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아우구스투스는 재위 기간(기원전 27년–서기 14년) 동안 다른 황제들의 통치를 지배하던 내전과 광범위한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를 온 세상의 구원자라고 찬양하는 문구를 새긴 신전을 세웠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터키에 위치한 프리에네 도시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일은 그를 통해 세상에 전해진 복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을 세상의 참된 구원자, 곧 참된 좋은 소식의 전달자이자 선포자로 묘사합니다. 아우구스투스와 달리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을 제공하실 수 있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Lk 2:14.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엄청난 죄의 빚으로부터 대속하는 대가였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대속적 속죄를 명확하게 가르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9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에서 후렴에 반복되는 ‘노엘’이라는 표현이 이 곡의 핵심을 담고 있다. 노엘은 중세 라틴어인 natalis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프랑스어로, 예수의 탄생, 성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 더 넓게 보면 이 찬양 안에서는 성탄의 기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르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정한 기쁨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는 슬픔과 아픔과 눈물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그리고 그 죄로 인한 결과로 인해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난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죄인은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분은 왕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셨다.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분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 오히려 죄인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탄의 계절 가운데, 모든 슬픔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음에 깊이 묵상하고 붙들기를 원한다. 삶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아기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으로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고 풍성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샬롬 평강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날 보냄
같이 나도 널 보내노라
샬롬
2. 곡 소개
이 곡은, 찬양 사역자 김도현님의 “Shalom”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평화이시며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찬양이다. 예수님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 가운데 살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지금 찾아오시며, 그분의 평안으로 위로하시고, 채우시며,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심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14:27 Peace: The
customary good-bye among the Jews was to
say shalom, meaning “peace.” The Lord
was about to depart, so He added to this farewell by saying, My peace. The word My is emphatic. This is no conventional wish; this is Jesus’ personal,
special grant of peace. The peace that Christ gives banishes fear and dread
from the heart, for Jesus is in control of all circumstances. 유대인들의관습에서헤어지는인사는“평화”를의미하는샬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곧떠나시려하셨기때문에이작별인사를말씀하시면서“나의평화” 라고덧붙이셨습니다. 여기서“나의”라는것은강조입니다. 이것은일반적인바램이아닙니다. 이것은예수님께서개인적으로특별히허락하신평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주시는평화는마음에서두려움과공포를몰아냅니다. 왜냐하면예수님께서모든상황을통제하고계시기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19 On the evening of that
first day of the week, when the disciples were together, with the doors locked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0 After he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side. The
disciples were overjoyed when they saw the Lord.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1 Again Jesus said,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
20:19 FEARED THE JEWS. In spite of
Jesus’s words in 14:27, the disciples were afraid that the authorities, who had
been successful in having Jesus killed, might now turn on them. JESUS CAME. Nothing is said about how
Jesus came to be among them, but the implication of the locked doors appears to
be that Jesus simply appeared with them (v. 26; Lk 24:31). PEACE BE WITH YOU. This is repeated in v. 21 and in the appearance
a week later in v. 26. The promise of peace was given in 14:27 and 16:33. It
sums up the blessings and fullness of the new covenant that Jesus has made
between the Father and his people (14:27). 요한복음14장27절에서, 나의평안을준다는예수님의말씀에도불구하고제자들은, 예수님을죽이는데성공한권력자들이이제그들을핍박할까두려워했습니다. 나의평안을너희에게주노라: 이것은예수님께서성부하나님과그분의백성사이에맺으신새언약의축복과충만함을요약하는것입니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개역개정) 5: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NIV)
5:1 PEACE. What is in
view is not some sort of inner experience of harmony but rather the objective
fact of a new relationship with God. The root image is of war. Those who were
in rebellion against God, their rightful King, are now reconciled to him
through Christ; the enmity is over. This is the basis for the Christian’s
access to God’s grace and hope for the future. Peace in the Bible is a
comprehensive term describing the total blessing of salvation. 여기에서말씀하시는화평이라는것은, 일종의내면의조화와같은경험이아니라, 하나님과의새로운관계에대한객관적인사실을의미하는것입니다. 근본적인이미지는전쟁에있습니다. 정당한왕이신하나님께반역을저질렀던사람들은, 이제그리스도를통하여서그분과의평화를회복하였습니다. 바로이것이, 그리스도인이하나님의은혜와미래에대한희망에다가갈수있는기초가됩니다. 성경안에서평화라는것은, 구원의완전한축복을묘사하는포괄적인용어입니다.
이 찬양은, “샬롬”이라는 반복되는 가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다가올 죽음과, 그분의
죽음 이후에 권세자들의 핍박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나의 평강을 준다” 라고 약속하신다.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그분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을 믿는 주님의 자녀로서 가장 완전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면의 위로 정도가
아니며,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충만한 것이다. 우리를 정서적으로
위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보장하고 지켜주는 평강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평강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며, 내가 너희를 지킬 것이라 약속하신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강을 누리는 자들은, 그분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평강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주님을 전하러 나가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완전한 주님의 평강을 누리고, 또 그것을 세상 가운데 풍성하게 전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