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아들 셋을 통한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의 족보를 추적해서 언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했는지 알 수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이라며 일축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성경은 한 사람의 언제 자녀를 낳았는지, 또 얼만큼 더 살았는지 그리고 몇세에 죽는지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기록한 듯 합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셨던 것 처럼, 아담은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죄로 인해서 그 형상이 모든 부분이 망가졌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이 완전히 상실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태어나서, 살고, 죽는 저주의 패턴을 피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에녹은 죽음을 피합니다. 에녹의 삶에서 수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성경은 그가 므두셀라를 낳은 것,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 것을 주목합니다.
Grace and Truth 스터디 바이블은, 마도 므두셀라가 태어난 것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 에녹의 삶 가운데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추측합니다. 굉장히 좋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삶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계기로 인해서 삶이 변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삶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굉장히 강조점을 둡니다. 그리고 성경 묵상에 대한 노력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변화의 계기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라는 표현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아마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에덴 동산에서 함께 걸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진실함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 근본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그분과 늘 동행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자신의 아들을 낳고 나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땅의 저주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의 말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죄로 인한 그 결과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라멕은 예언적인 고백을 통해서 이 저주에서도 하나님께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창세기 5장을 묵상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의 문명이 찬란하게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끔찍한 폭력과 잔인함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소망을 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신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소망을 봅니다. 인류의 역사 자체가 큰 어두움으로 덮여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여전히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In Genesis chapter 5, we see the offspring of Seth. Mankind was created in the likeness of God. Bible shows that even the image of God is depraved but mankind is still in the likeness of God.
The impact of sin was very severe. However, the people of God saw heavenly hope. Enoch has the turning point after his son's birth. He walked with God. And Lamech prophesized about his son Noah's works. In human history, it seems that darkness is covered people's fate. However, the people of God saw and had hope in God's promise.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