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창세기 45장 / Too Good to be True & 복음을 누린다는 것

 

유다의 진심어린 호소까지 본 요셉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제들 앞에 서 있는 이집트의 총리가, 바로 그들의 형제 요셉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형제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요셉이 형제들을 위로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가장 극적인 자리에서 요셉은 매우 격정적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논리는 매우 차분하며 또 성경적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자신을 이집트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무려 두번이나 강조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계획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냅니다. 

요셉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뜻을 고민했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았으며, 그리고 이제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형제들에게 알려줍니다. 형제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기를, 그리고 이집트에서 같이 이 흉년을 이겨낼 것을 제안합니다. 

이 장면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마이클 호튼의 책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Too Good to be True!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그런 뜻입니다. 자신들이 팔았던 요셉이 살아있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으며, 그들이 비웃던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졌으며, 이제 요셉이 자신들을 초청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일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안고 웁니다.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입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입맞추며 웁니다. 그런데 형들은 울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주목합니다. 요셉이 믿기 어려울 만큼의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이야기하고 강조하고 그 안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형들은 선뜻 그 속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5절에 보니 요셉은 형들에게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넷 바이블은 "do not be upset and do not be angry with yourselves because you sold me here"이렇게 번역합니다. 

요셉의 염려는, 형들이 스스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과거에 대한 진실한 회개가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안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을 요셉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요셉의 당부입니다. 24절에 보니 아버지에게 보내면서 "길에서 다투지 말라"라고 당부합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았을까요? 요셉을 팔게 된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확실하게 하려고 하는 것을 막은 것은 아닐까요? 요셉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형제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이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성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도의 심리는 어떠해야할까요? 저는 심리 전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한국 성도님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해결할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평생 죄인"입니다. 

물론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이미 들어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분노하고 한탄합니다. 회개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친, 혹은 도를 넘어선 자기 비난과 한탄은 결국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복음을 누리라는 말이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설교의 최종적인 목적은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며 평생 괴로워하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결국 설교의 목적은 한 사람이 은혜 가운데 들어오도록, 그리고 은혜를 누리도록, 그리고 은혜 안에서 끊임 없이 돌이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45장은 설교자에게도 또 성도님들에게도 신앙의 태도에 대한 결정적인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 think this chapter is very critical to understanding the attitude of God's people. I was surprised by Joseph's confession about his situation. Even he said twice that God sent him to Egypt. He doesn't blame his brothers. Rather, he insists that there has been God's providence in him and his brothers. So he stresses that his brothers should not be angry about themselves. However, his brothers can't do that. They did not weep with Joseph.

I think that Some Korean Christians blame themselves severely. I know that we need sincere repentance before God. We should mourn for our sins. But, the final goal of our mind and attitude is not mourning. It is the joy and satisfaction with God's grace and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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