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sing the Text) / 요한복음 6장 41-59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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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랍게도,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더군요. 파이퍼 목사님은 여기서 말하는 설교 준비는, 설교 시작 바로 전에 하는 그런 준비가 아닙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본인의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40년이 필요했다고 말씀하시네요.
본인이 청소년 시절 아팠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가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경험이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부모로서의 고민들이 또한 설교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설교자를 준비시키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서 4장 17절 부터 인용합니다.
야고보서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4:13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r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말씀을 인용한 이후에, 사람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잠깐 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파이퍼 목사님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연기와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삶의 실재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설교자가 말하는 그 내용"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한 실재의 경험이, 바로 설교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5절에서 "말하기를" 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면서 파이퍼 목사님의 야고보서 4장 13-15절에서 뽑아낸 원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 그리고 모든 실재에 대한 경험이 설교자가 말하는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고통의 경우에, 파이퍼 목사님은 그것을 꺼려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마틴 루터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세명의 위대한 스승이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기도, 묵상, 그리고 고난입니다. 모든 설교에 있어서 위대한 신학교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리고 루터가 인용한 시편 119편 71절을 인용합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It was good for me to be afflicted so that I might
learn your decrees.
고난을 당하였기 때문에, 고난 당한 설교자가 전하는 바로 그 내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는 고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고난이 당신에게 얼만큼 필요한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6절을 인용합니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6
If we are distressed, it is for your comfort and salvation; if we are
comforted, it is for your comfort, which produces in you patient endurance of
the same sufferings we suffer.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로는 그들의 목자에게 고난을 주심으로,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설교자의 고난이, 성도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맥락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또 한 곳을 인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9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8 We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brothers, about the hardships we suffered in the province of Asia. We were
under great pressure, far beyond our ability to endure, 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여기에서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가 부활을 설교 할 때에는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부활에 대해서 설교할 때 꾸며서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설교자를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고 가셔서, 그 이후에 설교자는 부활에 대해서 제대로 설교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떻게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살아내고, 신뢰하고, 고난을 끌어 안으라"라고 파이퍼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언에 조금 더 설명을 덧붙입니다.
설교 준비라는 것은 설교자가 읽는 모든 것 그리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책과 영화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삶의 실재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보아야만 합니다.
당신은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휴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설 속의 가공된 삶을 혹은 길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설교자의 마음 속에 가져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설교자가 삶의 충만한 그 실재 그리고 신적인 실재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든지 간에 사람들에 대하여 무심해서는 안되며, 사람들의 행동, 동기, 그들이 보는 것,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지 등등에 대해서 반드시 보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만나고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잘 알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설교자 자신"입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자신이 느끼는 많은 감정들에 대하여서 예를 들어, 동기, 기쁨, 환호, 좌절 등의 역동성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또 공부함으로써 그 누구를 살피는 것보다 인간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기 인식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설교 준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다다르지 못한다면, 그런 설교자는 설교를 해서는 안됩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자신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이기 땜눙비니다. 설교자 자신의 교만, 두려움 등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을 알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세상과 사람과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성경을 보아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차고 넘치게 되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완전히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물론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경이 설교자의 삶을 지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모든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Kilby Clyde가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해서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지성 (A Mind Awake)"입니다. 루이스는 모든 것에 있어서 깨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의 매우 견고하고 또 구체적인 실재들을 엮어서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저도 루이스를 너무 좋아합니다. 단 한줄만 읽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아마 주님 오실 때 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의 글이 그렇게 좋았던 이유를, 너무나 명확하게 파이퍼 목사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한마디로 "삶의 모든 실재에 있어서 깨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하는 것은, 설교 예화에 관련된 책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의 세미너리 수업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조용한 그 순간에 엠뷸런스 사운드를 듣지 못했던 것을 설명합니다. 누군가가 엠뷸런스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을 태우고 가는 엠뷸런스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던 교수님의 탁월한 조언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예화집만을 가지고서는 사람들의 삶에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각성된 상태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삶의 모든 즐거움, 사람들, 자기 자신, 고통, 등등에 있어서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것이 설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칩니다.
저는 파이퍼 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을 너무 좋아합니다. 강의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 이분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실재를 꾸밈 없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의이며 동시에 진실한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는 참으로 신비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원래 언어란 것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단어와 단어가 모여서 결국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빚어냅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그런 것처럼 우리의 글 속에는 의미와 힘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철저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결국 설교의 대상은 성도님들이며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실재를 경험하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설교도 철저하게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저에게 정말 쉽지 않은 것은, 공감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공감이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성도님이 아프고 힘들고 고난 당할 때 함께 울어주시던 어머니의 진실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읍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의 마음에는 공감이 부족합니다.
제 생각에는 고난으로 공감이 생기는 듯 합니다. 석사 과정 중에 허리가 아파서 일주일 동안 누워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허리가 아프다는 분만 만나면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이 설교자에게 주시는 고난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설교의 준비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삶의 실재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강의의 흐름 안에서, 단 한권의 책 성경의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더 먼저 등장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람에 대한 연구가 성경 연구보다 더 앞에 오는 이 강의의 흐름을 놓고, 어느 누가 파이퍼 목사님이 성경을 경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는 설교 준비만큼,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 심방입니다. 그리고 독서입니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책만 펴 놓고 있을 때에는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통찰이 풍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겠지만, 고난 당하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며 위로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사람을 알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목회자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강의를 통해 제가 바른 방향으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요즘 제가 관심있게 보는 책들이 모두 "사람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북클럽을 학위 논문 주제로 다룰만큼 책을 좋아합니다. 평소에 여러 종류의 책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읽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단순히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사람과 삶의 실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저의 책을 보는 성향과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최근에 감동 깊게 읽고 실제로 삶과 설교에 많은 통찰력을 제공해준 책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 자체를 다룬 책들입니다. 삶의 목적, 삶의 의미, 삶의 현실을 다룬 책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책들을 부지런하게 읽는 것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 봤니?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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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성도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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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 싱크 어게인 / "경청"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도록" 배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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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으로 힘을 써서 심방을 하고 책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평가할 때에는 저의 설교에 진실성이 조금은 올라갔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히 성경이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에서 넘어서서, 진실로 우리의 삶의 실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아무래도 설교에 묻어 나오는 듯 합니다.
특별히 최근에 했던 새벽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찰했던 모든 것이, 삶의 목표와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열망이야 말로, 사실상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해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8/10-lecture-introduction-preaching-is.html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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