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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9일 수요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16) - 말씀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 좋은 교회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본질을 소중히 여기고 집중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의 정체성 자체가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났고, 말씀을 통해서 자라갑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언젠가 영원한 주님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를 꿈꿉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좋은 설교만 있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설교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 설교를 자신의 마음과 삶에 품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성도 한 사람의 각자의 말씀에 대한 갈망과 성숙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 양육의 두가지 축

저는 교회 양육의 두가지 축을, 북클럽과 말씀 묵상으로 잡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는 제자 훈련, 성경 개관 등의 훈련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이 두가지가 가장 성도님들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자라게 합니다. 

두가지는 서로 보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책이라는 것은 복합적인 말씀 묵상과 해석의 결과 입니다. 다시 말해서, 북클럽을 통해서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이 깊어지고, 성경적 사고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성경 묵상은, 이러한 성경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 자체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경 안으로 깊이 들어가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리고 그것을 나와 연결 짓는 것이 바로 성경 묵상입니다. 

'복음이 울다'를 통해서 이미 은혜의 샘터 북클럽 1기를 잘 마쳤습니다. 서른 분의 성도님들과 함께 일주일에 네 클래스를 통해서 너무나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임 순간 순간이 큰 은혜가 있었고, 성도님들 각자와 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큐티 클래스를 시작하며

그리고 이제 큐티 클래스를 시작합니다. 제 마음이 너무 행복한 것은, 다시 한번 본질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고 싶어하지만, 그런 성장의 기회를 실제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님들과 소그룹으로 만나고, 그분들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고백을 들으며,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드릴 수 있기에 이 시간은 목회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시간입니다. 

큐티는 아주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사실 설교의 시작은 철저한 큐티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면에서 큐티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큐티는 참으로 쉬운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의미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비추어 보고 결단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큐티에 대한 여러 전문적인 조언들이 있지만, 저는 볼티모어 교회에서 하는 큐티는 최대한 쉽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물론, 성도님들의 필요를 살펴 더 발전하고자 하는 분들은 거기에 맞춰 따로 섬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방향은, 누구나 쉽게 큐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큐티를 위한 쉬운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 이것이, '큐티 쉽게 하는 법'입니다 with 갓피플성경앱
https://qtchangesme.blogspot.com/2024/02/blog-post_23.html


* 큐티와 북클럽의 조화

실제로 모임을 인도하는 형식은, 살짝 북클럽 형식을 가미할 예정입니다. 묵상할 본문만 드리지 않고, 중요한 스터디 바이블에서 발췌해서 읽을 내용을 같이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발표한 이후에 서로가 피드백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말씀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아래 샘플을 통해서 제가 추구하는 큐티 모임 형식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말씀이 다스리는 교회를 꿈꾸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말씀을 가까이하는 습관과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누구나 처음은 어색하고 낯설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발전하면 언젠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저와 함께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목회자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성도님들 모두가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자신의 삶이 실제로 바뀌고, 이러한 영적인 분위기가 교회 전체를 휩쓸고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볼티모어 교회를 더욱 아름다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가시기를 기도합니다. 

* A Good Church

What makes a church a good church? People may have different opinions, but I believe a good church is one that values and focuses on the essence. And the essence of the church is the Word of God. The identity of believers is founded on the Word. We were born again through the Word of truth, and we grow through the Word. Someday, according to the Word, we will be embraced in the eternal arms of the Lord.

Of course, everyone dreams of a church where the Word is central. However, putting that into practice is not easy. It's not enough to just have good preaching. Preaching is very important, but in order for that message to take root in one’s heart and life, each person must have the ability to understand and accept the Word personally. In other words, each believer needs a personal hunger for the Word and spiritual maturity.

* The Two Pillars of Discipleship

I’ve chosen two pillars for discipleship at church: the book club and daily devotion (QT). Programs like traditional discipleship training or Bible overview classes are also important, but I believe these two methods help believers grow most effectively and quickly.

The two complement each other. A book, after all, is a result of deep meditation on and interpretation of Scripture. In other words, through the book club, one's understanding of the Bible deepens, and the scope of biblical thinking broadens. Meanwhile, QT helps us study the Bible itself, which makes biblical thinking possible. Through QT, we dive deeper into Scripture, understand the truth, interpret it, and connect it to our lives.

We already finished the first session of the “Spring of Grace Book Club” using The Gospel Makes Us Cry. With thirty church members and four classes a week, we had such a meaningful time. Every meeting was filled with grace, and it was a precious time that helped both the members and me grow.

* Starting the QT Class

Now, we are beginning the QT class. I’m so joyful because it allows us to focus again on the essence. Many people want to grow, but not everyone experiences real growth. However, by meeting with church members in small groups, hearing their insights and confessions about Scripture, and helping them in areas of need, this time becomes incredibly meaningful for pastoral ministry.

QT can feel both simple and difficult. In fact, every sermon begins with deep QT. In that sense, real QT takes much time and effort. But on the other hand, QT is very simple. Just read the Word, think about its meaning, reflect on yourself, make a resolution, and pray.

Though there are many professional methods of QT, I plan to keep our QT at Baltimore Church as simple as possible. The goal is for everyone to be able to join. Of course, for those who want to go deeper, we’ll provide further guidance. But our clear direction is to make QT easy for everyone. That’s why I’ve prepared a simple guide.

This is “How to Do QT Easily” with the Godpeople Bible App
https://qtchangesme.blogspot.com/2024/02/blog-post_23.html

* The Harmony of QT and the Book Club

Our meeting format will include elements of the book club. Instead of simply handing out the meditation passage, I’ll also share selected readings from a study Bible. After sharing, we’ll give feedback, encourage each other, and deepen our understanding and application of God’s Word. You can see the sample below to get a sense of how the QT group will be led.

* Dreaming of a Church Ruled by the Word

In the end, the most important thing is developing the habit and ability to stay close to the Word. For all of us—including myself—the beginning may feel awkward and unfamiliar. But if this continues and grows, it will eventually reach a level no one can take lightly.

As a pastor, I truly desire that all members grow. Perhaps that is the one thing every pastor longs for. I hope that all of you will enjoy being close to the Word, feel your hearts burn while meditating on Scripture, and experience real transformation in your lives. I hope that this spiritual atmosphere will sweep across the entire church.

And in all of this process, I pray that God alone will work and continue to build Baltimore Church into a more beautiful church that brings joy to the Lord.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16) - 아침에 나로

 


1. 가사 살펴보기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합니다
나의 다닐 길을 인도하소서

내가 내영혼을 주께
내 영혼을 주께 드립니다

 

2. 곡 소개

곡은, 꿈이 있는 자유 3집인 아침 묵상에 수록된 곡이다. 시편 143 8절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겠다는 신앙의 고백을 담은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143: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다윗은 143 3절에서 죽음에 가까운 패배를 암시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8절은 부활의 희망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아침에 그분의 인자(헤세드)를 듣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것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든, 죽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다윗은 아침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듣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James M. Hamilton Jr., Psalms, ed. T. Desmond Alexander, Thomas R. Schreiner, and Andreas J. Köstenberger, vol. 2, Evangelical Biblical Theology Commentary (Bellingham, WA: Lexham Academic, 2021), 482.

90: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아침이라는 것은, 저녁 이후에 오는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이 기도의 궁극적인 성취는 종말의 부활에서 이루어집니다.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85.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25: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인도를 구합니다. , 어떤 삶의 방식이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특정한 상황에 그분의 명령을 어떻게 적용할지 배우고 싶어합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968.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시편 31 5절에서 인용된 것으로, 이는 고난 받는 의로운 사람이 드리는 신뢰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에 그 믿음을 실제로 행하신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Lk 23:4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다윗의 시편을 가지고 만들어진 깊고도 아름다운 찬양이다. 이 찬양은 다윗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그는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기대한 것이다. 비록 다윗의 삶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대적들도 넘치게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날을 주시고 자신을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믿음의 고백을 올려드린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드린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맡긴다 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인생이 스스로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성도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인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특별히 아침에 주님을 묵상하며 그분을 찾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가득하기를 원한다.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분인 주님을 찾고,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나의 인생의 모든 길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눈뜨게 될 영원한 아침, 주님의 품에 안겨 있을 그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면서,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신뢰하며 인생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간단한 큐티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 QUIET TIME CHANGES ME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성경 한권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사실 제 마음 속에 평생 하고 싶은 것은 그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깊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항상 묵상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더 갈증이 있습니다. 더 많이 더 깊이 더 개인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갈망입니다. 

한 집사님이 큐티를 열심히 하신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 도전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나만의 큐티 블로그를 따로 만들면 어떨까? 

일전에도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묵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말씀만 묵상하고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성경 읽기와 묵상"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with Hannah's Bible Outlines & NIV The Grace and Truth Study Bible

하나의 전략을 지속할 수 없다면, 당연히 수정해야 합니다. 기준은 높게 잡을 수 있지만 또한 현실에 맞춰서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하루에 삼십분 정도 안에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저의 큐티 블로그 목표를 잡았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갓피플 앱을 사용해서 구약, 신약, 시편, 서신서 이렇게 돌아가면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성경 한 장 안에서 한 단락 정도를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표시는 하이라이트만 합니다. 필요하면 약간의 메모를 넣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하다면 갓피플 앱 안에서 원어 사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은 영어로만 적기로 했습니다. 이민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제가 담임 목회를 시작하게 되면 사실상 영어권까지 모두 섬겨야 합니다. 결국 시간이 얼만큼 걸리더라도 무조건 저는 거기에 제 자신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제 개인 묵상은 가급적 한글을 사용하지 않고 영어를 기본으로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며칠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아침에 짧게 정리하 그 말씀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고, 또 그것을 가지고 수시로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의 삶을 진리에 의탁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블로그를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하면서, 좋은 기능을 발견했습니다. 구글 블로그 사이에 연동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이라면, 큐티, 리딩크리스천북클럽, 그리고 리딩피플북클럽의 업데이트 되는 글들을 블로그 우측 '내 블로그 목록'을 통해서 편리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저는 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절대로 한정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저희의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도전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작은 결심이 제 자신을 더 깊게 만들고 변화시키고, 또한 제가 섬기는 성도님들께도 선한 영향력으로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4월 8일 토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127) - 하루의 은혜

 


1. 가사 살펴보기

살아내기에 힘겨운 하루
감당하기에 버거운 하루
삶에 힘겨워 여전히 힘겨워 내 주님께
온 맘 다해 주만 의지합니다 

살아가기에 두려운 하루
순종하기에 무거운 하루
나의 힘 다해 정성을 다해 내 주님께
온 맘 다해 주만 바라봅니다 

하루의 은혜가 내 삶에 임하여
문제가 기도가 되고 아픔이 자랑되어
하나님의 사랑 드러나게 하소서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 

하루의 은혜가 이곳에 임하여
고난이 축복이 되고 상처가 간증되어
영원하신 사랑 신뢰하게 하소서
하루를 살아갈 힘 주소서

 

2. 곡 소개

곡은, 오륜교회 찬양팀인 원데이 워십의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앨범 소개 속에서 시편 25편을 묵상하며 만들어진 곡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곡은, 마치 다윗이 심한 고난 속에서 하루 종일 여호와만을 찾고 갈망한 것처럼, 버겁고 두려운 하루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신뢰하는 성도의 간구를 담고 있는 곡이다.

* “하루의 은혜앨범 소개
https://music.bugs.co.kr/album/20303324?wl_ref=S_tr_01_04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5:1 Of David. To you, O LORD, I lift up my soul; 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5:2 in you I trust, O my God. Do not let me be put to shame, nor let my enemies triumph over me. 25: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25:3 No one whose hope is in you will ever be put to shame, but they will be put to shame who are treacherous without excuse.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25:4 Show me your ways, O LORD, teach me your paths; 25: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25:5 guide me in your truth and teach me, for you are God my Savior, and my hope is in you all day long. 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25:16 Turn to me and be gracious to me, for I am lonely and afflicted.

Psalm 25 Salvation has many facets not only because grace is so beautiful but also because there are so many dangers in the world. In the biblical world, to be put to shame often meant being humiliatingly exposed for trusting in the wrong deity. On occasion an idol could appear to bring rain or provide a crop. But David boasts that “none who wait” for the Lord will ever be put to shame (vv. 1–3, 19–22). 은혜라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울 아니라, 또한 세상에는 많은 위험들이 있기 때문에 구원은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에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은 잘못된 신을 신뢰한 것에 대해서 굴욕적인 결과로 드러나는 것을 종종 의미했습니다. 때때로 우상은 비를 내리거나 농작물을 제공하기 위해 나타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주님을 기다리는 누구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George Robertson and Bruce A. Ware, “Psalm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675.

25:4–5 Navigating trials well does not mean passively trusting God but means actively seeking his guidance. Walking by the Spirit (Gal 5:16) means seeking God’s wisdom in applying his truth to our circumstances, relationships, conflicts, and decisions. God loves to redirect our hearts toward his paths by refining our desires and empowering our will. 시련을 해쳐 나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의 상황, 관계, 갈등 결정에 적용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망을 새롭게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의지에 힘을 더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을 사랑하십니다.

David Gundersen, “Psalms,” in The NIV Grace and Truth Study Bible, ed. R. Albert Mohler Jr.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714.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8 We do not want you to be uninformed, brothers, about the hardships we suffered in the province of Asia. We were under great pressure, far beyond our ability to endure, so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개역개정) 1:9 Indeed, in our hearts we felt the sentence of death. But this happened that we might not rely on ourselves but on God, who raises the dead. (NIV)

1:8–11 Deliverance From Affliction. Whatever the nature of Paul’s devastating experience in Asia (possibly an attack of his “thorn,” 12:7), it was equivalent to dying, and God’s gracious rescue was equivalent to being raised from death (1:8–9). Paul is forced to give up his self-reliance and adopt a new guiding principle for his life: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3:5). This shattering encounter with death prompts him to ponder more deeply than before the nature and consequences of the believer’s death (5:1–10). 환난에서 구하심 : 바울이 아시아에서 경험했던 압도적인 어려움은, 바울이 죽는 것과 같았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은 마치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요구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온다라는 새로운 원칙을 그의 삶에 적용해야 했습니다. 죽음과 같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은, 그로 하여금 믿는 자의 죽음의 본질과 결과에 대해 전보다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08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고난 중에 살아가는 성도가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겠다는 숭고한 영적인 결단을 담고 있는 곡이다. 오직 주님을 갈망하고 도우심을 구할 때에, 자신의 상황 속에 주님이 역사하실 뿐 아니라,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자신의 태도 또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하는 탁월한 곡이다.

이 찬양의 배경이 되는 시편 25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종일 기다리겠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무책임한 기다림은 아니다. 다윗은 오히려 자신의 고난 속에서 여호와를 신뢰하며,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배우며, 그것의 교훈을 적극적으로 삶 속에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기다림은, 말씀을 사모하며 삶에 적용하는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바울 사도는, 죽음과 같은 자신의 고난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한다. 그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하나님의 자녀가 새로운 영적인 원리로 살아가도록 그를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영원하신 사랑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것이 바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우리의 고난 속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태도로, 그리고 주의 말씀을 더욱 갈망하는 모습으로 변화되며, 고난을 통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그분의 놀라운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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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8일 화요일

"설교의 요소"와 "영역 구조"에 대한 고찰 - "성경, 설교자 그리고 청중"의 만남 / 마 24:15-31 주일 설교를 준비하며

 




* 설교는 참으로 "신비롭다"

설교는, 하면 할수록 신비로운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두렵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통해서" 선포된다는 것은, 설교자를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리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무게입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제 설교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더 열심히 할 수 없을만큼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거듭할 수록, 막연했던 것들이 더 선명해지고, 더욱 발전해야 하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록, 더 능동적으로 제 자신을 굴복시키고 훈련하게 됩니다.

*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를 깨닫다"

최근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설교의 요소들과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입니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위의 그림"입니다. 

저는 설교학 전공이 아니지만, 설교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성경 본문을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과연 설교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 설교에는 "성경"이 들어간다

이번에 준비한 설교는,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31절"까지 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으로 바탕으로 한 예수님의 예언과 미래에 닥쳐올 마지막 시대를 한꺼번에 다루는 사실 굉장히 복잡한 본문입니다. 하나하나 파고들면 주해적인 내용이 끝이 없고,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 때를 다루는 본문이기 때문에 예민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자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한 본문을 과연 어떻게 접근하고 설교해야 할까요? 우리는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맞는 말입니다. 성경이야 말로 설교의 가장 중요한 것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만약에 설교를 이루는 요소가 "성경이 전부"라면, 사실 성경만 봉독해드리고 설교자는 다시 내려오면 됩니다. '아무런 해석'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설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 설교에는 "설교자"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드디어 여기에서, 설교의 또 다른 요소인 "설교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성경은 설교자를 통해서 "해석"되어집니다. 설교자는 성경을 충분히 "묵상"하고 "주해"하면서 그 내용을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과 설교자 사이"에는 "주해"가 존재합니다. 

주해라는 것은 결국 "주관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최대한 좋은 주석들을 살펴보고 공통점들을 찾지만, 결국 성경을 살피는 해석자라는 점에서는 설교자의 주관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는 단순히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 아닌, "설교자의 주관성"이 개입하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그 어떤 오류도 없는 설교와주해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설교에는 "청중"이 들어간다

그러나 설교에는, 성경과 설교자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중"이 있습니다. 모든 설교는 "듣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들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청중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에 설교 가운데 성경과 설교자만 존재한다면, 설교 중에 설교자는 자신이 조사한 "주해 자료"만 발표하고 설교단에서 내려오면 될 것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했고, 누구는 저렇게 이야기했고, 누구는 이렇게 마무리 했다 라고 내용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 설교는 스터디 바이블 뿐만 아니라, 저명한 마태복음 주석들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Exegetical Summary를 꼼꼼하게 다 살펴보았습니다. 아마 그 내용만 이야기해도 두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설교일까요?

그러나, 설교자는 청중을 목회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본문이 "내가 섬기는 회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는 "목회"가 존재합니다. 설교자가 읽고 공부한 주해 자료는, "청중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 드러나며 압축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자는, "주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해를 어느 정도 선까지 어느 방향성에서 나눌 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해를 "청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청중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이라고 아무 내용이나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면에서 목회자는, 평소의 "목회"를 통해서 성도의 영적인 수준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준비한 본문은, "성경과 설교자, 그리고 주해만 생각한다면" 이렇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얼마나 정확했는지, 혹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고 또 그것이 비참했는지를 전달만 하면 됩니다. 

혹은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을 다루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학자들의 논의와 요한 계시록과의 연관성을 따지면서 그것을 나누면 됩니다. 아마도 상당히 아카데믹하면서 지루한 논의가 될 것입니다. 제 자신의 주해 자료들만 고려하면 이렇게 진행하는 것도 충ㅂ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설교에서 "청중"을 "목회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그 방향성"이 바뀌게 됩니다. 성도님들의 현실을 고려하여서 "택자"라는 성경적인 맥락, 그리고 "주님이 반드시 오신다"라는 그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설교의 방향을 조정하였습니다. 만약에 청중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설교의 방향을 결코 이렇게 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설교에는 "적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에는 "적용"이 들어갑니다. 적용은 결국 "목회의 꽃"입니다. 좋은 주해를 가지고 있는 설교자가, 목회적인 마음으로 청중을 고려하면서, 설교의 방향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주 날카롭게 적용의 핵심을 갈고 닦아서, 적용점이 "청중의 마음"에 박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청중 사이"에는 적용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정적"으로는 성경과 설교자 사이에 존재하는 주해가 있고, 또 목회적인 고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적용" 이다 라고 적용점을 느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적용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제가 만든 "퓨전 설교"구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번 설교도 철저하게 퓨전 설교의 구조였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갈고 닦지 않았다면, 정말 중요한 지금의 시점에 있어서 우왕자왕하면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 설교는 결국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 가운데, 과연 "설교 자체"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설교라는 것은, 성경과 설교자와 청중이라는 "세가지 요소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위의 "설교"라는 노란 원은,세 요소 사이 "중앙"에 위치합니다. 

기억하실 것은, 제가 "파란색 점선"으로 설교의 원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의 영역 안에 위치하는 "설교 자체"가,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설교는 "성경" 쪽에 더 가깝고, 어떤 설교는 "설교자" 쪽에 더 가깝고, 또 어떤 설교는 "청중" 쪽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유동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 같은 보수적인 목회자는, "성경 자체를 잘 드러내는 것"이 마치 "설교의 성공"인것 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상 좋은 설교는 "세가지 요소"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각각 분명한 위상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가급적 성경과 설교자 그리고 청중이라는 세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설교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설교의 요소를 생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설교를 이루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 설교자, 청중, 그리고 설교 자체를 지배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모든 요소와 과정을 포괄하여서" 그리고 "설교를 이루는 전체 구조"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분리된 설교"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고, 설교자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청중의 안에 함께 거하시고, 설교자가 청중을 목회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청중의 마음에 말씀을 적용하게 하십니다. 

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구조"가 중요할까요? 먼저 이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경적이라고 받아들였을 때에야 저는, "설교 직전의 기도"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강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 전에 기도할 때야 말로, 성령님의 역사를 간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이번에 더욱 확고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구조"라는 점에서 또 다른 중요한 한가지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설교자가 "원고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궁금합니다. 과연 그러한 주장은 무슨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사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미" 역사하고 계십니다. 설교의 요소들을 통해서, 그리고 설교의 전체 구조와 그 흐름 안에서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굳이 "정리되지 않은 언어들로 두서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을 마치 성령님의 특별한 역사라고 주장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 좋은 설교를 꿈꾸며

저는 오늘도 좀 더 좋은 설교를 꿈을 꿉니다. 제 설교를 듣고 제 자신이 변하고 싶고, 또 함께 들으시는 성도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시고 그분들의 마음과 삶이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의 불처럼 뜨거운 역사가 경험되고 느껴지는 그런 설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설교자로서 평생의 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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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일 화요일

팀켈러에게 배우다 (5) -Thy Word /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진다는 것

 



월요일에 시간을 내어서 거실 식탁에 공부하기 위해서 앉았습니다. 차에서 몇번 들은 설교의 내용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내는 저를 배려해주었고, 아이들은 잠깐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요즘에 제가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입니다. 그중에 약 30퍼센트는 좌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걸음마를 배울 때 아이는 많이 넘어집니다. 걷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간절한데 아직 몸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는 때론 용을 쓰고 때론 눈물을 흘립니다.

설교를 여러번 듣고 스크립트를 확인하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나 영어 실력의 부족입니다. 사실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팀캘러 목사님의 책의 영어는 상당히 쉬운 편이었지만, 설교는 훨씬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특히 이번에 들은 Thy Word는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연히 내용은 최고였습니다. 일단 시편 119편으로 이렇게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트랙도 등장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성경적인데 자서전적인 느낌도 나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내용은 너무나 환상적인데,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했습니다.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계속 읽고 묵상하면서도, 목사님이 의도하신 그 의도가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아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어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오늘 새벽 예배를 마치고 다시 한번 내용을 돌이켜보니 어제보다 훨씬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어렵게 한걸음을 내 딛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디어 조금 더 마음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설교에서 제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입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이해할 때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그분을 나 자신보다 더 높고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하는데에서 드러납니다.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제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들은 논리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의 중요한 논지는, 내가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와는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분이시고, 그분은 우리보다 높은 분이시며, 그분은 내가 감히 인지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편의 저자들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그분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맥락으로 풀어냅니다.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 것은, 후반부에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설교의 부분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 듯 한데, 앞 부분과 뒷 부분의 가장 큰 연결고리를 여전히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언젠가 제 자신을 뛰어 넘어서 가장 아름다운 내용을 마음에 품고 싶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는 여전히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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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5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60) -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1. 가사 살펴보기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주께 고백하게 하소서
아름다운 주의 그늘아래 살며 주를 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 선포 때에 땅과 하늘 진동하리니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 나의 구주 나의 친구

부드러운 주의 속삭임 나의 이름을 부르시네
주의 능력 주의 영광을 보이사 성령을 부으소서
메마른 거룩해 지도록 내가 주를 찾게 하소서
모든 주께 드리리 나의 구주 나의 친구

맘으로 주를 바라며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
나를 향한 주님의 크신 사랑 간절히 알기 원해
주의 은혜로 용서하시고 나를 자녀 삼아 주셨네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 나의 구주 나의 친구

 

2.  소개

 곡은, Geoff Bullock 곡으로원곡의 제목은 Just Let Me Say이다. Geoff Bullock 외에도 주께 가오니 (The Power of Your Love)  같은 아름다운 곡을 호주의 싱어송 라이터이다.

곡은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고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찬양이다. 3절까지 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가사이지만전체적인 흐름은 단순하다예수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시며나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분이시며주님은 나의 구주이시며 친구이시다 라는 내용을 고백하고 있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복음 21:17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양을 먹이라 21:17 The third time he said to him,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was hurt because Jesus asked him the third time, "Do you love me?" He sai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sheep.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주님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도록 초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 주님의 세번의 부름은, 미래에 예수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베드로를 회복시켰습니다.

Edward A. Engelbrecht, The Lutheran Study Bible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9), 1827.

요한1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0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돌이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이것을 행하셨습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2273.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개역개정) 119:97 Oh, how I love your law! I meditate on it all day long. (NIV)

시편 기자는 율법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거듭 선포합니다. 그는 자신의 갈망을 물에 대한 갈증, 꿀에 대한 갈망에 비유합니다. 근본적으로 그가 율법에 끌리는 것은, 그를 가르치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119:97103.


4. 찬양에 대한 묵상

찬양의 핵심은 후렴에 반복된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나의 구주 나의 친구”에 모두 들어가 있다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듣기 원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그의 실패를 이겨내게 하신 것처럼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우리의 가운데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신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며 동시에 친구이시다내가 주님께 사랑 고백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은이미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그분은 나에게 성경을 통해 지금 말씀하시며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영원한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우리는 말씀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그분이 피를 흘려 사랑하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포함한다기독교 신앙은단순히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만이 아니라공동체 안에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주님으로 인해 누리는 기쁨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부를 때에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 아니라그분이 세우신 교회를 향한 사랑의 헌신까지 다짐하게 된다 찬양을 통해서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며 관계가 더욱 깊어지며주님이 세우신 주의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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