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라는 말이 어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기독교 인을 이해할 때에, 예배를 포함한 종교 의식에 들어가서 나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사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마태복음 10장은 매우 낯설게 다가옵니다.
GT스터디 바이블은 9장과 10장을 매우 부드럽게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9장 마지막에서는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심으로 바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전하기 위한 공통된 한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와 비슷한 배경 비슷한 나이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것 그리고 그 공동체에 있는 근본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면, 내가 추구하는 모든 동질성은 헛된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 동안 말씀 묵상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마태복음 10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제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것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입니다. 그것이 제자됨의 본질이라는 것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원리인 give and take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멈추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거저 주었다면 좋은 결과들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나의 희생을 알아주리라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황당하게도, 이렇게 산다고 해도 제자들은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당할 때가 옵니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불화와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음으로 크게 억울합니다. 제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까지는 어떻게 되겠는데, 그렇게까지 희생했는데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목회에서 자주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인 듯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십니다. 이러한 고난이 지나가고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를 권면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20)
만약 우리의 삶이 거저 받고 거저 주어도 미움을 받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절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된 인생의 주권자가 계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반대적인 논리로서는 그분께서는 이렇게 고난을 지난 우리에게 반드시 상 주실 분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억하고 붙드는 것만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전체를 통틀어서 "합당하다"라는 표현이 10장에 대부분 등장합니다. 아마도 마태의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고,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고 가치가 있는 길입니다. 저와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로 그 제자의 합당한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In Matthew 10, I have meditated that freely you received, freely give. This evokes in us the essentials of the Gospel. However, Jesus does not stop in this status. Rather, he predicts our future situation. On the reason of the follower of Jesus, we will be persecuted.
I think that this is the main setback in my ministry. When I do kind behavior at the request of the Gospel, in my unconsciousness, I predict that there will be a good conclusion according to my behavior. However, many times, I taste the bitterness. As Jesus tells us, this is not an awkward situation. We will be hated by everyone because of Jesus' name. However, the one who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