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저는 젊은 편입니다. 중년을 넘었지만 크게 아픈 곳도 없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정말 크게 아프신 분들, 그리고 이제 육신의 모든 힘을 잃어가는 분들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죄송할 때가 참 많습니다.
제가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그 부족한 마음이라도 최대한 펼쳐봅니다. 아프신 분들의 상황에 공감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저에게 다가올 삶의 마지막 날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더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 입니다.
박일양 권사님은 이제 아흔이 거의 가까워 오십니다. 얼마전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하나님 품으로 떠나 보내셨습니다.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우시던 모습이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아픈 마음은 감히 제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교회에 계단이 많아서, 그리고 워낙 약하신 몸이라 가끔씩 제 팔을 내어 드립니다. 함께 사역하는 전도사님께서 몰래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저런 모습으로 권사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 몰랐습니다. 저의 마음은 혹시라도 권사님이 넘어지실까 조마조마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한걸음씨 걸어가고 있는 저의 발, 그리고 권사님의 발만이 보일 뿐입니다.
오늘도 뵙고 인사드렸는데 갑자기 줄게 있다고 하십니다. 언뜻 들으니 ‘책’이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잠시 자리에 서시고는 작은 가방을 주섬주섬 여시는데 정말 책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A.W. 토저의 '온전한 믿음을 추구함' 입니다.
권사님께서 토저 책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십이 다 되신 어르신께서 여전히 책을 읽으신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정목사님, 내가 토저 정말 좋아해, 이 책 얼마전에 산 건데 줄께, 그리고 나중에 사도행전 설교도 사서 줄께'
책을 받아드는데 어떤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너무 야위어서 이제는 걷기도 힘든 권사님께서, 손자와 같은 목사에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책을 직접 전달해주시는 것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바쁜 날이지만 바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마치 토저 목사님의 마음을 토로하는 그대로라고 느꼈습니다. 잠깐 읽는 동안에, 이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광신적일까?
그렇게 살아 내어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맛보려는 것이 광신적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광신은 율법서가 권하는 광신이요,
시편이 권하는 광신요, 선지자들과 신약성경이 권하는 광신이다.
오늘은 글을 쓰고 있지만, 조금은 울적한 날입니다. 하루 종일 분주해서 무엇인가 집중하기 힘들었고 또 제 자신을 보았을 때에 불만족합니다. 따뜻한 햇빛 조차 마음이 불편한 날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토저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감정을 가다듬어 봅니다. 저의 감정과 저의 환경과 상관 없이 제가 가야할 길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길이며, 토저 목사님의 표현에 따르면 광신의 길입니다. 오늘도 잠잠히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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