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 금요일

영원한 십자가, 그 안에서 누리는 은혜 / 사무엘하 7장 18-29절 설교

 

요즘에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들으면서, 많은 통찰력을 얻고 있습니다. 특별히 탕자 비유에 대한 연속 설교를 들으면서, 한편의 설교에 본문의 모든 것을 담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탕자에 대한 팀켈러 목사님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연속 설교 스타일이 매우 탁월하시다고 느꼈습니다. 하나의 본문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메시지이지만, 그러나 안에서도 굉장히 풍성한 관점들을 연속되는 설교에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시리즈 설교를 들으면서 고민하게 부분은, 저도 모르게 설교의 정석이라는 틀에 갇혀서  저의 설교가 뻗어나갈 있는 어떤 가능성을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입니다. 설교는 마땅히 본문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메시지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낼 있다면 굳이 설교 안에서 모든 것을 담지 않아도 된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의 실천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하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얻는 통찰은, “설교자는 어느 정도로 추가적인 설명을 해야 하는가” 입니다. 한마디로 성경 구절에 대한 설교자의 설명의 충분함이 어디까지인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어떤 성경 구절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명 안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성경 구절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을 염두에 변증, 그리고 변증을 추가적으로 풀어내는 성경적이고 철학적인 부연 설명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강해 설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마치 하늘에서 바라보는 듯한 넓은 시각으로 성경과 삶을 조망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저로서는 상당히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제가 배운 설교의 정석과도 다릅니다. 저는 주로 강해 설교 중심이라면,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존파이퍼 목사님도 그런 방향이라면, 팀켈러 목사님은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장르라고 느꼈습니다. 설교를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제가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따라하기 어려운 가장 이유는, 일단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구절을 놓고, 변증과 성경과 철학을 넘나드는 변증적인 내용을 풀어내기에는 실력이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다만 제가 느낀 것은, 어떤 신학적인 사고를 풀어내는데 있어서 자유함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역시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꼭 부분은 말씀을 드려야겠다”라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용이 조금이라도 성경 본문에서 벗어나게 되면 차라리 안하는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어쩌면 아주 약간은 성경의 본문 자체에서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신학적인 사고를 펼쳐내서 성도님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보는 것도 굉장히 좋겠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번에 제가 본문을 보면서 가장 묵상한 부분이 “겸손”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약속” 입니다. 물론, “말씀에 근거한 인간의 반응과 기도”라는 주제가 본문의 후반부에 들어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과감하게 생략했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긴 부분에 대해서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는 부분을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집중해서 풀어냈습니다.

아마 예전에는 절대로 이렇게 풀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설교의 방식대로, 과거와 미래에도 여전히 은혜를 부으시는 하나님이라는 평범한 논리로 풀어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았습니다. 철학적인 논증을 위해서 고민해 보았습니다.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읽었던 시간에 대한 부분이 여전히 마음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과거와 미래를 함께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며, 안에서 십자가의 영원함이라는 주제를 담아냈습니다.

실제로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저를 바라보시는 성도님들의 눈빛이 지루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분의 확신이 너무 좋았던 것처럼, 역시 마음 속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부분은 반드시 나누고 싶다, 혹은 이러한 하나님을 드러내고 싶다라는 바로 소망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본문 해석을 조금 추가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과감히 건너뛰고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이번 설교 준비에도 스터디 바이블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완벽한 도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에서이든지 생각을 일깨워줄 있다면 충분히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지만 설교 가운데 충분히 내용을 풀어냈습니다.

7:18 The words sat before the Lord indicate that David was in the tent which served to house the ark. Who am I, O Lord God: David’s rhetorical question reflected his sense of unworthiness to have been extended such a gracious promise (vv. 12–16).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삼하 7:18.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해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다스림은, 아래 스터디 바이블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풀어 냈습니다.

7:16 for all time … forever: God’s promises do not negate human responsibility and accountability (7:14). Wrongdoing requires a just response from God. However, no wayward son of David could move God to withdraw his promise to preserve David’s dynasty. Although the dynasty disappeared for hundreds of years, David’s house and kingdom were renewed in Jesus Christ, the sinless descendant of David who reigns forever. • before me: As in Greek version and some Hebrew manuscripts; Masoretic Text reads before you.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삼하 7:16.

7:19 God’s plan to give David a lasting dynasty stretched well beyond his lifetime. The promise is fulfilled forever in the eternal reign of Christ (Rev 11:15). • Do you deal with everyone this way, O Sovereign Lord? Or This is your instruction for all humanity, O Sovereign Lord.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삼하 7:19.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고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영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기쁨 그리고 그분 자신의 영광입니다. 설교를 있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저의 설교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가장 탁월하게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 사무엘하 7 18-29 설교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그분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다윗을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던 것이 대략 BC 1025 경입니다. 그리고 거의 이십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윗은 한때 삶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서 사울을 피해서 도망하는 도망자로 살았지만, 이제는 유다지파 뿐만 아니라 모든 지파를 다스리는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온전하게 세워진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나라의 가장 정점에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권력이라도 그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생명을 전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성으로 여호와의 법궤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기뻐 춤추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모든 것이 형통하여져서 그의 왕궁에서 편하게 살게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여호와의 법궤는 여전히 천막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서는 다윗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계획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생각할 때에 그분에게 성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여호와는 오히려 다윗을 위하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를 위한 축복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다윗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겠다, 너의 후손을 세워서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 너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리고 왕위를 영원하게 것이다, 사울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은총을 거두지 않고 너의 나라의 왕위는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가 모든 말씀을 다윗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라고 여호와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여호와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어디에서든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알았지만, 여호와께 그의 마음을 아뢰기 위해서 직접 언약궤 앞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과거와 다른 사람입니다. 이미 백성의 위대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앞에 홀로 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라고 여호와 앞에 거들먹거리지도 않았고,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이정도 축복은 받을만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전적으로 가득 채운 것은, 여호와께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푸시는가,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받기에는 얼마나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턱도 없이 부족한가를 절실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다윗이야 말로 은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를 향한 다윗의 기도를 보면 계속 반복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라는 표현입니다. 주라는 것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다윗의 완전한 겸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분명히 인간이며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그가 취할 있는 가장 겸손한 진실함으로, 여호와께서는 저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라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19절부터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주의 종을, 주의 종에게, 주의 종의 다시 말해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주의 종”이라는 표현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라의 왕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거기다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때에는 나라의 왕이고 이미 인생의 성공의 가장 정점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한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는 절대 순종 밖에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바로 마음이 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이야기입니다.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함께 읽으면서 청년에게 질문을 보았습니다. “누구누구 형제님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니까 형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서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습니다. 정말 귀한 고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한가지 너무 아쉬웠습니다. 너무 맞는 이야기였지만 아직 깊은 신앙의 수준까지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정말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가 정말 아쉽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그냥 죄인이 아니라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주었습니다. 그때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용이 낯설게 느껴지는 처럼 저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가운데 진정한 감격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말씀을 보면서 그렇게 감동이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내가 받을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릴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한 생각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무의식 속에 감추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차원 속에 있든지 간에, 만약에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모든 것들이 그저 심상하게 느껴질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언 3 3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야고보서 4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6 그러나 더욱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겸손한 마음이야 말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미 넘치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넘치게 생생하게 경험하고 느끼고 누릴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겸손한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다윗처럼 마음이 겸손하게 낮아지기를 원합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기를 원합니다. 다윗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내가 가진 어떤 지위나 재산이나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직 여호와 앞에서 겸손하여 짐으로 그분의 은혜와 말씀에 대한 감격으로 온전히 새로워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다윗의 겸손함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다윗이 그렇게 감격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9 말씀입니다. 7:19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종의 집에 있을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표현이 이것이지 종의 집에 있을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롭고도 놀라운 부분이 무엇인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처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후손과 그의 집에 대해서 영원히 그것을 세우시고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절대로 너의 후손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에 상식적으로 무엇에 먼저 놀라야 하는가? 자신의 왕국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놀라게 것은, 자신의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를 책임지시는 미래까지 계획하시고 보장하시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하심에 놀랐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자신에 대해서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감히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분이심을 다윗이 분명히 깨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순간의 정점에 불과한 인간을 아득히 뛰어 넘으시는 그러므로 장래의 일조차 가장 확고하게 말씀하시고 복을 주시는 진정한 절대자라는 점에서 가장 크게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벗어날 없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인생 밖에 살아갈 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시간 밖에 있는 것을 경험하거나 넘어갈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후손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삶이 비록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일부분이라 있는 자신의 후손이 세상에 남는다면 자신도 남을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시간의 밖에도 계시며 시간 안에도 계시는 시간의 초월자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그분의 이름 그대로입니다. 모든 인간은 시간에 얽매여있고 어떤 것을 의지할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여호와는 전혀 다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감히 다윗조차 상상해보지 못한 그의 기대와 생각을 완전히 뛰어넘은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오늘 말씀에서, 과거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간을 뛰어넘으시는 여호와를 깨닫고,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23절과 24절이지 7:23 땅의 어느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7:24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놀라운 점은, 비록 다윗이 자신이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여호와께서 과거 가운데 역사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시간을 초월하시는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시간의 영역 아니라 과거조차 지배하시며 역사하시며 구원하셨던 전능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시간을 넘어서는 절대자이신 여호와께서 미래에도 그분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25절과 26절이지 7:25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7:26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다윗의 집이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여호와께서 절대자가 아니시라면, 그분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호와라는 존재가 마치 인간처럼 시간에 얽매이시며 인간처럼 변덕쟁이이며 변하시는 분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그분을 믿을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께서 절대자이심을 고백하면서, 과거에 그분의 일하심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그분을 믿고 나아가서 그분이 약속하신 미래를 붙들고 감사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이루시기를 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여호와의 약속은 이루어졌는가? 라는 것입니다. 과거로 부터 이어지던 그분의 말씀은 이루어졌는가? 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 32-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2 그가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하나님께서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1: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나라가 무궁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사실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면 결국 나라가 분열되고 철저하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의 포로가 되었고 돌아온 이들조차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강대한 제국들의 다스림을 받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그저 아무 혈통이 아니라, 분명한 그분의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심은, 시간을 넘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야 마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비록 다윗의 왕조는 무너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완전히 세우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친히 시간 안으로 인간으로 가장 낮은 모습으로 땅으로 오신 것이며 그분을 통해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이루어질 확고한 미래를 보고 다윗이 놀라고 감사하고 감격했던 것처럼, 반드시 미래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완성될 것이며,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타락한 세상은 완전히 회복될 것이며,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가 죄와 질병과 눈물과 고통과 괴로움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성도라고 불리는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품과 그분의 계획 안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고린도후서 5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인가? 저는 이번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간이라는 중요한 속에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실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말할 때에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히 인간이 상상할 없는 절대자의 주권과 보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하시며, 다윗을 통해 그리스도를 약속하시며 약속을 이루시며, 다가올 미래에 조차 확정적으로 이루시고야 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의 주권 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감히 우리를 흔들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 속에서 그분의 은혜에 우리는 붙들려 있고,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감격과 축복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기를 원합니다. 시간을 넘어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놀라운 은혜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우리에게 임하여진 것을 없이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넘치게 올려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의 마음 가운데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받을 자격 없는데 받은 용서와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인생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절대자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의 안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품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의로 입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안식과 기쁨과 안전을 누리게하시고 영원한 그분과 연합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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