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경험" 입니다. 사랑은, 논리일 뿐 아니라 경험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면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가장 숭고한 경험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고난을 통과한 사람만이,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런면에서 기독교는 진정으로 경험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담임 목회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신앙적인 깊이가 있는 성도님을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결국 개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담임 목사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읽어보는 것은 결국 교회를 위하여 필요한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전체가 7 part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 책을 그렇게 처음부터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제목만 보면서 상투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다고 느꼈습니다. 역사에 기록될 천재들의 책이 아니라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모든 책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담임 목사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마음이 암담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분들이 어렵게 사역하시고 계시고 저도 그 대열에 머지 않아 동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교회의 대부분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사역해 보면, 큰 교회와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열악한 목회 환경이라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됩니다. 목회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리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의 목회의 처지에 들어가보지 않았다면, 함부로 그들의 어려움을 말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이 책의 Part1에서는, 이러한 목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말 그대로 "쇠퇴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는 글의 서두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한 없이 낙천적이어야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모든 경제적인 상황이 급격히 맞물려 변하는 것 처럼,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낙관주의는 결국 절망을 불러올 뿐입니다.
몇가지 글에서 살펴보면, Part1에서 제안하는 교회 쇠퇴의 시대에 제안은 이렇습니다. 교회는 과거에 행해오던 모든 프로그램의 관습을 벗어나서, 현실적으로 시대상에 맞는 부분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기도회, 선교회, 주일 학교 등등의 모든 것을 대형교회를 모방하는 것을 벗어나서 작은 교회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례와 교리 교육을 강조해야 합니다. 대형 교회가 쉽게 하기 어려운 성례의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예배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청년들을 염두에 둘 때에 쉽고 그들에게 익숙한 인스턴트식 신앙 교육이 아니라 깊이 있고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쇠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목회자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작은 교회가 무조건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대형 교회는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하기 때문에 작은 교회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더욱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일수록 오히려 더욱 새로운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관계를 잘 쌓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에 걸 맞는 수준의 것을 시도하라 라고 말합니다. 만약 무작정 대형 교회와 같은 내용과 형식 혹은 규모를 추구하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우스운 모습일 것이라고 냉정하게 조언합니다. 오히려 대단한 교육 부서를 만들 수 없다면, 전 세대 예배에 집중하고 교제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부분은 청년들을 염두에 둔 챕터입니다. 말씀과 성례와 신앙 고백에 충실한 사역, 세대와 세대가 서로가 경청하며 소통하는 사역, 그리고 인내함으로 사역해야 한다고 저자의 사역의 경험에 바탕하여 설명합니다.
저는 작은 교회를 꿈꿉니다. 글쎄요, 작은 교회가 어느 정도의 규모를 말하는 것일까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작은 교회는 결국 현실의 수준에 맞는 것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영상과 음향을 꿈꾸기는 힘듭니다. 모든 것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있는 예배, 경험적인 예배, 말씀을 깨닫고 함께 깊이 기도할 수 있는 예배, 공동체성을 누릴 수 있는 성찬과 세례입니다. 목회자로서 저의 꿈입니다.
제가 사역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의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에너지가 한 곳에 모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목회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기존에 운영되던 어떤 모임과 형식이 있으면, 그것을 백업하는데에만 실질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목회자의 모든 에너지를 예배와 설교와 찬양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의 예배에 대한 철학은, 일단 예배가 시작되면 숨도 못쉴 만큼의 긴장감과 영적인 어떤 놀라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영적으로 숨이 막혀야 합니다. 결국 평소에 경험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주일 예배 가운데 경험해야만 그 작은 교회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온 세대가 함께하는 예배 가운데 쉬운 찬양을 손을 잡고 부르면 어떨까요? 부모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통성으로 기도해주면 어떨까요? 자녀를 함께 끌어안고 기도해주면 어떨까요? 성찬을 둥글게 서서 할 수는 없을까요? 꼭 찬송가만 불러야 할까요? 단순히 찬송가가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건반과 패드 사운드를 가지고 친숙한 ccm을 부르면 어떨까요? 담임 목사만 성경 구절을 읽을 것이 아니라,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성경 구절을 합독할 수는 없을까요?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활발한 소그룹 모임에 집중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담임 목회를 생각하면서 한주에 최소 네 번 이상의 소그룹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현장도 좋고 줌도 좋습니다. 낮도 좋고 밤도 좋습니다. 만약 작은 교회라면 담임 목사가 온 성도를 모두 함께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결국 주도적인 목회의 우선 순위의 조절이 필요합니다. 경험상 최소 열번 이상 소그룹 안에서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인격적인 관계가 있어야 어떤 일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틀을 다시 점검하고 작은 교회에 걸맞는 틀을 찾아내야만 할 것입니다.
결국 제가 직접 성도를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신앙과 교감해야만 그것이 목회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작은 교회 목회는 결국 소그룹이 전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소그룹을 준비하기 위한 북클럽과 모든 컨텐츠를 만들고 공유하기 위해서 저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제 마음 안에 깊이에는, 교회 쇠퇴의 시대를 걸어간다는 현실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역사속의 교회가 항상 그러했던 것 처럼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 되신 주님을 의지하여, 교회 쇠퇴의 시대를 오늘도 담대하게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 "책 어디까지 읽어봤니?" 전체 글 모음 /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3/blog-post_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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