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9일 목요일

2026 다보스 포럼 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유발 하라리) -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써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다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는 AI 입니다. 영어 회화 훈련을 위해서 ChatGPT 초창기부터 사용했고, 다양한 AI를 삶에서 또 목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 생활에서 낯선 상황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저는 AI를 사용하던 처음부터, 도저히 이 도구의 존재 자체를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언어의 맥락을 대량으로 학습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탁월하게 될 수 있는 것인가? 

수백 시간을 대화하면서 나의 대화 상대인 AI가 인격체라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서 언어를 학습하여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참 놀랍고, 또 AI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있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의 발표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 입니다. AI를 분석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영상을 보았지만, 이 영상이 가장 깊이 있고 또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힘은 궁극적으로 언어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득적으로 설명하고, AI가 그 영역을 이미 침범하였으며, 이제 곧 AI가 인간을 앞서 나갈 때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유발 하라리는, AI의 등장 자체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인간의 인간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책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AI는 성경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고 그런 면에서 AI가 성경의 가장 큰 권위자가 되어 종교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성경에 대한 내용을 물어보고 있고, 또 Logos와 같은 회사도 신학에 특화된 AI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보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발 하라리가 지적하고 싶은 핵심은, AI와 인간의 차별점이 무엇인가 였습니다. AI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과 글을 쓰기 때문에, 그것이 겉보기에는 인간의 사고와 다른 점이 없다고 유발 하라리는 지적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종착됩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인간의 탁월함을 증명하고 역사를 바꾸었지만, 이제는 그 명제가 깨어질 때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저는 유발 하라리의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가, 심각하게 '도구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능력, 글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가지고 인간을 정의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보면, 저는 이것 역시 도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든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유발 하라리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성경만이 이러한 허무주의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결코 다른 존재와 비교하기 위해서 혹은 도구적 가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우리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하고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어떤 도구적 기능을 가졌기에 존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존중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AI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닮았지만, 그러나 결코 인간과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AI가 인간의 생각과 비슷한 것을 완벽하게 혹은 더 탁월하게 보여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AI는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AI는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AI가 보편화된, 혹은 더 나아가서 AI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침범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복음이 진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진리로 믿는 사람만이 혹독한 미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AI가 능력과 권력을 가진다 하더라도, 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생각과 믿음에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자체만이 진리임을, 크리스천 각자가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해석 혹은 AI의 해석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AI가 아무리 탁월한 식견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경 그 자체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며, 말씀 자체를 읽고 듣는 것이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복음은 철저하게 내면화 되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기독교의 역설은 객관적이며 동시에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충분히 주관화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AI는 누구보다 탁월하게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복음의 내용을 우리에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 복음을 우리 안에 새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크리스천 북클럽의 역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어떤 양육 프로그램보다, 북클럽은 복음을 한 사람의 마음 깊이 넣어 줍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나누고 다듬어지는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 안쪽에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닮아가는 사람만이, AI가 만들어낸 정보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인 기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일대일의 교제입니다. 그 사이에는 AI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각자 진실하게 나아감으로써 이 시대 가운데 진정한 인간됨을 경험할 것입니다. 

저는 공예배 가운데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 시간에 함께 기도하며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 순간은 오직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의 시간이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나의 심령 안에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그분을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AI의 시대 가운데 개인의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가 더욱 중요시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몸으로 진리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인간과 AI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은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여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생각과 논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러한 완성을 우리에게 이미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로고스로 존재하셨지만 실제로 인간이 되심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셨지만 이제는 인간으로서 이 땅에 나타나셨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말과 육신 사이의 긴장만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완전한 결합을 보고 경험하고 만져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요즘에 집중하는 것은, 지식의 우상화를 피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은, 지식을 통해서만 신앙이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목표가 가장 철저한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습득이라면, 도대체 우리의 길이 AI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기독교 세계관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관을 가르치면 사람이 바뀐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이미 실패한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세계관은 실천과 반복으로 만들어 집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 정교한 지식, 심지어 통찰과 지혜를 AI가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우리의 깨달음을 실천하고 우리의 전 존재가 변화되는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씀을 따를 것이며 그것이 참된 인간 됨 입니다. 생각과 실제의 삶의 간격을 좁히고 가까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허락하신 일입니다. 

당연히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그리고 충분히 성경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자체가 저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누리는 사랑은 저의 사고의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복음을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고 있는가? 

저 역시 한편으로는 앞으로 닥쳐올 세상이 참으로 염려가 되고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AI로 인한 혼란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남을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희망이 되는 부분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할 것이며 가장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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