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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8일 일요일

나의 설교가, 나의 것이 되기까지 / How Could I Ask for More - Cindy Morgan

 


예전에 한 성도님께서, 제가 아닌 다른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정목사님, 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정말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참 부러웠습니다. "아니 얼마나 그분의 설교가 감동이 되면 나한테까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가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설교 할 수 있을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좋은 설교란 무엇일까요? 혹은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떤 설교가 성도님들에게 감동이 될까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기도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한때는 주해적으로 정확한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어와 문맥과 신학적인 논리가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설교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권위있는 주석들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물론 설교는 당연히 주해적으로 가능하면 정확해야 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아주 난해한 본문 해석을 붙들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는 성경 본문 그 자체와 목회자 자신의 분명한 신학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드러나야 합니다.  

또 한때는, 성도님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한 스타일로 말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당연히 지루해할 것이고 청중의 관심과 설교의 뜨거움은 식어 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가능하면 연역적으로 내용을 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강해와 주제의 두가지 스타일을 함께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마인드맵을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필수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화된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이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주해적으로 바른 설교가 목표라면, 그냥 주석을 읽어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목표라면, 더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저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구조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목회자 자신의 진실한 고백, 확신, 뜨거움이 아니라면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결국 문제는, 지역 교회 목회자는 동일한 성도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만나는 동일한 회중이, 담임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기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그렇게 못하면서 왜 그렇게 설교하세요?'

그래서 저의 결론은, 설교는 정말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직접, 설교 본문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또 설교 원고 자체를 작성하면서도, '도대체 이 본문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바로 거기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내용을 설교로 풀어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나의 것이 된 그 말씀'을 설교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주해를 충분히 살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은, 저의 내면에 다가오고 그래서 품게 된 본문의 의미와 그 능력입니다.  

또한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그 과정'이 설교의 구조를 만듭니다. 단순히 한절 한절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감동이 되고 또 마음에 크게 와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구조를 짭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강해 설교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주제 설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접근이, 본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어느 정도의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그러나 설교가 결국 목회자라는 인격체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 저라는 존재가 설교의 구조에 반영이 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설교를 설교 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 특히, 설교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계속 고민합니다. 이제는 이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주해적이고 신학적인 정확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정말 이 설교가 나의 진실한 고백인가? 나는 정말 이렇게 살교 있는가? 그리고 이 설교를 내 마음에 거짓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가?' 입니다. 

그러한 질문을 품고 고치고 또 고친 이후에 최종 원고가 완성이 되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 없이 설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해나가는 저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항상 원합니다. 진실한 설교만이, 우렁찬 목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결국 설교는, 나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가장 먼저 넣고 저의 마음 안에 닿아야 합니다. 단순한 성경 교사가 아니라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서 먼저 엎드리고, 그 안에서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그것이 부담이고 또 영광입니다.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설교를 위한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방법도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저의 설교가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설교는, 언제나 온전히 저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사역이 쌓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목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3월 28일 화요일

"설교의 요소"와 "영역 구조"에 대한 고찰 - "성경, 설교자 그리고 청중"의 만남 / 마 24:15-31 주일 설교를 준비하며

 




* 설교는 참으로 "신비롭다"

설교는, 하면 할수록 신비로운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두렵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통해서" 선포된다는 것은, 설교자를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자리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무게입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제 설교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더 열심히 할 수 없을만큼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거듭할 수록, 막연했던 것들이 더 선명해지고, 더욱 발전해야 하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록, 더 능동적으로 제 자신을 굴복시키고 훈련하게 됩니다.

*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를 깨닫다"

최근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설교의 요소들과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입니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위의 그림"입니다. 

저는 설교학 전공이 아니지만, 설교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성경 본문을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과연 설교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 설교에는 "성경"이 들어간다

이번에 준비한 설교는,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31절"까지 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으로 바탕으로 한 예수님의 예언과 미래에 닥쳐올 마지막 시대를 한꺼번에 다루는 사실 굉장히 복잡한 본문입니다. 하나하나 파고들면 주해적인 내용이 끝이 없고,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 때를 다루는 본문이기 때문에 예민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자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한 본문을 과연 어떻게 접근하고 설교해야 할까요? 우리는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맞는 말입니다. 성경이야 말로 설교의 가장 중요한 것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만약에 설교를 이루는 요소가 "성경이 전부"라면, 사실 성경만 봉독해드리고 설교자는 다시 내려오면 됩니다. '아무런 해석'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설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 설교에는 "설교자"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드디어 여기에서, 설교의 또 다른 요소인 "설교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성경은 설교자를 통해서 "해석"되어집니다. 설교자는 성경을 충분히 "묵상"하고 "주해"하면서 그 내용을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과 설교자 사이"에는 "주해"가 존재합니다. 

주해라는 것은 결국 "주관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최대한 좋은 주석들을 살펴보고 공통점들을 찾지만, 결국 성경을 살피는 해석자라는 점에서는 설교자의 주관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는 단순히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 아닌, "설교자의 주관성"이 개입하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그 어떤 오류도 없는 설교와주해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설교에는 "청중"이 들어간다

그러나 설교에는, 성경과 설교자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중"이 있습니다. 모든 설교는 "듣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들은 설교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청중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에 설교 가운데 성경과 설교자만 존재한다면, 설교 중에 설교자는 자신이 조사한 "주해 자료"만 발표하고 설교단에서 내려오면 될 것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했고, 누구는 저렇게 이야기했고, 누구는 이렇게 마무리 했다 라고 내용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 설교는 스터디 바이블 뿐만 아니라, 저명한 마태복음 주석들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Exegetical Summary를 꼼꼼하게 다 살펴보았습니다. 아마 그 내용만 이야기해도 두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설교일까요?

그러나, 설교자는 청중을 목회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본문이 "내가 섬기는 회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는 "목회"가 존재합니다. 설교자가 읽고 공부한 주해 자료는, "청중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 드러나며 압축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자는, "주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해를 어느 정도 선까지 어느 방향성에서 나눌 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해를 "청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청중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이라고 아무 내용이나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면에서 목회자는, 평소의 "목회"를 통해서 성도의 영적인 수준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준비한 본문은, "성경과 설교자, 그리고 주해만 생각한다면" 이렇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얼마나 정확했는지, 혹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고 또 그것이 비참했는지를 전달만 하면 됩니다. 

혹은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을 다루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학자들의 논의와 요한 계시록과의 연관성을 따지면서 그것을 나누면 됩니다. 아마도 상당히 아카데믹하면서 지루한 논의가 될 것입니다. 제 자신의 주해 자료들만 고려하면 이렇게 진행하는 것도 충ㅂ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설교에서 "청중"을 "목회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그 방향성"이 바뀌게 됩니다. 성도님들의 현실을 고려하여서 "택자"라는 성경적인 맥락, 그리고 "주님이 반드시 오신다"라는 그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설교의 방향을 조정하였습니다. 만약에 청중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설교의 방향을 결코 이렇게 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설교에는 "적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에는 "적용"이 들어갑니다. 적용은 결국 "목회의 꽃"입니다. 좋은 주해를 가지고 있는 설교자가, 목회적인 마음으로 청중을 고려하면서, 설교의 방향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주 날카롭게 적용의 핵심을 갈고 닦아서, 적용점이 "청중의 마음"에 박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청중 사이"에는 적용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정적"으로는 성경과 설교자 사이에 존재하는 주해가 있고, 또 목회적인 고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적용" 이다 라고 적용점을 느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적용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제가 만든 "퓨전 설교"구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번 설교도 철저하게 퓨전 설교의 구조였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갈고 닦지 않았다면, 정말 중요한 지금의 시점에 있어서 우왕자왕하면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 설교는 결국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 가운데, 과연 "설교 자체"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설교라는 것은, 성경과 설교자와 청중이라는 "세가지 요소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위의 "설교"라는 노란 원은,세 요소 사이 "중앙"에 위치합니다. 

기억하실 것은, 제가 "파란색 점선"으로 설교의 원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의 영역 안에 위치하는 "설교 자체"가,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설교는 "성경" 쪽에 더 가깝고, 어떤 설교는 "설교자" 쪽에 더 가깝고, 또 어떤 설교는 "청중" 쪽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유동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 같은 보수적인 목회자는, "성경 자체를 잘 드러내는 것"이 마치 "설교의 성공"인것 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사실상 좋은 설교는 "세가지 요소"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각각 분명한 위상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가급적 성경과 설교자 그리고 청중이라는 세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설교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설교의 요소를 생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설교를 이루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 설교자, 청중, 그리고 설교 자체를 지배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모든 요소와 과정을 포괄하여서" 그리고 "설교를 이루는 전체 구조"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분리된 설교"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고, 설교자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청중의 안에 함께 거하시고, 설교자가 청중을 목회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청중의 마음에 말씀을 적용하게 하십니다. 

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구조"가 중요할까요? 먼저 이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경적이라고 받아들였을 때에야 저는, "설교 직전의 기도"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강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 전에 기도할 때야 말로, 성령님의 역사를 간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이번에 더욱 확고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구조"라는 점에서 또 다른 중요한 한가지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설교자가 "원고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궁금합니다. 과연 그러한 주장은 무슨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사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미" 역사하고 계십니다. 설교의 요소들을 통해서, 그리고 설교의 전체 구조와 그 흐름 안에서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굳이 "정리되지 않은 언어들로 두서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을 마치 성령님의 특별한 역사라고 주장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 좋은 설교를 꿈꾸며

저는 오늘도 좀 더 좋은 설교를 꿈을 꿉니다. 제 설교를 듣고 제 자신이 변하고 싶고, 또 함께 들으시는 성도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시고 그분들의 마음과 삶이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의 불처럼 뜨거운 역사가 경험되고 느껴지는 그런 설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설교자로서 평생의 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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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일 화요일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합신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생각이 종종 납니다. 저의 마음에는, 이제 드디어 주의 종이 되는 과정에 들어간다는 설레임, 그리고 과연 그 과정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설레임보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 한분 한분은 매우 탁월하셨지만, 그러나 각자가 주시는 메시지와 방향성은 다소 다른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정말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또 목회는 무엇일까? 그런 질문들이 늘어났습니다. 

저는 정말 좋은 설교학 교수님 두분께 배웠습니다. 정창균 교수님과 박완철 교수님은 모두 설교의 대가이셨습니다. 저의 설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셨고, 그것은 매우 탁월하고 또 성경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설교를 하면 할 수록 설교에 대한 갈급함, 그리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커졌습니다. 그 두분의 방향이 아닌, 결국에는 성경적으로 그러나 충분히 저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저의 궁극적인 길을 제시해줄 그런 분은 만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의 10년전에, 아마도 Reformed Seminrary 디민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세미나 강의안을 우연히 공부했습니다. 그때도 배울 것이 참 많다고 느꼈지만, 그 공부가 저의 설교의 방향성을 궁극적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 듯 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책들도 몇권 정독했지만, 그렇게 제 자신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자체"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들어보았겠지만, 완전히 새롭게 들렸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듯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제가 성도로, 목회자로 고민하던 부분들을 거의 대부분 채워준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설교야 말로 한 사람, 그리고 설교자를 보여줄 수 있는 "정수"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을 통해, 성경, 그리고 신학, 그리고 목회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종합되어서 하나의 물줄기를 이룬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훌륭한 신학자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할 때에 팀켈러 목사님의 최고의 강점은, "대부분의 분야에 대한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분야만 잘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설교의 내용과 구성부터 시작해서 전달까지 "하나의 하모니"입니다. 특별히 내용을 만들고 전개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과 이해와 종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팀켈러 목사님이 다른 분들보다 독보적으로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틈나는대로 팟케스트를 통해서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설교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것을 배우고자 하는 눈물나는 고된 노력입니다. 

사실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제 마음에 큰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과정을 견딘다는 것은 제가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제 삶의 여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아마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공부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다른 더 좋은 것들이 나에게 있지 않을까?"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때가 후회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은퇴할 때 쯤 되어서 과거를 돌아보면, 아마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는 것만이, 후회가 없는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보통 설교자들이 세번 설교에 한번 은혜를 끼치면 탁월한 설교자라 부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모든 설교가 은혜가 됩니다. 

물론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지만, 그 설교 안에서 반드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계속 공부하면서 탁월함을 배울 수 있다면, 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요?

그래서 배우는 부분을 가능한대로 간단하게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정기적인 정리이기 때문에 여유가 되는대로 가능한대로 적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정리하는 것은, 결국 제가 제 말로 정리하는 것이 저의 영혼에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분들에게, 작은 격려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결국 목회자는,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평생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치기 쉬운 이 길 속에서, 함께 한걸음씩 전진하면 좋겠습니다. 

-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에 빠져들었습니다 of GOSPEL IN LIFE by AntennaPod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9/of-gospel-in-life-by-antennapod.html

-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문을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2/blog-post_10.html

- 존경하는 팀 켈러 목사님(1950–2023)을 기억하며
"I’m ready to see Jesus. I can’t wait to see Jesus. Send me home"
/ Top Gun: Maverick - The Man, The Legend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5/19502023-im-ready-to-see-jesus-i-cant.html

- 팀켈러에게 배우다 (1)
God Our Father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2)
The Compassion of God
성경에 대한 태도 &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

- 팀켈러에게 배우다 (3)
God Only Wise / 주님, 저는 지혜가 너무나 필요합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4)
The Justice of God / 정의로운 하나님, 정의로운 백성들 

- 팀켈러에게 배우다 (5)
-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진다는 것 / 
Thy Word

- 팀 켈러에게 배우다 (6)
- Sent to Bring Freedom / 작은 자유를 잃고, 진정한 자유를 얻다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2/6-sent-to-bring-freedom.html

팀 켈러에게 배우다 (7)
- Sent with Grace / 관계의 깊이를 만들어 내는 회개

- 팀 켈러에게 배우다 (8)
- The Final Temple /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함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8-final-temple.html

- 팀 켈러에게 배우다 (9)
- Isaiah and the Alter / 하나님을 진짜 만난다는 것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5/9.html

- 팀 켈러에게 배우다 (10)
- Sarah and the Laugh
/ 가장 연약한 자에게도 놀라움(Wonder)을 베푸시는 분

- 팀 켈러에게 배우다 (11)
- Hope in the Face of Death
/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는 성도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11-hope-in-face-of-death.html

- 팀 켈러에게 배우다 (12)
- Your Plans, God’s Plans / 선택하라, 그리고 담대히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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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문을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람이 약간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무모해 집니다. 갑자기 큰 이타심을 발휘하기도하고, 예전에 가지지 못했던 용기가 새롭게 솟아나기도 합니다.

궁극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진리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본능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팀켈러 목사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과 영성도, 그리고 센터 처치도 읽고 공부했지만 굉장히 딱딱하다고 느꼈습니다. 제 마음에 보통의 성도님들을 더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저의 개인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참 좋았지만, 그렇게 마음에 감격적으로 다가온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다르더군요, 정말 좋았습니다.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들렸습니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발을 들여 놓지 말아야 할 곳에 들여 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하는 일도 분주하고 바쁜데 그분의 설교 까지라니...

처음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시작하면서 글을 쓴 것이 딱 3개월 전입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세월은 화살처럼 빠른 것입니다. 

*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에 빠져들었습니다 of GOSPEL IN LIFE by AntennaPod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9/of-gospel-in-life-by-antennapod.html

현재 공개된 100개 정도 설교 중에서, 20개 정도 들은 듯 합니다. 어떤 설교는 더 잘 공부하고 싶어서 다섯번 이상 들었습니다. 어떤 설교는 너무 완벽하게 짜여진 구조와 내용이라, 책 한권과 버금간다고 느꼈습니다. 들으면서 너무 좋으니, 다섯번 들으면서도 지겨운줄을 몰랐습니다. 

좋은 만큼 마음에 원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영어가 부족해서 이렇게 원통함을 느껴본적이 처음인 듯 합니다. 황홀한 단어와 구조들이 성경적 진리를 드러내면 바로 내 눈 앞에 있는데, 그 뉘앙스와 깊이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아쉬웠습니다. 

오늘 아침에 설교를 듣는데 성령의 열매, 그리고 크리스천의 성숙에 대한 설교였습니다. 겨우 설교 초반의 20분을 들었을 뿐인데, 저의 생각을 뛰어넘고 자극하는 전혀 새로운 논리 구조, 그리고 도전적이고 따뜻한 논지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설교집을 구매했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만, 적어도 3개월 동안 스무편 정도를 들으면서 공부할 열정이라면, 일단 공개된 전체 설교를 충분히 공부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구입하고 오늘 들은 설교의 원고 부분을 읽어 보았습니다. 좋더군요... 역시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배워야 하는 내용이, 가장 탁월한 수준이라 행복했습니다. 팟캐스트의 설명 부분에, 언제 한 설교인지 그리고 어떤 시리즈에 속한 설교인지 설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원고를 찾는 것도 너무 수월했습니다. 

얼마전에 들은 설교에서는, 팀켈러 목사님이 대략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신에게 하나의 취미가 있는데, 크리스천으로 회심한 지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모으는 것이다." 

사실 충격 받았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훌륭합니다. 특별히 단순히 설교를 인용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공부했다기 보다는, 평소 그분이 그런 내용들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혹시 함께 섬기는 목회진들이 내용을 찾아서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인용 문구를 찾은 수준이 아니라, 평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항상 이 부분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것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분석하고 모으고 준비하는 것이, "팀켈러 목사님의 취미"였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습니다. 저의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공부하면서, 그것을 제 자신의 중요한 취미로 삼아서 (이미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분의 성경적인 이해와 논리 전개 등을 저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새겨 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제가 성장하고, 또 함께 하는 성도님들이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박한, 어쩌면 제가 꿈 꾸지 말아야 할 원대한 꿈입니다.

* "팀켈러에게 배우다" 모음
- 성경과 신학, 그리고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1/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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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 _1강 설교자 만들기(Lecture 1: The Making of a Preacher)

 


* 이전글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설교는 위대한 일입니다
(Lecture Introduction: Preaching Is a Great Thing) / 출애굽기 35장 20-29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lecture-introduction-preaching-is-great.html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안수를 받은지 1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설교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영광을 더 누려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한 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를 바라 보고 있지만, 아직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그런 마음이 종종 듭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늘 마음에 부담이 있고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교구 담당 목사로서 누리는 큰 특권은,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삶의 큰 파도들을 넘어선 믿음의 어르신들은,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을 때에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항상 저의 마음에 드는 생각입니다. 

저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책 몇 권과 그분의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이미 영어권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분이십니다. 이분의 책을 읽을 때에는 성경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 중심의 확고한 해석이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때론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사변적이라는 생각도 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좋게 느껴졌습니다. 

목사님의 팟 캐스트를 통해 들었을 때에는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가장 인자한 마음을 가진 옆 집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비난보다는 진실한 사랑의 조언들을 해주실 때에 참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해 주실 수 있는 믿음의 거인이라고 느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설교자로도 유명합니다. 그분의 설교를 몇 편 들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설교 준비 중에 그분의 설교를 통해 많은 부분에서 해석적인 도움을 얻었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The Preaching Class라는 시리즈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 존파이퍼 목사님의 모든 설교 철학을 30개의 영상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유학을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그런 강의가, 이제는 유투브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고 황홀합니다.

영상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냥 앉은 자리에서 쭉 들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이 시리즈를 들으면서 하나하나 느낀 점을 정리해 놓으면 큰 유익이 있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듣고 감동 받고 지나가면 다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기록하면 평생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 이 글이 바로 그 결심의 첫 단추입니다. 앞으로 가능한대로 파이퍼 목사님의 30개의 강의를 모두 듣고, 배운 점과 적용할 부분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설교의 대가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존파이퍼 목사님의 영어는 아주 클리어한 편입니다. 사실 사운드 자체가 좀 아쉽긴 합니다. 또한 말하는 어투이기 때문에 책 처럼 모든 문법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번 정도 듣고, 유투브 자막까지 참조한다면 내용 이해해 큰 어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첫번째 강의의 주된 내용은, 존 파이퍼 목사님이 어떻게 신학교를 가게 되었나, 혹은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설교자가 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일종의 간증입니다. 

본인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고, 정말 그 대중 연설의 기회들을 모두 피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풀어가십니다. 그리고 본인은 의사가 되기 위한 선행 과목들을 듣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채플에서 대표 기도를 하겠냐는 권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Yes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에 평생에 몇번 하지 않은 서원을 했다고 하시네요. 정확하진 않지만 의역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기도를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라고 맡기신 자리를 앞으로 절대로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기적적으로 그 기도를 감당하게 됩니다. :) 그리고 아마도 본인이 아프신 3주간 정도의 시간 동안에 한 목사님의 설교를 꾸준하게 듣게 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과정 중에서 그 사람처럼 설교하고 싶은 마음을 주셨고, 이제 소명을 가지고 세미너리로 들어갔다고 자신의 간증을 마무리 하십니다. 

영상의 결론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부름 받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열린 길을 향해서 걸어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도 평생을 설교하고 가르치신 분이 사실은 대중 연설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분의 삶 속에서 정말 기적같은 뜻하지 않은 전환의 때를 허락하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설교에 대한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서 사용하셨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 제가 신학교 가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 이제 대학교 4학년입니다. 제가 정말 신학교에 가기를 원하신다면 저에게 그 싸인을 보여주세요. 저는 미래를 놓고 너무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 드리고 참석한 청년부 수련회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환상을 통해서 싸인을 주셨습니다. 강사 목사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보석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영광스러운 설교자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설교자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이 되리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그 시절 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오직 은혜와 긍휼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파이퍼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제 인생의 후반전을 달려갈 설교자로서의 정체성과 열정, 그리고 설교에 대한 통찰력과 방법들을 익혀 나갈 것을 기대해 봅니다. :)

P.S. TGC코리아에서 감사하게도 이 영상을 번역해서 업로드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네요. 한글 자막으로 꼭 한번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에 대한 분석과 적용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존 파이퍼의 설교 클리닉_ 3강 설교란 무엇인가?
(Lecture 3: What is Preaching?) / 출애굽기 39장 22-43절 설교

https://jungjinbu.blogspot.com/2021/10/lecture-3-what-is-preaching.html

* 존 파이퍼 "설교 클리닉" 전체 글 모음 / "설교의 대가"에게 설교를 배우라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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