야하기 때문에 어떤 분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원래 저의 성향은 아니지만, 마인드맵에서 기록한 문장들을 의미 단위로 너무 나누지 않고, 그대로 한글에 복사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절반으로 나누어야 했던 문장들을 그냥 한 문장으로 놓고 설교를 해 보았습니다. 아래 저의 마인드맵 최종 원고와, 한글 원고를 보시면, 문장에 컬러링은 되어 있지만 길이는 그대로 가져갔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충분히 부담은 있습니다. 첫째로 태블릿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가 아무래도 작아집니다. 문장의 끝까지 한 화면에 봐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보던 것 보다 글자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한번에 머리 속에 다 넣어야 한다는 것도 부담입니다. 만약에 한 문장을 빠르게 눈으로 보고 다시 앞을 보고 설교할 때에, 순간적이라도 그 문장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담을 안고 처음으로 좀 더 긴 설교 문장들을 가지고 설교해 보았습니다. 아래 설교가 처음으로 그렇게 시도해본 설교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시험 삼아 이렇게 한번 해 보았더니, 완전히 새로워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저의 설교를 평가하기 전에, 제 자신이 설교가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첫째로, 저의 발음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장 단위로 의도적으로 끊어읽지 않고 감정 선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발음하면서 문장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둘째로, 태블릿을 내리는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훨씬 청중을 더 의식하면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청중을 좀 더 바라보면서 그들을 고려하면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좀 더 고민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사실 저 정도 원고를 완성하였다면 이미 여러번 수정하고 연습한 원고이기 때문에 그 흐름과 내용이 충분히 머리 속에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염려하던 것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설교의 자연스러움, 감정에 대한 호소, 그리고 제스쳐 측면에서 큰 유익을 얻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설교의 원고를 다 보고 읽느냐, 혹은 암기를 해서 하느냐는 여전히 설교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원고를 보고 읽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설교 원고의 한 문장을 조절하는 이번 시도를 통해서, 마치 암기하면서 설교하는 그런 설교의 자유스러움을 어느 정도 얻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설교야 말로 언어의 흐름과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굉장히 결정적인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고민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설교 원고 문장의 길이 부분에서 조절을 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1년 2월 27일 토요일

"퓨전 설교" 를 갈고 닦아 몸에 익히고, 이제 평가해 봅니다

 

일년 정도 전에,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설교 세미나를 하면서 한가지 아이디어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퓨전 설교"에 대한 개념입니다. :)

강해 설교와 주제 설교의 장점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주해의 깊이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강한 적용을 얻기 위한 전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개념을 잡을 때에 썼던 글을 읽어보시면, 그 개략적인 방향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강해'와 '주제'사이 - '설교의 퓨전'을 꿈꾸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12/blog-post.html

대략 계산해 보니, 일년 정도 퓨전 설교를 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고 또 몸에 익었기 때문에 스스로 평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는 목회자들도 있으시기 때문에, 저의 작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사실 설교를 평가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각 목회자들이 처한 개 교회의 상황이 일단 너무나 다양합니다. 다양한 환경, 다양한 분위기, 다양한 청중을 생각할 때에, 모든 교회에서 적절한 설교의 형태를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각 지역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았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 "목회가 뭘까?" "난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을 매일 한번 이상씩 하는 것 같습니다. 설교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좀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라는 후회도 참 많이 듭니다. 뭔가 잘했다고 생각이 들어도, 정말 이게 잘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퓨전 설교"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 설교의 방향이 앞으로 남은 목회 동안에 중요한 방향이 되고, 또 이것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읽으시는 분께는 작은 참조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위에 링크 걸어드린 새벽 설교가 퓨전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번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1. 퓨전 설교의 시작 - 간단한 배경 & 단락의 구분

저는 설교의 목표 속에, "성도님들이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잘 해석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보통의 성도님들은 예배를 드리고 듣는 설교 그 한번이 그분에게 있어서 유일한 성경을 배우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 

쉽게 말해서, 멋있게 하는 설교, 변칙적인 설교 혹은 감동을 강하게 주는 설교 보다는, 성경 본문 자체를 잘 보고 익히고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퓨전 설교의 시작이 마음에 듭니다. 지금까지 다양하게 시도해보았지만 이제 완전히 틀을 정하였습니다. 퓨전 설교는 그 시작에서 "본문 구조 분해"부터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 단락 마다 "소 제목"을 말씀드립니다. 보통 글의 개론으로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글"로 이해할 때에, 이러한 접근은 글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작업입니다.

무조건 본문의 특정 구절이나 예화로 시작하는 것이, 순간의 집중력은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문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혹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관찰을 자칫 약하게 만들까 염려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앞으로도 제 설교의 시작은 말씀의 구조 분해부터 간단하게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2. 퓨전 설교의 본론 (1) 단락 이해 - 단락의 구분에 따른 간단한 설명 & 주해적 or 신학적인 힌트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본론은 서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각 단락을 언급하면서 "간단한 설명"을 합니다. 본문에 대한 실제 관찰 내용이 "아주 간략하게"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한 내용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핵심은, 절대로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필요한 추가적인 심도있는 관찰이나 주해의 내용은 적용 파트로 넘깁니다. 각 단락의 핵심만 짚어주면서 그 단락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짚어줍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설교의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절 한절 강해로 설교하게 되면, 듣는 이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순간의 느낌에 의지하고 논리력이 많이 약해진 시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절 한절 길게 설명을 해버리면, 대다수의 성도님들은 금방 집중력을 놓치게 됩니다. :) 

물론 이 설명들은 숨겨진 포인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론의 첫 단계에서는 앞으로 적용점으로 이끌어낼 부분에 대한 약간의 힌트들을 넣어야 합니다. :) 물론 설교를 듣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겠고, 나중에야 "아 그 이야기를 그래서 했구나" 라고 알게 되겠지만, 마치 추리 소설처럼 설교를 구성함으로써 무의식의 수준에서 집중력을 올리게 됩니다.


3. 퓨전 설교의 본론 (2) 적용의 시작 - A인가? 아니면 B인가?

그리고 나서 이제 적용 파트로 들어갑니다. 퓨전 설교는 개략적인 단락의 설명 이후에 바로 적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매우 속도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노골적으로 적용에 포커스를 맞추게 됩니다. 

저도 늘 말씀의 적용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적용이 중요하다고 말로 하는 것보다, 실제 설교자가 고민하면서 설교의 구성을 그렇게 만들어서, 말씀을 듣는 최종적인 목표갖 적용이며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적용의 형태는 "A인가? 아니면 B인가?" 입니다. 이것에 대한 힌트는 여호수아가 우상을 섬길 것인가,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를 도전하던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

적용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해 보았는데, 이 형태가 제일 마음에 들고 강력하다고 판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이렇게 하십시요"라는 형태보다는, 저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할 것인가? 의 형태는 대조가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다시 말해서, 내가 말씀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어떤 비참한 삶으로 빠져드는가에 대한 반대적인 형태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둠이 짙어야 빛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처럼, 적용의 형태를 A인가? 아니면 B인가?로 만들때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이렇게 적용을 정하는 것은, 내가 설교의 후반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강력한 방향타"를 만들어 줍니다. 일단 이 구조를 위해서 본문을 보면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설교자 자신에게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주해 설교 스타일로 내용을 쭉 끌어가다보면, 도대체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냥 주해 했던 것을 다 이야기할까? 아니면 다른 예화를 넣어야 하나? 마치 방향이 없이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적용점을 잡고 나서 설교문을 쓰면, 그 내용이 매우 분명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신학적인 내용이든 주해적인 내용이든 본문에서 관찰한 부분을 붙들고 적용을 염두에 두고 그 안에서 내용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설교 내용이 선명해 집니다. 

이미 앞 부분에서 개괄적인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마치 송곳으로 깊이 찌르는 것 처럼 적용점으로 설교자 자신과 성도님들의 마음을 찔러 들어가야 합니다. 


4. 퓨전 설교의 본론 (3) 적용의 본론 - 관찰된 신학적 and or 주해적 내용의 심화

적용의 파트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뉩니다. 하나는 본문에서 관찰된 신학적인 혹은 주해적인 내용의 심화이며, 또 다른 파트는 다른 본문과 연결하여서 강조하면서 적용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첫 파트는 관찰의 내용을 심도 있게 풀어나가면 됩니다. 관찰된 내용 혹은 주해적인 내용을 풀어가면서, 적용의 원리를 이끌어내면 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해를 다 하고 적용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주해를 풀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강해 설교와 퓨전 설교의 차이점은, "모든 절에 대해서 강해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TMI(too much information)를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적용하는 부분에서 필요한 만큼 주해하면서 그 주해의 내용을 날카롭게 만들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형태는 주제 설교 혹은 원포인트 설교에 가깝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이것이 보통의 설교와는 "굉장히 큰 차이점"을 가집니다. 주해나 관찰의 내용을 먼저 풀어나가면, 방향성 없이 모든 것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적용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주해나 관찰을 이야기하면, 굉장히 집중도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설교 내용이 선명하고 구조적으로 탄탄해 집니다. :)

물론 이 부분이 성도님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관찰과 주해의 실력이 설교자에게 필요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위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씁니다.


5. 퓨전 설교의 본론 (4) 적용의 결론 - 다른 본문과 연결, 강조, 그리고 적용의 확증

그리고 이러한 적용의 내용이 설득력 있게 설명이 되고 원리적으로 정립이 되었다면, 그 다음 부분에서는 "반드시" 다른 성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 구절들을 넣고 그 내용을 "강화"를 시켜야 합니다. 이 부분은 "설교를 견고하게 하는" 매우 강한 장치입니다. 

저는 설교 자체가 사변적으로 흐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교 본문 안에서 그 내용만 가지고 점점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너무 깊게 만들어나가는 것 보다는, 오히려 적당한 수준에서 다른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신학 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이 신학적인 사고를 전개하면서 따라오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에 논문이나 혹은 학회 발표라면 신학적인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아주 깊게 만드는 것이 유익하지만, 실제 현장 설교에서는, 성도님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오히려 적당한 수준에서 적용의 원리를 설명하고, 그 적용을 염두에 두고 다른 본문을 연결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학적인 관점을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입니다. 설교자가 이런 방식으로 본문을 이렇게 연결하는 것을 모델로 삼아서, 성도님들도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자 자신에게 이 과정이 굉장히 고되기는 합니다. 적용 포인트를 찾고 좀 더 신학적인 설명을 덧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싶은 충동을 항상 느낍니다. 

왜냐하면 내가 현재 본문으로 부터 주장하는 적용의 포인트와 연결된 성경 구절을 찾는 것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고스 자체 관주, 스터디 바이블, 주석 등을 필요한대로 잘 찾아보고 꼭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절대로 많은 구절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적용의 한 파트에서 많아야 두군데, 혹은 다섯 구절 정도입니다. 샘플로 제시한 이번 설교에서도 평소때 보다 더 많이 성경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절대로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지 않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리고 성도님들이 기억에 남으실 수준에서만 인용합니다.

설교 본문과 적용적 관점에서 다른 본문을 연결하는 이 부분의 독특한 점은, "본문 자체와 청중 사이에 목회자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상적인 설교가, 말씀을 그대로 주해하여서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청중을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는, 그 청중들의 상황과 영적인 상태를 감안해서 말씀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아주 약간은 말씀 자체의 주해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만약에 그러한 적용점과 다른 성경 구절의 인용이 청중들에게 꼭 필요하다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허락하신 재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퓨전 설교는, 주제 설교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퓨전 설교의 적용의 시작은, 철저한 관찰과 주해에 근거해서 적용점을 끌어내지만, 결국 그것을 풀어내고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청중 지향적이며, 청중을 염두에 두고 어떤 주제를 강조하게 됩니다. 


6. 퓨전 설교의 본론 (5) 적용 단락 하나 더 추가하기

처음에 퓨전 설교를 시작하면서, 왠지 적용 파트가 하나인 것이 아쉬워서 동일한 적용 파트를 더 추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강하게 느끼는 것은, 두가지 정도가 시간 상으로도 유리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적용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율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새롭게 깨닫고 그 안에서 위로와 용기, 그리고 회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렇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적용입니다. 

저는 적용 파트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기 원한다" 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용기와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오직 말씀 안에서 진정한 용기와 위로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을 적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물론 복음만 적용하면 방종에 빠지기 쉽고, 율법만 적용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복음과 율법 이라는 순서대로 두가지 포인트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렇게 할 때에 훨씬 균형이 잡히는 것을 느낍니다. 

순서 상으로는, 복음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하나의 설교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동시에 성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7. 퓨전 설교의 결론 - 요약 or 기도 제목으로 정리

마지막은 언제나 요약입니다. 다른 말을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의 설교 동영상 샘플의 경우 새벽 설교이기 때문에 마지막 통성 기도의 제목이 설교의 결론이 된 형태입니다. 

저는 설교 후 기도도 즉흥적으로 말하지 않고, 반드시 원고로 정리해서 준비합니다. 그렇게하는 이유는, 설교 이후에 기도의 시간 조차도 영적인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성도님들이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8. 퓨전 설교의 최종적인 평가

현재 제가 섬기는 교회는 새벽에 성도님들이 열명에서 스무명 정도 오십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서 현장 예배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예배 분위기는 정말 진지합니다. 새벽 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은 다 믿음이 좋으신 귀한 분들이십니다. 

설교자는 강단에 서면, 성도님들의 반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얼만큼 집중하시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설교에 집중하는 분들의 표정, 반응, 그리고 그분들의 눈빛은 설교에 대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제가 퓨전 설교의 틀을 적용하면서 1년 동안 느낀 것은, 그 이전의 저의 설교 때 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마 설교자인 저 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고개를 들고 저를 굉장히 진지하게 쳐다보십니다. 특히 설교 서두 부분에서 구조 분석을 할 때에, 성경을 함께 보시면 따라옵니다. 그리고 적용의 포인트에서 그 적용을 이끌어내게 된 관찰의 내용들을 설명드릴 때 또 성경을 보면서 따라옵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도님들의 표현은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 많이 받았다"라는 그 한마디 말 속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주 제한적인 몇분이 퓨전 설교를 사용한 이후에 은혜 받았다고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리고 설교의 구조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9. 마치며

새로운 틀을 만들고 익히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한번의 주일 설교, 그리고 대부분 새벽과 청년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에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설교를 잘하시는 귀한 목회자들이 참 많습니다. 만약 설교자의 기술과 능력과 설교의 퀄리티로 비교한다면, 저는 참으로 부족할 뿐입니다. 

다만 저는 저의 앞으로 평생 동안에 사용할 수 있는 설교의 틀을 발견했다는데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 작은 글이, 오늘도 설교로 고민하고 기도하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

2020년 7월 17일 금요일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3편 : 설교 전달)


당신은 오랫동안 한편의 설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사력을 다해서 내용을 준비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고심 끝에 설교 내용을 구성하고 준비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손에 든 원고야 말로, 당신 자신과 청중인 당신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것을 가지고 설교 단에 올라갔습니다. 

이제 어떻게 그것을 전달해야 할까요? 

1. 목소리 크기와 마이크의 사용 

마이크는 두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콘덴서 마이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이나믹 마이크입니다. 

먼저 일반적인 경우는 콘덴서 마이크입니다. 보통의 설교 강단에는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콘덴서 마이크의 특징은, 소리에 아주 예민하고 충격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콘덴서 마이크는 기본적으로 설교자가 작게 이야기하더라도, 충분히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굳이 마이크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설교자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 경우'에는 당연히 문제가 생깁니다. 설교자는 본인이 최소한 어느 정도의 볼륨을 내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설교자의 '최소한의 음량 크기'는, 대화할 때의 크기입니다. 만약에, 설교자 본인이 분석했을 때에, 평소 상대방과 대화하는 정도의 목소리 크기도 설교 때에 내지 못한다면, 본인의 발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설교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또다른 마이크 종류인 다이나믹 마이크는 보통 우리가 찬양팀에서 보는 손에 드는 마이크입니다. 다이나믹 마이크의 특징은, 컨덴서 마이크와는 다르게, 일단 튼튼합니다. 그리고 입에 마이크를 아주 가까이 대야 소리가 깨끗하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입과 마이크의 적절한 거리는 마이크 헤드에서 약 3-5cm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이나믹 마이크로 설교할 때에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수련회 같은 곳에서 찬양팀이 쓰는 다이나믹 마이크를 받아서 설교할 경우에, 반드시 입에 가까이 붙이고 설교를 해야 합니다. 

간혹가다가, 다이나믹 마이크를 가슴 정도에 잡고 말씀을 전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보기에는 굉장히 자유로워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아무리 사운드 엔지니어가 노력을 해도, 본인의 목소리가 분명하고 듣기 좋게 전달되기 아주 어렵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 팔의 사용

이건 정말 어려운 점입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특별히 지도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의할 것은, '설교 단에 두 팔을 계속 짚고 기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를 평가할 때에는, 굉장히 뭔가 설교자가 정적이고 수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는, 몸을 설교 단에서 살짝 떨어트리고, 보통 두 손을 기본적으로 모읍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을 강조할 경우에는 오른손을 살짝 들어서 강조의 느낌을 넣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순서 개념을 사용할 때에는, 오른 손을 사용해서 우측에서 좌측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제스춰를 사용합니다. 

설교에는 기본적으로 대조가 많이 나옵니다. 이 경우에는 양손을 다 사용합니다. 기준이 되는 그룹을 설명하면서 오른손을 들어서 표시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대조군을 언급하면서 왼손을 번갈아서 들어서 사용해 가면서, 청중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합니다. 

또 보통의 설교에는, 높으신 하나님과, 한없이 낮은 인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 경우에는 정답은 없지만, 저는 경험상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에서는 손을 굉장히 높이 올리는 편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좀더 성도님들에게 실감나게 다가가리라 생각합니다. 

3. 음성의 강조 

이것은, 설교의 구성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입니다. 첫째로, 설교 전체에서 음성의 강약을 생각할 때에 어느 정도 기승전결의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강강강강'으로 진행되는 음악 구성에서는, 듣는 사람이 흥미나 감동을 느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큰 목소리로 설교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내용의 전달을 방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설교 초반부터 너무 흥분한 상태로 진행을 시작하여서, 낭패를 본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그래서 원고가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 될 경우, 오히려 더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전체적인 설교에서 초반에는 음성을 작고 약하게 사용하고, 가장 정점에서 가장 큰 음성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설교의 마무리에서는 처음처럼 작은 음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설교 전체 구성에서 뿐 아니라, '문장 하나 단위'에서도 음성의 고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든 문장'에서 '모든 단어', '모든 조사'를 다 강조하면 듣는 사람이 피곤할 것입니다. '포인트 되는 단어들 중심'으로 계속적으로 음성을 강조해 나가는 것이,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시선의 처리 

저는 개인적으로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사실 설교 중에 누군가의 눈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설교학 때에 배운 유용한 팁 중에 하나는, 청중의 그룹을 4개로 나누어서 (우앞, 우뒤, 좌앞, 좌뒤) 돌아가면서 그 그룹의 중간 정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정면부터 시작해서 위에 언급한 4개의 영역을 돌아가면서 쳐다봅니다. 그렇게 하면 청중 입장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보면서 설교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예배가 중심이 될 경우, 가급적 카메라를 계속 쳐다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5. 전반적인 태도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전반적인 태도입니다. 이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원고를 구성하더라도, 어떤 이들의 설교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청중을 대할 때에, '이 답답한 사람들아' 라는 식의 설교는, 성경적으로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청중에게 반감은 얼마든지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저 역시, 혹시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하더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설교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청중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설교자의 마음과 태도를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공격적이고 무례한 태도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데 방해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6. 스스로에 대한 평가


세편의 글을 준비하면서 만들어낸, 최종적인 결과물을 함께 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점검 하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 평가를 해 보면, 분명히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제 스스로 평가할 때는 이렇습니다. 전달 면에서는, 일단 평소보다 말투에서 실수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평소만큼 원고를 연습했지만, 실수가 나왔습니다. 아쉽게도, 설교 장소가 평소보다 더워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고 5분 정도가 지나자,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쓴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중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미리 설교 장소의 환경까지 점검 해야 했지만, 분명히 저의 실수입니다. 

보시는 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설교를 했던 제가 볼 때에는 팔을 사용하는데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설교에서 몸의 사용에 대한 부분을 따로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화면을 정면으로 보다보니, 제가 원고를 보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장면이 너무 아쉽습니다. 만약 현장 예배 였다면, 성도님들이 강단보다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청중들이 저를 바라 보았을 때에는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구성면에서는 전반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묵상한 내용들을 가급적 지루하지 않게 충실히 구성했습니다. 다만 적용 2 파트가 조금 아쉽습니다. 처음에 묵상하면서 적용2의 부분은, 이사야의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깨닫는 부분을 더 부각시킬까 생각도 했습니다. 좀더 쉽게 가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좀더 스스로에게 도전적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도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제 자신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분량 면에서는, 많이 아쉽습니다. 보통 새벽 설교의 경우는 17분 정도를 목표로 합니다. 더 짧으면 청중에게 성의가 없다고 느껴질 것이고, 더 길면 새벽이라 집중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 글과 함께 설교의 예시를 준비하느라 오히려 내용이 더 늘었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에 자꾸 새벽 설교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더 원고를 정리하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설교 분량이 다소 길었다고 생각합니다. 

7.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를 마무리하며

앞으로 은퇴할 때 까지 몇 편의 설교를 더 하게 될까요? 비록 그것을 알수는 없지만, 그저 바라기는, 한편 한편의 설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설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설교자이지만, 설교만 생각하면, 자주 마음에 낙심합니다. 저 역시 너무나 많이 경험합니다. 제가 설교 할 때에, 흥미를 잃어버린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매번 너무 어려운 도전이지만, 그러나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정리한 세편의 글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이 글을 읽으시는 목회자의 평생의 수고와 헌신을 통하여, 섬기는 교회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잘 전달이 되고, 듣는 성도님들 뿐 아니라, 전하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1편 : 설교 내용 준비)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2편 : 설교 구성)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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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2편 : 설교 구성)


설교, 정말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마음이 답답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만약, 설교하는 것이 수월하다면, 그렇게 많은 설교에 대한 책들과 주석들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에 대한 도전이고, 그렇기 때문에 도전에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당신의 설교는 만족스럽습니까?' 묻는다면, 언젠가 들은 이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통 야구에서 타자가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면 강타자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도, 10번 중에 세번 성도님들에게 은혜를 끼치면, 엄청난 명설교자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설교는 어렵고 힘들다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느낌은, 열번에 많으면 두세번 정도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설교자로써 절망할 때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피곤에 못 이겨 졸고 계시는 성도님들을 볼 때에, 그리고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겨우 겨우 저를 쳐다보고 있는 청중을 볼 때에, 마음이 크게 무너지고 좌절할 때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족하는 것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만족해도, 청중의 마음에 만족이 없다면, 좋은 설교라고 부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볼 것은, 저는 현재 겨우 일주일에 두번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할 때에, 새벽 설교까지 포함해서 최소 일주일에 일곱번 정도를 해야 할 때에, 과연 현재의 만족과 설교에 대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마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매일의 그 시간을 단지 망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저 앞으로 사역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1편에서, 설교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당신의 노트 혹은 당신의 머리에는, 성도님들에게 설교할 '수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요? 

1. 설교 작성 프로그램

원고를 실제로 작성함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 보편적으로, 워드 프로그램을 통해서 글을 쓸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작성하고 구성함에 있어서, 마인드맵 프로그램의 사용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마인드 맵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저는 제가 오랫동안 사용한 XMIND를 추천합니다. 프리웨어이고, 사용에 있어 기능상에 제한이 없고, 현재에도 업데이트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 회사가 월별로 돈을 내는 구독제로 전환 중입니다. 이 회사도 구독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마치 구입을 해야만 하는 것 처럼 홈페이지를 꾸미고 유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료 버전은 존재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셔서 Free Download를 클릭하세요.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굳이 마인드맵을 써야 하는가? 

다시 한번 설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서, 당신 자신이,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는 평범한 청중이라고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신은 주중에 성경 한번 펴 본적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주일 오전에 다행히, '내가 그래도 크리스천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아주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예배로 들어 왔습니다. 

만약, 이런 평범한 성도에게, 당신이 준비한 본문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논리성이 없는 무작위의 순서에 맞춰서 첫째 부터 다섯째까지 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만약에 당신의 묵상의 내용이 충분히 성경적이었고, 좋은 주석들로 부터 이끌어낸 탁월한 통찰이 있다면, 사실 내용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좋은 내용들이라도 그렇게 평범하게 여러 설명들을 무작위로 전달한다면, 보통의 성도는 잠들어 버리든지, 아니면 잠을 깨어 있기 위해서 노력하든지, 아니면 집중력을 잃어버린채로 눈을 뜨고 버티는 수준에 그칠 것입니다. 

결국 설교의 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준비한 내용을 '어느 정도의 분량'을, '어떤 구성을 통해'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인드 맵은, 설교의 분량 조절과 설교의 좋은 구성이라는 두가지 점에서 동시에 장점을 가집니다.

2. 설교의 분량

그렇다면 먼저, 설교의 분량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본인이 처한 상황의 컨텍스트에 따라서 다릅니다. 보통 대형교회 담임 목사님들은 40분 정도를 기본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새벽과 청년들은 20분, 혹시 성인의 공예배의 경우 30분 정도를 목표로 합니다. 

제가 분량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인간의 집중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안타깝게도, 청중의 집중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최상의 컨티션으로 예배에 오면 좋겠지만, 대부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마음을 가진 보통 사람'은, 30분 정도가 무엇인가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학교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대형교회 협동 목사님으로 섬기시면서 수요 예배 설교를 20분을 하셨다고 합니다. 굉장히 짧게 하신 것이지요. 설교 끝나고 나오시는 분들에게 인사하는데, 권사님들이 목사님을 '끌어 안으면서' 은혜 받았다고 하셨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설교자인 당신의 마음이 이해는 됩니다. 만약 이전 글에서 가이드를 따라서, 설교의 내용을 충실히 준비했다면, 당신의 손에는 지금, 몇시간 동안 이야기해도 부족한 충분한 분량의 말할 내용들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하나하나가 정말 보석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라고 여겨질 만한 탁월한 내용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 때 다 사용하지 못하고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설교의 분량을 늘리는 것 보다는, 최대한 내용을 잘라내고, 압축적으로 줄이면서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결국 설교는, 청중에게 들려져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마인드 맵의 장점은, 자신의 설교 분량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마인드맵은, 일단 개략적인 구조를 만들어낸 상태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아래 그림은, 앞에서 이미 읽으신, 이사야 6장의 묵상 내용을 가지고 제가 처음 만들어낸 구조입니다. 논리의 순서는, 원래 마인드 맵 안에서 바꿀 수 있지만, 저는 시계 방향의 진행을 선호합니다. 

밑에서 보시는 것 처럼,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굉장히 거칠게 구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그림을 잡아보기 위해서, 일단 본인이 묵상한 내용과 찾아낸 적용 포인트를 중심으로, 개략적인 구도를 생각하면서 먼저 큰 덩어리를 먼저 적어봅니다.


이렇게 일단 개략적으로라도 큰 덩어리를 만들어낸 다음에는, 처음부터 원고를 작성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마인드맵은 그 깊이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문단 아래 또 하나의 문단 그리고, 그 문단 아래에 문장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래에서 보시는 것 처럼, 하나의 문단 안에 문장들 정도로만 내용을 구성합니다. 너무 복잡하면 오히려 설교 작성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하나의 문단 아래에 문장의 형태로 작성하기 시작하면 장점이 있습니다. 마인드맵 안에서는 자신이 작성한 한 문단에 과연 몇 문장이 들어가는지가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하나의 문단에 약 12개 정도의 문장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분량은 대부분의 문단에서 비슷합니다. 만약에 한 문단이 너무 길다고 생각되면, 바로 문단을 나누어서 분량을 적절하게 조절합니다.

이런 식으로 문단을 먼저 생각하고, 그 안에서 문장을 구성하는 마인드맵을 사용하면, 당신이 한 문단 안에서, 똑같은 내용을 지나치게 지루하게 반복할 가능성을 애시당초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훨씬 논리정연하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편하게 들리리라 예상합니다.

3. 설교의 구성 (서론)

그렇다면, 이제 문단 단위를 넘어서서 설교의 전체 구성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에서 굳이 '설교에 대한 구성' 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좋은 글이라고 평가받는 글들의 특징이, 그대로 우리의 설교에 대한 구성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전개에 흥미가 있어야 합니다. 답을 처음부터 가르쳐주기 보다는,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혼자서 독백처럼 구성하기 보다는, 청자가 반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구성을 위해서, 마인드맵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설교의 전체적인 구조를 만들 때에, 그 서론은 대부분 배경에 대해서 다룹니다. 물론 설교의 서론에서, 내용과 직접 연관된 인상적인 예화 등을 동원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을 단번에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우에는 그렇게 할 경우 준비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화를 쓰고, 그렇지 않다면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동일한 회중에게 오래 목회하는 것이라면, 설교의 서두를 지금 다루는 본문의 배경 그리고 앞에 구절 등과의 논리적인 구성을 설명하는 정도로 시작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미 다른 글들에서, 어떤 자료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들을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제가 꼭 참조하는 자료 몇가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바이블키'라는 성경 개관서입니다. 보통의 성도님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읽기가 아주 수월하고, 각 성경에 대한 구조도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 바이블 키 성경대학 세트 (2권)

또 하나는, ESV Literary Study Bible 입니다. 아주 전문적인 문학적인 구조에 따른 분석은 아니지만, 각 장의 문단 구조 등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이미 이쪽 방면으로 저명한 Philip Ryken이 저자입니다. 제 생각에는, 구조에 대한 분석 자체가 해석과 연관되기 때문에, 설교자가 설교의 서론을 고민하면서 읽어보기에 아주 적절합니다.

* ESV Literary Study Bible Notes

4. 설교의 구성 (본론)

그렇다면 실질적인 설교 전체의 구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보통의 설교 구조는 이렇게 될 것입니다. 

먼저 원포인트 설교라면 이렇게 구성할 수 있겠습니다. 서론 => 본론의 포인트 1 => 본론의 포인트 1과 연결되는 본론의 포인트 2 => 본론의 본론의 포인트 2를 강화시켜주는 본론의 포인트3 => 적용 => 결론 입니다. 

혹은, 보통의 대지 설교라면 이렇게 구성할 수 있겠습니다. 서론 => 본론(대지1, 대지2) => 적용1(대지1로 부터 끌어낸) => 적용2(대지 2로부터 끌어낸) => 결론 입니다. 사실 이렇게만 자신의 설교를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도 대단한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대지 설교의 구조가 지루하기 때문에, 이렇게 변형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한정된 지식 안에서 원포인트 설교는 위의 구조가 한계이지만, 대지 설교의 경우는 좀더 자유롭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론 => 본론(대지1) => 적용1 => 본론(대지2) => 적용 2 => 결론 이라는 형태로 변형도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대지 설교의 경우 두번째 형태가 첫번째 보다는 낫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덜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익숙한 청중들에게, 모든 본론의 내용을 설명한 이후에, 정말 설교 막바지에 다다라서 적용으로 넘어가는 것은, 제 생각에는 자칫 집중력을 흩어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김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5. 퓨전 설교

본문 설명과 적용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둘 것인가는, 목회자의 전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청중과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인 교육학의 기본은, 성숙한 사람들일 수록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배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저 역시 성경 해석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보통의 기본적인 대지 설교를 해 오면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설교 안에서는 적용의 비중을 조금 더 올릴 필요가 있다는 바램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최근에 시도하면서 비교적 만족하고 있는 것은, 원포인트 설교와 주제 설교의 중간 형태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강해'와 '주제'사이 - '설교의 퓨전'을 꿈꾸다 / 스캇 브래너 - 경배합니다

제가 스스로 평가할 때에 이러한 형태의 특징은, 일단 보통의 대지 설교보다는, 긴장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 서론에서 문맥을 설명하고 그 이후에 설교의 본문으로 들어가서서는, 해당 성경 본문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간단한 설명이라는 것은, 성도님들이 당연히 알만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이 혼자서는 이해하기 힘든 성경에 대한 간단한 주해를 의미합니다. 물론 모든 구절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을 짚어가면서 설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간단한 설명 사이에, 설교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본문에 대한 통찰력 혹은 적용에 대한 '약간의 힌트' 혹은 '떡밥'을 보일 듯 말 듯 집어 넣습니다. 당연히 성도님들의 흥미도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설교 본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 다음에 바로, '적용'으로 들어갑니다. 전체 시간 구성이 20분이라면, 8분 정도 안에 본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마치고, 바로 적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사야 6장의 저의 설교의 경우, 저는 앞 부분의 설명에서는, 웃시야 왕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적용 1의 부분에서, 웃시야 왕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강조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대조를 끌고 들어오면서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을 강조할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 부분의 설명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사야의 사명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하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적용 2의 부분에서는, 그 내용을 더 깊게 풀어나가면서, 이사야의 현재의 상황과 우리의 시대적인 상황을 비교하면서, 복음의 특징과 복음을 전하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할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아래 보시는 그림은, 위의 저의 계획에 기반한, 설교 구성의 중간 과정 정도의 결과물입니다. 보시기 편하게 분량을 구분해서 놓았습니다. 마인드맵의 중간을 나누어서 오른편에 보이는 분량이, 서론과, 적용이 들어가기 전에 '본문 설명'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왼편에 보이는 분량이, '적용'이 '시작'되면서 마무리까지 되는 분량입니다. 보시는 것 처럼, 본문에 대한 내용 설명이 훨씬 짧고, 적용 파트로 들어가는 부분이 내용이 훨씬 깁니다.

아래 내용은 설교 원고의 약 60퍼센트 정도를 적은 상태입니다. 이미 머리 속에 적용이 강조되는 퓨전 설교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마인드맵을 실제로 작성하면서도 그 구조가 이미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그나마 지루함이 줄어듭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앞에서 설령 졸다가도 이 부분에서 잠이 깰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적용이 빨리 시작되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설교자 입장에서의 반전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적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그 안에서 앞에서 힌트를 뿌렸던 내용들에 대해서 좀더 깊은 주해를 사용하면서, 본문 안에서 왜 이 적용이 나올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강조가 들어갑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적용이라는 하나의 주제 안에서, 원 포인트를 잡고 풀어내는 것입니다. 

6. 설교의 긴장감 만들기

앞에서 설명드린 것 처럼, 설교의 구조는 너무 단순하면 듣는 사람이 지루합니다. 그리고 만약 조금이라도 덜 지루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인드맵이 도움이 됩니다. 일반적인 대지 설교이든, 아니면 제가 추구하는 퓨전 설교이든, 지루함을 가능하면 피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구성이 주요합니다.

설교의 구조는, 작은 구성과 큰 구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설교의 작은 구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구성이라는 것은, 문단과 문단 사이의 구성입니다. 저는 설교 전체의 구조가 어떠한 것도 중요하지만, 각 문단 사이에 어떤 구조가 만들어지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마인드맵을 사용하는 것이 편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시는 것 처럼, 마인드맵은 기본적으로 문단과 문단이 구별되어서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급적 이 문단과 문단 사이에 논리를 '연결'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섯개의 큰 문단을 설교 본문에 사용하는데, 다섯개가 다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되는 각각의 다른 덩어리에 불과하다면, 듣는 청중의 입장에서는 너무 지루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관 관계가 없는 몇가지 문단을 늘어 놓는다면, 정말 청중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당신이 사용하는 다섯개의 문단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놀랍게도', 등등으로 논리 구조가 연결이 되면, 지루할 틈이 없이 듣게 될 것입니다. 

저의 설교문의 일부입니다. 위에 그림보다는 더 완성도 있게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에서 한번 말씀드린 것 처럼, 저의 마인드맵은 기본적으로 논리 구조가 시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위에 그림은 마인드맵에서 왼쪽 편이라, 아래에서 위로 논리 구조가 진행중입니다. 즉, 큰 제목으로 "적용2.." 다음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라는 순서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가 볼 때에 이사야 6장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그것이 언제까지인가?' 묻는 이사야의 질문 속에 긴장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위의 두 문단은, 그 부분을 연결고리 삼아서 좀 더 긴밀하게 문단을 연결한 경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번째 문단으로 넘어갈 때에, 평이한 설명체로 넘어가지 않고, 일종의 통찰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가급적 설교 중에 몇군대라도 이런 식으로 전개 할 수 있기를 추천드립니다.

마인드맵을 사용하는 두번째 장점은, 설교의 큰 구성입니다. 저는 문단 사이에서 논리적인 연관 관계를 강조할 뿐 아니라, 설교 전체에서 최대한 평범하지 않게 논리적인 구성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런 점에서 마인드맵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교 원고를 작성하다 보면, 뒷쪽에 쓰여진 내용이 앞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뒷쪽에 사용한 예화가, 맨 앞으로 가야겠다고 판단이 된 경우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 당신이 워드 프로그램으로 설교를 쓰고 있다면, 이정도의 구조 변화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단 원고 전체가 한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인드맵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인드맵은 위에서 보시는 것 처럼, 확대화 축소를 위해서 원고 전체 구조를 끊임없이 살펴보며 원고를 작성할 수 있고, 얼마든지 문단의 이동을 쉽고도 급격하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7. 설교 안에서 성경 구절 인용

설교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설교 중에 다른 성경 구절의 인용에 대한 부분입니다. 저도 특별히 배우지 못했지만, 저의 주관은 '가급적 적은 구절을 짧게 인용하라' 입니다.

이것도 설교 전체 분량 그리고 청중의 집중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교자의 목적은, 자신에게 주어진 본문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 구절의 인용은, 그 본문 자체 혹은 설교자의 논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다루고 있는 성경 구절이 10구절 정도인데, 설교 중에 또 다른 성경 구절을 10구절을 인용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정보라고 느낄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성경 구절로 인해 지칠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는, 가급적 적용 하나에 성경 구절 하나 정도만 인용합니다. 그리고 어떤 구절을 인용하더라도, 의미가 통하는 수준에서 짧은 부분을 인용합니다. 예전에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오셔서, 성경 구절을 '몇개'만 인용하니까(그 설교는 두개였습니다) 기억하기가 좋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 기본적인 방향처럼, '청중의 수준을 감안하여'서 갯수를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당신의 청중이 수준이 매우 높아서, 아주 복잡한 강해 설교도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인용 구절의 갯수는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8. 설교 원고에 대한 실제 작성

설교 원고에 대한 구성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그렇다면 실제 원고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요? 

저는 가급적 원고를 '조사'까지 완벽하게 작성합니다. 지금까지 제 설교의 대부분을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그 이유는, 시간을 완벽하게 운영하고 싶고, 또 성도님들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고, 설교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굳이 설교 라는 컨텍스트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횡설수설하는 말을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당신의 능력을 스스로 평가했을 때에, 원고를 조사까지 쓰지 않아도 논리정연하게 설교할 수 있다면, 조사까지 쓰지 않아도 됩니다. 많은 분들이 대지와 핵심 단어 정도까지 쓰기도 하십니다. 

늘 그런 분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저는 조사까지 다 적어도, 부족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다양하게 시도했지만, 결국 저는 완벽하게 원고를 쓰지 않으면 설교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득이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다만, 설교 원고를 백퍼센트 쓸 경우에, 자칫 원고를 읽는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반복해서 읽고 입에 익히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원고를 읽지만, 연설하듯이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 원고 작성에서 제 개인적으로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설교에 사용되는 모든 문장을 끊어서 짧게 쓰라는 것입니다. 제가 원고를 문장 단위로 완벽하게 준비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듣는 사람이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래 문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방금 여러분이 보신 것 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내용은,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며, 우리가 삶의 모범으로 살아가야할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지금 이 예배를 통해서 드려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교훈으로써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고, 위에 '한 문장'을 이해하신다면, 감히 천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제가 적어 놓고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뭔가 굉장히 은혜로운 이야기 인 것 같기는 한데, 또 성경적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의미인지 의미 전달이 전혀 안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원고를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 저런 문장을 설교 가운데 남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차라리 한문장 정도만 저렇게 나오면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만약 당신이, 두번 정도 연속으로 저런 문장을 설교 중에 사용한다면, 아마 청중은 더 이상 설교 듣기를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저라면, 이렇게 나누어서 말할 것 같습니다. 
제가 원고를 쓰는 방식입니다.

방금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사람의 모범으로 살아가야 할 중요한 지표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방금 이 교훈이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교훈을 통해서 은혜를 주십니다. 

저는 대부분의 문장을 저런 식으로 처음부터 완벽하게 써 놓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심하게, 한 문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놓습니다. 왜냐하면 짧은 한 문장이라도 빠르게 이야기하면 의미 전달이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 최종 완성된 설교문의 마인드맵의 일부분입니다. 


위에서 보시는 것 처럼, 한 문장을 두 부분 혹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하게 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훨씬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설교 원고는, 문장을 말하고 끊고 다시 연결해서 말하는 일종의 싸인의 모음집과도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원고를 작성하면서 문장을 편하게 쓰고, 그 다음에는 '속으로 되네이면서' 문장을 잘게 나눕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최소 세번 정도 이상 문장을 '실제로 입으로 발음'하면서 발음하기 편하게 다듬어 나갑니다. 그러니 적어도 제 설교를 듣고서, 무슨 이야기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라는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9. 설교의 구성 (결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고 작성의 실제에서 정말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설교의 마무리'에 '다른 이야기' 혹은 '낯선 이야기'를 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글쓰기의 기본은, '결론'은, '본론의 요약'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결론에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 글을 보는 교수님들은 바로 그 내용을 빼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설교는 하나의 완성된 글이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결론'은 말 그대로 '결론'이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설교자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내용이라도, 혹시 성령님께서 설교 중에 설교자의 마음을 강하게 감동하신다면,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서 복 받쳐서 견딜 수 없다면, 당연히 결론의 부분에서라도 넣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글과 함께 준비한 이사야 6장의 말씀은 새벽 설교를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설교 후에 통성 기도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제목 안에 설교에 이미 사용했던 두가지 핵심 주제와 적용을 압축해서 집어 넣습니다. '가급적' 이 기도제목 안에는 다른 이야기는 집어 넣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통성 기도를 일종의 설교의 결론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10. 설교의 어투 

제가 생각할 때에, 상당히 중요하지만 많이 언급되지 않는 것이 설교의 어투입니다. 어투라는 것은 분위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피하는 방식은, '나는 설교자이며, 당신은 청중이다' 라는 어투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권위적인 방식입니다. 당신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며, 당신은 설교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죄인이며, 나는 당신과 분리된 설교자이다 라는 어투입니다. 

사실 틀린 것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대의 청중은 권위에 대한 기본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설교자가, 권위적이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비웃음과 청중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어투로 설교문을 작성한다면, 듣는 이의 기분을 매우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좋은 메시지를 '듣기도 전'에, 청중의 마음을 닫아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설교 중에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당신 같은 죄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라고 '설교자 자신'을 '청중 안'에 집에 넣습니다. '당신이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회개해야 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함께' 말씀을 풀어가고, '함께' 말씀을 적용하는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듣는 이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 안에 말씀을 집어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11. 원고를 탈고하기 까지

원고를 어느 정도 작성했다면, 이제 중요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과연, 얼만큼 원고를 쓰고 고쳐야, 그것이 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의 개인적인 기준은 이렇습니다. 실제로 설교 하듯이 발음을 해 보았을 때에, 발음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실제로 원고를 읽을 때에, 설교자의 감정의 선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설교 원고를 연습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에 벅찰 때까지 원고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주 고된 작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원고 작성에 5-10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리고 아래 그림은, 최종적으로 준비된 저의 설교문의 마인드맵 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한 문단 안에 문장들의 분량이 균형 있게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문단들 사이에 논리 흐름도 탄탄한 편입니다. 적용도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 됩니다. 


저는 제 설교 원고를 최종 점검 하면서 마음이 복받쳐 운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설교자가 먼저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제가 감정이 복받쳤던 바로 그 지점에서, 청중도 그러할 것이라고 예상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설교는, 절대로 즉흥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계획되고 준비된, 설교자를 통해서 펼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연출에 가깝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만약, 자기 자신조차 감동되지 않고, 자기 자신조차 평범해서 지루한 설교를 준비했는데, 청중이 그것을 들으면서 감동 혹은 은혜를 받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설교라는 컨텍스트를 떠나서라도, 말이 안되는 일일 것입니다. 

12. 마인드맵 설교를 한글 파일로 옮기기 

만약 당신이 XMIND를 사용한다면,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았습니다. 초창기에 저는 마인드맵을 그대로 띄워두고 설교를 해본적이 있습니다. 마인드맵 프로그램이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컴퓨터가 멈추는 등의 여러 문제가 나타나서 그것은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마인드맵 내용을 전체 카피해서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에 복사를 합니다. 

이렇게 할 경우에 문제는, 어디에서 내용이 끊어지고 연결되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문단 안에서 주제가 되는 문장은 파란색으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은 빨간 색으로 강조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실제 설교 때에 어디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는지 충분한 신호가 됩니다. 너무 복잡하면 설교 할 때에 정신이 헷갈리기 때문에, 딱 두가지 색깔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0인치 정도의 테블릿에 원고를 넣습니다. 한글 뷰어는 굉장히 가벼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적당히 큰 태블릿이라면 저렴한 것도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원고를 보면서, 오른손으로 태블릿의 원고를 계속 쓸어 올리면서 설교를 합니다. 안타깝게도 끊임없이 오른손으로 태블릿을 만지기 때문에, 청중이 보기에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원고에 대한 숙지가 필수입니다. 

13. 드디어 원고가 준비되다

충분하고도 탁월하게 원고를 준비하고 단상에 올라가면, 성도님들의 눈동자가 보입니다. 준비된 설교 한마디 한마디에, 내가 느꼈던 그 감정과 감격을, '똑같이' 가슴에 품고 따라오는 그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완벽하게 준비한 설교가 주는 기쁨은, 천상의 기쁨 그 자체입니다. 

당신이 준비한 원고를 읽고 또 읽고 수정하면서 드디어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졌다면, 그리고 정말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이 들었다면, 이제 드디어, 설교의 '실제 전달'의 단계에 돌입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제3편 : 설교 전달' 로 글은 이어집니다.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3편 : 설교 전달)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1편 : 설교 내용 준비)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html

2020년 7월 15일 수요일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1편 : 설교 내용 준비)


설교를 어떻게 작성하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 이러한 질문은 목회자라면 누구나 평생 짊어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이고 철학적인 좋은 내용들이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능력 수준과 현재 사역의 컨텍스트의 맥락에서 적용하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설교는 답이 없다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평생 해야 하는 설교라면, 그래도 어떤 좋은 방법들을 찾아서, 진실한 내용과 좋은 전달을 만들어 내고 싶다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개인적인 기회로 저의 설교 준비와 구성 그리고 전달에 대해서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 내용을 준비하면서, 저의 지금까지의 설교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과 방향을 점검해 보는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까지 그렇게 한 것 처럼, 최고의 성경 프로그램인 로고스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 내용은 어느 정도 합리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다양한 청중들 속에서 다양한 설교자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저는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개인적인 내용들을 적는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됩니다. 다만, 읽어 보시고 혹시라도 도움이 되실만한 부분들을 취하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기쁨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설교에 대한 원론적인 철학적인 면들은 최대한 배제되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분야이지만, 몇천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본문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시도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도전입니다. 

그러한 거대 담론을 다루는 것은 제 능력 밖입니다. 오히려 제가 사용하는 방법들의 아주 간단한 근본적인 이유들, 그리고 그것에 따른 매우 실용적인 설교 준비에 대한 방법들로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이미 살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몇가지 글들을 작성하였습니다. 이미 다양한 자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기본적인 자료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필요시에 그 링크들을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설교에 대한 이 세편의 글은, 근본적으로는 기존에 작성했던 글과 그 궤를 같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들의 발전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1. 설교할 내용이 필요하다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설교문을 '작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설교는 새벽 설교의 경우에는 20분 정도, 주일 공예배의 경우 최소 30분 정도 '무엇인가' 말을 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말할 거리를 찾는 것'이 별것 아닌 것 처럼 여겨진다면, 큰 오해입니다. 무엇인가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말 주변이 좋은 사람이라도 20분 이상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설교의 구성과 전달을 논하기 전에, 일단 무엇이라도 '말할 내용 그 자체'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말할 내용이 풍성하지 못하다면, 빈약한 설교가 될 것이고, 새로운 깨달음과 감격이 부족에 대한 아쉬운 마음으로 청중들은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2. 설교의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까요? 

일단 우리는 설교의 목적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설교는 연설과 다르기 때문에, 그 기본 내용이 '성경'으로 부터 나와야 합니다. 설교는 기본적으로 목회자 '자신'의 '성경'에 대한 '묵상'과 그것에서 부터 끌어낸 '적용'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좋은 설교를 하기 위한 결정적인 관건은, 설교자 본인이 얼마나 '깊은 묵상'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깊은 묵상의 반대 표현은, '뻔한 묵상' 혹은 '얕은 묵상' 입니다. 다시 말해서, 같은 본문을 가지고, 얼마나 깊이 있게, 얼마나 통찰력 있게, 얼마나 새롭게 묵상하는가가 설교의 퀄리티를 결정합니다.

다양한 묵상의 방법들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합니다. 제 평생에 사용할 방법으로 저에게 맞추서 최대한 단순화 시켰습니다. 

3. 말씀 묵상을 시작하자

먼저 셀폰에 개역개정 성경을 띄웁니다. 당연히 개역개정 성경은 구입해야 합니다.
* 성경전서 개역개정 4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https://www.logos.com/product/1840/seonggyeongjeonseo-gaeyeoggaejeongpan 
만약, 영어권 설교자라면, 본인이 신뢰할만한 번역본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대표적인 ESV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보실 것은, '로고스를 어디에서 자주 사용할 것인가' 입니다. 로고스는 굉장히 무거운 프로그램입니다. 외장 VGA가 달려있고, 또 SSD가 달려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반면에 로고스는 셀폰용이 훨씬 속도가 빠릅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설교 준비 자체를 셀폰으로 많이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저의 묵상 샘플에서 보시는 것 처럼, 로고스의 4가지 칼라로 하이라이트 효과를 넣어서 말씀 자체를 시각적으로 만듭니다. 


로고스 안에는 많은 하이라이트 방법이 있지만, 시간과 효과성을 따져 보았을 때에 저는 오직 4가지 색깔만 제가 나름대로 그 의미를 정해서 사용합니다. 

빨간색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주황색은,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초록색은, 본문 안에서 반복되는 것에 대한 표시, 그리고 파란색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 입니다. 당연히 각자 편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4. 본문의 의미를 탐색하자

물론 성경을 묵상한다는 것이, 생각없이 읽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당연히 성경은 생각없이 읽어서는 안됩니다. 묵상은 기본적으로 '국어 공부'입니다. 예를 들어서, 연애 편지를 받고 지금 읽는다고 생각해 보신다면, 묵상이 그것과 비슷합니다. 

연애 편지를 받는다면, 아마 당신은 종이가 뚫어지라 여러번 읽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보낸 사람의 사랑의 진지한 혹은 정확한 마음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그 행간에 있는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집중해서 읽을 것입니다. 

아마도, 편지에 적혀 있는 한 문단과 바로 뒤에 연결된 문단 사이의 그 빈줄 하나 조차도, 너무 큰 의미로 다가와서 빈 줄에 마치 글이 써 있는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일 것입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 안에 표시를 하면서, 그리고 주의 깊에 읽으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도대체 이 본문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입니다. 

설교는 기본적으로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해야 합니다. 나의 연애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연애 편지'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하이라이트 하는 동시에, 마음에는 항상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MDIV 시절 탁월한 설교학 교수님들을 통해 설교학을 배웠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박완철 목사님은 원포인트 설교의 대가입니다. 그분의 설교가 끝나면, 기립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야 했습니다. 그분은 이제 목회를 시작하는 신병들을 앞에두고, 아주 혹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이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당신이 지금 한 설교가,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묵상하다보면, 마치 어두운 밤에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 처럼, 말씀의 의미가 떠오를 것입니다!' 제 평생에 가르침이고, 언제나 마음에 품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5. 본문을 향해 질문을 던지라

그렇다면,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본문을 100번이라도 읽어보면 될까요? 물론 본문을 여러번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말씀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를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본문 자체를 향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탐정 영화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인공인 탐정은, 굉장히 미스테리한 사건을 의뢰받게 됩니다. 그는 사건의 결과는 알지만, 그 사건이 이루어진 과정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단서부터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탐정은 절대로 모든 것을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소한 하나에도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갑니다. 결국 탐정이 큰 그림을 찾는 것은 질문을 던지면서 찾아내는 작은 단서들로 부터 시작이 되고, 마지막에 결국에는 그런 작은 단서들이 모여서 큰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본문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도 마치 그것과 비슷합니다. 본문의 작은 단서들에서부터 철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최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작은 곳에서부터 조사해서, 큰 그림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은, 본문의 의미를 밝혀내는 역할 뿐만 아니라, '설교의 역동성'을 위해서 가장 중요합니다. 본문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수천번 들어왔던 뻔한 본문을, 새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나의 관점으로 읽어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설교자는 냉철해야 합니다. 자신의 설교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 설교가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내용은 아닌가? 몇년 전에 했던 그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나 자신조차 그 내용을 끌고가기 버거울 정도로 평범하지는 않는가? 

이것은 뼈아픈 질문이지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미 당신이 설교자인 이상 더 이상 남들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점검해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을 향해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저 평이하고 어디서 들어본 뻔한 이야기 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뒤에 설교의 구성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설교는 흥미진진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제일 안 좋은 구성은, '뻔한 설명의 연속'으로만 설교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아마 10분만에 청중의 주의력을 완전히 흩어버릴 것입니다. 설교는 가능하다면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추리 소설과 같은 구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흥미진진한 구성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설교 준비의 처음부터 끊임없이 본문에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는거지?, '이 구절은 앞에 구절과 왜 연결이 되는 거지?', '이 단어는 특이해 보이는데 성경 전체에서 어디에 어떻게 등장하는거지?' '왜 이렇게 하나님은 여기에서 화가 나신거지?' '여기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하지?' 등등의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의 경우, 10절 정도의 본문 속에서 20-30개 정도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반드시 로고스의 '메모 기능'을 통해서 기록해 놓습니다. 

로고스 프로그램의 메모 기능은, 칼라와 안에 들어가는 글자 (느낌표, 물음표 등등)가 모두 조정이 가능합니다. 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가급적 노란색 느낌표 메모를 사용하고, 아주 특별한 경우, 빨간색 메모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시겠지만, 보라색 메모는 '적용'을 위해서 필요시에 구분해 놓습니다. 

위에 보신 이사야 6장 1-7절 묵상은(원래 본문은 13절까지이지만), 설교의 '아주 초기 준비 단계'입니다. 이제 본문 묵상을 시작하면서, 개인 묵상과 하이라이트, 그리고 질문만 적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본문 기본 관찰은 30퍼센트 정도가 끝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느낌표가 들어간 메모노트는 전부 질문에만 관계 된것입니다. 아마 13절까지 다 묵상하고 나면, 최소한 20개 이상의 질문을 가지게 되겠지요. 위에 샘플 속에서 현재까지의 저의 묵상의 질문을 샘플로 보여드립니다. 

1절 - 왜 굳이 하나님의 옷자락이 등장하는가?
2절 - 모시고 선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 도대체 발과 얼굴은 왜 가리는가? 
3절 - 불러 이른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4절 - 거룩하시고 거룩이 충만하다! 충만하다는 것은 구약에 어디에 처음 나오는가?
5절 - 화로다 라는 말이 또 어디에 나오는가?
- 왜 굳이 입술이 부정하다 라고 하는가? 다른 곳에 어디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가?
- 부정하다라는 것이 원어로는? 다른 곳에는 어떻게 사용되는가?
- 하나님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인생에 충격이 되고 문제가 되고 이제 죽겠다라는 문제가 된다는것! 하나님이 뭘 어떻게 하신 것도 아닌데?

6절 - 굳이 그때에 라는 내용으로 연결해서 논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처절한 거룩함에 대한 인식, 그때 그 사람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 사람을 사용하신다
7절 - 죄가 제하여졌다라는 개념이 또 어디에 등장하는가?
8절 -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되고 특별히 빨간색 메모지 사용) 왜 굳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시는가? 이사야를 부르고 자신을 보게하시고 앞에 한사람 밖에 없는데 그냥 가라!가 아니라, 굳이 이렇게 묻고 계시는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저는 아직 이 본문에 대한 설교 준비를 하는 상태입니다. 다만 제가 볼 때에, 위의 질문들은, 단순한 질문은 하나도 없고 대부분 복합적이며, 본문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판단됩니다. 

특히 8절의 질문은, 지금까지 이 본문을 보면서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입니다. 현재로서는 위에 질문들이 어떻게 설교에 영향을 줄 지 알 수 없지만, 위에 있는 질문 중에, 제대로 하나만 파고들어가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본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6. 단어를 연구해야 한다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특별히 제가 신경 쓰는 부분은, 단어 연구입니다. 물론 시간의 한계로 인해, 모든 단어의 문법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 혹은 '특이하다고 느껴지는' 단어는, 반드시 파란색 하이라이트를 해 놓고, 성경 단어 사전을 통해 그 뜻을 확인해야 합니다. 

원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모든 단어를 파싱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원어를 볼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과 함께 원어 분석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자료입니다. 

* 행간 성경: 성경전서 개역개정 4판

ESV와 함께 원어 분석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자료입니다. 

* The English Standard Version with Reverse Interlinear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 사전보다 더 깊은 신학 사전(Theological Diciontary)이 그렇게 크게 유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최후의 경우에 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교를 위해서 최소한 기본적인 사전 단계 정도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주로 사용하는 사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소개해 드린 행간성경의 스트롱코드 기능을 열면, 한번 클릭으로 바로 사전이 연동됩니다. 



*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https://www.logos.com/product/199/greek-english-lexicon-of-the-new-testament-based-on-semantic-domains

그리고 문법적인 사항에서 보통 확인할 것은, 히브리어 헬라어 공통으로 '시제'입니다. 특별히 완료, 미완료, 분사, 현재, 명령, 능동, 수동 등을 확인하면, 그 동사의 뉘앙스는 항상 설교의 좋은 소제로 사용됩니다. 

과연 어떤 인물의 행동이 계속 되는가, 아니면 멈춘 것인가? 현재 어떤 행동과 연결이 되어 있는가? 억지로 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인가? 등등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묵상 혹은 다른 주석을 통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동사의 시제를 볼 때에 중요한 점은, '의외의 경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사가 문맥상 능동으로 쓰여야 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특이하게 수동으로 쓰여 있는 경우는, 당연히 주목해야 합니다. 

분명히 훌륭한 문법책이 많이 있겠지만, 로고스 안에서 문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강의도 있습니다. 방대한 내용이라 처음부터 모두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대로만 저도 읽어보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 Mobile Ed: Learn to Use Biblical Greek and Hebrew (2 courses)
https://www.logos.com/product/187841/mobile-ed-learn-to-use-biblical-greek-and-hebrew

그리고 혹시 필요한 경우, 그 원어가 구약 전체에서, 신약 전체에서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서, '바울 서신'에서 등장한 이 단어가, '전체 바울 서신'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확인해 봅니다. 로고스 기본 검색 기능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설교에 원어를 얼만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까? 

저는 평소 설교에 '최대 한두개 정도' 문법적인 사항을 넣어서 설교에 역동성을 불어넣습니다. 다만, 굳이 설교에 원어를 직접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어를 인용할 때에, 원어를 직접 발음하는 경우 보다는, '개역개정의 단어가 이러한데, 원어는 이런 뜻이고, 그래서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하다' 라는 정도로 인용합니다. 

예전에는 영어 성경도 직접 자주 인용했지만, 요즘에는 혹시 영어에 불편을 느끼실까봐 가급적 제가 해석한 내용만 인용하는 정도입니다. 

최대한 원어를 적게 인용하는 이유는, 설교는 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중의 한정된 집중력을, 평소에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원어를 등장시켜서 흩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목회자임에도, 원어가 세개 이상 등장하는 설교는 집중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7. NET BIBLE과 번역본들

개역개정 성경 혹은 자신의 기본 성경을 충분히 묵상했다고 생각이 되면, 이제 반드시 NET BIBLE을 봅니다. 

* NET Bible: Full Notes, 2nd ed.
*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넷 바이블(NET BIBLE), 진짜 유용합니까? (2022년 2월 업데이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04/net-bible.html

* 로고스 어디까지 써봤니?
- 넷 바이블(NET BIBLE) second edition 뭐가 달라졌는가? (수정)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2/net-bible-second-edition.html

* 로고스, 어디까지 써 봤니?
- 로고스는 매우 영리합니다, 그래서 사용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넷 바이블 관련)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17.html

넷바이블은 정말 너무 유용합니다. '각주' 안에서 각 본문이 원문의 원래 의미는 이렇지만,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는 translation note가 적혀 있습니다. 혹은 원어의 깊은 의미에 대해서 WBC 주석의 요약적인 설명이 들어있습니다. 

개역개정이 좋은 번역이지만, 반드시 NET BIBLE까지는 봐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개역 개정과 동일한 수준까지 하이라이트 처리를 하고 메모로 추가적인 질문 사항들을 기록을 남깁니다. 

만약에, 개역개정과 넷바이블을 봐도 본문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가장 문자적 번역인 NASB부터 시작해서, 가장 역동적 번역인 NIrV 정도까지 다 살펴보아야 합니다. 현재 제가 보는 번역 성경은 KJV, NASB, ESV, D-R, CJB, HCSB, NIrV 입니다. 

'본문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에 하이라이트를 치면서, 그리고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이 되기 시작합니다.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런 이런 것들이 핵심 내용이고, 이정도 내용을 설교에 넣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시점에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만약, 본인이 묵상한 내용이 너무 탁월하여서, 그리고 조직 신학적으로 성경 신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며, 더 이상 어떤 자료도 추가로 볼 필요 없을만큼 충실하고 신선하다라고 판단된다면, 굳이 다른 자료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간혹 가다가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더 풍성한 내용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8. 묵상을 풍성히 만드는 빠른 방법, 스터디 바이블

개인적 묵상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저의 다음 단계는, '스터디 바이블'입니다. 스터디 바이블의 장점은 빠른 시간에 내용을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터디 바이블에는 종류에 따라서 본문의 묵상을 구성하는, 관찰, 해석, 적용의 세가지 단계가 다양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각각의 장점이 있지만, 스터디 바이블 스무권 정도를 빠르게 살펴본다면, 유명한 주석 다섯권 정도를 본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위해서 사용하는 스터디 바이블은 현재 스물여섯권입니다. 성도님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스터디 바이블의 추천과 리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로고스 프로그램으로, 평신도 성경 공부하기
with 스터디 바이블 노트 Study Bible Notes (2022년 9월 / 능력 차트 추가)

저는 신학을 전공한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노고를 인정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터디 바이블을 만들고 편집한 분들을 존중합니다. 평생을 성경 해석과 적용을 사명으로 살아온 분들의 저작을 참고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스터디 바이블들은 다 비슷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분명히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글쎄요, 6년 이상 로고스에서 구입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스터디 바이블을 사용해 보면서 느낀 것은, 절대로 스터디 바이블들의 내용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자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단점도 존재합니다. 빠른 시간에 훑어보고 장점만 취하면 그만입니다. 

특별히 제가 꼭 언급하고 싶은 장점은, '적용의 부분'입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아카데믹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굉장히 '적용 중심적'으로 만들어진 스터디 바이블도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유명한 NIV Application Commentary를 동시에 보아도, 적용 중심적인 스터디 바이블이 훨씬 낫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 하나의 스터디 바이블의 장점은, '안전성'입니다. 저는 '안전한 설교'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서, 저의 초창기 설교의 대부분의 내용은, 마이클 호튼의 책의 거의 복사판이었습니다. 설교는 흥미 진진해야 하지만, 동시에 안전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자는, '교회의 역사 가운데 서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미 검증된 자료를 사용하면, 나의 잘못된 생각들이 교정이 되고, 설교의 내용이 안전해 집니다. 

스터디 바이블이라는 포멧 자체가, 이미 좋은 주석들의 요점을 정리해서 평신도 용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스터디 바이블 스무권 정도 보면, 자신의 설교 안에서 성경 본문 자체에서 벗어난 '황당한 이야기'를 할 가능성은 '극히'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설교자의 신학이 확실하다면, 저는 다양한 교파의 스터디 바이블을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약간 당혹스러운 내용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다른 지체들의 묵상을 읽어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통찰력과 겸손을 설교자에게 가져다 줍니다.

9. 좋은 주석의 도움을 받으라

만약, 스터디 바이블을 철저하게 살펴 보았어도, 본문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거나 말할 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다면, 이제 좋은 주석을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석을 먼저 펴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급하고 바쁘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자신이 말씀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여기저기서 빌려와서 짜집기 하는 수준에서 멈추게 됩니다. 

제가 다양한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저의 설교의 독특성은 반드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반드시 기억할 것은 설교는 단순히 자료들을 모아서 순서에 맞춰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설교는 자신의 치열한 묵상 속에, 좋은 자료들을 참고하고 녹여 내어서 만들어내야만 하는, '자신만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제가 제안한 순서처럼, '성경 자체'에서 부터 설교 준비를 시작하고, 단순히 다른 자료를 베끼는 차원을 뛰어넘기 위해서 '수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러한 말씀을 바탕으로 한 '스스로의 사고의 결과물' 안에, 당신이 보는 자료들을 녹여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석은, 설교를 위한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며, 주석을 참고하는데 있어서 실제로 조금 까다로운 부분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교자가 개혁주의 성향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신이 보아야 하는, 혹은 유명한 모든 주석이 개혁주의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이 어려운 점입니다. 보통 신학의 색깔이 분명한 저명한 목회자가 쓴 주석의 경우, 주해 자체의 깊이가 얕은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R.C. 스프롤 목사님을 좋아하지만, 그분의 주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주해 자체가 탁월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건전한 신학적인 해석이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어떤 주석을 사용하든지 간에, 사용하는 사람의 신학적인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각 성경 권별로 저명한 주석들을 많이 구입하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좋은 주석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있습니다. 저의 예전 글들을 통해서, 주석의 추천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추천하는 TOP5 주석 정도만 살펴보아도, 해석과 설교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다윗의 탐욕 - 사무엘하 12장 7-15절 설교
& 로고스(Logos Bible Program)를 이용한 설교 준비 노하우 (2021년 2월 업데이트)

물론, 이 단계에서 이제 본문에 대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아주 간혹 있습니다. 매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결국 설교자가 자신이 가장 확신할 수 있는 해석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단 한 종류를 추천하자면, Exegetical Summary라는 책이 매우 유용합니다. 권위 있는 주석들이 어떤 특정 본문에 대하여서 취하는 입장을 아주 상세하게 비교해서 분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 Exegetical Summaries Series (34 vols.)

10. 좋은 저자의 도움을 받으라

그런데 가장 곤란한 경우는, 예를 들어서 Exegetical Summary를 보아도 해결이 안되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에 저의 경우는, 제가 '가장 신뢰하는 목회자'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설교 중에 모든 해석을, 마치 논문의 각주를 다는 것 처럼 '누구의 말이다' 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믿을만한 신학자 혹은 목회자의 해석을 따라가면, 마음에 큰 확신이 생깁니다. 

로고스 안에서 자체 검색 기능을 통해, 미리 모아 놓았던 목회자 혹은 신학자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래서 자신이 믿을 만한 저자의 책을 구입해 놓아야 합니다. 저는 결정적인 몇번을,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11. 묵상 이외에 적용은 어떻게 만드는가?

설교 내용 준비라는 맥락에서, 묵상 이외에 그럼 적용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딱히 어떤 단계에서 적용이 만들어진다 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묵상을 하면서, 그리고 추가적인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내용이 정리되면서, 결국 적용의 포인트들이 '다듬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저의 경우에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주 탁월한 통찰력을 발견할 경우, 그것으로 부터 적용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적용의 경우, 듣는 청중이 굉장히 신선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설교에서 독창적인 저만의 적용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묵상의 과정 속에서 적용성이 강한 스터디 바이블은 반드시 살펴봅니다. 반드시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제가 생각할 때에 가장 간편하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적용에 대한 책을 한권 강력히 추천합니다. 로고스 안에서 검색 기능을 이용해서, 혹시라도 자신이 다루는 본문의 적용이 들어 있는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이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건전하여서, 여러번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12. 반드시 노트에 남겨 놓으라

마지막으로 설교 내용 준비 단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연구한 모든 결과들을 노트로 남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트를 반드시 로고스의 '앵커 기능'을 통해서 연결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기록은 반드시 남아 장기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묵상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설교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한번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꾸준하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해 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반드시 로고스 메모 기능과 엥커 기능을 사용해서, 그 내용을 본문 속에 연결해 놓습니다. 로고스 엥커 기능은, '반드시' 익히기를 추천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 로고스 베이직 어디까지 써봤니?
- 말씀에 "닻" 을 내리라 (로고스 프로그램 앵커(anchor) 기능)

https://jungjinbu.blogspot.com/2019/07/anchor.html

지금 제 로고스에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약 삼천개의 묵상 노트가 들어 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만오천개입니다. 지금까지 준비한 그 모든 내용들이 헛되지 않고 계속 쌓여서, 앞으로 평생의 사역의 자양분이 되겠지요. 

13. 설교 내용 준비 결과물의 '샘플'

아래 보시는 그림은, 제가 설교를 위해서 내용을 준비한 최종적인 결과물입니다. 이사야서 6장을 묵상하고 자료들을 준비하면서, 전반적으로 스터디 바이블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역시 이사야서는 워낙 유명한 성경이라, 대부분의 스터디 바이블들이 내용을 충실히 다루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보여드린, 저의 묵상의 시작과 비교해 보신다면, 비교할 수 없을만큼 묵상의 내용이 풍성해 졌습니다. 본문 해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빨간색 노트가 굉장히 많이 늘었고, 또 적용의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는 보라색 노트들이 늘었습니다.


위의 묵상한 저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내용들과 통찰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에, 이 본문은 하나님의 무한히 거룩하심이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은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왕 되심이 강조가 됩니다. 그런 부분에서 원어로 '성전'이라는 것은 '왕궁'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를 통해서 볼 때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인됨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전혀 다른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부르신 장면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한 이미지가 풍성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사역은, 백성의 우둔함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듯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면 백성은 회개조차 못하는 이들입니다. 이사야는 '어느때까지니이까'라고 자신의 사역의 기간을 물어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역의 화려한 결과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자신의 사명을 맡기시고 그가 감당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언뜻 보면 마치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시대를 모르는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서 노력하셨지만, 백성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벌하시지만, 그러나 그분의 놀라운 사랑은 여전히 그루터기를 통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원어적인 부분에서는, 단어 연구에서 '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서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험하는 죄인인 이사야의 자기 인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남기시는 '거룩한 씨'는, 창세기 3장 15절에 '후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스도로 연결할 수 있는 주해입니다. 

위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개인 묵상과 질문들을 사용하면서, 대락 스무권의 스터디 바이블들로 해결하였습니다. 다만 10절의 말씀은 주해하기가 어려워서, NICOT 주석 최근 버전과 구 버전을 모두 살펴보았고, Expositor's Bible Commentary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시간이 더 충분했다면, 저자까지 추가로 검색해서 살펴 보았겠지만, 이번 설교는 이 정도로 준비라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14. 이제 드디어 설교 내용이 준비가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 본문에 따라서 다르지만, 설교 준비를 위한 내용 준비에 5시간-15시간 정도를 사용합니다. 굉장히 유동적입니다. 수월한 본문이라면 빠르게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까다롭거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한주 전에 이미 본문을 염두에 두고 묵상을 시작합니다. 단시간에 설교를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제안한 것 처럼, 개역 개정, 넷 바이블, 영어 성경 번역 대조, 원어 단어 분석 및 평가, 스터디 바이블 스무권 정도, 권위있는 주석 여러권, 그리고 로고스 저자 검색까지 끝냈다면, 아마도 당신의 로고스 노트에는 최소 2시간 이상 강의할 수 있는 '말할 거리'가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자료는 차고도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설교에 대한 실제 구성으로 넘어갈 때가 된 것입니다. '제2편 : 설교 구성' 으로 글은 이어집니다. 

* 설교, 이렇게 내용을 준비하고, 이렇게 구성하고, 이렇게 전달하라! (제 2편 : 설교 구성)

* "로고스 성경 프로그램" 전체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html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고, 커피 한잔 기부를 통해 정진부 목사를 응원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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