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감각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그 숭고한 마음은, 오늘 내 설교가 마지막 설교일 수도 있다는 그 절박함은, 우리의 태도의 근본을 뒤흔듭니다.
임종인 장로님을 처음 뵌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교회를 떠나셨다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연세가 80이 훌쩍 넘으셨지만 예배를 사모하시고 빠지지 않고 나오셨습니다. 다만 섬겨야 하는 성도님들이 여러분이라, 깊은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그분의 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임장로님께서 속하신 순 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제일 연장자이시기 때문에 순장님께서 장로님에게 대표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때 그분의 진지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진실하고, 순수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그 음성을 처음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로 눈 앞에 계시는 것처럼 기도하시는 그 간절함이 저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참 감사했던 것은, 저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저의 목회를 위해서, 저와 저희 가족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셨습니다. 손자뻘에 불과한 목회자를 귀히 여겨주시고 또 기도해 주심에 참으로 마음이 기뻤습니다. 목회자는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기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분들이 특히 더 고마운 듯 합니다.
암 투병 중이시던 장로님께, 더 이상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댁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하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권사님 혼자 남편을 돌보셔야 해서 집이 정리가 안되어 부담스러워하셨지만, 꼭 찾아뵙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은 무리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장로님이 의식이 있으셨습니다. 비록 힘이 없어 많은 말씀은 못하셨지만, 권사님께서 장로님이 얼마나 귀하게 그동안 교회를 섬겼는지,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선하게 대하셨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권사님께서 부탁하셔서 면도기로 장로님 면도도 해드렸습니다.
시편 23편을 천천히 크게 읽어드리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아프신 분들을 찾아뵈면 크게 기도합니다. 때론 그래서 목이 상하지만, 그저 잠잠한 기도로는 제 마음의 간절함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의 가장 큰 어려움과 고통 앞에서 어찌 제가 조곤조곤 기도할 수 있겠느냐는 마음에 결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고민하다가, 장로님의 가슴에 올려진 손을 조심스럽게 꼭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께서 힘을 내서 제 손을 끌어 올리시고는 결국에는 본인 머리에 제 손을 올리셨습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안수 기도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의 마지막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크게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 어려운 시간을 오직 목자 되신 주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만 이겨내실 수 있기를, 성령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문장이 정지할 때마다 힘을 내어 아멘하시는 그 음성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 평생에, 장로님의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한 것은 처음인 듯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신 분을 놓고도 그러합니다. 장로님의 그 순간은 단순히 어린 목사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을 존대하며 간절히 주님의 은혜와 복을 사모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이 나고 장로님과 권사님 격려해 드리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래도 조금은 가벼웠습니다. 넘치게 위로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함께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례한 어제의 하관 예배를 마지막으로, 임장로님의 모든 장례 절차를 마쳤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무너져도 성도는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저의 설교는, 단순히 설교가 아니라 저의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설교를 들으실 장로님에 대한 진실한 고백이었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의 바라고 그분의 복을 사모했고 누렸던 장로님이야 말로, 목회자로서 저의 삶 속에 오래 남으실 것입니다.
임장로님의 관이 내려가는 것을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습니다. 그 순간이 마치 저에게는 친할아버지께서 하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아 장로님을 뵐 생각에 마음에 위로가 있었습니다. 임장로님을 뵙는 그 날에 더 기쁘게 만나기를 원합니다. 저도 장로님처럼, 누군가를 간절하게 축복하는 삶으로 살았다고 조금은 자랑하고 싶습니다. 장로님 다시 뵐 그 날까지 부끄럽지 않은 목회를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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