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한 사람의 삶을 모두 세세하게 적지 않고, 그 사람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사라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자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얻고자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충분히 사용되던 후손을 얻기 위한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갈이 임신하자 사라를 향한 시선이 완전 변하였습니다. 그녀를 우습게 여깁니다. 그리고 사라는 놀랍게도 마치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처럼 아브라함에게 책임을 돌리며 하갈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사라가 그녀를 학대하여 결국 하갈은 도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하고 기다리지 못한 결과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드라마의 소재로 수도 없이 사용되었던 평범한 일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장미빛 미래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실 하갈의 모습에 대해서 별로 긍휼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분수를 넘어섰고 누구나 하갈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고통을 들으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땅한 결과를 받아야 하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굳이 하갈에게 이렇게 특별 대우를 하시다니! 그리고 하갈은 자신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념하며 그 샘의 이름을 짓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심지어 천사도 여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하갈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16장은 구조적으로도 항상 이상하게 느껴지는 장입니다. 갑자기 뭔가 끼어들어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묵상을 해 보니,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 속에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시려고 넣은 장 처럼 느껴집니다.
목회는 무엇일까? 신앙은 무엇일까? 많이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접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신앙이요 목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미 제 자신이, 그 사랑을 풍성히 받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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