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2일 월요일
믿음의 어르신들은, 마치 천국의 보물과 같다 / Holy Spirit, Come Fill This Place - CeCe Winans
2025년 8월 1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29) - 온전케 되리
1. 가사 살펴보기
주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리네
마음열어 내 삶을
드리네
주를 봅니다
끝없는 사랑 나
회복 시키네
이제 눈 들어 주
보네
그 능력 날 새롭게
해
주님의 사랑 날
만지시니
내 모든 두려움
사라지네
폭풍 속에도 주
붙들고 믿음으로 주와 걷네
갈보리 언덕 너머
그 어느날
주안에 온전케 되리
2. 곡 소개
이 곡은, Parachute Band 의 Complete이라는 곡의 번안곡이다. 이 팀은, 뉴질랜드에서 결성된 기독교 워십 밴드이다. 그리고 번안된 곡은 한국 교회 안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진실하게 예배하는 성도를 회복시키시는 능력의 주님에 대한 고백과,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더욱 온전케 하시는 그분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을 아름답게 그려낸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며, 이때에 두려움은
내쫓깁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스며들 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264.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잠깐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서의 삶은 눈에 띄게 짧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고통이 길고 심하더라도 영원한 기쁨에 비하면 잠시입니다. 회복시키다, 굳건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 견고히
세우다 라는 네가지 동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고난이 먼저 오지만, 그 뒤에는 영원한 영광이 따릅니다. 은혜로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힘을 굳세게 하셔서 끝까지 견디도록 하실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13.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곡은, 성도를 온전케 하시며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담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아주 분명하게 예배에서 시작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고, 진실하게 회개로 나아가며
주님을 갈망하고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시는 가장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넘치게 베푸신 사랑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사랑하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가장 완전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이라는 것은 수 많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에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잠깐이지만, 성도는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원한 사랑으로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지탱하실 것이며 또한 결국 완전케 하실 것이다. 우리는
가장 거룩해진 모습으로 영원한 충만함을 누리며 아버지 하나님과 끊없는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성도에게 이미 주어진 너무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기쁨과 감격을 누리며,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2월 26일 월요일
The Precious Death of the Saint / 시편 116편 15절 하관 예배 영어 설교
2023년 8월 7일 월요일
제자 훈련, 기독교의 생존 방식 3장, 느낀 점
* 느낀 점
김형국 목사님의 학문적인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3장에서 구약의 처음부터 신약까지 연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분의 설명처럼 "천국"이라는 번역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며 나 역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실상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 있다.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다스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만 집중해도 사실상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 막연한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상관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희미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변질시켰다.
김형국 목사님의 글을 처음 접할 때에는, 마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십자가 복음을 대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번 3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주제 "위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다 라는 설명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 십자가이다. 이 두가지 중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고 녹여낸 탁월한 설명이다.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사실 창세기로 부터 등장하는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더 좋았다. 나 역시 설교 가운데 창세기를 자주 인용한다. 보통의 접근처럼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그것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인간의 패역과 반역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분명한 목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분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이며 헌신이 아니라는 표현이 좋았다.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라고 덧붙이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면 "가치 투자"이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추구하는 목표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결국 김형국 목사님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 이다. 본인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면 그저 개인주의 영성에 치우칠 뿐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회 참여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 3장에서는, 성경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임을 생각하였다. 목회적으로는 모든 설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의 강조",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이 두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이 아주 공교하게 엮어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마치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한동안 곤란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리스도의 한 없는 은혜와 그 은혜 가운데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책임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평생의 우리의 삶의 목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번 챕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2023년 8월 6일 일요일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 청년편 6강 하나님의 해결책과 나의 응답, 느낀 점
* 느낀 점
영상을 계속 보면서 느낀 것은, 풍삼초의 모든 내용은 철저하게 "처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는 풍삼초는 너무나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기독교의 진리를 최대한 진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단순하지만 심오하다는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처럼, 저도 기독교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기본 진리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나와 세상과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드신 주인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을 나와 세상의 중심에서 몰아내고 우리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결국 세상이 깨어지고 온갖 고통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제이고 죄이다.
셋째로, 결국 깨어진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족하고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자신도 없지만, 이 사랑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겠다라고 인격적으로 결단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인생이 재편성 되는 것이다, 이렇게 네가지로 정리해주셨습니다.
기존의 전도라는 개념을 비교해 보았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접'을 좀 더 넓은 혹은 충분히 성경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재편성하겠다라는 점에서 훨씬 성경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알고 믿는 것을 중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인생 전체를 포함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약간의 의구심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전혀 인정하지 못했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점, 그래서 부활하신 이후에야 온전히 그를 이해하였다라고 표현하신 부분이 조금은 이해되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사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실패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는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셨다"라는 것도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도 보일 수 없는 수 많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전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더 쉽게 소개할 수 있는 장점은 있겠으나, "폭풍조차 잠잠하게 하시고 물 위를 걸으셨던 그분"을 지나치게 축소화시킨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 그리고 강조가 없는데, 그분이 죄의 댓가를 다 치르셨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저는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가장 존귀한 그분께서"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죄인의 죄의 댓가가 치뤄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김형국 목사님은 "정직한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라는 쉐퍼의 모토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쉐퍼와는 세상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쉐퍼의 책을 꺼내서 읽어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쉐퍼는 이 시대의 문제를 "진리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제대로 다시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형국 목사님은, "진리에 대한 회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통치의 회복"이라고 보입니다. 사실 쉐피도 김형국 목사님도 궁극적으로 그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와 세상 가운데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형국 목사님은 그 방법과 과정보다는, "목적"에 훨씬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쉐퍼는 자신의 모든 주장 중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절대 진리"가 된다는 부분이 다소 약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해결책이 된다는 연결 고리가 약해 보입니다.
저야 보수적인 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배우고 목회하기 때문에, 단순히 저와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신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약간 아쉬운 것은,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복 본 강좌에서도 성경을 최종의 권위로 삼는다고 말씀하셨고 원어적인 충실한 주해와 논리로 목회 철학을 이끌어내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는 부분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목회를 이루고자 하는 도구입니다. 내가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도 어떤 열매를 이루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경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것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경외" 합니다. 그 말씀 한자 한자가 절대적인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것 자체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 태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할 수 있겠으나, 저는 좀 더 심원한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김형국 목사님의 이번 영상에서 복음의 소개가,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논리는 존재하고 선명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신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설명하지 않고, 축소시켜서 설명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사랑인데, 가장 존귀한 예수님에 대한 설명과 감격이 부족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셨다 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축소는, 결국 그분의 주인 되심에 대한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오히려 그 개념이 힘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자이시기에, 사실상 그분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절대 순종에 대한 요구"를 필요로 합니다.
김형국 목사님의 표현대로, 그분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경영하고 재편성한다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로는 탁월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던 초대 교회의 수 많은 순교자들의 삶을 과연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인가에 있어서는 저는 의구심을 가집니다.
또한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면, 마치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는 개념 정도는 약간 우습게 여기는 듯한 뉘앙스를 느낍니다. 물론 현재 한국 교회가 가진 여러 슬픈 현실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합니다.
모든 불의와 괴로움과 죄가 사라지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으시고 더 이상 어떤 질병과 고통도 없는 오직 아버지의 영광으로 가득한 그곳을, 마치 그 정도 소망해서는 소용이 없다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기독교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영상을 보고 배운 점도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점도 다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형국 목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이 귀한 영상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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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7일 토요일
플로리다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휴가를 쓴다는 것이 저에게는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두 주간의 시간이 있지만, 주일을 비워본적은 없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사역이 저의 쉼보다 언제나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교회의 바쁜 일정들을 피해서 잠깐 며칠 쉬는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장인어른 장모님을 정말 오랜만에 뵙고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플로리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켈리포니아와 플로리다도 구분하지 못하고 미국 서부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플로리다는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시카고 지역보다 남쪽에 위치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플로리다는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그 중에서 주로 clearwater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더군요. 따뜻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진짜 바다를 10년 만에 처음 보았습니다. 모래는 너무나 부드럽고 바다는 투명하고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찬란한 햇빛을 본적이 그리고 몸으로 느낀 것이 과언 언제였던가 생각을 했습니다. 시카고는 아직도 겨울 옷을 입고 잘 때 히터를 틀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한 여름의 따뜻함을 넘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습게도, 여기에서는 신앙을 가지기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집의 문을 열고 밖을 나오면 그곳이 마치 천국과 같은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실제로 제 마음 안에 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카고의 어둡고 추운 날씨에 너무 오랫동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카고의 이번 겨울은 너무나 길고 험난했습니다. 항상 추위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날씨, 따뜻함과 온화함 등을 거의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를 통해서, 정말 천국이 이런 모습과 느낌이겠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그리고 경험이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행복해도, 아무리 즐거워도, 아무리 소중해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꿈과 같은 며칠의 휴가가 말 그대로 순간으로 지나갔습니다. 행복한 마음과 사진 몇장을 다시 마음에 품고 시카고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 장인 어른을 너무 좋아합니다. 신앙과 성품이 너무나 탁월하시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십니다. 동물들이 큰 무리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마음 속으로 상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것 밖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상적인 생각의 능력을 동원해서 거대한 무리를 만들고 통솔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분석이었습니다.
여전히 시카고는 춥습니다. 과연 봄이 올 것인가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가 처한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잠시 경험했던 플로리다의 햇살과 아름다움을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천국을 상상하고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천국을 지나치게 종교적인 장소로만 국한지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국은 마치 아름다운 해변과 같은 곳이겠다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행복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진짜 천국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일 것입니다. 해가 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해변을 거니는 그런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바로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2022년 2월 11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22장 /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에 참여하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주님의 초대를 계속적으로 거절합니다. 아버지께서 베푸신 잔치는, 모든 것을 갖춘 잔치입니다. 기쁨으로 반응하며 들어온다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소한 이유로, 혹은 왕에 대한 노골적인 반역으로 대응합니다. 참으로 악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놀랍게도 이제는 죄인들이 초청을 받습니다. 만나는대로 모든 사람을 데려옵니다. 아마도 그들은 초대에 기꺼이 반응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드디어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이 사람이 말문이 막힌 것으로 보아, 그가 적절한 옷을 입기를 의도적으로 거절하였다고 해석합니다. 이 사람은 주님을 존경하여 잔치에 참여한 것 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 사람도 예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거짓 제자는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초대를 받았고 또한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택함을 받았는가 아닌가 그것에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부르심이라 믿고 반응하면 됩니다. 그분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신 잔치에 울는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들어간 그 사람은, 택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올무에 잡아 넣으려고 합니다.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물어봅니다. 만약 옳다고 말한다면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을 것이며, 옳지 않다고 말한다면 로마 제국에 반란자로 낙인 찍힐 것입니다.
그 당시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로마 제국을 인정하시며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의 법을 인정하고 따를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의 합법적인 나라를 인정하시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세상의 존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보다 위에 있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의 질문은, 제 개인적으로는 매우 따분하게 느껴집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질문하며 이렇게 궁금해 하는 것일까요? 질문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질문이 모두가 대답 되어야 한다는 교만을 본성 안에 가진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받아들였던 오경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부활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역설하십니다.
한 율법사의 질문 역시 마찬가지로 답답한 마음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느것이 큰 것인가에 대한 논리적인 구성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묻는 목적이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의 실수를 우리 역시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선명한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마태복음 22장에 대한 GT 스터디 바이블의 해석은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시편 110편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아 본문이며,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메시아가 신적인 존재일 것임을 믿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이 메시아를 "자손"이자 "주"라고 불렀다는 것을 지적하시며, 그러므로 메시아는 다윗의 인간 후손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신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임을 논증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 자신에 대한 탁월한 논증이며 설명입니다. 참된 인간으로 오신, 그러나 동시에 참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죄를 용서하실 자격과 능력을 갖춘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In Matthew 22, I see the tension between God's sovereignty and human freedom. Jesus said that there is a wedding banquet and everything was prepared. However, when the king invited the people, they rejected his invitation for trivial reasons. Even some people mistreated the servants who God sent.
I know that there is a mysterious verse as "for many are called, but few are chosen" However, I think that we should focus on God's gracious love. He prepared everything for sinners. He has invited us. So, if you understand this message for your, you should accept his invitation for his kingdom through Jesus Christ who is the son of God.
When you accept him as your personal savior and deliverer from your sin, you will realize that you are God's chosen one before the beginning of this world. God's grace is inexpressible. His love and works are beyond our reason. So, we have no other choice but to praise him with all of our hearts.
2022년 1월 8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13장 / 가장 가치있는 천국에,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런데 13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앞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주님의 말씀을 읽을 사람들의 마음의 수준과 태도가 너무나 다양하고 차이가 날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이 다른 점은,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분명하게 알고자하는 열망과 질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태도로 에수님에게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영적인 지식이 깊어집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깨닫지 못할 때에" 악한 자가 빼앗아갑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에"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물론 환난, 박해, 염려와 재물의 유혹등이 말씀의 결실을 맺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듣고 깨닫는 것이야 말로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보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밭에 가라지가 분명히 생긴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처음에 자랄 때에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구분이 됩니다. 처음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비슷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에는 구분이 됩니다. 악한 이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이 갈라내어 구분이 된다는 맥락은, 그물에 대한 비유에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가장 섬뜩한 것은,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의도적으로 숨어있을 수도 있고, 혹은 자기 착각과 확신 속에서 그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분하여 갈라내고 지옥으로 넣으십니다.
"그렇다면 의인과 악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라는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겨납니다. 성경 전체적으로 본다면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의 직접적인 문맥 안에서 본다면, "천국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건 사람"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그리고 극히 값진 진주에 대한 비유는 가장 드라마틱한 비유입니다. 내용은 짧지만, 그러나 그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강렬하며 분명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살아온 인생 가운데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장 가치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고향 사람들이 오히려 에수님을 배척합니다. 단순히 피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분에게 분노하며 화를 낸 것을 의미합니다. 의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모든 것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분이야 말로 가장 가치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어두운 이들은 가치 있는 것을 비웃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며 분노합니다. 저와 당신은 과연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In Matthew 13, a large crowd was gathered in front of Jesus. Seemingly, they were very sincere for the word of Jesus. However, in the lecture about the kingdom of God, Jesus shows that there is various spiritual status of the people.
Some people accept the word of God with a genuine heart and understand it and bear tremendous fruit. However, some people do not keep it due to their worldly cares and the seductiveness of wealth.
Like the weed can not be noticed when it is sprouted, the righteousness and wicked will be similar. However, in the last time of Jesus second coming, angels will separate "the evil from the righteous"
Who is the righteous? Surely, they are the believer in Jesus Christ and his power of precious blood for forgiving their sin. And, in this close context of Matthew 13, the righteous are those who know and accept the greatest value of the kingdom of God. The righteous are those who use their everything to serve God and his kingdom due to its value. Which group are you and I belong to spiritually?
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53) - 예수 하나님의 공의
1. 가사 살펴보기
(1절) 예수 하나님의 공의 주 독생자
그의 나라 임하시네
예수 재물이 되신
주 영광 중에 그의 나라 임하시네
(2절) 예수 하나님의 사랑 주 은혜와
말씀으로 나타났네
예수 거룩한 하나님
영광 중에 그의 나라 임하시네
(후렴) 주의 나라 영원하며 주의 영광
무궁하리
왕의 위엄과 능력이
이제 임하였으니
주의 주권과 주의
통치와 주의 나라 힘과 권세 임하리
예수 하나님의 공의
2. 곡 소개
이
곡은, 원곡의 제목은 This Kingdom이라는 곡으로, 전하세 예수 12집에 번안 곡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 교회에 처음 소개된 것이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성도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죄악으로 소망이 없던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셨다는 복음의 핵심적인 고백을 담고 있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태복음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4:17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preach,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한 도래와 그 나라가 요구하는 회개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마 4: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NIV)
하나님의 의는 로마서의 핵심 구문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또는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킵니다. 공정하고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아들의 순종과 죽음의 공로에 따라 죄인을 의롭다 칭하시거나 또는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행했거나 행하고 있거나 행할 그 어떤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R.
C. Sproul, ed., The Reformation
Stud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2015 Edition) (Orlando,
FL: Reformation Trust, 2015), 1979.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노래하는 곡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죄인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는 자들, 그리고 자신의 죄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음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추상적인 것 혹은 죽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분의 통치와 주권과 힘을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모든 인간의 나라들은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다르심을 받으며,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그 나라에서 삼위 하나님 안에서 영생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질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고난 가운데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금요찬양교실 (32) -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1. 가사 살펴보기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베드로후서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개역한글) 4 by which he has granted to us
his precious and exceedingly great promises; that through these you may becom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from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by lust. (WEB)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 이것은 신자들이 신성에 흡수되거나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혹은 그들이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신자들은 성령님을 받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참된 의로움 안에서 더욱 새로워질 것입니다.
21:2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f. Gal. 4:26; Heb. 12:22–24), the church redeemed by
Jesus Christ, will no longer be trampled by nations (Rev. 11:2) but rather,
will be adorned as a
bride. 거룩한 성 예루살렘 :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교회는 더 이상 나라들에게 짓밟히지 않고 오히려 신부처럼 단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 천국에서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신과의 막힘 없는 교제일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서 그림자처럼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성취될 것입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494.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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