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아들들에게 모이라, 그리고 들으라 라고 반복하여 명령합니다. 이것은 그들을 축복하며 또한 그들의 미래를 말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야곱 개인의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듣고 기억해야 합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1절에 "후일"이라는 표현이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는 단어라는 것을 주목합니다. 이것은 먼 미래, 특히 메시아의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한 용어입니다.
보통 창세기 49장을 축복의 장이라고 말하지만, 읽을 수록 단순히 축복이라고만 부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르우벤에게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축복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고 책망하고 저주하는 자리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모든 인간은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삶의 모든 책임에서 해방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시지만, 인간은 그러한 하나님을 멀리하며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하더라도, 은혜를 거절하며 허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르우벤은 성욕을 제어하지 못했고,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서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르우벤과 시므온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다고 스터디 바이블은 설명합니다.
역시나 가장 주목할 것은, 유다에 대한 축복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 것, 사자에 대한 것, 그리고 규라는 것은 지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10절에 "실로가 오시기까지"라는 부분은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스터디바이블은 설명합니다. 넷 바이블은 몇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어떤 해석이든지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통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18절에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처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틀어 처음 등장하는 단어들이 매우 많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은 설명할 때에 이것은 영어로 "deliverance"로 번역되는 구원이라는 단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구원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부분입니다. 전혀 문맥적으로 맞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야곱의 간구는 충분히 더 살펴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아마 때가 되면 위에 내용들을 기반으로 깊게 공부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보잘것 없는 가족입니다. 인류의 숫자에 비하면 야곱 앞에 모인 아들들은 너무나 적은 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들의 미래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가문을 통하여서 궁극적인 미래를 보게 하십니다. 그것은 이 땅의 진정한 다스릴자, 그리고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Actually, I do not have a chance to study this chapter. At a glance, this chapter is very complicated and so hard to give us some practical points in our life. However, we found some important points.
In my opinion, it seems that this chapter is not only blessings but also a kind of curse. Reuben, Simeon, and Levi have some disadvantages and curses from their father. It is based on their past sins.
However, this chapter shows Jesus Christ who is the offspring of Judah. Judah got a blessing of rule. God will someone from Judah and surely, the nations will obey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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