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재산을 가장 많이 물려줍니다. 그의 모든 관심이 이삭에게 있는 것은, 그가 약속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가 75세이고 그는 이후에 100년을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언제 믿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듯 합니다. 모태 신앙은 감사할 부분이지 자랑할 부분은 아닌 듯 합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삭과 리브가 역시 자녀가 없어서 기도하였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주시고 하나님께 그들을 기도하는 가정으로 만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하게 되는데, 쌍둥이가 서로 배 안에서 싸웁니다. 그리고 동생은 형의 발꿈치를 움켜쥐고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 부터 서로 다투었던 형제의 이야기는, 바로 성인이 된 시점으로 건너뜁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삶의 중요한 그 시점을 주목합니다. 형의 장자권만을 노리고 있던 야곱은, 형이 가장 배고픈 틈을 타서 장자권을 얻게 됩니다. 야곱이 아주 간교하게 행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은 에서가 장자권을 소홀히 혹은 멸시하였음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야곱과 에서 사이에 잘잘못을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야곱은 치밀하게 속이는 자로 그리고 에서는 배고픔에 매달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갈망이라는 관점에서는, 야곱이 에서보다 훨씬 더 그것을 갈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기를 원했지만, 에서는 그것을 내팽겨쳤습니다.
로마서 9장을 보니, 야곱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신 것은 그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였습니다. 그가 어떤 선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야곱을 이유도 없이 사랑하셨는가에 대해서 반론을 펴고 싶지만, 하나님이 원하신대로 하시는 것을 인간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나 스스로가 선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에서가 너무 불쌍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어리숙한 에서는 동생의 치밀한 계획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악하고 하나님께 사랑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의 이야기가 기적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사랑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도 없이, 그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인간적인 수준에서 나타날 수 없는 은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신,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그 사랑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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