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2일 토요일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십자가 / 예레미야 15장 10-21절 주일 설교 (준비 과정)

 



* 설교를 연습한다는 것

이번 설교 준비가 쉽지 않았던 것은, 충분한 연습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번 주일 설교를 하면서 연습의 기준이 분명하게 정해졌습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의심이 없어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원고를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실제로 말로 연습하지만, 설교 강단, 혹은 그것과 유사한 자리에서 반드시 마무리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다섯번 정도입니다. 

원고를 정말 정성으로 준비합니다. 대략 목요일에는 원고가 다 완성되고 금요일과 토요일은 최종 세부적인 수정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급하게 환우 심방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장례 예배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몰리기 시작합니다. 심방을 하고 장례 예배에 가는 것이야 목회자의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체력입니다. 지쳐버린 상태에서 늦게 교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음에 갈등이 되었습니다. 한번 더 연습해야 하나? 이틀에 걸쳐서 네번 정도 연습 하였는데 그래도 괜찮게 준비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에 의심이 있었습니다. 

다시 본당으로 갔습니다. 강대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다시 설교를 하였습니다. 최종 연습 다섯번 정도는 반드시 스탑 워치를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합니다. 완벽한 원고를 쓰기 때문에 오차는 겨우 일분에서 이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습하는 것은 저의 말의 빠르기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설교 연습을 마무리하니 토요일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졌습니다. 갑자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의심은 사라지고 확신으로 채워졌습니다. 드디어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준비가 되었다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 설교의 준비

매일 성경 본문은 예레미야를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렵기도 하지만, 사실 그 깊은 슬픔이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큰 주제이고 실제로 그것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번 본문은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그분과 독대하는 장면입니다. 그와 하나님이 주고 받는 그 대화 속에는, 삶의 모든 것, 신앙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읽으면서 저의 마음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아프고, 또 한편으로는 크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본문으로 설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음성은 세밀합니다. 그 세밀한 음성, 그 따뜻하지만 엄위에 찬 그 음성을 제 설교를 통해서 제 자신도 듣고 싶었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활자로 적혀 있는 성경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오류가 없는 완전한 진리이고 인생의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실제로 우리의 영혼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슬프고 기쁘고 아프고 감격적이고 마음 저리는 이 본문이 어떻게든 제 설교 속에서 살아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 설교의 구조, 그리고 길이

실제적으로 이번 설교는 논리적으로 약간 복잡합니다. 예레미야의 심리적 상황, 하나님의 뜻, 그의 상황과 십자가의 의미, 공동체, 십자가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적용이라는 큰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회자로서 고민해야 했던 이야기를 샌드위치 구조로 맨 앞에 맨 뒤에 나누어서 넣었습니다. 성도님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설교적 효과를 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번에 많이 고민한 것이 설교의 구조입니다. 저의 원래 스타일은, 본문을 최대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듣고 공부하면서, 성경 안에서 논리적인 틀을 따라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점을 보았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오래 들으면서 이제서야 그 자유로움이 조금씩 저의 것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레미야를 설교하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은 예전에는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 번의 논리적인 전환을 과감히 시도해 보았습니다.

문제는 논리가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그 논리를 설득하기 위해서 원고를 충분히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처음에 원고를 충분히 적었더니 45분 설교가 되었습니다. 무조건 줄여야합니다. 설교를 타이트하게 만들기 위한 저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먼저 인용 구절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만 인용합니다. 이번이 특히 그랬습니다. PPT에 들어가는 성경 인용 구절 앞 뒤에 줄임표 ... 를 많이 넣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원고를 수정하면서 반복되는 문단은 과감히 삭제합니다. 성도님들에게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문장"을 하나하나 다듬고 조사까지 다듬어야 합니다. 아, 진실로 긴 여정입니다. 그리고 결국 성경 본문과 시작 기도까지 포함해서 약 37분 정도로 줄였습니다. 안심이 됩니다. 이제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집중력을 가지고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 탁월한 설교를 위하여

설교를 준비할 때에 여러 책들을 참조합니다. 이번에는 교회사 책까지 여러권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설교를 일부러 염두에 두고 독서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평소 습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참 신비롭게도,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내용을 적절한 타이밍에 저의 설교 속에 엮어 내십니다.

물론 주석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예레미야의 심리적인 깊은 고민을 담은 부분을 주석들은 그렇게 깊게 다루지 않습니다. Exalting Jesus in Jeremiah, Lamentations 가 그나마 도움이 되었고 좀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설교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최종적인 목표는 "통합적 사고" 입니다. 성경적인 최종 확신을 가지고 "설교자 자신"이 내용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다양한 자료를 보았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인 견고한 방향을 가지고 꾸준한 독서와 글을 쓰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를 점검하고 확장하여야 합니다. 어렵고 긴 길입니다. 그러나 방향이 확실하고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할 목표는 아닙니다. 

제가 여기에 적는 내용들을 누군가가 저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주었다면 제 삶이 덜 힘들었겠지만, 적어도 설교에 관한 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드디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년간의 저의 노력과 고민이 결실을 맺고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기쁨이 이것보다 더 클 수 있을까요? 사실 설교를 하고 칭찬 받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옳은 길을 걸어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누리는 것은 그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말씀을 붙들고 고민하고 힘들었던 그 깊은 밤들입니다. 그 누구도 저의 마음과 열심 그리고 그 시간을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합니다. "설교는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럴 때 마다 코 웃음이 저도 모르게 나옵니다. 정말 그런 것이까요? 물론 그 말의 보편적 의미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탁월한 설교"를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는 "탁월함" 입니다. 혹시 주변에 그런 분을 쉽게 만나 보셨는가요? 저는 성도님들을 만나보면 모두가 진심으로 간절하게 "좋은 설교"를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설교를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설교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의 마음이 터질 것 같고, 제 삶을 돌아보고 크게 돌이키며, 다시 한번 하나님을 간절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설교를 기다립니다.

설교는 "단순히" 노력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통합적 사고와 진실함, 그리고 치열한 자기 발전을 "매번" 도전해야 합니다. 단 한편의 설교도 가능하면 포기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업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말씀을 진실하게 묵상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진실함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다양한 독서와 연결이 되어야 하고, 탁월한 글 쓰기가 반드시 가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의 아름다움에 담아서 전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탁월한 설교"라고 부릅니다.

* 설교와 독서

이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 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얀시의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가 이 설교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책의 가장 중요한 논리적인 전환점이 "십자가" 입니다. 그냥 십자가가 아니라 "역사적 십자가" 입니다. 아마 20년 전부터 읽고 고민한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설교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요한 하리의 "물어봐줘서 고마워요"를 설교 중에 인용하였습니다. 부담되시지 않도록 책 제목은 일부러 생략하였습니다. 

*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https://ridibooks.com/books/1648000188


우울증으로 심하게 고통 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속에서, 예레미야가 어떤 고통을 당하였는지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한 하리가 제시하는 공동체가 과연 교회 그리고 십자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종합해서 설교의 후반부를 준비하였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루터가 떠올랐습니다. 루터의 보름스 회의 장면은 거의 인용한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조금 상세하게 인용하였습니다. 특별히 95개조 반박문은 최주훈 목사님이 번역하시고 해석을 하신 책을 통해서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저는 라틴어와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독일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의 귀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드러내는데 가장 좋은 예로 생각했고 그래서 인용하였습니다. 

*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 


* 설교와 설교의 톤 (논리적 & 수사적)

제가 냉철하게 보자면, 저의 설교는 톤이 굉장히 강합니다. 지금까지 돌아보니 당신의 삶을 다 드려야 한다라는 맥락의 내용이 빠진적이 거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성경적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성도님들에게 부담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교의 톤은 부드러움과 강함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전반부는 예레미야의 탄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해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가 잘 드러나도록 논리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수사적으로는, 예레미야가 어떤 톤으로 기도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설교 중에 "하나님은 사기꾼 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라는 톤은, 매우 강한 표현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작게 목소리를 낮추어서, 마치 절망에 빠져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그런 사람의 톤으로 설교하였습니다. 

루터의 선언에 대한 톤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는 약간 힘이 빠진 듯한 느낌으로 독백처럼 하는 것으로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더 연습해 보니, 그의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부터 오는 당당한 톤이 훨씬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루터를 단순히 "칭의" 신학만으로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마치 루터가 믿음에만 치우친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런데 95개조 반박문을 읽으면서 저의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말하고, 그 길을 자신의 삶 가운데 "실제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 설교의 반응

저는 교만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만은 자신의 삶을 헛된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들을 진실하게 돌이켜보고, 그 안에서 발전하는 것이야 말로 저의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설교는 지금까지 주일 설교를 한 것 중에, 성도님들이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도 좋아하셨고, 또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동료 목회자들도 좋은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평가라기 보다는 정말 좋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런 칭찬을 받아도 되는가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눈에서 섬세하게 빛나는 별을 보았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눈이 변합니다.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놀라운 일에 쓰임 받아서 좋았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의 눈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얼마전에 팀켈러 목사님 설교 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국에 대한 설교 인용을 들었습니다. 천국은 진실로 사랑하는곳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의 행복으로 인하여 내가 행복해지는 것" 입니다. 저의 수고와 인내와 눈물로 누군가의 행복을 보는 것이, 저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저는 항상 주일 설교가 은혜롭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가 앞에 선 사람은 설교를 잘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눈물로 노력한 저의 최선의 결과가 나타나서 좋았습니다. 은혜를 사모하여서 모인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 설교자의 영광 

제가 사람들의 칭찬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는 것은, 저의 설교 자체의 목적이 사람의 칭찬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 연습을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정말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 아닙니까?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의 언어와 마음을 그리고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감히 제가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는지 너무나 신비롭습니다. 여전히 매번 가슴이 벅찹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또 열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영광의 자리가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쉼 없이 걸어가야만 합니다. 설교자임이 자랑스럽고, 그것이 감격스럽기 때문입니다. 저의 평생의 설교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십자가가 드러나고, 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도님들을 변화시키는 설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십자가
/ 예레미야 15장 10-21절 주일 설교 (설교문)
https://jungjinbu.blogspot.com/2023/08/15-10-21_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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