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8일 금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18장 / 아버지의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라

 


가능하면 새벽에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루 동안 해야만 하는 일들을 감안할 때에 사실 오늘은 말씀 묵상은 불가능할 것 같아 라고 수십번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은 우선 순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큰지를 물어봅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이 질문에 대해서 세례 요한의 천국에서 지극히 작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했다고 설명합니다. 충분히 근거 있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질문은 누군가를 따르는 제자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인간 본능 안에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큰 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부르십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 사이에 세우시고,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살지 않고, 자신의 지혜로 살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부모님을 의존합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오직 아버지의 능력으로 아버지의 지혜로 사는자가 천국에 들어가는자이며, 이렇게 자기를 낮추어야만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회개는 어떤 것일까요? 자신을 돌이켜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경고는, 문맥 안에서 어린 아이 하나,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지혜로 살아가게 하려는 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Context is Matter라는 바른 방향에서 말씀에 집중할 때에 큰 유익이 있는 듯 합니다. 

제자들의 모든 관점은, "내"가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대답은 "공동체" 혹은 "너와 나"를 통한 대답입니다. 팬데믹 시절이 되면서, 아니 사실상 그 이전의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동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치 영상으로 독립된 "내" 자신이 홀로 신앙 생활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성경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공동체와 떨어진 신앙을 이야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시는 것은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죄를 짓게 하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와의 "관계"속에서 우리의 삶의 진실함이 나타나고 누군가를 격려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삶을 망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극심한 진노를 사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한다는 것의 사전적인 정의보다 더 와 닿는 것은 컨텍스트입니다.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NET BIBLE은 disdain으로 번역했습니다. 세상은 연약하고 힘 없는 자들을 경멸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직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은, 그 누구도 경멸함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심으로 소중히 여김을 받고 존경 받는 곳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행정적인 처리나 그 사람에 대한 처분이 강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향한 누군가의 관심, 그리고 교회의 리더쉽과 공동체의 사랑과 관심입니다. 죄를 짓고 넘어진 한 사람을 돌이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 교회 전체가 힘을 쓸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돌이키기를 거절하는 자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교회의 무관심과 혐오가 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이라는 구절을 영어로 보았습니다. NET BIBLE은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whatever you ask"라고 번역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아도, 한글 번역과는 뉘앙스가 다릅니다. 

한글로 읽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면"이라는데 포커스가 맞춰진 것 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어번역은 NET BIBLE처럼 너희가 구하는 그 어떤 것에든지 "합심하면"에 포커스가 더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문맥 안에서 생각해 본다면,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바로 그것에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 조차 개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하나됨과 그 하나됨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을 읽으면서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너무 많습니다. 문맥적으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탁월한 연결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용서에 대한 질문을, 그 문맥안에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Realizing that there may be some within the community who put on a show of repentance yet continue to sin, Peter asks whether there is a limit to forgiveness."

다시 말해서 베드로의 용서라는 것은, 단순히 용서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권면을 통해서 돌이킨 사람이 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계속 용서해야 되는가 묻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 중요하고 또 practical 한 부분입니다. 

교회 안에 속해 있지만, 죄를 짓고 회개를 했지만, 계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개하고 돌이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은 얼마든지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횟수에 제한은 없습니다. 충격적입니다. 과연 이것이 실현 가능한 것일까요?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격과 은혜 가운데 들어 있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mercy) 여겨 주신 것 처럼, 우리 역시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과연 이런 공동체가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리더일 때에 이런 공동체를 추구했을 때에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미래는 불안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교회 가운데 보여주실 것입니다. 

In Matthew 18, I saw the importance of the church community. Even when we quote the verse about forgiveness, we think of this behavior is in the area of individual forgiveness. But in the conext, Jesus conceives his teaching in the context of the community. 

I think that everybody in the world wants to be a great man. A great man means that every other person admires him and his achievement. However, surprisingly, there is no connection between who I am and what I achieved. The only thing that God is concerned that he is the man who relies on his heavenly father and does his will with his father's strength. 

I think that the pinnacle of this chapter is how many times we should forgive. In this context, forgiveness should be given to the repent. However, the big problem is this. Should we forgive him continually if he continues to sin with repentance? 

I was shocked because Jesus want us to keep forgiving. As a church leader, I am seriously afraid that this continuous forgiveness could ruin the church community. However, I have conviction with this God's word. If we do according to his word, he will open new ways that we did not go through. He will do sur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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