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낀 점
영상을 계속 보면서 느낀 것은, 풍삼초의 모든 내용은 철저하게 "처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는 풍삼초는 너무나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기독교의 진리를 최대한 진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단순하지만 심오하다는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처럼, 저도 기독교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기본 진리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나와 세상과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드신 주인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을 나와 세상의 중심에서 몰아내고 우리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결국 세상이 깨어지고 온갖 고통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제이고 죄이다.
셋째로, 결국 깨어진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족하고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자신도 없지만, 이 사랑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겠다라고 인격적으로 결단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인생이 재편성 되는 것이다, 이렇게 네가지로 정리해주셨습니다.
기존의 전도라는 개념을 비교해 보았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접'을 좀 더 넓은 혹은 충분히 성경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재편성하겠다라는 점에서 훨씬 성경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알고 믿는 것을 중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인생 전체를 포함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약간의 의구심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전혀 인정하지 못했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점, 그래서 부활하신 이후에야 온전히 그를 이해하였다라고 표현하신 부분이 조금은 이해되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사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실패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는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셨다"라는 것도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도 보일 수 없는 수 많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전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더 쉽게 소개할 수 있는 장점은 있겠으나, "폭풍조차 잠잠하게 하시고 물 위를 걸으셨던 그분"을 지나치게 축소화시킨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 그리고 강조가 없는데, 그분이 죄의 댓가를 다 치르셨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저는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가장 존귀한 그분께서" 댓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죄인의 죄의 댓가가 치뤄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김형국 목사님은 "정직한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라는 쉐퍼의 모토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쉐퍼와는 세상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쉐퍼의 책을 꺼내서 읽어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쉐퍼는 이 시대의 문제를 "진리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제대로 다시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형국 목사님은, "진리에 대한 회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통치의 회복"이라고 보입니다. 사실 쉐피도 김형국 목사님도 궁극적으로 그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와 세상 가운데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형국 목사님은 그 방법과 과정보다는, "목적"에 훨씬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쉐퍼는 자신의 모든 주장 중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절대 진리"가 된다는 부분이 다소 약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해결책이 된다는 연결 고리가 약해 보입니다.
저야 보수적인 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배우고 목회하기 때문에, 단순히 저와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신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약간 아쉬운 것은,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복 본 강좌에서도 성경을 최종의 권위로 삼는다고 말씀하셨고 원어적인 충실한 주해와 논리로 목회 철학을 이끌어내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는 부분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목회를 이루고자 하는 도구입니다. 내가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도 어떤 열매를 이루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경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것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경외" 합니다. 그 말씀 한자 한자가 절대적인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것 자체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 태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할 수 있겠으나, 저는 좀 더 심원한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김형국 목사님의 이번 영상에서 복음의 소개가,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논리는 존재하고 선명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신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설명하지 않고, 축소시켜서 설명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사랑인데, 가장 존귀한 예수님에 대한 설명과 감격이 부족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셨다 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축소는, 결국 그분의 주인 되심에 대한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오히려 그 개념이 힘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인간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자이시기에, 사실상 그분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절대 순종에 대한 요구"를 필요로 합니다.
김형국 목사님의 표현대로, 그분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경영하고 재편성한다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로는 탁월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던 초대 교회의 수 많은 순교자들의 삶을 과연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인가에 있어서는 저는 의구심을 가집니다.
또한 김형국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면, 마치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는 개념 정도는 약간 우습게 여기는 듯한 뉘앙스를 느낍니다. 물론 현재 한국 교회가 가진 여러 슬픈 현실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합니다.
모든 불의와 괴로움과 죄가 사라지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으시고 더 이상 어떤 질병과 고통도 없는 오직 아버지의 영광으로 가득한 그곳을, 마치 그 정도 소망해서는 소용이 없다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기독교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영상을 보고 배운 점도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점도 다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형국 목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이 귀한 영상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복", 그리고 미래 목회 - 하나복 관련 글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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