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되고 나서 장례식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아픔은 어떤 것으로도 위로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남편 혹은 아내를 잃은 분의 마음은, 아무리 믿음이 좋은 분이더라도 큰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평생을 함께 했던 사라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함께 먼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고, 살면서 온갖 고생을 함께 했던 아내를 잃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슬픔을 과연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스터디 바이블은, 사라의 나이가 창세기에 기록된 가장 짧은 자연적인 수명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사라가 소천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사라를 잃은 아브라함의 큰 슬픔을 자세히 기록하기 보다는, 사라의 무덤을 얻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의 땅을 사고자 하는 과정이 과장된 정중함을 통한 가격 협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서로를 높여 주면서 흥정하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브라함 당시와 다윗 왕 당시에 세겔의 가치가 동일하다고 왜 전제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브라함이 매우 높은 가격에 무덤을 구입했다고 스터디 바이블은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소유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그제서야 처음으로 가나안 땅을 아주 작은 부분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분명히 값을 치르었기 때문에, 확실히 그의 땅이 되었음을 반복하여서 강조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이 장에 대한 해석까지는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의 저의 묵상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라는 것은 아브라함이 기대하지 않았던 아픔과 시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그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내의 무덤을 구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더 큰 맥락이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 속에서도,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서는 그 죽음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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