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2일 토요일

말씀 묵상 어디까지 해봤니? - 마태복음 23장 / 우리 모두는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함께 말씀으로 배우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많은 부분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셨을까요?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진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GT 스터디 바이블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누렸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랍비들의 구전 전통의 의도가, 성경을 생활의 상황과 관련짓게 만들려고 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의무들이 성경보다 더 강조가 되면서 짐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도대체 말씀을 적용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씀의 적용은 매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것이 실제의 삶 속에서는 매우 복잡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라는 방식으로 적용의 지혜를 기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킬 조항을 많이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성경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고 훈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위선"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죽어있는 속은 감추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웁니다. 사실 성경적인 삶은 단순히 열심히사 사는 삶이 아닙니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삶에 진지함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열심이,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들은, "가족의 하나됨"을 추구합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그 핵심적인 방법이 바로 9절에서 11절까지에 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분이시라면, 이제 이 내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가르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내가 교사이고 당신이 배우는 사람이다" 라는 태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는 "함께 말씀을 배우며", "함께 주님의 제자되는 사람이다"라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작은 차이인 것 같지만 사실상 가장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가르치는 사람 자체"가 권위를 가지며 배우는 사람 위에 설 때에는, 절대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잘해봐야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시며, 그 권위 밑에서 아버지의 자녀로 "함께 배우며 실천할 때"에 우리는 가족이 됩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도, 가장 견고한 가족이 됩니다. 

가장 높은 권위 아래에 모두가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공동체성은 말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는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는 자의 영적인 태도와 위치는 하나님의 권위 밑에 있는 자로서, 함께 배우는 자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가 앞에서 권위적으로 말하는 그런 배움의 형태보다는, 가급적 한 가족으로 한 형제 자매로서 함께 배우는 형태를 많이 추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유명한 신학자의 말만 인용하면서 사람의 권위를 최종적으로 놓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최종적인 권위를 두고 함께 고민하면서 순종하며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혼자서 모든 시간 동안 강의하지 마시고, 함께 배우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 본성이 타락한 인간이 어떤 종교 체계를 만들어가는 형국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자기 자신은 위선적이며 속으로 타락했지만, 남들에게는 어떤 정교한 행동 체계를 강요합니다. 어떤 것을 금지하는 것에 대하여, 어떤 것을 맹세하는 것에 대하여서 행동 강령을 만들어서 지키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정교한 행동 체계에는 본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빠져 있습니다. 굉장히 열심 있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주 세세하게 십일조를 드리는데도, 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습니다.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의 열심은 과연 의와 긍휼과 믿음을 향해 있습니까? 아니면, 세세한 규정들을 지키는 나의 만족을 향하고 있습니까?

결국 마음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마음의 중요성, 나의 내면을 끊임없이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이들과 방불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 하나님을 끊임없이 거절하고 배반하며 실망시켰습니다. 주님의 탄식이 이어집니다. 주님의 때가 될때까지 이들은 황폐하여 버려진 것 처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실 그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In Matthew 23, I saw the spiritual principles to make us God's family. Jesus said that you are not to be called Rabbi for you have on Teacher and you are all brothers. This is a very interesting commend because, in Jesus's days, the experts in the law and the Pharisees were the most admirable teachers. The authority of them was most high. 

However, Jesus rearranges their sturdy hierarchy. Only heavenly father is their sole father. And Jesus is the sole leader. So, the word of God has the only authority. This principle is very critical to the present local church. I think that we lost our family intimacy when the teacher taught as the top authority. In this setting, our best expectation is merel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eacher and the student.  

However, even the teacher should teach the bible, when the teacher puts aside their authority and puts the word of God as their top authority, finally, the church will have family intimacy. Therefore, we should try to adopt specific educational settings. Of course, the lecture style is essential. However, we should use more interactive settings for our spiritu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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