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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2일 목요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 마가복음 5장 35-43절 설교

 

예수님께서 어느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데 유대인의 회당을 책임지는 야이로 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그는 예수님께 아주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5 23절 말씀입니다.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라고 예수님 앞에서 간곡하게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바로 그의 집으로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오랫동안 병으로 아팠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가진것을 다 써서 의사들을 만났지만 도대체 낫지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내가 손만 대도 병이 나을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래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몰래 손을 대자 놀랍게도 여인의 몸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무리 중에서 굳이 찾으시고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마음이 바짝바짝 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왜 그런가? 시간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빨리 본인의 집으로 가셔야 하는데 빨리 가서 치료해 주셔야 되는데 자꾸 늦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달려 왔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35절 말씀 하반절입니다.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라고 너무나 슬픈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왜 그런가? 사랑하는 딸이 결국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딸을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마치 그런 야이로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회당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분이 온다고 해서 바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 하셨을까요? “야이로야 미안하다, 내가 좀더 빨리 갔어야 되는데 벌써 너의 딸이 죽었다니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이제 너의 집으로 가도 소용없으니 다시 돌아가겠다”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불신의 말을 무시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음의 소식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영혼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절망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죽음이라는 그 절대적인 운명 앞에서는 그 어떤 힘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분명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야이로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잠식당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고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함께 도착해 보니 딸의 죽음으로 인해 난리가 났습니다. 그 온 집안에 곡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9절 말씀입니다. 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절 처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비웃더라”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지금 야이로가 처한 이 모든 상황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야이로의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딸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사실상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수 많은 기적들을 일으킨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불신의 분위기 속에서 그 참담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를 향해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의 분위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착하셔서 소녀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비웃은 것입니다.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야이로의 볼이 부끄러움을 붉어졌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노골적으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한 것입니다

 

아마도 야이로는 방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떠올렸을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 모든 두려움과 비웃음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야이로는 그 자리에서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40절 말씀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비웃는 자들을 다 내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비웃는 자들은 그분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데려가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아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무릎을 꿇고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만지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녀의 시신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니까 죽었던 소녀가 그 자리에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랐다” 왜 그런가?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설마 죽었던 아이가 살아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죽은 사람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죽음 조차 다스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능의 말씀 단 한마디로 죽은 딸을 살리심으로 자신은 살아계신 여호와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심을 친히 증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조차 이기시는 분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심을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고 또 한쪽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비웃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죽음 이후에 생명이 있는가? 어떻게 죽은 이를 잔다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러나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삶의 모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죽음을 앞두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는 이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봐야 아무 소용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인가? 왜 굳이 손해를 감수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그래봐야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저러는 것인가? 정말 우리가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면 이러한 비웃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좀 대충 순종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면서 우리의 믿음도 연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 6절에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이 기적의 사건 가운데 예수님 바로 옆에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웃던 수 많은 이들의 조롱을 바로 옆에서 함께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이렇게 격려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러 시험으로 잠깐 근심하게 되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기뻐하라, 왜냐하면 우리 앞에 영원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오히려 연단을 받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많은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감격시키시고 넘치는 행복으로 지금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계시다는 그 사실이, 우리가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그리고 그분이 주실 그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만약 우리에게 그 미래가 없다면 현재의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 안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인간의 본질을 꿰 뚫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그 환경 자체가 그들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현재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래의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목표를 볼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는 사람은, 과거의 생각에 파묻혀 살게 됐다. 그들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시련을 내적 힘을 기르는 시험으로 여기지 않았다.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업신여겼다. 그들은 두 눈을 감고 과거에서만 살려고 했다. 그들의 삶은 의미가 없어졌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그 어떤 인간도 넘어서지 못한 죽음이라는 절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기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소녀에게 다시 생명을 주심으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친히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불신의 시대에, 그저 자기 탐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이 시대 속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선을 행하며 손해를 보며 주님의 뜻을 행하며 우리의 삶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반드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루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하실 그 날을 마음에 흔들림 없이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며, 주님의 자녀의 정체성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전능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기꺼이 오늘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지막 날에 사랑하는 주님을 뜨겁게 그리고 온전히 만날 것을 사모하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시는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시간에 말씀 묵상하시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그리스도께서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믿습니다또한 다시 오실 주님이심을 믿습니다주님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가장 명예로운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오니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시고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십자가의 길을 힘써 걸어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2023년 9월 4일 월요일

목회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누구일까? 양심에 화인 맞은 자?



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입니다. 그래서 대화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저 이상으로 교육과 미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저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알려줍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알려준 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시는 박상미 교수님의 영상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되면 그분이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꼭 살펴봅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공부하신 이력이 좋았습니다. 저에게 삶의 큰 의미를 준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분은 오랫동안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해서 심리 치료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 저의 관심을 사로 잡았습니다. 절대로 교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다름 아니가 "사기꾼"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거짓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특징은 "여전히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기를 치면서도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착각에 빠져 살며,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속이면서 어울리기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 목회에서 동일한 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적인 경험의 결과입니다.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놀랍게도 어떤 성도님들은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잘하고 있고 충분히 선하고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인 저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너무나 어리고 부족한데, 자신은 충분히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런 분들에게는 어떤 목회적인 조언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하였고 그래서 신앙의 여러 언어들을 구사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합니다. 자신은 의롭고 다른 이들은 악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에 힘을 씁니다. 남들을 비난하는 바로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합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된 상태라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성격과 도덕적인 수준에서 문제가 있으며 그것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 생활의 기간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한 분들 중에도 혹은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 중에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 안에 깊이 존재하는 죄성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바꾸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은 겸손해져 있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가까이 대할 때에 따뜻함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적으로는 바로 이런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조언이 그 가치를 발현합니다. 변화의 소망이 존재합니다. 사실상 이런 분들은 영적으로 탁월하게 성장하며 무한히 뻗어나가게 됩니다. 박상미 교수님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바꾸자면, 성령님께서 활발히 역사하심으로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힘있게 일하십니다.

이 짧은 영상을 보는데, 양심에 화인 맞은 자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된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고 일대일로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았다라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태로 들어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 속으로 실제로 진입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2절의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2 Such teachings come through hypocritical liars, whose consciences have been seared as with a hot iron. (NIV)

4:2 The consciences of the false teachers have been seared (that is, desensitized and rendered ineffective) by their rebellion against the gospel. 거짓 교사들의 양심은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역으로 인해서 화인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양심이 무감각해지고 무력해진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1.

4:2 The consciences of those peddling demonic doctrines have either been “branded” by Satan to show his ownership of them or “cauterized,” leaving them unfeeling and unable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악마적인 교리를 선전하는 사람들의 양심은 사탄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보여주기 위해 낙인을 찍혔거나 혹은 화인을 맞아서 옳고 그름에 무감각해지고 그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2074.

이 말씀이 무서운 이유는, "인간의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 어떤 말을 하는 것은 사실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신앙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사람의 내면의 문제가 바로 진짜 문제이며, 그것은 그 사람의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아닌가를 통해서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다른 분들을 비난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제 자신을 돌이켜봅니다. 죄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제 자신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위선적인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어떻게 해서 든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익숙한 상황이 된다면 결국 나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될 것입니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죄성이 나를 완전히 뒤덮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목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말씀으로 양심을 깨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 자신과 성도님들에게 끊임없이 경각심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그 사람의 양심을 깨워야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목회의 중요한 본질임을 다시 한번 강하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 전도서 3장 1-15절 설교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파하고 고민할 것입니다냉정하게 말하면 너무나 비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감사보다는 고통과 비참함이 가득한 것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인정합니다가장 고통스러운 때도 여전히 존재합니다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인생의 때”에 대한 가장 유명한 본문의 설교를 준비하면서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물론 설교할 것이 기대가 된 것도 있지만 긴장이 되었습니다혹시 지난 주처럼 차가 도로에 서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지난 주의 저의 때는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도로에서 떨면서 주님께 기도하도록 하신 때입니다그리고 또 오늘은무사히 설교단에 서게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보다는 저의 내면이 참 강해졌지만또 한편으로는 더 연약해진 듯 합니다마음에 갈등과 낙심하는 일들이 있었는데이번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그것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전도서 설교는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보다는전체적인 맥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 면에서그리스도 안에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그리고 주님을 향한 참된 믿음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동일한 본문을 보면서도 어떤 스터디 바이블들은 한 없이 비관적이고또 어떤 책들은 매우 긍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저는 이 본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망적이고 또 영적인 소망들을 담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들이 비슷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지만평소에 자주 보지 않던 Defenders Study Bible의 내용이 은혜롭고 참 좋았습니다모든 성경 구절에 대한 설명이 있지는 않지만내용이 참으로 충실하고 또 은혜롭습니다.

Ecclesiastes 3:1

a time to every purpose. In Ecclesiastes 3:28 of this chapter there is a remarkable listing of twenty-eight times, arranged in fourteen pairs of opposites (e.g.,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Every timed event has a purpose (Ecclesiastes 3:1) and every thing is beautiful in Gods time for it (Ecclesiastes 3:11). Even when in our time, we may not understand how a particular event can be either purposeful or beautiful, we can have faith that, in Gods time, it is (Romans 8:28). Although it is beyond our finite comprehension, it is still bound to be true that the infinite God worketh all things after the counsel of His own will (Ephesians 1:11).

Henry M. Morris, The Defenders Study Bible (WORDsearch, 2012),  3:1.

Welwyn Commentary 전도서 주석은 사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주석을 찾아보니 이미 가지고 있더군요. 다만 John Currid의 주석을 좋아하는데 내용이 굉장히 탄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1절에 대한 이해부터 자신 있게 논지를 펴 나갈 수 있었습니다

The opening line of this verse literally reads, To everything there is an appointed time. Some translations render appointed time as season, and that certainly is a proper translation of the word. However, it often is better translated as a reference to a set, fixed time. For example, Ezra tells the people of Judah to come to Jerusalem as follows: Let all in our cities who have taken foreign wives come at appointed times (Ezra 10:14). Also, Nehemiah says that he established the work of the priests and Levites in Jerusalem and that he provided for the wood offering at appointed times (Nehemiah 13:31). The Hebrew word in those cases is not referring to some generic time or season, but to definite times. Thus, it is likely that the proposition of the verse in front of us simply means that for everything that happens there is a set, fixed, and appointed time.

John D. Currid, Ecclesiastes: A Quest for Meaning: Ecclesiastes Simply Explained, Welwyn Commentary Series (Welwyn Garden City, UK: EP Books, 2016), 50 

11절과 12절에 대한 이해는최근에 들었던 팀켈러 목사님의 로마서 설교에 먼저 영향을 받았습니다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모든 이들이 일반 은총의 관점에서는 가진 것이지만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그리고 12절에 말씀처럼참으로 기뻐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그러할  있다고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부분은 어떤 주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안에서 묵상한 내용을 풀어낸 것입니다.

14절과 15절은 시간 관계상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특별히 15절은 해석의 관점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 있어서새벽에 간단히 설명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4절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다음에 언젠가  본문으로 설교하게 된다면 충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Ecclesiastes 3:14

shall be for ever. In addition to emphasizing the immutability of God and His works, this passage anticipates the great scientific principle of conservation (conservation of energy, mass, momentum, charge, etc.). Nothing is now being either created or annihilated. An entity may be changed in character and even deteriorate in quality, but it must be conserved in quantity.

Henry M. Morris, The Defenders Study Bible (WORDsearch, 2012),  3:14.

저도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시고 저의 미래를 이끌어가십니다비록 제 눈에는 많은 부분이 답답하고 아쉽고 때론 슬프지만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과 은혜와 기쁨을 누립니다제가 설교한 그 내용에 제 자신이 먼저 진실하기를 원합니다저 역시 은혜를 누리며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전도서 3 1-15 설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궁금증을 다루고 있는 본문입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궁금증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예를 들어서, 내 사업은 언제 성공하게 될 것인가? 내 자녀는 언제 결혼하게 될 것인가? 이 고난의 시간은 언제 지날 것인가? 이런 궁금증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러한 "언제"라는 궁금증에 대한 중요한 답변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범사에" 라는 표현입니다. 범사라는 것은 모든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모든 질문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범사가 일어나는  때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기한이 있다 때가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두가지 표현은 모두 비슷한 표현인데막연한 때가 아니라 특정한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삶의 일들은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특정한 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2절부터 8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어떤 규칙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극단의 경우를  말씀한다는 것입니다누군가 태어난다면 반드시 죽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의 전체가  말씀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식물이 심을 때가 있다면 이유는모르지만  자라다가 갑자기 뽑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식물의 생명의 시작과 끝이  말씀 안에 들어가 있는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다양한 경우의 처음과 끝을 포함해서 8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개의 상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28개의 특정한 시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4 28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7의 배수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 안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점은 분명한 것입니다. 2절에서 8절까지는 1절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때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아무 목적 없이 아무런 방향 없이 우연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혹은 세상 안에 속해 있는 어떤 존재가 그 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그 정확한 때를 정하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보면 이 말씀은 굉장히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에 내용을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면 그거 일 좀 해봐야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렇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은인간의 모든 수고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오히려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아무리 일을 열심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10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행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행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결정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의 내용만 우리가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울한 느낌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삶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삶을 살아가도록 허락 하신 것입니다그러나  삶의 모든 때를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앞에서 예를 들었던  사업의 성공고난이 지나가는 자녀의 결혼 등은 내가 내가 마음대로  때를 결정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마음이 낙심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쪽을 항상 바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보다는 당연히 생명을 원하고 전쟁보다는 당연히 평화를 원하고 우는 것 보다는 당연히 웃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라운 신비를 말씀하십니다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다시 말해서 우리의 눈에 보기에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허락하셨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그리고 때를 따라서 그것을 아름답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차원을 넘어서는 말씀입니다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인간의 눈으로는 때론 좌절하고 때론 슬픈 것이지만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일하시는  전부를 우리가   없는 신비로운 영역에 감추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통하여서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도록가장 선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그렇게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누가 깨닫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는 내용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식과 본능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본능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사람까지라도 이런 영원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 영적인 아주 기초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이 영적인 놀라운 진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8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 놀라운 고백,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감사해야  것은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고백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들은 죄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그분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영적인 생명을 주셨습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나를 대신하여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우리의 마음으로 그것을 굳게 믿게 하셨습니다그리하여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함께 얻는 그분의 자녀로 우리를 삼아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거의 대부분 이해할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확신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은 역사 가운데 증명된 것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없는 확실한 것입니다그리고 여전히 성령님을 통하여  놀라운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아름답게 변화시키시고마지막에는 결국 가장 아름다운 결과를 아버지께서 만들어내실 것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12절과 13절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말씀의 겉모습만 보면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바라고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씀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원하지 않는 일들도 일어나지만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은혜를 깊이 깨닫는 자들이 그분의 자녀라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은 어떻게 살게 되는가오히려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은 사실입니다설령 어떤 일의 때가 우리가 기대한 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문제가 계속 꼬이면서 해결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내가 원하는 일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수도 있습니다웃음이 아니라 눈물을 흘릴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 안에서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성도는 자신이 행할  있는 부분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그것은 기뻐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선을 행하는  그리고 자신이 일한 열매를 통해서 즐거움을 누리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주목할 것은성경은 한편으로는 삶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그러나 그것을 뛰어 넘는 절대적인 긍정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우리의 때는 절대로 우리가 바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하나님이 정하신 어떤 특정한 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여전히 성경은 우리가 취할  있는 우리의 영역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모든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있습니다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릴  있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기뻐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열매들을 누릴  있습니다물론  크기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만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천불을  수도 있겠습니다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며하나님 안에서 오늘을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는데두가지 정도 떠오르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첫째로는 최근에 두번째 읽고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의 내용입니다나치 수용소에 잡혀 들어가서 죽음의 위기를 겪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정신과 의사로서 자기 자신과 수용소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과연 무엇이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가 바로 그것에 대해서 깊이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을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지닌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있는 자유뿐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중에서 적어도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  사람들도 있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모든 외적인 만족과 행복이 차단된 상태가 된다 하더라도오늘 성경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내가 바라는 어떤 좋은 것도 이루어 지지 않는 때라 하더라도인간은 얼마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있는 바로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성경은 바로  선택이라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깨닫고  사랑을 붙들고 삶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 폴리캅 감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폴리캅이 박해 가운데 잡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부르고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협박 당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욕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회유 당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내게 절대로 해를 입히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의 왕이요 나의 구주이신 그분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불에 태워서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타다가 잠시 후면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경건치 못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지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속히 시행하시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안면에는 은혜가 충만했다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고난 가운데 기뻐할  있는 것인가그리고 모든 인간이 두려워할  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있는가자신의 죽음이라는 바로  기한에 다다랐을 때에 어떻게 은혜를 경험할  있는 것인가저는 빅터 프랭클의 책과 폴리캅의 순교의 내용을 보면서 오늘 말씀에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인간에게 있어서 불행과 어려움과 부정적인 일은 절대로 피할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반드시 그런 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그것은 가장 숭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성도는 어떤 존재인가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있기 때문에그분의  은혜가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그는 가장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마치 오늘 전도서의 말씀처럼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완성하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기뻐하며 감사하며 명예로운 선택을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성도님들의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비록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마음대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우리의 삶과   우주를 그분의 모든 깊으신  가운데 다스리시는 여호와 앞에서 두려워하며그분을 높이며 그분을 참되게 이해하고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모든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과 그분의 사랑 안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고난이 닥쳐올 때에 잠시 낙심할 수는 있겠지만 다시 한번 믿음으로 주님 앞에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실 여호와를 믿고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지는 놀라운 사랑을 믿고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속에서 여호와께 기쁨과 감사를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있는 선한 일들을 오늘 하루 동안 행하기를 원합니다우리에게 주신 삶의 소중한 것들을 감사하시며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성도로서 명예롭고 아름다운 태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그렇게 오늘 하루와 평생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주님께서 세상을 주님의 뜻대로 다스리시며 모든 것의 기한과 때를 정하시니 감사합니다가장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며 경외하며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둘째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고난 중에서도 기쁨을 누릴  있게 하여주시옵소서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여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믿음의 성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복된 성도 복된 교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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