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고갈된 부분도 있습니다. 인간 관계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방향을 잃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도 했고, 또 많은 부분이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꾸준히 제가 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해냈지만, 그 과정이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저의 내면 안에 있는 가장 깊은 갈등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뜨겁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뜨거운 사람이 될 것인가"의 갈등이었습니다.
김동률 노래는 참 깊은 삶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에 들었을 때에 가사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뜨겁지 않은 사람이 됐어" 그것이 저도 모르게 제가 처했던 저의 마음의 상태였던 것입니다. 별로 모든 것에 무감각하고, 다른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그저 제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의 상태로 많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에 저에게 주신 그 사랑의 감각을 잊어버리고, 겉보기에는 그래도 괜찮은 목회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사람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진실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정말 진실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결국 그 사람의 진심이 보입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내면이 서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보고도 보고 싶지 않은, 알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그런 순간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에 뜨겁지 않은 사람이라면 거기에서 멈추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만 거기에서 멈추어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신앙적으로 둘러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저도, 그 사람도, 세상도 멈출 뿐입니다.
뜨거운 사람이 되려면, 상처를 많이 받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세상은 뜨겁지 않은 사람으로 가득차 있고, 식어 있는채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뜨거운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책으로 남겨진 것은, 그런 사람들이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뜨거운 삶을 산다는 것은, 나의 진심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며, 오히려 왜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가느냐고 비웃음을 당할 가능성이 많은 길입니다. 사실 동시대에 뜨거운 사람은 그저 허망하게 잊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제 나는차라리 뜨겁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훨씬 실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삶은, 내면의 극심한 모순을 가져옵니다. 오랜 기간 동안 괴로워하며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뜨거움을 주시고,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밀어붙이시는데, 내가 나 하나 편하자고 식어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잠시는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나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맞먹는 큰 모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뜨겁게 사는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설교 때 마다, 불타는 초 처럼 녹아서 없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반복했던 분입니다. 어린 시절 그때 그분의 설교를 들을 때에는, 그것을 어떤 추상적인 문학적 장치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 역시 목회의 길을 조금 걸어보니, 그것은 추상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목회자 혹은 성도의 삶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장 아름답게 드러날 것이고, 우리의 존재 자체는 결국 녹아서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목회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신학교 시절의 배움들을 기억하고, 또 유학 시절에 어려운 순간들과 학업과 기도와 아내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바랬던 모든 학위들을 마치게 하셨던 것도 기억했습니다. 바라고 소망하던 것들을 매우 더디게 이루시며, 동시에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긴 터널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삶을 얼마나 놀랍게 인도하셨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셨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저의 삶이 저만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빚어오신 소중한 것이며, 저의 온 가족이 함께 일구어낸 소중한 것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남편이며, 아빠이며, 아들이며 또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시카고의 겨울은 너무나 혹독하고, 시카고의 여름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날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좋은 때입니다. 저는 지금, 길었던 터널의 끝에 빛의 바로 앞에 서 있습니다. 물론 마음에 결단은 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주 조금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삶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딛으라고 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언젠가 마음에 또 어려움이 심해서 좌절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적어도, 하나님께서 지금 주신 마음과, 저에게 주신 비전들을 마음에 붙들고 계속 걸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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